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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우리 집의 가정부라고?!
글쓴이: 추아
작성일: 12-07-09 23:13 조회: 1,600 추천: 0 비추천: 0

1. 네가 우리 집의 가정부라고?!

올해로 고교 1학년이 되는 신입생들. 오늘은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열리는 날이다.

그리고 경기도에 있는 어떤 한 고등학교에서도 입학식이 한창이었다. 강당에 학생들이 전부 모여 줄을 지어 서있었고, 단상 위엔 교장이 연설을 늘어놓는다. 아이들이 조용한 건 학교 분위기가 면학을 위해 빡세게 운영하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우등생들만 모인 자사고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모두가 낯설기 때문이니라.

일단 고등학생이 막 되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의 숫자가 희박하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전의 중학교에서는 최고학년이었지만 최저학년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너무 나대는 행동을 해서도 안 되고 첫날부터 담임선생에게 찍히면 학교생활 초부터 상당히 껄끄러워진다. 말하자면 알아서 기는 중이었다.

“아아. 이것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순서를 지켜 강당을 나가주시고 담임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의 인솔 및 여러 지시사항들을 수행해주십쇼.”

교장이 내려가고 옆에 있던 교감이 그렇게 끝을 고한다. 양 끝 쪽에 있는 학생들부터 차례대로 줄지어 나가는데, 오른쪽은 여학생이고 왼쪽은 남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남학생 반과 여학생 반이 하나씩 입구를 나가고 모두가 원래의 교실로 돌아간다.

이 학교는 신설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강당이 있는 신관과 원래 처음 설립할 때의 본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강당이 있는 신관은 1,2 층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실 및 교무실이 있고 3층에 강당이 있는 구조였다.

한 학년에 총 18개의 반, 9반씩 나뉜 남녀공학의 학교. 학생 수만 해도 총 3000여명. 교사 수만 해도 200여명. 최고의 인구를 자랑하는 수도권의 학교, 그 중에서도 학생 수가 꽤 많은 편에 속하는 송송 고등학교가 바로 이곳이었다.

반으로 돌아온 1학년 신입생들의 분위기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일단 여러 학교에서 왔으며, 같은 학교라도 모르는 아이들이 상당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일단 고등학생이 된 신입생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면학이다. 중학교 때까지 자신이 너무 놀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는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안녕, 애들아! 내가 바로 1학년 3반의 담임 오현주라고 해. 앞으로 1년 동안 잘 해보자!”

“안녕하세요…….”

정적마저 감도는 교실에 최대한 밝게 인사를 하며 담임선생님이 등장했다. 30 전후로 보이는 안경을 쓴 선생은 입 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어 항상 웃고 있는 것만 같은 인상을 주었다. 곧 물백묵으로 칠판에 이름을 한자로 쓰고 난 뒤 선생은 어디까지나 밝은 얼굴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일단 자기소개나 그런 건 나중에 하도록 하고, 걷을 거부터 걷어야겠지?”

“…….”

그 말에 아이들의 대부분이 더욱 무표정하게 변하며 침묵했다. 대개 공부를 적당히 하는 수준의 학교에서 보이는 입학식 첫 날의 풍경. 바로 방학숙제다.

고등학교에 배정이 되면 그 학교에서 사전에 모이게 한 후 겨울방학 숙제를 준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아이들은 대개 이런 종류의 숙제에는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 어차피 고등학교 들어가면 야자니 뭐니 하면서 뼈 빠지게 공부할 수 있으니 지금은 놀자, 라는 기분인 것이다. 그것이 반편성고사의 시험범위이기도 하고 방학숙제이기도 한데, 이를 간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실의 냉혹함을 보여준다.

“번호도 알려줄 겸 차례대로 부를 테니 숙제를 함께 가지고 선생님에게 오도록. 1번 강수연.”

“네, 네…….”

반 안에 있는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첫 타자부터 글렀구나, 라고 생각했다. 저 자신감 없는 목소리에 들고 나가는 책이 2권밖에 안 된다. 방학숙제가 국영수 문제집 하나에 그 외의 학교에서 준비한 책까지 총 4권은 되어야 하는데 절반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선생님의 반응을 알아 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흠. 수연이는 국어랑 영어만 해 왔구나. 알았어. 들어가도록.”

“네, 네.”

“다음 2번 김미연.”

“네~”

선생님은 숙제를 덜 해 온 아이들에게도, 전부 다 해 온 아이들에게도 딱히 차이를 느낄 수 없는 반응만 보여주었다. 그제야 숙제를 전부는 해오지 않은 아이들 대부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몇몇 숙제를 다 해온 아이들 중에는 조금 분한 마음에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기도 했다.

“숙제를 전부 다 해온 건 5명뿐이네. 그럼 선생님의 첫 숙제를 낼게.”

“네?”

“방학숙제 다 안 해온 아이들은 일주일 내로 전부 끝내서 검사 맡을 것. 그러지 않으면, 학교생활이 꽤 괴로워질걸?”

“네에에~?!”

그 말에 아이들이 입을 떠억 벌리면서 항의의 목소리를 내었지만, 선생은 손을 훠이훠이 저으면서 무시했다.

“어쨌든, 숙제를 안 해온 건 너희들 잘못이고 무엇보다 고등학교 수업을 제대로 받으려면 모두 제대로 익혀야하는 기본적인 것들이니까. 알겠지?”

“…….”

“어라? 대답 안 하기? 그럼 이번 주 청소당번은 숙제 안 해온 사람들부터 하는…….”

“알겠어요! 일주일 내에 할게요!”

“좋아, 좋아~ 그럼, 일단 임시 반장과…….”

그리고 이어진 건 단순한 학기 초의 풍경과 다를 바 없는 수순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입학식 첫날부터 야자는 시작되었고, 자율화가 된 경기도 권에서는 사전에 조사한 것으로 통해 야자 하는 인원만이 교실에 남아 있다 밤 9시 50분에 하교를 시작한다.

그리고 또 갈리는 그들의 하굣길. 공부하러 가는 사람과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로 나뉘어 간다. 학원이 밤 10시까지 가능하다고 한다면 독서실은 새벽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그 중 한 여학생이 바로 독서실을 향하는, 전형적인 공부 열심히 하기로 다짐한 타입이었다. 걸어서 15분 쯤 되는 곳에 독서실이 있었고, 이곳은 집에서도 10분 거리였다. 굳이 집이 아닌 독서실에서 하는 것은 당연히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니라. 일단 집에 들어가면 그 익숙한 공기에 풀어지기 십상이니까.

그렇게 1시까지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곧장 씻고 잠이 든다. 그런 일상의 반복을 굳이 선택한 것은 아무래도 무언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고, 그런 학생들은 종종 보인다.

그녀, 신유라는 고교 데뷔에 성공했다.

◆ ◆ ◆

송송 고등학교 1학년 3반 17번 신유라.

이번 신입생 중 유일한 혼혈아로 옅은 노란빛 머리칼과 벽안을 지닌 여학생이었다. 일단 그녀는 아주 평범해 보였고, 학업에 열중인 모범생의 이미지였다. 매일 야자를 열심히 하고 있으며, 독서실에도 꾸준히 다니고 토, 일요일에는 학원까지 다니며 오로지 공부, 공부만이 일상의 전부였다.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도 평범하게 연예인이나 영화배우, 아이돌의 이야기였으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듯했다.

그렇게 똑같은 일상의 반복. 그리고 고등학생 입학 이후 처음 치르게 된 중간고사는 유라의 마음을 풀어놓기에 충분했다.

평소대로라면 독서실에 직행했을 터였지만, 모든 과목에서 고득점을 얻었다는 사실에 잔뜩 상기된 기분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됐어! 드디어 나도 공부로 성공하는 인간의 분류가 되었어!’

활짝 핀 꽃처럼 밝은 미소와 함께 도로변을 걸으며 집으로 향하는 유라였다. 가면서 독서실에 연락을 넣어 오늘은 가지 않는다고 미리 전해놓은 후, 대문 앞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약 20분 거리 떨어져 있는 한적한 주택가. 담벼락이 있고 2층 구조의 집인 이곳이 바로 유라가 사는 단독주택이었다.

파란색 삼각지붕과 나무로 만들어진 이 집은 상당히 아버지 쪽의 취향이 반영됐다. 나무라고는 하지만 확실하게 코팅되고 변형 된 것이라 썩거나 하는 일은 없다.

작은 쪽문에 달려 있는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마당으로 들어선 뒤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에 들어섰다.

“흥흥~ 흐으으흥~”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서도 누구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은 현재 유라는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무역회사에 다니며 미국에 잦은 출장을 다녔고, 그러다가 만난 어머니는 유라를 위해 한국에 남았었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돕기 위해 미국에 가있는 상태였다.

2층 전체는 유라가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었기에 계단을 타고 올라가 방으로 들어섰다. 혼자 살고 있는데도 상당히 방이 깔끔했는데, 이는 유라가 한 것이 아니었다.

“가정부 아주머니, 오늘도 깔끔하시네!”

매일 왔다가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집안을 깨끗이 유지시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유라가 걱정되어 믿을만한 사람을 가정부로 고용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한 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다. 일단 유라는 고등학교 입학 이후로 완전히 공부만 하는 일상이었고, 가정부 아주머니도 일찌감치 일을 끝내고 가시는 편이라 얼굴 볼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소통을 하는 방법은 거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메시지를 적어 놓는 정도였다. 그곳에는 오늘 청소한 곳의 이름과 다음 날 청소할 구역 그리고 야식이나 아침 메뉴의 신청이다. 특히 식사는 아침은 기본적으로 매일 만들어 놓고, 야식은 가끔씩 챙겨 먹기 때문에 제대로 써 놓지 않으면 배를 굶주릴 수밖에 없다. 아침에 먹을 것을 미리 먹어버리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내일이 괴롭다.

유라는 일단 목욕부터 하자는 생각에 갈아입을 옷을 챙긴 뒤 거실로 내려간 뒤 일단 화이트보드에 쓰여 있는 내용을 확인했다.

“응? 안 바뀌어 있네?”

내일 청소할 구역이 수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자신이 신청한 메뉴들도 그대로였다. 웬일이지, 생각하면서도 급한 일이 생겨 깜빡했을 거라고 별 생각 없이 넘어갔다.

욕실 스타일도 한국식과는 다르게 탈의실과 욕실이 나뉘어져 있었다. 일단 이곳에서 옷을 벗은 후 빨래 바구니에 넣은 후 수건을 두른다. 혼자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예부터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고 똑같이 따라했기 때문에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욕실의 나무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을 때, 물소리를 들은 유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샤워기가 틀어져있는 소리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욕실청소도 있었지.”

화이트보드에 있던 내용을 상기해내고 혹시 아주머니가 깜빡하고 물 틀어놓은 것조차 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지체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욕실 안에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에?”“응?”

안에 가득 찬 수증기 속에서 두 남녀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했고, 잠시 후 유라의 얼굴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입이 벌려지고 동공이 확대되며 머리가 쭈뼛하고 서는 것만 같았고, 곧 숨을 들이켠 후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변…… 우욱!!”

“쉿! 조용히 해.”하지만 어느새 남자는 다가와서 입을 막고 뒤로 돌아간 후 양팔을 배와 함께 둘러서 포박했다.

“우읍. 우으읍!!”

“조용히 해.”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자 유라의 몸이 움찔 떨리면서 발버둥치는 것을 멈추었다.

‘어째서! 어째서 도둑이 우리 집에!’

담벼락도 낮지 않고 현관이나 창문 등도 평소에 열지도 않으니 잘 잠겨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오늘의 변수로 떠오르는 건 평소와 다른 집의 상태. 가정부 아주머니가 아무래도 급한 용무에 확실하게 살피진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필 오늘 도둑이 온 거야?!’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잘도 침입해 온 거 같기도 하지만, 설마하니 매일매일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너 말이야, 그 차림으로 너무 당당하게 들어오는 거 아냐?”

“우읍! 우으읍!”

‘침입자 주제! 내 집에서 목욕하러 들어오는 게 뭐가 나빠!’

입이 막혀있어 제대로 말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또 억울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유라는 다시 발버둥 쳤다. 이에 더욱 힘을 주어 배를 압박하자 겨우 멈춘 것을 확인한 남자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얼마나 둔감한 애인거지.”

“우으으으읍! 우우우읍!”

“이봐, 잘 들어. 내가 바로 이 집의 가정부다.”“우으으으으으으읍?!”‘뭐라는 거야, 이 자식이?!’

충격적인 발언제 유라가 당연 못 믿겠다는 듯이 다시금 발버둥 치기 시작했고, 가정부라 밝힌 남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금 힘을 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발버둥이 워낙 심해서 결국 놓치고 말았다.

“어?”압박감에서 벗어나는 순간, 워낙 힘을 많이 주면서 발버둥친 나머지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한 유라가 곧장 앞으로 넘어졌다. 남자가 아차 싶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다.

“꺄얏!”

간신히 손바닥으로 충격을 완화시키긴 했으나 결국 턱이 바닥에 부딪쳤다. 엄청난 아픔에 눈물이 쏙하고 삐져나왔다.

“어, 어이. 좀 가려라.”남자의 머쓱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먹을 맞은 것처럼 순간 고개를 올려 사태를 파악한 유라가 기어코 비명을 질렀다.

“이, 이 변태자식아아~!!!”

그렇게 외치면서 수건을 감싸 쥔 채 욕실로 들어가 문을 확하고 닫아버렸다. 탈의실에 남겨진 남자는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방해가 될 거 같다는 생각에 탈의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 잠시 후 문틈을 살짝 열어 탈의실을 엿보던 유라가 수건을 다시 몸에 두르고 나와서 곧장 탈의실의 문을 잠갔다.

그리고 긴장감이 해소되자 그대로 문에 등을 받치고 스르르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늘어졌다.

“정말, 뭐냐고……. 진짜 우리 집의 가정부인거냐고…….”

헤치려 했으면 쉽게 해냈을 남자를 생각하며 복잡한 머리를 쥐어뜯었다. 남자의 말이 사실인지 어떤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이~ 문 앞에 있냐?”

“……?! 뭐, 뭐야! 변태!”

그러다 갑자기 문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유라가 소리쳤다. 반사적으로 외쳤지만 그 덕분에 아까의 일이 생각난 유라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봐, 그건 80%는 네 과실이라고?”

“뭐야?! 이게 무슨 교통사고의 쌍방과실이라는 거야?!”

100% 남자 쪽의 과실이라는 듯이 주장한 유라였지만, 남자 쪽이 훨씬 더 논리정연하게 밀고 들어왔다.

“쌍방과실은 교통사고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거든? 그리고 네 책임이 더 큰 이유를 3가지 들어주지.”

“뭐, 뭐야 갑자기.”

어디까지나 차분한 목소리의 남자에게 왠지 질리는 느낌을 받은 유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어 몸이 오싹해졌다.

“일단 그 첫 번째. 넌 여기서부터 자신의 둔감함을 자랑해주셨지.”

“뭐야!”

자꾸 열 받게 만드는 것이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가 따지고 싶었지만, 아직 수건만 감싼 상태라는 사실에 문의 겉면만 박박 긁어댔다.

“들어보면 그렇게 말 못할 걸? 애초에 눈치 채는 게 너무 늦어. 일단 현관부터 내 신발이 턱하니 놓여있음에도 넌 발견해지 못한 모양이지?”

“에?”

‘저, 정말?!’

기억을 상기하려고 해보지만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다. 지금은 혼자 살고 있으니 현관에 다른 신발이 있다면 당연 돋보이고 눈에 띄었을 텐데 전혀 기억에 없었다.

‘너무 기뻐서 그것도 보지 못하다니!’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하며 반성해도 이미 늦었다. 완전히 자신의 실수였다. 하지만 이대로 인정하면 너무 분하다. 일단 남자가 말한 대로 자신이 둔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우, 웃기지 마! 난 절대로 그런 거 못 봤다고!”

“호오? 전면부정인가. 뭐, 상관없어. 이제 겨우 하나가 나왔을 뿐이니까.”

“뭐, 뭐가 더 있는 거야?”

유라가 귀를 문에 찰싹 붙이고 불안한 마음에 눈동자를 사정없이 떨었다. 부정을 하거나 반격을 해야 하는데, 상대에게 약점을 잡혀버렸다.

어디까지나 여유로운 목소리의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는 바로 네가 있는 탈의실이야.”

“탈의실? 여기가 왜?”

“아직도 못 봤나 보네. 한쪽 구석에 분명 내 짐들이 놓여 있을 거야.”

“짐?”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다 구석에 놓여있는 가방을 발견한 유라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 얼마나 둔감한 애란 말인가!

스스로도 인정했지만, 솔직하게 인정할 순 없다.

“그, 그래서 뭐! 저런 구석진 곳에 있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호오. 아직도 포기 못한 건가. 뭐, 좋아. 이걸 듣고도 네가 계속 우길 수 있나 보겠어. 마지막 세 번째는 말이지…….”

“꼴깍…….”

자신만만한 남자의 말에 유라는 침을 삼키고 다시 문에 귀를 대고 집중했다.

“너 …은 ……했어?”

“뭐, 뭐라고? 좀 크게 말해 봐!”

이상하게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는 남자의 목소리는 그렇게 해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기에 유라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이번에는 좀 더 큰 목소리로,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뚜렷하게 그 소리가 들려왔다.

“너 거실의 사용 중 상태는 확인했어?”

“뭐?”“그러니까, 거실에 있잖아? 욕실 사용 중 표시. 게다가 물소리도 확실히 들렸을 텐데?”

유라의 거실, 그러니까 탈의실에 들어서기 전에 붉은 등으로 사용 중이라는 표시를 할 수 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아버지의 센스 넘치는 배려랄까, 꼼꼼한 준비랄까. 하여튼 그런 기능 또한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낮이라 해도 그 붉은 등은 눈에 띌 수밖에 없고, 물소리를 들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로, 붉은 등을 인식한 기억이 없다.

“그 등은 탈의실에서 킬 수 있으니 확인해봐. 내 말이 거짓말인지.”

우당탕탕!

크게 발소리를 내면서 탈의실 벽면에 있는 스위치를 확인한 유라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3단 콤보라고나 할까,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니, 하나 있잖아!’

“그럼 왜 문은 안 잠가 놓는 건데!!”

“…….”

잠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드디어 유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반격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에 다시 당당히 가슴을 펴고 문 앞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바보냐? 욕실 청소를 하는데 문을 왜 잠가? 이렇게까지 흔적을 남겼는데도 모르고 들어 온 네가 둔감한 거지.”“이익!”

아무리 반박을 하려고 해도 전혀 틈이 없는 완벽한 자신의 실수. 결국 유라는 분한 마음을 억누르는 소리만 낼뿐이었다.

남자는 탈의실 쪽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빨리 옷을 입고 나와 주지 않을래? 청소 덜 끝났으니까.”

잠시 동안 미묘한 침묵이 계속되고 이번에는 남자 쪽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생각하며 문에 귀를 가까이 댔다.

쾅! 퍽!

“악!”

그리고 갑자기 열리는 문에 그대로 밀려 뒤로 나자빠졌고,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유라는 사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고, 남자가 아파하는 것엔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이 샐쭉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뭐야?”

“너…… 나랑 같은 학교의 남학생인 거, 사실이야?”방금 전, 옷을 갈아입기 전에 유라는 남자의 가방을 뒤졌고 거기서 나온 학생증을 보고 자신과 동급생인 남자애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 직후 옷을 갈아입고 문을 박차고 나오니 무슨 속셈인지 몰라도 문에 달라붙어 있던 남자가 얼굴을 부딪친 것이다.

“뭐, 그렇지.”

“1학년 15반 이지한. 확실해?”

“맞아. 본인이야. 사진 봤을 거 아냐?”

태평스러운 남자, 지한의 말에 유라가 주먹을 쥐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것을 보고도 지한은 얼굴이 아픈지 계속 볼만 쓰다듬고 있었고, 이빨을 부딪치며 잇몸에 이상이 없는지도 살폈다.

“너, 말이야…….”

“응?”

“제정신이냐, 이 망할 놈아!!!”

“뭐, 뭐야?!”갑자기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바람에 지한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유라는 지금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당연 상식 밖의 둔감남에 대해서였다.

처음엔 연상의 남자인줄 알았던 건 아무래도 키가 꽤 큰 탓이었다. 다리도 길고 머리카락도 갈색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연이었다. 얼굴도 꽤나 미남형이라 연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너는 뇌구조가 어떻게 되어있기에 동급생, 그것도 이성의 집에 가정부 노릇을 하고 있는 거야~~!!”

“왜냐니……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지.”

“그런 문제가 아냐!!”“거참, 목소리 되게 크네.”

“네가 불평할 때가 아냐!!”지금 유라의 심정을 말하자면 억울함의 최고봉이었다. 저 가정부라는 녀석이 자신을 둔감녀로 만들어 놓고서 정작 본인은 심각한 상식부족의 둔감남이다. 게다가 그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더 짜증난다.

“어쨌든, 난 청소를 하고 빨리 가야하니까 좀 비켜줄래?”

“어, 어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밀치고 욕실로 들어가는 지한을 보며 유라는 황당함에 할 말도 잊은 채 멍하니 자리에 서있었다. 자각이 없다는 건 알았는데 이제 보니 눈치도 없다.

“아, 정말~!! 넌 대체 뭐냐고!!”

이를 보며 유라가 소리쳤지만 지한은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면서 태연하게 대답할 뿐이다.

“가정부라고 말했잖아.”

“이익!! 네가 우리 집의 가정부일 리가 없어!!!!!!!!!!!!”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유라의 비명을 마지막으로 잠시간의 소란은 잦아들었다.

◆ ◆ ◆

잠시 후 청소를 마친 지한이 걷어 올린 교복바지를 내린 후 가방을 들고 탈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거실로 나아가니 식탁에 앉아서 턱을 괴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유라와 마주쳤…….

“야 잠깐! 왜 무시하는 거야?!”

“응? 그야 볼일이 없으니까지. 난 바쁘다고?”

“넌 뭔데 그렇게 바쁜 건데?! 적어도 해명을 하고 가라고, 해명을! 그리고 사과도 더불어서!”

“뭐? 사과라니, 대체 무엇의?”“다, 당연히 그거지, 그거!”

“그거?”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에 그만 질려버린 유라가 식탁 위로 축 늘어졌다. 이 상식파괴자에겐 도저히 사과를 받아내긴 힘들어 보였다. 어차피 설득시키는데 진만 빠질 거 같고, 무엇보다 그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자신의 입에서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에 미치자 유라는 다시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현관으로 향하는 복도의 문을 열고 있는 지한의 등에 빽 소리쳤다.

“야! 너 내가 여자로도 안 보인다는 거냐?!”“앙? 여자로 안 보이냐니, 딱 봐도 여자잖아? 거긴 좀 빈약한 듯해도.”“뭐, 뭐야?!!”유라가 수치심으로 더 붉어진 얼굴로 가슴을 양팔로 감쌌다. 그 모습을 보던 지한은 약간 조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며 문을 나섰다.

“서양인과 혼혈 같은데 빈약하다니, 의외네~”

“이, 이 정도면 훌륭하단 말이야, 이 가슴 매니아야!!!”

하지만 이미 문은 닫힌 이후였고, 잠시 후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오며 지한이 완전히 집을 나섰음을 알려주었다.

“이익!!”그리고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유라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정말, 짜증나아~~!!!”

식탁을 몇 번 때리고 난 뒤에야 유라는 결연한 눈동자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2층으로 달려가 방에 있던 휴대폰을 들고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간의 송신음이 들리고 통화가 연결됐다.

“아, 엄마야? 지금 시간 괜찮아?”“응, 우리 공주님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웬일이야?”

“그게 있잖아, 엄마가 고용한 가정부 말인데…….”

“어머, 드디어 만나 본 거니?”“역시 엄마가 주동자였구나?!”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는 유라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상식이 결여된 남자도 남자지만 이럴 땐 이다지도 배려 없는 엄마가 미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었으니까!

“엄마는 얼마나 상식이 결여되어 있는 거야?!”

“애도 참~! 신시대의 개방적인 엄마라고 불러줘요!”

“너무 개방적이잖아?! 대체 뭐냐고, 동급생에 이성인 건!”

“어머, 좋잖니~ 청춘의 느낌이 물신이잖니~”

“좋긴 개뿔! 나는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잖아!”

“어머, 그리 싫진 않나 보네? 확실히 그 정도면 잘 생기긴 했잖니~ 엄마도 아주 좋아해!”“무슨 위험한 발언을 하는 거야, 이 바보 엄마가!”어른이 되도 철이 없다고 할지, 한국에서 살아도 한국인이 될 수 없다고 할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의 엄마 덕분에 많은 곤란함을 겪은 유라는 한이 쌓였다고나 할까, 여러모로 엄마는 자기편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아니, 기정사실이다.

“어머, 부끄러워 하긴! 어쨌든, 믿을만한 아이니까 한 거 아니겠니?”

“나한테는 완전 남남이라고?! 그리고 엄마가 믿을만한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 못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에에~ 너무하지 않아, 그거?”

“엄마의 평소 행실을 보면 당연해.”

“어머. 아름답고 우아한 내 몸짓 말이니?”

“아름답고 우아하긴 개뿔!”

생각해보니 방금 전의 남학생과의 이야기보다 이쪽이 더 속 터지는 일이란 걸 왜 깨닫지 못했을까도 후회하며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가만히 있을 순 없어. 그 애를 해고시켜.”“뭐~?! 엄마는 우리 딸을 그렇게 무정하게 키운적이 없어요!”

“무정하긴! 이건 도의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당연한 조치라고!”

“엄마는 그런 거 모르는 거예요!”“아, 정말~!! 10년 넘게 살았으면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답답할 정도로 이야기가 통하질 않고 계속 딴대로 세는 것이 짜증났던 유라가 결국 소리를 빽 지르고 통화를 끊었다.

“정말, 비밀번호 바꿔서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할테니깐!”

전화를 끊고 침대로 던져버린 유라가 씩씩 거리다가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이런 날은 아빠의 얼굴이 너무나도 그리워지는 유라였다.

“하다못해 리피가 있어줬다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불을 붙잡고 불만스러움을 표출했다.

‘정말…… 왜 하필 남자애가 가정부인 거야. 하다못해 나이 차이라도 많이 났다면 조금이라도 더 안심했을 텐데.’

동급생에다 이성 그리고 같은 학교에 다니기까지. 이건 너무나도 접점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관계다. 이대로 유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했다. 무엇보다 들키는 순간 쉽사리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내 성공적인, 안정적인 고교데뷔를 지금에 와서야 망칠 수는 없어!’

유라는 무릎으로 몸을 지탱하며 허리를 세웠고,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절대로 내쫒아 버리고 말 것이라고.

띠링~

“응? 문자가 왔네. 누구한테서?”

던졌던 휴대폰을 잡아서 화면을 살펴보는 유라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번호도 바꾸고 나서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번호를 전달한 유라에게 있어 문자라는 것은 거의 오지 않는 일이었다. 일단 부모님은 문자 쓰는 걸 귀찮아해 대부분 통화로 용건을 말하니까.

[우리 딸! 화가 많이 난 거 갔네~ 하지만 조금 참아보렴.

그 아이, 엄마의 친구 아들인데 꽤 믿을만한 아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일을 잘 해왔지?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 않겠니?]

“엄마로부터인가…….”

대체 그 애가 뭐기에 이렇게 감싸고도는 것일까,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단순하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호의를 주는 성인군자는 또 아니다. 유쾌한 걸 좋아하고 배려심이 부족하지만 막무가내는 또 아니다.

애초에 그런 성격이었다면 이미 집은 파탄했을 테니까.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고작 이런 이유만으로 엄마가 이토록 변호를 해주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일단 자신은 엄마의 딸이었으니까, 이 정도의 이유로 납득을 구하진 않는다.

“뭔가 더 사정이 있는 걸까나…….”

하지만 엄마가 먼저 말해주지 않을 때는 먼저 묻지 않기로 전부터 다짐했다. 예전에 고집을 부려 그토록 알아내려고 했던 진실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혔던 기억에 엄마가 먼저 말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묻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엄마는 은근 예리하단 말이야. 여전히…….”

내 마음상태를 훤히 꿰뚫어보고 있잖아…….

유라는 다시금 침대 이불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가정부에 대한 호의는 꽤나 깊었다.

외동딸인데다가 부모님이 안 계신 작금의 상황에서는 공부에 집중하려고 하는 의도와 다르게 변수가 생기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정부의 존재로 그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자신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남자라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지만, 그 고마움에 대한 호의는 겨우 그런 것에 깨어질 정도로 얕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화를 낸 건 아무래도…….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사과 정도는 하라고, 바보.”

자신이 3번씩이나 실수해서 변명할 수 없다고는 해도 전라의 모습을 보인 건 사실이다. 그나마 또 뒷모습이라 아주 치명적이진 않지만, 부끄러운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자신의 과실에만 집중하고 사과하는 배려는 부족했다.

“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실제로 오늘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내가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유라는 고개를 털어 그런 망설임은 버리기로 했다.

“잠깐……. 그렇다는 말은 설마 내 속옷도 다……!!”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며 지금까지 해온 집안일 이미지 전부를 그 남자애의 모습을 삽입시켜 본 유라였다.

‘오오!! 이것은 꽤나 마니악한 속옷이지 않는가!’

빨래 바구니에서 여성 속옷을 발견한 지한이 집어 들어서는 높게 쳐들고 감탄한다. 꽤나 과감한 디자인을 보여주는 성인전용 속옷이었다.

이를 보며 음침한 웃음과 함께 침을 흘리며 속옷을 얼굴에 비벼댔다.

‘아아, 좋다! 이 향기, 이 느낌! 역시 한창의 여자애!’

한참을 그렇게 비비던 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빨래를 널고 걷으면서 동년배의 여자애의 속옷을 마음껏 만지작거린다.

‘좋아, 좋아! 이 일 맡길 아주 잘했어!’

“꺄아아아아악!!!”

아주 잠깐의 망상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설 정도로 소름끼치는 생각에 유라가 몸을 감싸고 떨었다. 이것은 공포를 넘어서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설마! 내 사라진 옷들도 그 녀석이?!”

의심은 조금씩 커져가며 집에 있었던 모든 이상들이 모두 지한의 탓으로 느껴지던 유라가 결국 다시 한 번 비명을 내질렀다.

“정말~~!!! 절대로 가만 안 둬!”

“어이, 옆집 애! 너무 시끄럽다고!”

“아, 아!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후다닥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 유라가 녹초가 되어 방바닥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유라의 눈동자엔 한 쌍의 불씨가 깃들었다.

“그래! 당장 내일부터 전쟁 시작이야!”

다시 한 번 주먹을 굳게 쥐고 다짐하는 유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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