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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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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하늘이 닿는 거리.
글쓴이: 아스타르트
작성일: 12-07-11 13:19 조회: 2,426 추천: 0 비추천: 0


pr.

나는 비가 싫다.
“후우…. 강수 확률 60%일 때부터 알아 봤다 내가.”
특히 초여름 뜬금없는 소나기는 하늘이 저주라도 내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의 계획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친다.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처럼 처마가 내려온 가게 앞에 서서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리던가, 급하게 비닐우산을 구입해서 쓰고 가고 있다.
저들도 나처럼 갑자기 내려온 소나기에 화가나 있겠지.
정말이지 나는.
“언제 그치냐고….”
비가 너무 싫다.


그날은 사실 별거 없는 거래처와의 계약 건이 있었을 뿐이다. 따내도 그만 못 따내도 그만이라고 사장님께선 말씀 하셨지만, 최근 실적이 좋지 않은 나는 그 사소한 계약에도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었다.
물론, 강수 확률 60프로라는 내린다는 건지 안 내린다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소나기만 아니었다면 훨씬 더 깔끔한 인상으로 거래처 사장님을 만났을 테지. 그럼 그 사장님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인 나의 겉모습보다 이야기에 더 집중해 주었을 테고, 그랬다면.
“또 실패냐고오 !!”
거래를 따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
망할 소나기.
뭐, 잘 따져보면 그냥 내가 모자라서 성사시키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소나기가 악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었다. 그보다 사실 누구의 탓으로라도 돌리지 않으면 스스로의 무능함에 머리끝까지 차오른 울분을 삭힐 수 없을 것 같았다.
쏴아- 하고.
그쳤던 걸로 착각했냐고, 그렇게 하늘이 말하는 듯 했다. 회색빛이었던 하늘이 점점 먹물을 풀어 놓은 것처럼 검게 물들어 가더니, 시원하게 2차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어쩜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일까. 사장님과 대화 할 동안은 그치더니, 다시 나오니 비가 쏟아진다. 하늘에는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센서라도 있나 보다.
비가 오니 나는 불행해져 가고 있다. 아마 좋은 일 따윈 절대로 없겠지.
“하아….”
없는 지갑의 현찰을 탈탈 털어 산 가장 싸구려 비닐우산을 쓰고 걷는다. 마치 비가 새는 것 같은 착각은 불행 끝에 도달한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집으로 향하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소나기 때문인지 오늘따라 거리는 휑했다. 아무것도 없는 거리. 떨어지는 낯선 소나기. 질척거리는 기분 나쁜 대리석 바닥. 가게에서 나오는 불빛이 스며들어 밝혀져 있는 비교적 익숙한 거리. 소나기 하나에 이 모든 것들이 새롭다고 느껴졌다. 기분 좋은 새로움이 아닌 그저 기분 나쁜 이질감이었는지는 몰라도.
“거기.”
그래서 나는 그 이상한 여자의 등장에도 그렇게 놀라지 않았나 보다. 봐라. 여기 이 이질적인 공간에 가장 이질적인 그녀를. 몇 십번 이 거리를 다녀도 한 번도 눈에 담지 못했던 이 이상한 광경을.
“거기. 청년.”
“…네 ?”
“그대는. 하늘이 닿는 곳을 알고 있나 ?”
“……음. 네 ?”
“젊은 친구 같은데 벌써 귀가 먹었나. 하늘이 닿는 곳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무심코 지나치려던 문 닫은 화장품 가게 앞을 지키고 있던 낯선 하얀색 소복의 소녀. 그 노년의 말투가 어울렸던 것은 그 소복이 마치 어제 본 사극 드라마의 중전이 잠자리에 들 때나 입는 그런 느낌이 들었던 탓일까.
새까만 긴 머리가 하얀 소복과 정확히 대비를 이루는, 그 과감한 믹스매치가 어울리는 소녀였다. 크고 둥근 눈과 부드러운 반달 모양의 새까만 눈썹. 미끄러질 듯 한 콧날에 붉디붉은 입술은 뭐라도 바른 듯 매끈해보였고, 화장품 가게 앞을 죽치고 있던 것 치고는 깔끔한 민낯으로 보였지만 그 새하얀 백옥 같은 피부는 굳이 어떤 치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할만 했다.
“말세로다. 말세야.”
“그러니깐… 네 ?”
“허허허.”


내 목적지는 코앞인데, 불행의 씨앗은 나라는 들판에 또 다른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


“수수께끼 같은 건가요 ?”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혹 유령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봤지만 생기가 넘친다. 하얀 피부에 올라와 있는 붉은 홍조는 소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달아오른 듯 했다. 그 모습마저 가련해 보인 것은 그녀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얼떨결에 나는 그녀의 곁에 합류했다. 화장품 가게를 지키는 하얀 원피스의 소녀와 ?소복인줄 알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원피스였다- 짙은 회색의 비에 젖은 양복을 입은 나와의 조합은 남들이 봤을 때 미묘한 상상이 들게 할 것 같았지만, 곧바로 헤어질 예정이기에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늘이 닿는 곳이라.”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천문대, 남산 타워, 63빌딩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 이야기 했더니.
“멍청한. 그러한 곳도 안 가보고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에게까지 물어보는 건줄 아느냐.”
“아, 예….”
“그보다.”
흥이다. 꼭 이렇게 지 잘난 맛에 사는 것들이 있어요. 말투도 가만 들어보니 고압적이야. 사극이라도 찍는 줄 아는 건가. 쳇. 웬 이상한 여자한테 걸려가지고. 아 빨리 들어가서 씻고 자고 싶다. 오늘 꽃 피웠던 불행이라는 꽃을 꿈속에서라도 빨리 다 꺾어 버리고 싶어.
“…름. 어이.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네 ? 아, 저는 오름입니다. 고오름.”
이런…. 나도 모르게 계약 직전 상대방에게 나를 소개하는 느낌이 되어 버렸다. 이게 직업병인가. 그나마 명함을 내밀지 않아서 다행일지도.
“풉.”
“…이름을 듣고 웃는 것은 실례 아닌가요.”
뭐, 확실히 웃긴 이름이긴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비웃을 것까진 없잖아. 그런 웃음은 비교적 익숙해져 있지만, 들을 때마다 가히 좋은 기분은 아니다.
“끝말잇기에 이름을 포함해도 된다면 그대의 이름은 필살기가 되겠군.”
“네, 네. 그런 식의 비꼼은 이미 25년 동안 들어왔으니 다른 신선한 반응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그녀의 장난기 어린 말투에 나는 조금 삐딱하게 반응했다. 그건 이미 오랜 기간 나의 이름이 콤플렉스였던 탓도 있고, 어쩐지 그녀에게 만큼은 그런 소리를 듣지 않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비꼬듯 되받아 치는 나의 말에도 그녀는 태연하게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좋은 이름이다. 옳음과 오름. 그대가 가는 길에 항상 오름과 옳음이 공존하라는 뜻이겠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성까지 합쳐 고름이 된다는 것은 좀 어떨까 싶지만.”
확실히, 신선한 반응이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나의 이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이 사람이 처음이다. 뭐 그런 의미에선 나도 잠시 할 말을 잃고 그녀만을 쳐다보았지만.
“나는 서지율. 지금은 하늘을 찾는 평범한 여자일 뿐이다.”
자기소개 치고는 조금 이상하지 않나.
“자, 여기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도 뭐하니, 어디 좋은 곳으로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
이, 이 여자가. 뭘 당연한 듯이 말하고 있어. 좀 빼어난 외모를 가졌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데리고 어디라도 갈 거 같냐고. 난 당장 집에 가서 씻고 자는 것이 행복일 평범한 회사원이다. 더 이상 말리는 것은 사양이야.


“집이 좁군.”
“그러니깐 좁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얼굴이 추운 날씨 탓에 상기 되서 내버려 두면 언제까지고 낯선 사람한테 말을 걸 것 같은 그녀가 위태위태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지.
하아. 지율씨. 당신은 운 좋은 줄 알아. 나 같은 착한 사람한테 걸려서.
“차는 이걸로 내주게나.”
“예이, 예이.”
툭하고, 주머니에서 꺼낸 붉은 꽃잎이 들어있는 팩 두 개.
어디서 이런 정체불명의 차가 나타났는지 따위의 궁금증은 접어 두기로 했다. 무엇에 홀렸는지 이 여자가 지금 나의 자취방에 들어와 있고, 나는 내일도 회사에 출근 하려면 씻고 쉬어야 된다는 거다.
뭐 딱히 나쁜 사람인 것 같진 않지만…. 조금 고압적인 것이 문제다.
쏴아- 하고.
부엌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보였다.
뭐, 비가 그칠 때까지만 있게 해줄까.
“그대는 하늘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차를 내는 도중 그녀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나는 좀 침울해 보이는 그녀의 목소리에 짐짓 평범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하늘이라. 구름 떠 있는 곳이 하늘 아닐까요.”
“그대도 그렇게 생각 하는가.”
후후, 하고. 가라앉은 그녀의 웃음소리에 나는 혹시 내가 어떤 실수를 했나 생각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 한다네. 구름이 떠 있는 그곳이 하늘이지.”
“그게 아니라면.”
자.
붉게 우려 나온 차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얌전히 탁자 앞에 정좌 자세로 앉아 있는 그녀에게로 차를 내밀었다.
일반 적으로 하늘은 성층권이지만 그건 뭐 과학적 논리로 따졌을 때고. 좀 비과학적으로 접근 한다고 치면.
“여기도 하늘이죠.”
“응 ?”
“여기도 하늘이라구요.”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대충 가슴께 높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오호.”
“땅과 반대니깐 땅 말고는 다 하늘이죠 뭐.”
지면에서 0.1cm 만 올라와도 하늘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그녀가 과연 납득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일리가 있군.”
“네, 뭐 그렇죠.”
내민 차를 그녀는 계속해서 마셨다. 잠시 잠깐의 침묵. 그 약간은 어색한 텅 빈 느낌에 조용히 나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마시려고 했다.
“고맙다.”
“네 ?”
마시던 차를 내려놓은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밝고 아름다운 미소다. 눈도 입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어 보는 이쪽도 절로 그 미소가 전염되어 오는 듯 했다.
“아주 조금 납득할 만하군.”
아까부터 뭘 고마워하고, 무슨 얘기하는 건지….
“내가 그대에게 유독 말을 걸고 싶었던 이유 말이네.”
홀짝.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 되어 그녀와 마찬가지로 차에 집중하기로 했다.
‘맛있다….’
차 맛은 모른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이 차가 이런 무지한 놈이 마셔도 맛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정체가 뭘까.
차를 마시는 자세도 아주 곧고, 애초에 앉아 있는 자세가 아주 곧다. 꽤나 예의 교육을 받은 사람 같은데. 그에 비해 말투는 노년의 그것이고.
“그리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네. 이런 상황을 감당케 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한번 크게 돌고, 돌아서 뇌로 전달된다. 터널 끝에서 지른 소리를 반대편 끝에서 듣는 것 같은 불투명함.
“으음….”
어쩐지.
“뭐…지….”
졸려온다.
낯선 손님이 있는데,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잠은 늪에 빠지듯 서서히 나를 졸음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 차는.”
지율의 말이 메아리치듯 울려온다. 시야 끝에 걸려 있는 그녀의 모습 역시 몇 개로 나뉘어져 보일 정도로 흐려지고 있다.
나는 갑자기 몰려드는 졸음에 당황하고 있다.
“인간에게 매우 좋은 차라네. 다만. 그렇기에 그 좋은 효능이 몸에 지나치게 빠르게 작용하고 싶어 해. 그리고 인간이 가장 빠르게 그러한 효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수면이지.”
“윽….”


“꿈을 꿨다고 생각하게나. 이렇게 빠르게 답을 내려 줘서 고맙네. 오름 도령.”


“비가 그친 듯하니. 이만 가보겠네.”


“다음에 만나게 되면. 그땐 좀 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주도록 하겠네.”


“그럼…. 잘 자게나….”


멀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몰려드는 수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듯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냐고….


☆★○●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좀 더 자세한 조정은 저희 쪽에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며칠 만에 성공한 계약인지 감도 안 잡히지만, 드디어 성공했다. 이걸로 당분간은 실적 문제로 사장님께 눈치 보일 필요도 없겠지. 휴.
바깥의 날씨는 어제 소나기가 내렸다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어제는 하늘이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한다면, 오늘은 좀 기뻐 보이는 것 같다.
착각이겠지.
어제 1시간도 안 되는 짧았던 꿈에서 얻었던 것은 쌩쌩한 몸 상태와 그녀에 대한 짧디 짧은 추억뿐이었다. 그리고 잠깐 보았던 아련한 웃음. 서글픔도 슬픔도 아닌 순수한 기쁨에서 우러나온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는 하루가 지난 아직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애초에 꿈이라고 치기엔.
“찻잔이라도 비우고 가야지. 그래야 꿈이라고 믿지.”
바보 같은 사람.
그녀는 꿈이라고 생각하라면서 전혀 주변 상황을 꿈꾸기 전처럼 정리해 놓지도 않았다. 탁자 위에 올려 진 찻잔은 두 개. 하나는 그녀가 마시다 만 찻잔, 그리고 하나는 내가 마시다 졸아 버린 찻잔.
꿈도 아니었던 거다.
“선녀쯤이라도 되는 걸까.”
선녀의 이미지라고 하면 가녀리고, 나긋나긋한 것이 보통인데 어제의 그녀는 조금은 자기중심적이었고 조금은 고압적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하얀 원피스가 잘 어울렸고 ?하얀 소복으로 보일 정도로- 외모 역시 선녀와 다름없었다.
뭐, 그래도 앞으로 만날 일은 없겠지. 어째서 하늘을 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말에 납득하고 돌아간 듯 했으니깐.


쏴아- 하고.
“응 ?!”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기이한 소나기가 거리에 내리기 시작했다. 검은 구름도 하나 없고, 날씨도 후덥지근한데 아무런 전조 없이 쏟아 붓는 소나기에 나는 서둘러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아, 무슨 또 소나기야. 어제도 그렇게 내리더니 오늘도…. 심지어 오늘은 강수 확률 10프로도 안됐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꼭 대성통곡 하는 것 같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네.”


“흐억 ?!”
“아버지도 참. 이제 나도 자립할 때인데도 저렇게 눈물을 흘리시는구나.”
“네 ?”
“내가 말하지 않았나.”
어제와 다름없는 소녀가 어느새 나의 옆에 나란히 서서 나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아무런 전조 없이 꿈 같이 사라졌던 그녀는 또 다시 꿈처럼 나에 곁에 나타나서는 나를 뒤 흔들려 하고 있다.
“다음에 만나면 나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 주겠다고.”
생긋 웃으며, 나의 옆에 서있는 지율은 떠나간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주 뜬금없고, 느닷없이 그렇게 나의 곁에 나타났다.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이고, 강제적이고, 그리고 고압적인 그녀.
“이번엔 자네를 만나러 왔네. 오름 도령.”
“아, 안녕하세요.”
“자, 바보 같은 인사는 접어 두고.”
고압적인 그녀는 나의 손을 끌어 소나기 속으로 뛰어 들었다.


“이번엔 내가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겠네.”


마지못해 끌려가는 나는 그녀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나쁘지 않을 것이란 것은 알고 있다.
그녀는 분명 하늘이 내려주신 선녀임에 틀림없을 테니깐.


1)


“결국 여기인가요.”
그녀가 나의 손을 잡고 소나기를 맞아 가며 도착한 곳은 어제 그녀도 잠시 머물렀던 나의 자취방이었다. 뭘 당당하게 주인처럼 안내를 하고 있는 건지.
언제나처럼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 치곤 깨끗한 나의 집으로 그녀가 발을 내딛었다.
“여기는 내가 지상…. 아니, 흠. 이 동네에 와서 가장 처음 머물렀던 곳이라네. 좋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네….”
중간에 짧게 스치듯 지나간 단어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일단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으니, 그것을 기다릴 뿐이다.
“자, 차는 이것으로 어서 내오게.”
지율이 탁자 위에 내민 팩에 쌓인 차를 나는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팩을 쳐다보고. 가만히 그 행동을 반복 했다.
“응 ? 왜 그러고 있나.”
번갈아 돌리던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시켰다.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보라. 자신은 결백하다는 듯한 저 눈빛에 나는 그녀가 스스로 깨달을 일은 없다고 판단,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저번 차는 마시고 바로 잠 들었으니깐요….”
“아참. 그랬었지. 큰일 날 뻔 했네.”
서둘러 그녀는 마시고 잠들었던 차의 색보다 훨씬 짙은 붉은 색인 탁자 위의 차를 주머니로 가져갔다. 내가 색만 좀 옅었어도 어제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 내왔겠지만, 마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정도로 짙은 붉은 색이었기에 쉽게 반응할 수 없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네. 오름 도령이.”
“얼마나 좋은 차냐고 !”
“헤헤. 미안.”
“…조심해 주시라구요.”
귀엽게 한번 웃어버리니 반응하기가 곤란하다. 많이 쳐줘야 20대 초반. 평범하게는 1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의 외모는 ‘헤헤’하고 실없이 웃는 모습이 잘 어울렸다. 그것도 귀엽고 예쁘게.
“자, 이건 오름 도령이 마셔도 문제없을 거라네.”
다시 한 번, 실없이 웃으며 그녀가 내민 차는 받아들이기 부담스럽지 않은 옅은 녹색과 노란색의 잎으로 되어있는 차였다.
진작 이런 걸 주지…. 어제도 말이야 괜히 몸에는 좋은 거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재우는 차를 먹이고 말이야. 그럼 안 되는 거야. 사람이 좀 더 말을 하고 싶은데 억지로 잠이 오는 그 기분이 얼마나 꺼림칙하고 찝찝한데. 가려면 그리고 정리를 해놓고 가야지. 그래야 진짜 꿈이라고 믿지. 누가 봐도 꿈도 아니고 진짜인데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에잉.
“…령. 오름 도령 !”
“핫 ! 부정적인 생각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겐가?”
“그냥 가끔 이래요.”
“실없는 지로고.”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그녀가 뭔가를 해온 것 같다. 이건….
“어제 도령이 하는걸 보고 대충 따라서 해봤다네. 자 마셔보게나.”
차였다. 짙은 노란색이 우려 난 차에서 나는 처음 맡아보는 그 향기가 굉장히 좋았다. 약간은 정신없고, 또 약간은 고조된 기분이 절로 진정되는 듯했다.
“이 차는 약간의 진정 작용이 있다네.”
“그런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작용을 하는 거군요.”
“도령 표정이 그러했네. ‘아, 마치 이 차는 나를 진정시키는 듯 해!’ 같은 표정이었다네.”
흥, 설마 그런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을라고.
지율은 그 말을 끝으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따라 나도 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적당히 따뜻한 그 온기에 소나기를 맞아서 내려간 몸의 온도가 조금은 올라 간 듯 했다. 그러니깐 기분이 좋은 따뜻함이었다.
한 모금, 목을 타고 흐르는 꽃차는 이내 전신에 퍼지며 손으로만 느껴졌던 아늑함을 퍼뜨려주었다. 10년 묵은 근심이라도 이 꽃차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것 같았다. 편안한 고요함이 방안을 지배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차라네. 아버님께서 아끼시던 것을 몰래 가지고 나왔지.”
“…뭐, 이해합니다.”
나도 예전에 아버님이 아끼던 포도주를 몰래 훔쳐 나와 친구들과 마신 기억이 있으니깐. 이건 오히려 얌전한 축에 들지 않을까. 고작해야 꽃차인데. 당장 마트로 뛰어가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10년에 한번 열리는 꽃을 다리고, 다려야지 두 모금 정도 나온다네.”
“당신 신고할 거야.”
여기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걸 훔쳐 내는지 모르는 도둑이 있다고 !
평범해 보였던 꽃차에서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게 혹시 돈으로 계산 할 수 없다는 그런 종류의 물건인가. 나 엄청 대단한 것을 손에 쥐고 함부로 마시고 있는 건가.
장난 아니라고…. 아버지 와인도 12년 정도 된 고급 와인이었지만 이건 스케일이 다르다고.
“저 버, 벌써 네, 다섯 모금 마신 것 같은데요.”
“음 ? 그러라고 가져 나온 거니 신경 쓰지 말게나.”
“안 쓰이겠냐구요….”
“참고로, 그 꽃은 말리는데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맛이 사라지고 말지.”
신경 쓰지 말라며….
지율은 아닌 척 하면서도 은근 압박을 주고 있다.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무조건 신경 쓰고 언제까지고 생각하고 은혜를 갚으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돈으로 환산 한다면…. 그래, 딱 도령이 마신 정도는 4천 만원 정도 일까.”
“사, 사처언 ?!”
꽃차의 무게가 수십 배로 불어난 느낌이 들었다. 넘긴 꽃차를 당장이라도 뱉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압박감에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다. 어쩌자고 이런 고급스럽다 못해 보석 같은 차를 준거냐.
“또 어제 자네가 마신 차는 지금 그것 보다 훨씬 더 비싸다네. 차마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하네만.”
어버버 하고 한심하게도 나는 그 감당키 힘든 스케일 앞에 언어를 잃고 앓는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귀한 집 자녀면 이런 차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깔끔하고 본받고 싶은 곧은 자세로 마실 수 있는 거지.
나는 어쩌면… 진짜 생각보다 더 한 거물을 집에 들여놨는지 모르겠다.
“신경 쓰지 말게나. 별거 아니니.”
생긋- 하고. 아까까지만 해도 그저 순수하고 부드러워 보였던 미소가 지독하게도 이해 타산적이고 무서워 보였다. 이게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적응하는 인간의 한계인가. 미소의 의미가 달라진 것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저 미소는 분명 그거다. 정말 아무런 부담 가지지 말고 마시라는. 순수한 호의 끝에 나오는 그런 미소임이 틀림없다.
아니, 사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자, 그럼 내가 자네한테 진 빚 보다, 자네가 나한테 진 빚이 더 많으니깐.”
“잠시만요. 뭘 멋대로 얘기하고 있는 겁니까.”
“응 ? 그냥 별 이야기 아니네만.”
“아니, 내오라고 하셔놓고 빚으로 계산하면 어떻게 하십니까.”
지율은 나의 말에 잠시 침묵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평생 잊기 힘든 말을 듣게 된다. 어쩌면 정말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얼마나 스스로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는지, 또 그 인생이 얼마나 당당한지를 바로 보여주는 그런 한 마디를.


“내오라고 했지, 마시라고 한 적은 없었다 !”


양 팔을 보란 듯이 허리에 가져다 대며, 곧은 정좌 자세를 풀지 않은 채 거들먹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10살 먹은 어린아이 같은 대사란 말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와 지나치게 잘 어울렸다. 앙 다문 입이, 약간은 치켜세운 듯한 눈초리가, 약간 부푼 것 같은 볼까지. 그녀가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고결하고, 고귀하고, 또 고아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어린 아이의 투정 같은 대사 하나하나가.
“하, 하하….”
그래서 나는 조금 멍청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그런 허무맹랑한 대사에 제대로 된 답도 하지 못하고.
“그러니깐. 자네. 오름. 오름 도령.”
“네, 네.”
“어때, 빚을 갚고 싶은가 ?”
“마음대로 이야기 진행시키지 마시라구요….”
“혹, 그런 마음이 든다면.”
주눅 들었다고 해야 되겠지. 그녀가 가진 성질이, 스케일이 내가 감당하기엔 어쩐지 버겁다고, 그렇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 그녀는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다. 세상은 나보다 그리고 다른 그 어느 누구보다 조금 더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세상이 그녀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과장이겠지만, 전혀 틀리진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다시금 내 귀를 의심했다. 내용이 지나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기에.


“나를 이곳에서 키워 주지 않겠나 ?!”


“……네 ?!!!”
“그러니깐.”
평범한 회사원인 나와 정체 모를 그녀와의 지독한 인연이 시작되려 한다.
그녀의 처음은 소나기를 동반한 가녀린 작은 소녀였다면.
“나를.”
지율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덮으며, 눈을 반짝인다.
그녀의 두 번째는 조금 고압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에 본질을 오해했고.
“이곳에서.”
다른 손바닥으로 탁자를 가볍게 내리치며, 이곳을 강조한다. 그녀의 눈이 더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세 번째. 그녀가 마른하늘의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등장해서 놀랐다.
“키워 달라고 말 하고 있다네 !”
초롱초롱 하다 못해 광채가, 혹 눈에 태양을 심어 놓았나 의심이 들 정도로 가시광선을 내뿜을 기세의 그 두 눈에 나는 시선을 빼앗겼다. 혹 그 광채에 내 시력을 잃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그녀의 순수한 그 두 눈에 생각을, 마음을, 그리고 시선을 빼앗겼다.
마지막으로 지금. 그녀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이기적인 것도 자기중심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이 그녀를 위해 돌아가고 있는 것일 뿐.
나는 그녀의 말에 한동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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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단편제에 냇던것을 고쳐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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