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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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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오라버니, 내 서방님을 찾을 때까지만 나와 동거해주시오!!
글쓴이: 마녀는예쁘다.
작성일: 12-07-07 17:26 조회: 1,625 추천: 0 비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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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프롤로그

붉은 궁 아래에 두 명의 사내와 한 소년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연히 그 근처에 있던 작은 소녀는 그 모습을 보곤 기둥 뒤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기둥 너머로 소년을 훔쳐보는 소녀의 맑은 보라색 눈동자가 영롱하게 흔들렸다. 그 때, 두 명의 사내 중 한 사내가 소녀를 발견하곤, 소녀를 불렀다.

“련화야.”

사내의 부름에 소녀는 흠칫 몸을 떨며 기둥 밖으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

“인사하려무나. 옆 호진국의 하나뿐인 황자, 강서령이시다.”

사내의 말에 소녀는 자신의 붉은 옷자락을 살짝 들어올리며 허리를 숙였다.

“련화라 하옵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천천히 허리를 일으키는 소녀의 모습에 소년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면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강서령입니다.”

순간 스쳐지나가는 소년의 그 미소에 소녀의 두 눈이 크게 뜨여졌다. 소녀의 눈동자에 담긴 소년은 흩날리는 벚꽃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소녀가 보았던 그 누구보다, 미색이었다. 목소리 또한 굉장히 아름다웠다.

소녀는 반달로 곱게 접힌 소년의 검은색 눈동자와, 벚꽃과 함께 흩날리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홀린 듯 쳐다보면서, 한참 후에야 수줍게 미소 지었다.

“반갑습니다.”

정말로 반갑습니다.

소녀의 말에 소년은 희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어른들 사이로 소녀의 혼담이 오갔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소녀의 어머니가 소녀를 자신의 궁으로 초대했다.

“련화야.”

어머니의 부름에 소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소녀의 보라색 머리카락도 소녀의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네 부군은 어떤 분이면 좋겠니.”

의례적인 물음이란 것을 소녀도 익히 잘 알고 있어,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의례적으로 대꾸했다.

어머니, 실은 전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서방님을 얻고 싶습니다.

차마 나오지 못한 목소리가 소녀의 목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련화야.”

어머니가 한차례 더 소녀를 불렀다.

“네게 미안하구나.”

끝이 흐린 어머니의 말에 소녀는 자신의 무릎에 곱게 얹고 있던 손으로 옷자락을 세게 쥐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소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건 순종적인 대꾸 뿐 이였다.

그리고 또 며칠이 흘러, 소녀에게는 소녀도 모르는 서방님이 생겼다.

하지만 소녀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수를 놓거나 정원을 산책하는 일에 마음을 쓸 뿐이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소녀의 서방님이 될 자와 소녀가 만나게 될 날이 찾아왔다.

흐린 붉은 빛의 천에 휩싸인 방 안에서 소녀는 자신의 서방님이 될 자를 기다렸다. 소녀의 옆에 앉아있는 소녀의 아버지는 무뚝뚝한 얼굴로 찻잔을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소녀의 아버지가 찻잔을 거의 비워갈 무렵,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름답게 양각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는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이었다.

소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오랜만입니다. 련화 낭자.”

꿈에서 항상 그리던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 강서령이였다.

소녀는 믿기지 않는단 듯이 흔들리는 두 눈동자로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네 부군이시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에게 확신시켜주 듯, 단호하게 말했다.

꿈이 아니야.

소녀는 저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 지으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소년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입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제 서방님이 되실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리 꿈이 아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소년의 옆모습을 쳐다보면서 소녀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행복했다.

소녀는 불안할 정도로 행복해서, 웃음으로나마 자신을 다독였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소녀는 어느덧 열다섯 세가 되었다. 소년도 열여덟 세가 되었다. 둘의 혼인식이 점차 가까워져왔다. 그리고 그럴수록 소녀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련화 낭자.”

이제 사내 티가 물씬 나는 소년의, 목소리에 더 이상 소녀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해진 소녀가 미소로 화답했다.

“제가 사는 곳은 무척 아름다워요.”

“호진국 말씀이신가요?”

“네. 그러니 분명 련화 낭자의 마음에도 들 거 에요.”

소년의 말에 소녀는 미소지었다.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요.

소녀의 미소에 소년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앞으로 팔을 뻗었다. 의복을 입고 있었던 터라, 풍성한 옷자락 사이로 소년의 손목이 드러났다.

소년의 손목은 벚꽃잎 색의 멍으로 울긋불긋했다. 소녀는 두 눈을 깜박이면서 소년의 손목을 쳐다보았다.

저게 무엇이냐, 묻고 싶었지만 소녀는 묻지 못했다.

그저 소년의 손 위로 하늘하늘 내려오는 벚꽃잎을 쳐다볼 뿐이었다. 소녀와 소년이 처음 만난 그 날과 같이 벚꽃은 아름답게 허공을 수놓고 있었다.

“…미안해요.”

문득 소년이 입을 열었다. 처음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

소녀는 아무 대답 없이 소년을 응시했다.

“제가 욕심을 부렸어요.”

“….”

“련화 낭자 옆에 있고 싶었어요.”

“….”

“…좋아해요. 아니,”

“….”

“사랑해요. 당신은 분명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신부가 될 거에요.”

소년의 고백에 소녀는 천천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소녀의 일그러진 눈망울에서 커다랗고 투명한 눈물방울이 볼 위로 방울져 흘러내렸다.

“사랑해요.”

벚꽃잎과 함께 흩날리는 소년의 검은 머리카락은 그때보단 확연히 길었고, 또 거칠었다. 윤기 하나없는 머리카락에 소녀는 눈물을 떨구었다.

무엇이 슬픈지 몰랐지만, 소년의 고백에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행복했지만, 소녀의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소년은 그런 소녀에게 두 손을 뻗어 다정히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품에 조심스럽게 안고 소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와 결혼해 줄래요?”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소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소년의 대꾸에 소녀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저야말로 고마워요.

입술의 달싹임은 벅차오르는 눈물에 묻혀, 소녀의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

잎사귀가 무성한 날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붉은 궁을 한번 쳐다본 뒤, 마차에 올랐다. 뒤에서 배웅해 주는 자신의 가족들을 웃음으로 답하면서 천천히 자신의 궁을 벗어났다.

붉은 면사포로 가려진 소녀의 두 볼은 홍조로 붉었다.

드디어 혼인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소녀의 마차는 소녀의 서방님이 살고 있는 호진국으로, 그리고 그 호진국의 황성으로 부지런히 달려갔다.

새벽이 밝아오고, 밤하늘의 별이 빛을 내고, 태양이 영롱히 빛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련화 낭자.”

소녀는 마차에서 내려서 자신에게 미소 짓는 자신의 서방님과 마주했다.

“기다렸습니다.”

소년의 말에, 소녀는 수줍게 미소지었다.

소녀는 행복했다.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행복해서…,행복해서….

지금 이 순간이 영원일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호진국에 온지 하룻밤 사이에 소년이 돌연히 죽음에 이르러 차가운 주검이 될 때 까지도, 소녀는 믿고 싶었다.

아직 혼인식을 올리기 전이었고, 따라서 소녀는 아직 순결한 몸이었다.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따라서 소녀는 소년에게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소녀를 밀어내는 호진국 사람들에게 소녀는 처연하게 미소지었다.

어째서 제 서방님은…, 제 서방님은…!! …진정 제 서방님이 되시기 전에 왜 저리되셨습니까. 어찌 저리 되셨단 말입니까…!

소리 없는 오열을 내뱉는 소녀는 다시 마차에 실려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붉은 궁으로 되돌아왔다.

“련화야.”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그래도 다행이구나.”

라고 속삭였다.

“과부가 아니 돼서 다행이구나.”

어머니의 속삭임에 소녀는 그제야, 자신을 뺀 모두가 소년이 원래 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죽을병이라서, 제게 미안하시다고 하셨던 거였습니까?

소녀는 소리 없이 울며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의 서방님을 가지고 싶습니다. 허나, 이제 그 분이 없습니다. 어찌 해야 그 분이 제 서방님이 되실까요? 식을 올리기도 전에, 그 분이 진정 제 서방님이 되기도 전에 떠나, 소녀는 이제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소녀는 그 분과 부부의 연을 맺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그 후 소녀는 며칠 밤을 붉은 궁에서 나오질 않았다.

붉은 휘장이 드리워진 자신의 방에서 쉼 없이 바느질을 했다.

휘영청 떠오르는 보름달 아래에서 소녀의 어머니가 소녀를 불러도 소녀는 창백한 입술을 이로 짓이길 뿐이었다.

“…서방님.”

삼일 째 되던 날, 소녀의 품 안에 한 인형이 자리 잡았다. 소녀의 서방님이 되었을 자와 똑 닮은 인형이였다. 닮았되 닮지 않은 또 하나의 강서령이였다.

소녀는 자신의 손바닥만 한 자그마한 인형을 껴안고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바느질로 인해 상처투성이가 된 소녀의 손가락은 검붉은 빛이 감돌았다.

“…서방님, 서방님….”

소녀는 그런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두 눈을 감았다. 차올라있던 눈물이 소녀의 하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어요. 서방님. 내 서방님. 어찌 정표 하나 두지 않은 채, 떠나간 건가요. 당신의 아이라도 가졌더라면…, 가졌더라면.

이제 이곳엔 당신의 흔적이 하나 없는데. 제 기억 속에서만, 제 심장 속에서만 숨 쉬고 있는 서방님이 밉습니다. 서방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제 순결함이 저주스럽습니다.

숨 죽여 흐느끼는 소녀의 볼 위로 분홍빛의 벚꽃 잎이 내려앉았다. 하나 둘 소녀를 향해 떨어지는 벚꽃 잎에, 소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련화.

소녀의 앞에는 소년이 서 있었다. 입가에 처연한 미소를 단 채.

“서방님!!”

소녀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소녀의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소년은 그런 소녀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련화.

천천히, 만개하는 꽃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가 소년의 얼굴에 번진다. 목소리도 그때처럼 다정하다. 생각해 보니, 마지막 그 순간에도 소년은 저런 목소리로 자신을 달랬었다.

울지 말라고.

“…서방님…,서방님…!!”

소녀는 욱신거리는 팔을 소년을 향해 뻗었다. 소년은 그런 소녀를 보며 천천히 눈매를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검은색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

소녀를 향해 소년은 무릎을 굽히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소년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소녀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소녀는 좀 더 팔을 뻗어, 소년의 아름다운 손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했다.

“거기까지야.”

잡으려는 순간, 소년은 허깨비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흩날리던 벚꽃잎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서방님…? …서방님은…서방님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녀는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소년이 사라진 곳을 대신 차지한 사내. 붉은 눈동자가 소름끼치는 기묘한 사내.

“…누구야? 당신은 누구야? 서방님은? 서방님을 돌려 줘!! 서방님을 돌려달란 말이야!!”

소녀는 소리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다.

“서방님을, 서방님을 돌려 줘!”

흐느끼면서 절규하는 소녀의 품에서 인형이 떨어졌다. 사내는 그 인형을 잠시 보다가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띠었다.

“…돌려주지. 원한다면.”

“…뭐?”

사내의 시원한 대답에 소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내는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보며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을 기점으로 다시 벚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아.”

소녀는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두 손을 들어서 벚꽃잎을 두 손안에 담아 보았다. 벚꽃잎은 그 순간 소녀의 손 안에서 녹아 사라졌다.

꿈인 걸까.

내가 꿈을 꾸는 걸까.

몽롱하게 젖어 들어가는 소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돌려 줘. 무엇이라도, 무엇이라도 줄 테니까.”

꿈이라 하여도, 좋아.

서방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서방님의 미소를, 목소리를, 손짓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내 목숨이라도 영혼이라도 줄게.

설령 꿈이라 하여도 내 모든 걸, 현실에서의 내 모든 걸 줄게. 그러니, 꿈에서만이라도 만나게 해 줘.

“3년. 3년 동안만 그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게. 단 그를 찾는 건 네 몫이고, 네 원대로 그와 부부의 연을 맺는 것도 네 몫이다.”

“…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부군의 곁에 보내주잖아? 더 이상 바라면 곤란해. 이것만으로도 넌 대가로 네 영혼을 주어야 하니까.”

“….”

“네 부군은 이미 윤회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니, 어서 결정하는 게 좋을 테지.”

사내의 웃음소리가 다시 한 번 더 방안을 나직이 떠돌았다.

“…혹여 말하건대, 네가 지금 죽는다 해도 네가 부군을 만날 리는 없어. 그와 너의 연은 아무것도 맺어진 게 없으니까. 그러니, 그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지.”

영혼을 거는 것 치곤 괜찮은 조건이잖아?

사내의 목소리가 소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좋아요.”

소녀는 두 주먹을 쥔 채 대답했다.

만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요.

소녀의 대답에 사내는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뜻인 것 같았다. 소녀는 잠시 머뭇거린 뒤, 사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내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를 알았고, 제게 왜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건가요?”

소녀의 물음에 사내는 눈매를 살짝 찡그리면서 남은 한 손으로 인형을 가리켰다.

“저것. 저것에 깃든 너의 한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그것에 끌렸지. …너의 영혼이 갖고 싶어졌다.”

“…그런가요.”

“꽤 정성이 깃들었어.”

소녀는 인형을 주워서 품에 안았다. 자신의 서방님을 닮았는데, 자신의 체취만이 났다. 그게 못내 안타까워서 소녀는 인형에 얼굴을 묻었다. 인형에서 짠 냄새가 났다.

“마음에 든다면 드릴게요.”

소녀의 말에 사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중한 것이 아닌가.”

“…맞아요. 하지만 전 서방님을 찾으러 갈 수 있게 됐으니, 이제 제겐 필요 없어요.”

제게 서방님은 한 분이면 충분해요.

소녀의 말에 사내는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왼손을 내밀었다.

“그럼 감사히 받도록 하지.”

사내의 말에 소녀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면서 인형을 사내에게 건넸다. 건네는 소녀의 손이 떨렸지만, 한순간 이였다. 소녀는 눈을 아래로 내리떴다. 소녀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그럼 좋은 꿈 꿔. 3년뿐이지만. 그리고 그것이 악몽이 될 지도 모르지만.”

사내의 인사에 소녀는 고개를 들고 사내와 인형을 번갈아보면서,

“…고마워요. 천사님.”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윽고 소녀는 빛에 감싸여 사라졌다. 사내는 사라진 소녀가 있었던 자리를 한 번 본 뒤, 그 또한 한순간 사라졌다. 이윽고 방안은 차가운 공기만 떠돌았고, 붉은 휘장을 젖히며 소녀의 어미가 들어왔을 땐 이미 방안은 싸늘해진 상태였다.

01 만남.

마요네즈가 떨어졌다.

허리를 숙여 냉장고 깊숙이 들여다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사러가야 하는 걸까. 귀찮은데. …하지만 김치볶음밥 마무리에 마요네즈를 넣지 않는 건 범죄다. 슈퍼마켓은 요 앞이니까, 뛰어가면 되겠지.

지갑만 대충 챙기고 캡 모자를 눌러 쓴 다음에 운동화에 맨발을 구겨 넣었다.

잠깐이니까, 열쇠는 챙기지 않고 대문을 열었다.

“냐옹.”

그리고 그 순간 기다렸단 듯이 옆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닌, 사람이 흉내 낸 것 같은 어색한 울음소리.

“…어?”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커다란 박스 안에 앉아있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아이는 날 보며 연신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대로 시선을 돌리고 싶었지만 아이는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있는 걸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결국 마지못해 심드렁하게 묻자, 아이가 눈을 크게 떴다. 보라색 눈동자가 이질적이다. 렌즈라도 낀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머리카락도 보라색이다.

“날 거두어가는 것을 허락하겠다.”

“…응?”

“여기 있던 고양이들은 그들을 처음 발견한 여인이 데려갔으니, 이젠 네가 날 거둘 차례다. 네가 날 처음 발견했으니 말이다. 허나, 그리 오래 머물 생각은 없으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아이는 또박또박 당차게 말하면서 박스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 가슴에도 못 미치는 아담한 몸이다.

그보다 거두라니? 내가 널?

아이의 말을 속으로 곱씹으면서 미간을 찌푸리자, 아이는 눈을 두어 번 깜박이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 박스 안에 주저앉았다.

“거절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굳이 강요하진 않겠다. 나는 여기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쀼루퉁한 어조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아이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새로 이사 온 아이인가 본데, 아무래도 ‘버림받은 고양이’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생각하다가 마요네즈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마요네즈를 사러 가려고 했었다.

아이를 한 번 흘낏 본 다음에 바로 맞은편에 있는 슈퍼로 달렸다. 뒤에서 아이의 한숨소리가 들려왔지만 귓등으로 넘겼다.

슈퍼에서 마요네즈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과자와 우유를 산 다음에 나왔다. 아이는 여전히 내 집 대문 바로 옆에 있었다. 박스에 담겨 있는 아이는 고양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만약 정말로 버림받은 거라면 주워 줄 텐데.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애니 와 영화를 너무 봤다. 애니와 영화에서는 통용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일단 이건 내 현실 이였다. 현실에서 어린아이들을 함부로 데려가는 건 범죄다. 그것이 설령 박스에 담겨있는 아이라 할지라도. 게다가 저건 정말 버림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놀이 같았다.

하지만 어쨌든 저런 조그만 아이를 저렇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이런 날씨에 이렇게 오래 야외에 있다간 일사병 걸리기 딱 이다.

결국 아이가 쭈그려 앉아있는 박스 앞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건넸다.

“바닐라 맛이야.”

놀이를 멈추게 할 수 없으니, 차갑고 시원한 것이라도 권해보았다. 이러면 일사병을 조금이라도 피할 순 있지 않을까. 아, 그늘도 있어야 하나.

내가 건네는 아이스크림을 받지 않는 아이를 향해 최대한 선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아이의 경계서린 눈동자가 한층 더 매서워진다.

“…괜찮으니, 받아. 나 나쁜 사람 아니야. 그리고 이런데 보단 그늘 진 곳에서 노는 게 낫지 않을까. 꽤 덥고 그러니까. 여기 근처에 공원이 있는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아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 거부의 몸짓인가.

하던 말을 멈추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옆으로 돌린 고개 덕분에 새빨간 귀가 보인다. 벌써 열이 오른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위험한 상태일지도.

“…거두지 않겠다고 한건 너였지 않느냐. 그런데 어찌 내게 호의를 베풀려고 하는 것이냐.”

응?

고개를 옆으로 돌린 아이에게서 약간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나를 약하게 만들지 말거라.”

…아. 이거 혹시 나를 놀이에 껴 준건가? 맞장구 쳐 주어야 하는 건가?

당황스러움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아이가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려 한 번 째린 다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놀이에 끼어주는 건 아닌 것 같다. 화난 것 같으니까. 설마 아까 내가 맞장구를 쳐 주지 않아서 삐진 걸까?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만지작거리면서 아이를 한번 쳐다보았다. 문득 ‘길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법’이란 인터넷 게시글이 떠오른다. 이 아이도 고양이과 같으니까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

“아, 음. 미안.”

우선 사과를 한 다음에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쭈쭈바니까, 쉽게 녹지는 않을 테지. 아니, 그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대로 내버려두기엔 무언가 굉장히 찝찝하다.

여전히 몸을 한껏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인 아이를 쳐다보았다. 게시글에서는 먹이를 이렇게 내려준 다음에 멀찍이 떨어지라고 했다. 그러면 경계심을 푼 다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자리를 피해줄 겸 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나, 나는 아무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

아이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어느새 벌떡 일어서있는 아이는 옷자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얀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허나, 너에게만은 민폐를 끼치면 안 되겠느냐? 귀찮게 굴지 않으마. 서방님만 찾으면 사례를 한 다음에 깨끗이 나가줄 터이니.”

아이는 무언가 애원하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 본 다음, 다시 고개를 숙이곤 힘없이 중얼중얼 말했다. 아이의 상처투성이인 맨 발 위로 점점이 물방울이 떨어졌다.

…잠깐. 상처투성이 맨발?! 이제 보니, 얼굴도 때로 꼬질꼬질하다. 머리카락은 아까 보았던대로 지저분하고.

혹시 그 ‘버림받은 고양이’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진짜였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가설이 내 머릿속에 세워졌다. 그렇다면 정말 버림받은…, 아니, 아니지. 이 경우엔 가출인가?

“…집 없어?”

떠 볼 생각으로 묻는 내 말에 아이는,

“두고 왔다.”

가출한 아이의 전형적인 답을 들려주었다.

“엄마는?”

“…없다.”

이 대답역시 전형적인 답이고.

아이의 정수리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가출이 맞는 것 같았다.

…아.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 난감하게 됐다. 물론 ‘버림받은 거라면 언제든 주워줄게.’ 라고 편의점안에서 큰 소리를 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망상이고,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망상은 ‘동거’지만, 현실은 '경찰서'다.

“경찰서에 연락해서 집을 찾아줄게. 가출 한 것 같은데…,”

“….”

-꼬르륵.

그 순간 아이의 뱃속에서 밥 달라는 신호가 들려왔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내 작은 웃음소리에 아이는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보았다. 붉어진 얼굴. 두 보라색 눈동자에는 눈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창피한 걸까. 보면 볼수록 고양이 같은 아이다. 어른스러운 척 하는 아기 고양이.

…왜 가출한 걸까.

“우선 들어가서 씻고 밥부터 먹자.”

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나름 상냥하게 말하자, 아이가 내 손을 보면서 눈을 치켜떴다.

“…여인은 모르는 남자와 함부로 손을 잡는 것이 아니다.”

당돌한 아이의 말에 나는 쓰게 웃으면서 손을 더 쭉 뻗었다.

“난 남자가 아니니, 괜찮아.”

내 말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인 이였던 것이냐?”

“그런 뜻이 아니야. 난 널 여자로 보지 않는다, 이 뜻이야. 그러니 어렵게 굴지 않아도 괜찮아.”

내 말에 아이는 잠시 보라색 눈동자를 굴리다가 날 노려보았다.

“내, 비록 혼기를 조금 놓친 몸이지만, 그렇다하여 여인이 아니라 하다니. 무례하구나.”

아이의 화난 표정에 나는 쓰게 웃었다.

“그런 뜻이 아니야.”

그리고 네 나이에 혼기를 놓친 몸이라니. 아직 이렇게 어린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장난치곤 아이의 화난 표정이 리얼하다.

“그럼 무슨 뜻이냐?”

“네가 동생 같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난 네 오빠가 되겠지.”

“…오라버니?”

“그래.”

“그렇다면 내가 네 동생이 되는 것이냐? 즉 네가 내 오라버니니, 그럼 넌 날 거두어 주는 것이냐?”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은데.”

“우린 가족이로구나. 가족이니, 3년만…이라도 머물 수 있겠지…?”

이거 웬 떡이냐는 눈빛으로 날 올려보는 아이를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다. 난 이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난 다음에 바로 경찰서로 데려갈 거니까. 하지만 그래도 정정은 해주어야할 것 같아,

“가족은 아니지. 같은 피가 흐르는 건 아니니까. …그보다 들어가자. 배고프지?”

정정을 해주면서 아이의 손을 잡아 대문 쪽으로 끌었다. 아이는 약간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다가 이내 무언가 체념한 듯 속눈썹을 내리트리면서 얌전히 따라왔다.

그래도 얌전한 듯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아이는 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같은 피가 흐르진 않지.”

“….”

“내가 무례했구나.”

“…딱히 무례하단 생각은 안 했어.”

“….”

이외로 말이 많은 아이구나, 라고 생각할 쯤, 뒤에서 쫑알거리는 소리가 그쳤다. 나는 대문을 걸어 잠그곤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내게 두 손을 벌리고 있었다.

“왜?”

“나도 들 수 있다.”

내 손에 들린 슈퍼봉지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괜찮아.”

내 거절에 아이는 자신의 분홍빛 입술을 이로 짓이기더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무안해서인지 볼도 조금 붉었다.

아이는 허공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손을 슬며시 아래로 내려서 등 뒤로 감추었다.

“…그렇다면 네가 들어라….”

꼼질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행동이 무언가에 실망한 고양이 같다.

“그보다 일단 씻어야 할 것 같은데.”

아이의 지저분한 발을 보면서 얼굴을 찡그리자, 아이의 어깨가 미약하게 떨린다. 그런 아이를 두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소파 위에 슈퍼봉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캡 모자를 벗어 아무데나 놓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저런 더러운 발로, 마루며 방안을 휘젓는 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

“기다려.”

화장실 안에서 대야에 물을 받으면서 말하자, 목소리가 울린다.

아이의 대답은 없었다. 그것을 긍정으로 여기곤 물이 가득 담긴 대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건 뭐야?”내 손에 들린 대야를 보며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눈시울이 조금 붉어져있다. 왠지 안쓰러운 느낌이 들어,

“네 발을 씻을 물.”

최대한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저건 고양이중에서도 길고양이다. 가출인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집고양이가 길로 나오면 길고양이지. 그래도 사람 손을 타서 그런지, 경계심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내밀었다.

“손 위에 발을 올려.”내 말에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내 손 위에 발을 올렸다. 하얗고 조그만 발이다. 지금은 더럽지만, 씻으면 예쁠 것 같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건 고생을 모르는 발이다.

가출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조금 기울어진다.

“…이름이 뭐야?”

-찰랑 찰랑.

물로 발을 씻어주면서 물었다.

“련화.”

아이가 어딘가 어둡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예쁜 이름이네.”

내 말에 련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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