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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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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정신나간 소년과 미쳐버린 살인자(4기 1챕터 수정본)
글쓴이: 푸른오징어
작성일: 12-07-08 08:09 조회: 1,658 추천: 0 비추천: 0

우리 집은 평화로운 가정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사랑했다. 부모님은 항상 나와 남동생을 신경써주셨고, 주말에는 가끔씩 가족들이 모여 외출을 하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를 했고, 한 달에 한 번은 외식을 했다. 내가 스스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그날까지의 기억은 틀림없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날은 4년 만에 처음이라는 큰 태풍이 도심지까지 몰려온 날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날 밤을 회사에서 머물렀고,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섬으로 여행을 가신 뒤 오늘 돌아오실 예정이었지만, 악천후 때문에 연기되고 말았다. 결국 그날은 나와 남동생 둘이서만 집을 지켜야만 했었다. 나도 남동생도 그만 심심함에 몸부림치다가 남동생이 같이 비디오 게임을 하자고 했던 제안을 받아들여, 나는 아버지의 서재로 게임팩을 찾으러 갔다.

게임팩은 발견했지만, 그 대신에 다른 것도 찾을 수 있었다. 게임팩과 같은 상자에 들어 있던 것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디오테이프들이였고. 평소 집에서 봐왔던 것들과는 다른 비디오테이프들이었다. 그 비디오테이프들은 당연하게도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서재에 있는 작은 텔레비전에 테이프를 넣고 실행해 보았다.

비디오테이프를 본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비디오테이프 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한 남성과 여성이 발가벗고 뒤엉킨 채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남자들이 본다고 하는 포르노 비디오라는 것인 모양이었다.

그 비디오가 평범한 비디오였다면, 나는 아마 아버지나 남동생이 몰래 숨겨 놓은 것이려니 하면서 조용히 넣어놨겠지만, 난 한 순간도 비디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비디오가 매혹적이라던가, 하는 차원에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비디오에 나오는 남자가 바로 우리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격이었지만, 그것보다도 더 믿을 수 없었던 것은, 같이 나오는 여자가 어머니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나도 몇 번인가 보았던, 아버지가 같은 회사의 사원이라면서 어머니가 없을 때, 가끔 집으로 데려오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미인이라고 생각했었고, 진한 향수에 앙칼진 목소리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아버지는 그런 여자와 격렬한 행위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는 고스란히 비디오를 통해 어렸던 나의 눈으로 전해졌다. 비디오는 한 두 개라 불릴 수준이 아니었는데, 아마 매번 행위를 할 때 마다 비디오를 찍었던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비디오를 껐다.

예쁘고 우아한 어머니에게 왠지 모르게 쌀쌀맞게 굴던 아버지의 행동들, 자주 야근이라면서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다음 날 아침까지 들어오지 않던 것ㅡ어쩌면 그 날도 이런 행위를 했을 지도 모른다ㅡ들도 모두 이 비디오를 보고 나자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알았다.

“누나, 게임팩 찾았어?”

“…어, 어…잠깐만 기다려.”

서재 밖에서 들리는 남동생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비디오테이프들을 원래 있던 곳에 정리했다. 그리고 게임팩이 있을 만한 곳에서 게임 팩 몇 개를 꺼내선 거실로 나갔다.

“누나…울어?”

그때까지 나는 내 얼굴에 흐르던 두 줄의 물줄기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새어져 나오기 시작한 눈물들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하음…. 조금 졸려서 그런가. 세수하고 올게.”

어색한 느낌이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을 핑계를 대고서는 나는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도 마치 우물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눈물이 샘솟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물로 얼굴을 문지르자 슬픔이 멈춘 듯했다. 그리고 새로운 감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분노였다.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의 사랑을 뺏어간 그 여자, 그 여자에게로 내 분노는 향했다. 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여자를 없앨 수 있을지 생각했다.




“…있잖나.”

한여름의 어느 날, 밖에서는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앉은뱅이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나와 준현은 마주보고 늘어져 있었다. 그 중앙에는 회전으로 맞춰놓은 낡은 선풍기가 딱딱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탁자 위에 있는 수박을 베어 먹고 있던 나를 향해 준현이 말했다.

“여름인데 바다에 가고 싶지 않은가.”

“너랑 내가? 무슨 소리를.”

준현이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 이 녀석이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난 가볍게 무시하고 먹던 수박 껍질을 내려놓았다. 입 안에서는 아직 입 안에 남은 씨가 내 이빨에 짝짝 소리를 내며 씹혀지고 있었다.

“바다에 가면 인연이 생기지도 모르지 않는가.”

“…난 별로 상관없어. 혼자 가지 그래? 기타도 칠 줄 알잖아.”

“그거란 이건 다른 문제로고….”

옛날 사극에서나 쓰일 법한 말투를 쓰며 친구가 말했다. 준현과는 중학교 때부터 만난 후에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다. 반은 비록 달랐지만 점심시간이나 하교를 같이 해서 같이 있는 시간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옛날 사람 같은 말투와 맑은 날에는 정신이 늘어진다는 것이 이 녀석의 특징이다. 나는 준현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자네가 같이 가주지 않으면…난 또 우리 부원들과 같이 가야 할 처지라네….”

준현이 가입한 부는 잠재능력개발부라는 이름으로 가입 절차가 굉장히 까다로운 부였다. 사실 몇몇 남학생들이 그 잠재능력개발부라는 곳에 들어가려고 했었던 모양이지만 변변히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수상한 느낌의 부가 왜 인기가 있냐 하면….

“좋잖아. 너 말고는 전부 여자에, 취향을 좀 타긴 하지만 예쁜 애들뿐이고. 작년 3학년이던 남자선배들도 졸업했으니까, 올해부터는 네가 유일한 남자 부원이잖아. 수영복 차림의 여자애들 사이에서 바다라…너 꽤나 좋은 포지션이잖아.”

“남의 일이라고 막말하는 게 아니라네!”

준현이 발끈하며 말했다. 것보다 탁자 치면서 일어나지 마. 커피를 쏟잖아.

“자네가 알지는 모르겠다만, 여자라는 건 상당히 일하는 걸 귀찮아하는 생물이라네. 우리 부서만 해도, 화영을 제외하고는 전부 나에게 남자니까 일을 하라면서, 순 불리한 일들은 전부 나에게 시키는 사람들이라네. 진짜 그 여자들이 못하는 거라면 모를까, 저들이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을 귀찮다는 이유로 나에게 시키는 것이 말이 되냐는 말이오! 그리고 조금만 꾸물거리면 남자면서 그것도 못하냐고 핀잔을 주고,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란 말인가!”

“아니, 그러는 너도 조선시대 같은 말투를 쓰잖아.”

그리고 친구 사이에서‘자네’가 뭐야. 무슨 중2병이나 오타쿠 기질이 있다는 설정도 아니고.

“그거랑은 별개의 문제이오!”

난 준현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저 다 얻은 자가 조금이나마 자신의 불행을 어필하면서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난 어차피 그 잠재능력부인가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잖아. 벌써 여러 명이나 퇴짜 맞았다던데. 대체 거기 선발의 기준이 뭐야?”

“…그, 그건 국가기밀이라 말할 수 없소만.”

그렇게 규모가 거대한 부였던 건가. 보통 남자애들과 준현의 다른 점을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준현은, 실제로 보통 남자애였기 때문이다. 사극 말투와 여름을 싫어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런 사람도 꽤 많잖아? 아니, 사극 말투는 진짜 없으려나.

“그러지 말고 한번 입부 테스트라도 받아보는 게 어떤가. 어쩌면 자네라면 들어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중얼중얼….”

준현이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난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고, 별로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솔직히 그런 이상하고 괴소문 넘치는 부에 흥미 같은 건 없다고. 재미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 하긴. 영훈에겐 설희가 있었지 않은가. 하하, 괜한 고민을 시켜서 미안하네.”

“무, 무슨 소리야!”

난 준현의 말에 발끈했다. 설희라는 아이는 최근까지 무표정하게 반에서 은둔자 역할을 하다가 최근 들어 나에게 살갑게 구는 여자애였다. 요즘은 매일 같이 내 도시락을 싸주거나(급식이 있지만 품질이 최하라 신청하는 애들이 별로 없다) 이런저런 일에 관련해서 대화를 하는 등…. 아무튼 여러 가지로 수수께끼이다. 얼굴도 예쁠뿐더러 공부도 잘해서 전교 2등이라는 성적까지 거머쥘 정도의 여자애가 뭣 때문에 나에게 잘해주는 지는 미지수이다.

“설희랑은…그런 관계 아니야….”

준현의 말에 힘없이 부정했다. 확실히 아니라고 단정 짓기는 좀 힘들다. 준현은 그런 날 보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말하는 법이라네. 뭐, 때가 되면 설희의 마음을 자네가 알아줄 것이라 믿는다네.”

“믿긴 뭘 믿어. 넌 신도 안 믿잖아.”

“그거랑은 다른 문제라 하오만….”

준현이 내 말을 잡고 늘어졌다.

“그건 그렇고…, 이제 곧 여름방학이라네….”

준현이 마루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밖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더 굵어졌다.




난 어려서부터 정신머리 없는 녀석이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견에 대해서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길을 걷다가도 멍,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멍, 공부를 하다가도 10분 간격으로 맞춰놓은 알람이 아니면 그대로 하루 종일 있기도 다반사이다. 버스를 탈 때에도 타야 할 버스를 멍 때리고 있다가 놓치거나, 내릴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한 적이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는 버스 타느니 차라리 걸어 다니는 게 나을 거라는 충고도 받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멍 때릴 때에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난다. 몸이 서서히 가벼워지면서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참으로 묘한 기분이다. 잠시 동안 묘한 기분이 든 뒤에는 공중을 나는 느낌이 들고, 대부분은 그 상황에서 멈춰 있다가 다른 사람이 깨우거나 알람이 울리는 것으로 돌아온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그런 느낌이다.

일상에 그렇게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횡단보도 위라던가,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이라면 좀 위험하긴 하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에는 일부러 혼잣말이라도 하면서 걷는다. 조금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차에 치이거나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왜 이놈의 학교는 6월이 다 가는데도 생활복을 입지 못하게 하는 거냐아아아아!”

복도에서 큰 소리로 절규했다. 몇몇 마음이 맞는 동료들이 같이 “아아아아!”하고 소리쳐줬고. 몇몇 학생과 선생들은 그런 우리들을 어이없게 쳐다보았다.

생활복 얘기가 나와서인데 우리 학교의 교복은 4가지이다. 동복, 하복, 춘추복, 생활복. 동복, 하복은 말 그대로 겨울과 여름에 입는 옷이다. 춘추복은 동복에서 마이를 탈의하면 된다. 지금은 하복을 입는 기간이라서 입고 있기는 하다만, 이 하복이란 게 쓸데없이 신경을 많이 쓴데다가 비싸다. 교복 내외로 완벽한 방수처리, 뻣뻣하고 질긴 옷감, 두껍고 무거운 바지. 하복이란 건 하복에 필요한 요소들을 넣어서 만들어야 한다. 땀 배출 안 되고, 불편하고, 덥다. 이 옷이 과연 어떤 경위로 하복이란 것을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교복 생산 업체와 학교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음모론까지 돌 정도이다.

그래서 생활복이 있는데 생활복도 더운 건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하복보다는 얇고 통풍이 잘되므로 약간 나은 편이다. 가뜩이나 요즘 지구온난화도 심각해져서 5월만 돼도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생활복을 입는 게 가능한 시기가 7월부터라는 것이라는 말이다. 7월이면 바로 2주 후에 방학이 된다. 생활복을 만든 의미는 어디로 사라진거냐. 방학에라도 등교하라는 소리입니까.

학교 측에서는 꼬우면 전학이라도 가보시던가 같은 태도이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고 그나마 이렇게라도 불만을 표출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교실 문을 열었다. 교실 문이 옆으로 끌리면서 드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애들은 잠시 눈길을 주다가도 ‘아 얘였나.’ 하는 느낌으로 쳐다본 뒤, 다시 자신이 하던 일에 관심을 돌렸다. 난 왼쪽에서 3번째 열 두 번째인 내 자리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엎어졌다. 책상이 미지근하다. 여름 진짜 싫다. 겨울은 더 싫고.

“영훈아~.”

교실에 전체에 들릴 수준의 낯간지러운 소리를 내면서 설희가 다가왔다. 노란색의 풍성한 단발 웨이브머리가 걸을 때마다 살랑거렸다. 얼굴에는 동그란 테 없는 안경을 쓰고 있다. 다가오면서 교복과 글래머한 몸매가 흔들렸다. 척 보기에도 빈틈이 많아 보이는 움직임이여서 보는 사람이 초조했다. 난 언제든지 그녀가 넘어지면 받을 수 있도록 만발의 준비를 해 두었다.

“우리 영훈이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러니.”

누가 우리 영훈이냐. 네가 우리 엄마냐. 주변의 남자애들이 시기, 질투, 선망, 부러움 따위의 시선을 보냈지만 난 별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안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 사실 조금 좋다.

“더워서 그런 것뿐이야.”

내 말이 끝나고 설희는 나에게 살랑살랑 부채를 부쳐 주었다. 산들바람이 부는 느낌이 내 얼굴에 와 닿았다. 조금 전까지 불쾌했던 기분이 겨울에서 봄으로 변할 시기의 눈처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행복하다. 천계는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한다.

“좋아 보인다?”

내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승희가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로 말했다. 승희는 짙으면서도 밝은 녹색의 부스스한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여자아이이다. 그리고 내 소꿉친구이기도 하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녀석도 잠재능력개발부이다.

“아, 준현이가 나보고 잠재능력개발부에 들어가라던데.”

“아, 안 돼!”

“안 오는 게 좋을 걸.”

설희는 필요 이상의 과도한 동작과 소리를 내며 저지하고, 승희는 우회적으로 거부했다. 설희는 이내 자신도 당황한 듯 표정과 동작을 다시 정리했다.

“승희는 그렇다 치고…설희 넌 왜 그렇게까지 반대하는 거야?”

“아, 하지만, 그…”

“어?”

“그…부서에는…예쁜 여자애들이 많으니까…그래서 혹시 영훈이…건…닐까…서….”

뒤로 갈수록 작아서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승희는 어째선지 날 어이없다거나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아, 왜.

“그건 그렇고, 어차피 너는 기초적성검사도 통과 못하겠지? 응, 아마 못 통과할 거야. 못 들어오지. 넌 절대로.”

질문하자마자 대답하기냐. 이건 뭐 납득 속도가 빛보다 빠르다.

“기초적성검사라는 건 뭐야.”

“우리 부에 들어올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조건인데.”

“아니 그거 말고…”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라고. 그 검사의 내용을 말하란 말이야. 기초적성검사라는 이름이 있는 걸 보면 그 뒤로 적합성검사나 인성검사 같은 게 또 있는 거냐. 그리고 그 뒤에는 조선 최고의 검사…무리수였다. 속으로만 생각해서 다행이다.

“그건 세계기밀이라 말하기 곤란해. 그리고 그런 개그 재미없어.”

그런 글로벌한 부였던 건가. 갈수록 범위가 확대되는 것 같군. 그보다도 남의 마음 속 함부로 읽고 그러지 마라. 설레이잖아.

나와 승희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동안에 수업종이 울려서 설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승희는 자신의 반이 있는 문과 교실로 갔다. 그러고 보니 쟤는 문과이면서 왜 매번 이과 교실을 들락거리는 거야. 귀찮지도 않나.

아무래도 좋다는 심정으로 오늘의 1교시 과목인 생명과학1을 책상 서랍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내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

반 전체 가 머리 위에 ‘?’를 띄우고 들어온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야 당연하게도 들어온 사람은 선생님은 아닐 뿐더러, 학생은 더더욱 아니었다. 외관상으로는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쯤 되어 보인다. 양 갈래머리를 하고, 옷은 아마 우리 학교의 교복으로 보이는 것을 줄인 것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입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의문의 손님께서는 어린아이 특유의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교탁 앞으로 다가갔다.

“…아, 아윽….”

아무래도 교탁 위로는 키가 닿지 않는다. 우리 학교는 전자교탁이라서 다른 교탁보다 크기가 훨씬 크니까, 작은 키의 여자아이와는 더욱 대비된다. 교탁 위쪽으로 양 갈래머리를 땋은 방울만 조금씩 보일락 말락 한다. 이미 몇몇 아이들은 쿡쿡거리면서 상황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난 더 이상 애쓰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져서 빈자리에서 의자 하나를 꺼내 교탁 뒤쪽으로 놓아 주었다.

“고, 고맙습니다….”

수줍은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내게 전하는 여자아이가 귀엽다고 느껴졌다. 여자아이가 의자 위로 올라가자 교탁에 딱 맞는 높이가 되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난 뒤에 내 자리로 돌아갔다.

“아, 아흠!”

주위를 끌기 위해서인지 여자아이는 약간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다. 이미 주위는 하나같이 그 아이에게 쏠려 있던 상황이었기에 굳이 그게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

“저…기존에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집안사정으로 그만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셨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제가 생명과학을 가르쳐드리게 될 거에요. 연상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용케도 이 많은 군중 앞에서 말을 더듬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는 여자아이를 보니 나는 조금 감탄할 것 같았다. 아니면 기특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우와아아, 대박!”

“와, 쩐다! 진짜요?!”

“꺄아! 귀여워~!”

“선생님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선생님 몇 살이세요! 전 아래로 열 살까지는 수비범위입니다!”

“취미는 뭐에요?”

“혈액형은 뭔가요!”

여자아이…아니,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함성과 질문이 튀어나온다. 교실 전체가 울릴 정도의 소음이 울려 퍼졌다. 어린아이 선생님이라니, 아마 이런 일은 세계에서도 흔하지 않은 일이겠지.

“저, 질문은 하나씩 받을게요. 그리고 이름을 가르쳐 드릴게요. 제 이름은…”

선생님이 분필을 들고 칠판에 이름을 적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신장이 신장이다 보니 손을 쭉 올리고 까치발까지 들었음에도 칠판 중간까지밖에 손이 가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힘내세요, 선생님!”

“조금만 더 하면 돼요!”

“선생님 파이팅!”

단결이란 것이 전혀 안 되는 우리 반도 이런 때에는 한마음이었다. 그보다 이 녀석들 선생님을 응원하는 모양새는 띄고 있지만 눈은 햄스터가 쳇바퀴를 굴리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o

정말이지 안타까울 정도의 모습으로 겨우 o하나를 써내려갔다. 그마저도 삐뚤빼뚤해서 보는 사람이 안타까워진다. 반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저마다 킥킥거리는 모습이란. 이게 집단따돌림이랑 다른 점이 뭔지. 더 이상 그 모습을 참고 보기 힘들어져서 난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

선생님이 의문 기호를 띄운 것 같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난 그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칠판 중앙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레버를 당겨서 칠판을 약간 아래로 내렸다. 우리 학교의 칠판이 고정식이 아니라 가능한 것이었다.

“야! 너 혼자만 점수 따는 거냐!”

“에~이~. 재미없다!”

“이 위선자야!”

다들 뭐라고 떠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아.”

“아뇨, 뭘요.”

왠지 얼굴이 붉어져서는 말하는 선생님에게 인사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 선생님은 한 층 사용하기 편해진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한자 한자 써내려갔다.

영의빈

“여러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어린아이 특유의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바로 질문 공세를 할 것 같은 준비 태세를 하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아무래도 오늘 수업 진행은 안 될 것 같아서 난 생명과학1을 다시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아, 그리고 지금까지 고문이 없었던 잠재능력개발부의 고문을 맡게 되었으니까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저에게 말해주세요.”

영의빈 선생님의 말에 반은 술렁거렸다. 그야 잠재능력개발부는 지금까지는 학생들에게 있어선 혼돈과 파괴와 망각의 아이콘이다. 그런 부의 고문 선생을 맡는다는 것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고문 선생이라는 직함마저도 선발 기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니까. 같은 잠재능력개발부의 준현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져서 돌아보았더니,

“…….”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퍼질러 자고 있다. 오늘 날씨는 매우 맑음이구나.




소란스러웠던 영의빈 선생님 사건 뒤로 2, 3, 4교시는 언제나처럼 같은 선생님들이 같은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설희가 날 끌고 가서 같이 점심을 먹었고, 그 뒤로 연달아 3교시를 달린 후에 방과 후 보충수업까지 듣고 난 뒤에야 학교가 끝났다. 난 평소처럼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하교 준비를 해서 지금은 학교 교문 앞에 있다.

“오. 영훈, 자네 여기 있었는가.”

내가 슬리퍼에서 흰색 운동화로 갈아 신고 있을 때, 준현이 언제나처럼 시대극 같은 말투로 나를 불렀다. 난 평소처럼 같이 가자는 이야기로 알고 대답했다.

“오늘은 부활동 없어?”

“아, 물론 있지. 이제 곧 가려던 참이라네.”

뭐야. 그냥 지나가던 길에 부르던 거였나. 그럼 잘 하고 와라, 같은 느낌으로 자리를 나서려는 것을 준현이 불렀다.

“물론 자네도 같이 가는 거라네.”

넌 대체 내게 뭘 원하는 거냐.




준현은 나를 잠재능력개발부 부실로 인도했다. 위치는 신관의 5층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복도의 가장 끝에 있는 철문 출입구가 달린 곳이다. 고문 선생님이 없었기에 지금까지는 정식 부서가 아니어서 아무도 쓰지 않는 불길한 소문이 도는 교실을 부실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이제부턴 그 영의빈 선생님이란 사람이 할 테니까 상관없지만 부실은 옮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부실에 대한 사연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위치상의 거리가 너무 멀다. 본관에서 신관까지는 5층의 높이 차이가 난다. 본관 5층을 통해 신관 지하1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신관에서 5층을 올라가서 통합 10층의 높이이다. 교실은 그래도 본관 4층인데 기왕이면 일층에 내려오기 전에 불렀으면 좋았잖아. 힘들여서 올라가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준현은 여유로워 보였다.

“그래서, 나보고 검사를 받으라고?”

“좋지 아니한가? 어차피 부서도 없는 자네이고, 우리 부서엔 나만 남자라는 사실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무었보다….”

“무엇보다 뭐. 자네는 우리 부에 들어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네. 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렇다라네.”

억지로 사극 투로 말하려 하지 마. 말투가 어색해지잖아. 초반에 캐릭터를 잘못 잡으면 그 후가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녀석이다.

준현이 복도 끝에 존재하는 부실의 문을 열었다. 이상한 소문이 돈다고 하는 교실 치고는 내부는 매우 깨끗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일반 가정집보다도 좋아보였다. 가운데에는 꽤나 비쌀 것 같은 목제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양 옆으로는 붉은 가죽 소파가 비치되어 있었다. 적어도 여교사휴게실 이상은 좋아 보일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여교사 휴게실을 가본 건 아니지만.

가죽 소파 위에는 중학교 1학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은발의 긴 퍼머 머리의 작은 여자아이가 앉아 독서하고 있었다. 책표지는 하드커버로 제목만 보면 아마 유럽 고전문학인 것 같다. 저 아이는 아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 학교 1학년일 것이다.

문을 열면 정면으로 가장 끝에 있는 곳에는 사무실에서 쓰일 법한 탁자와 노트북이 펼쳐져 있었고, 잠재능력개발부의 부장 정도로 보이는 길고 검은 긴 생머리의 여자 선배가 괴로워하며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거의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노란색 단발 머리의 3학년 선배가 차를 건네고 있었다. 부장(가칭)은 차를 받아들이며 “고마워….”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화장실이나 부엌 같은 곳도 있었다. 부엌에선 갈색의 직선 커트머리의 여자아이가 흥얼거리면서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것들이 모두 냉장고에서 나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양의 무언가를 들고 걸어왔다. 그 때 마침 화장실에서 또 다른 사람이 나왔는데,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승희?”

“어째서 네가 여기 있는 거냐. 당장 나가. 여기서 본 건 모두 잊고. 아, 튼튼한 새끼줄은 역 앞 마트에 가면 판다.”

“만나자마자 바로 자살을 권고하지 말라고. 대체 넌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건데. 변비 걸린 뱀처럼.”

“불쾌한 소리 하지 말고 신속히 나가. 그리고 뱀은 항상 허리를 움직여 주니까 변비에 걸리지 않을 걸.”

딴죽 거는 방향이 묘하게 잘못됐다. 난 ‘그럼 너도 허리를 자주 움직여야 겠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평소의 승희랑은 다른(평소의 승희도 무섭지만) 박력이 넘치는 그녀에게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위와 같은 발언은 꾹 참았다.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에 주춤 하며 뒤로 나가려고 했지만 준현이 날 잡으며 나가는 것을 방해했다.

“…승희 양. 자네가 영훈과 소꿉친구이고, 이곳에 대한 것을 밝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네. 그러나 영훈은 오늘 나의 손님으로 온 것이니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겠나?”

준현은 말로는 차분하게 말했다. 살짝 준현의 눈을 보니 불타는 듯이 뜨겁고 붉은 시선을 승희에게 쏘아대고 있었다. 엄마 얘들 이상해요. 집에 가고 싶다. 커피라도 마시면서 수학2의 삼각함수라도 풀고 싶다. 승희는 준현의 눈 자체에는 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준현의 부탁을 이해한 듯 은발 여자아이의 반대편 소파에 털썩 앉았다.

“적성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빨리 끝내고 뇌라도 좀 휘저어서 내보내.”

어라. 왠지 나 위험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물론 뇌에는 감각 세포가 없으니까 아프지는 않겠지만 오가는 대화가 심상치가 않다.

“뭐, 시작하도록 하죠. 누구부터 하실래요?”

은발 소녀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내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뒤로 주춤했다.

“눈을 마주치도록 하게나. 영훈.”

떨떠름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준현이 말하는 대로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

뭐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쳐다보라고 하기에 계속 쳐다보고는 있지만…아무 일도 없으니 어색할 지경이다. 소녀는 계속 무표정 일관으로 내 눈을 쳐다보고 있다. 왠지 어색해져서 눈을 돌리고 싶어졌지만, 눈동자가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아이 계속해서 보고 있으니 예쁘구나. 붉은 색 눈동자와 은발 머리라는 것은 아무래도 혼혈인 거겠지. 피부가 하얗고 눈이 커서, 코스프레 같은 걸 하면 싱크로율이 높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녀의 팔이 길어지며 내 입속으로 들어갔다.

“…쿠헉…컥!”

나는 순간적으로 놀랐지만 강한 무언가에 묶인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목구멍에서 비명이 나오고 말고를 반복하며 빠져나왔다. 소녀는 내 비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몸 속을 휘저었다. 찢어진 입에서는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속이 괴롭다. 음식을 잘못 먹고 속이 더부룩한 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소녀는 계속해서 내 몸 속을 휘저었다. 그 와중에도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도 않는 것을 보니 경이롭게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1~2분 가량을 휘저어낸 후에야 손을 빼냈다. 그와 동시에 내 몸 속의 내용물들이 쏟아져 나왔고(안타깝게도 모자이크는 없었다), 난 엎드려서 신음했다.

“됐지?”

준현이 끄덕이고 소녀는 자신이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난 엎드린 곳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이곳이 뭐하는 부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있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도 이 부실 사람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난 또 잠시 동안 멍해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피와 장기들이 널려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나에게 난 상처도 고통도 모두 사라진 채였다. 물론 소녀 또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 이건 대체….”

내가 흥분되어가는 목소리로 준현에게 묻자, 준현은 내가 걱정이 되는지 물었다.

“앞으로 이런 걸 몇 번 더 할 거라네. 무서워졌거나 생각이 바뀌었다면 지금 나가도 좋네. 물론 기억은 지우겠다만.”

준현의 말을 듣고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준현과 승희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방금 전의 일로 내 속에는 공포가 생겨났다.

“좋아, 지금 당장 나가겠어!”

“잡아라!”

내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시도하자마자 준현은 그렇게 소리쳤다. 3초 전에 네가 했던 말의 책임은! 금붕어도 너보단 훌륭한 기억력을 보유하고 있을 거다.

결국에는 문을 나가자마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선 커트머리 여자아이에게 붙잡혀 버렸지만 말이다. 분노와 공포가 동시에 돋기 시작한다.

“미안하지만, 우리들의 테스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네.”

강제로 마무리된 연재잡지의 만화 마지막 화 같은 대사를 내뱉지 말라고.

“걱정하지 말게나, 고통과 관련된 기억은 지울 테니까.”

난 내가 결코 심상치 않은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후회하는 중이였다. 위험한 사람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또,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이유 또한 절실하게 깨달았다.




“…저…이건 무슨 검사인가요?”

“가끔 몸속에 반드시 필요한 장기가 없어도 살아있는 경우가 있거든. 그걸 확인하기 위한 거야.”

아까 부장에게 차를 건넸던 선배가 자신의 이야기인양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만 그 선배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테이블에 내 양 팔과 다리를 묶지만 않았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신체의 재생능력을 알아보는 검사이기도 하다네. 조금 아플지도 모르니까 마음껏 비명을 질러도 괜찮다네.”

신관에서 가끔 울리던 비명소리의 정체는 이거였나. 그보다도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데. 아플지도 모른다는 게 무슨 소리야. 의미를 명확히 해. 그리고 줄 좀 풀어.

“그보다 준현 너는 고무장갑을 왜 끼고 있는 거야,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내가 직접 영훈 군의 몸을 찢을 거다만?”

“그런 위험한 소리를 굳은 일에는 앞장서는 사람같이 말하는 거야! 대체 내 몸에 무엇을 하려는 거야! 적어도 마취라도 하라고!”

난 양 팔과 다리를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산 채로 도마 위에 놓여 있는 붕어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앞으론 활어회 안 먹을게요. 산낙지에게 사과 말씀을 올립니다.

“자네. 우리 부서가 지금까지 고문 선생님이 없었다는 건 알고 있나?”

“아, 오늘 생명 시간에 들었지.”

“그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정식 부로 승격되지 못했지.”

“그래서 우리 부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정식 부가 아닌 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려달라고.

“…마취제 같은 걸 살 예산이 없다네.”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길 빠져나가야겠어! 안되잖아?!

“괜찮으니까 진정하게. 그저 갈비뼈 골절, 늑골 갈라짐, 폐출혈, 위궤양, 맹장 파열, 실금, 안구 돌출 정도의 증상밖에 없으니까 말일세.”

아마 이 부서에는 갈비뼈 골절, 늑골 갈라짐, 폐출혈, 위궤양, 맹장 파열, 실금, 안구 돌출 정도면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은 부서인 것 같다. 그리고 난 이 부서의 부원이 아니었다. 위의 사항 중 하나만 해당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후후, 장기, 장기를 봄세….”

이 녀석 사실은 극 사디스트였던 건가! 젠장, 난 좋지 못한 곳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그리고 좀 더 다른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달란 말이다 젠장.

“사…살려주ㅓ….”

그 말을 끝으로 ‘좌악’ 하는 매우 리얼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이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외마디 비명이 전교에 울려 퍼졌고(성대가 찢어졌기에,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느낌만), 점차 나의 기억은 희미해져갔다.




“아무래도 신체재생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네.”

승희가 옆에서 태연하게 말했다. 뭐야 그 안일한 태도는. 누구는 생지옥을 경험하고 염라대왕과 오덕 끝말잇기까지 하고 왔는데 말 참 예쁘게 한다.

“넌 내 배가 갈라지고 그 속을 휘저은 것에 대한 감상이 겨우 그 정도냐!”

“그럼 한 번 더할까?”

아니요. 제발 봐주세요. 눈빛으로 호소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검사인가요….”

사실 알게 되는 게 더 무섭다. 뭔가 대단한 걸 할 것처럼 학교 옥상까지 끌고 왔으니…대충 예상은 간다만.

“일단 난간 끝에 서 봐.”

터벅터벅. 난 애써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흠. 좋다네. 이제 뛰어내리는 거라네★.”

“무슨 소리를 ‘좋아. 이 정도면 완벽해. 이 초콜릿이라면 그도 나에게 넘어올 거야★’처럼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뛰어내리면 열이면 여덟 정도는 죽는다고! 별 붙여도 무서워!”

“희망은 있지 않은가. 한 번 나머지 두 명에게 걸어 보세나. ‘난 날수 있다!’ 하고 뛰어내려보게. 이상의 날개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야★.”

“멀쩡한 사람의 입에서 ‘난 날수 있다!’라고 말하며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냐! 기껏해야 ‘으아아아아’ 정도겠지! 그리고 그 소설 마지막 장면은 죽는 거 아니었냐!”

“사소한 거에 목숨을 걸지 말게나. 남자라면 포용력이 높아야 한다네★.”

“진짜 목숨이 걸려있다고! 진짜 목숨이 걸려 있어! 일부러 두 번 외치면서 강조하는 거라고! 그리고 말끝마다 ★붙이지 마! 기분 나쁘니까!”

난간 끝에서 아슬아슬한 상태로 공방전을 펼치는 나와 준현을 지켜보던 승희가 더 이상은 귀찮아서 못 견디겠다는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안전장치를 해 주면 되는 거지?”

내가 뭐냐고 묻기도 전에 승희는 갑자기 내 뒤로 다가왔다. 그리고 양 팔을 내 어깨 밑으로 넣고, 가슴을 내 등에 바짝 붙였다. 아니, 이 자세는 여러 가지로 부끄러운데. 예고도 없이 백허그라니, 게다가 얼마 없기는 하지만 승희의 앞쪽에 달린 두 개의 약간의 봉우리가 내 등에 닿는 것이 느껴져서, 난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어, 어?”

“내가 널 안고 뛸 테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 두라고.”

신종 동반자살인가. 아니 이건 자살1 타살1이지.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면 자살1 집단따돌림으로 인한 살인1.

“열까지 세고 뛰는 거다.”

아니,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하나, 둘…”

아무래도 승희는 결심을 굳힌 모양이다. 게다가 이미 내 앞으로 감은 손에 깍지까지 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논개 정신은 당할 수 없다고 느꼈기에, 나도 열까지 셀 동안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좋겠다.

“…열.”

“중간 숫자느으으으은!”

난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느끼는 공포와 등에 닿는 승희에 감촉에 정신을 놓고, 다시 한 순간 멍 해져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곳은 옥상 위였다. 뭐랄까, 내 시체 같은 것에 부원들이 여러 명 둘러싼 채로 상태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승희가 나에게 대고 말했다.

“야, 영훈! 괜찮아? 괜찮은 거지?”

“이거,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소….”

그 뒤로 준현이 내 가슴에 귀를 댄 채로 말했다.

“미묘하긴 하지만, 심장 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소….”

준현의 말을 들으니 실제로 그렇게 느껴졌다.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점점 괴로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아주 조금씩이어서 생명의 위기라던가 같은 느낌은 없었다. 어라, 아버지가 손짓하시네.

“안 돼. 죽지 마라 영훈아. 네가 죽으면 사후 처리는 누가 하니.”

왠지 승희가 별 걱정도 아니란 듯이 내 몸을 잡으며 깨운다. 10년 가까이 되는 소꿉친구 사이의 우정이 겨우 이 정도냐. 어찌되었든 간에, 난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키고자 말을 내뱉어 보았다.

“뭐…. 그렇게 죽을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 목소리가 소란스러운 와중에 작게 울렸다. 그러자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나를 어이없게 쳐다보았다. 마치 동물원에서 슬라임이란 푯말을 단 우리에 젤리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듯이 말이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내 몸을 붙잡고 흔들던 승희마저도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어이없다는 미소만 흘려보냈다.

“왜, 왜 그러는 거예요? 왜 다들 그렇게 절 뚫어져라 쳐다보는….”

“영훈, 자신의 몸을 확인해보는 게 어떤가?”

내 말을 준현이 가로채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내 몸을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내 몸이야 두 팔, 두 다리, 몸, 머리, 손, 발, 입고 있던 옷까지도, 모두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내 몸과 몸을 감싸는 모든 것이 비쳐 보였다.

일동 침묵의 상황에서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추측을 조심스레 내어보았다.

“투신자살의 후유증 같은 건가, 이거?”

“그럴 리가 있냐(는가)!”

승희와 준현이 동시에 걸고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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