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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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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그렇다. 그는 여행자였던 것이다.
글쓴이: 푸른오징어
작성일: 12-07-07 11:33 조회: 2,143 추천: 0 비추천: 0

그 날은 겨울 날씨라기엔 유별나게 맑았으며 하늘은 정말로 높게 보였다. 최근 느껴보지 못한 쾌적함을 느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을 정도라 불러도 좋을 잔잔한 바람이 이 지역 일대에서 불고 있다. 몇 개의 적운 덩어리들은 조각조각 퍼져 있었으며 이따금씩 바람을 따라 서쪽으로 조금씩 움직인다. 구름들은 마치 컴퓨터 바탕화면……이 아니라 맑은 날씨의 열대 지방이나 초원을 연상하게 했다.

하늘 아래로는 보통 강보다도 훨씬 길고 폭이 넓은 강이 하나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지나갔다던 사람들 말로는 길이는 직선거리로만 한다면 성인 남자가 강의 시작점에서 출발해 그 강 옆을 따라서 꼬박 5일을 밤낮없이 걷고도 7시간은 더 걸어야지 겨우 강의 반대쪽 끝에 도달할 정도라고 하니, 대략 엄청나게 길다는 것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강의 너비 또한 보통 자동차의 속력으로 5시간은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넓고 긴 강 위에는 하나의 돌다리가 놓여 있는데, 군용 탱크가 한번에 3대는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고 튼튼하다. 다리는 흰색과 회색의 돌로 만들어져 있었고, 다리가 설치된 위치는 강 위에서 약 11미터는 위쪽이었으며, 양 끝에 난간은 없지만 워낙 넓어서 사람들이 일부러 가장자리로 걷지 않는 이상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다리의 가장자리 끝으로 내가 타고 있는 스쿠터가 달린다. 녹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스쿠터에는 나를 포함하여 두 사람이 타고 있는데, 나는 앞좌석에서 핸들을 잡고, 발에는 착용감 좋은 검은 구두를 신은 채 한쪽 발을 언제든지 스쿠터를 멈출 수 있도록 뒷브레이크에 가볍게 올려놓은 상태이다.

내 뒤에 앉은 사람은 흰색의 긴 생머리를 하고 있는 소녀이다. 내 머리도 흰색이긴 하지만, 내 흰색은 마치 푸른색이 탈색된 것처럼(아마 어머니의 유전자가 아닌가 싶다) 희미한 흰색이고, 이 아이의 머리는 오리지날 흰색일 뿐 아니라 윤기도 있고 머리칼도 건강해서 거의 은발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소녀의 이름은 뮤리엘,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적다. 뮤리엘은 깃과 손목, 밑단이 하얀 털로 장식된 하늘색 코트를 입고 있다. 상의는 적갈색의 긴팔 티셔츠이다. 속으로만 생각하는 거지만, 뮤리엘은 가슴 언저리에 볼륨이란 게 슬플 정도로 없기 때문에 여성용 티셔츠가 아니어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바지 아래로는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고, 신발은 황색의 긴 부츠이다. 지금은 내 허리에 팔을 감은 채로 등 뒤에 집에 기대고 있다.

참고로 스쿠터의 짐칸에도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짐들이 묶여 있는데, 생필품이나 팔 만한 물건 같은 것을 제외하면 나와 뮤리엘의 가방 두 개가 남는다. 내 가방은 이국의 언어로 알 수 없는 상표가 붙은 검은색 직사각형 모양의 큰 캐리어다. 투박하고 질긴 것이 단점이자 장점이다.

뮤리엘의 가방은 하늘색의 작은 가방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배낭과 같이 생긴 가방의 지퍼 고리에는 하늘색의 작은 곰 인형이 달려 있다. 하지만 그 귀여운 생김새에 맞지 않게 다가가려 했다가는 가방의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잔뜩 날이 서 있는 손도끼와 굉장해 보이는 전기톱에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리를 꽤 오랜 시간 동안 달려왔다. 하지만 역시나 다리의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나는 왠지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 뒤에 앉은 뮤리엘에게 장난을 쳐 볼까 생각했다. 정말로 사소한 장난이다.

“넘어간다~.”

“……!”

“됐다.”

“…….”

“넘어간다~.”

“……!”

“됐다.”

“…….”

내가 스쿠터를 다리 아래쪽으로 살짝 기울이는 시늉을 했다. 스쿠터가 살짝 기울어질 때마다 뮤리엘이 몸을 바짝 경직하며 내 허리에 감은 손에 힘을 준다. 표정이나 목소리로는 전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뮤리엘인 만큼, 이렇게 확실한 반응은 좀처럼 볼 수 없기에 이런 장난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스테리오 씨, 그러다 진짜로 떨어지면 어떡할 거예요?”

뮤리엘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연하게도 그녀의 귀여울 정도로 위협 없는 불만 따위는 무시하며 앞을 향한 채 계속해서 운전했다.

“걱정 마, 뮤리엘. 이래도 나 스쿠터는 꽤나 많이 운전해 봤으니까. 어설픈 실수 같은 건 하지 않아.”

일단은 핑계거리라도 삼아서 말해 둔다. 많이 운전해 본 건 사실이지만, 어설픈 실수를 안 한다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많이 운전해 봤다는 것과 사고가 날 가능성은 다른 것이라고요. 만약 스테리오 씨의 논리대로라면 나무 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낙사하거나,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이 익사하는 사례는 설명할 수 없는걸요.”

“물론 나도 사고가 안 난다고는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위험한 장난을 치는 것과 여유를 부리는 것의 차이가 뭔 지 알아? 바로 대상의 차이야. 위험한 장난을 치는 것은 아마추어이고, 여유를 부리는 것은 프로라는 거야. 프로가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아마추어의 것과는 조금 다른 게, 겉으로만 여유롭게 보일 뿐이지 사실은 그 여유가 실수가 되지 않도록 긴장하고 있는 거지. 즉, 여유를 부리는 것은 가장 집중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결론을 내리자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운전 방식이 가장 안전하다는 거지.”

“말도 안 되는 논리 세우지 마세요. 다리 가장자리에서 장난을 치지 않고 집중해서 운전할 순 없는 거예요?”

“물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 하지만 다리의 중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안전한 장소잖아? 그렇기에 실수를 해도 된다고 착각하게 되어버려. 결과적으로 다리의 중앙으로 다니면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되고, 그만큼 지체된다는 거지. 반면에 다리 가장자리에서 위험한 ……이 아니라 여유를 부리는 것은 좀처럼 실수가 일어나지 않지. 작가가 마감일 직전에는 평소의 두세 배 이상으로 글을 쓰는 것과 같은 원리야.”

“방금 위험한 장난이라고 말하려고 했죠? 스테리오 씨가 프로이던 아마추어이던 상관없지만, 제 생각은 안전이 최우선이라 생각해요. 다리 중앙에서 운전하다 두 번 넘어지는 게, 다리 가장자리에서 한 번 넘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하지 않나요?”

“남자라면 항상 도박의 길을 정진하는 거야.”

“그럼 스테리오 씨 혼자 죽고 저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요. 그리고 제가 처음 스테리오 씨를 본 장면은 스쿠터를 타고 성대하게 넘어지는 모습이어서 그런지 영 신뢰감이 안 생기거든요.”

그런 일도 있었던가. 분명 내가 어째선지 모르게 스쿠터를 타고 성대하게 넘어졌고, 그걸 처음으로 발견한 뮤리엘이 날 구해주었다. 그게 나와 이 소녀가 같이 여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

“그러고 보니 그 때 누가 그런 장난을 친 거지? 그 주변에는 너랑 너희 아버지밖에 살고 있는 거 아니었어?”

“…….”

뮤리엘이 왠지 대답하지 않아서, 나도 다시 앞을 보고 운전하기로 했다. 그 뒤로 한동안 스쿠터는 직선 코스를 단조롭게 달리기만 했다. 스쿠터 바퀴 아래로 균일하게 깔려 있는 다른 돌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갔다. 질서정연한 다리 위의 코스를 달리는 것이 지루해질 무렵, 다른 돌들 사이에서 이상할 정도로 많이 튀어나온 돌 하나에 그만 스쿠터의 앞바퀴가 채였다.

덜컹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스쿠터가 한 번 크게 흔들리자, 방금 전까지의 지루한 감정 따위는 순싯간에 날아가 버렸다. 내가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당황하는 동안 이미 스쿠터는 곧 중심을 잃어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악!”

“……!”

나의 짧은 비명이 울렸다. 뮤리엘은 이 순간까지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내 허리에 감은 팔을 심하게 죄어왔다. 난 다리 쪽으로 넘어지려던 스쿠터를 최대한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떨어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스쿠터를 다리 안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뮤리엘, 뛰어!”

내가 다급하게 뮤리엘에게 말한 뒤에 서둘러서 스쿠터에서 뛰어내렸다. 뮤리엘이 나를 꼭 붙잡은 채로 나와 같이 뛰어내렸다. 우리가 내리자 곧 스쿠터는 얼마 가지 못하고 서서히 다리 안쪽으로 기울어지다가 넘어졌다. 묶어 놓았던 짐들이 바닥에 긁히면서 밧줄들을 끊고, 짐들의 거의 대부분 다리 위에 흩어졌다. 스쿠터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굴러간 뒤에야 맹렬히 돌던 바퀴를 멈추었다.

“큰일 날 뻔 했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은 분실물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다리 위에 여기저기 흩어진 짐들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짐을 추가하거나 팔 때마다 기록해 놓았던 수첩을 꺼내서 몇 번이고 체크해 내고 나니 다행히 잃어버린 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실된 물건이 없어서 다행이야.”

내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뮤리엘도 천천히 일어나서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흩어진 짐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흩어진 짐들 가운데에서 자신의 하늘색 가방을 꺼냈다. 그 가방 안에서 다시 손도끼를 빼어들었다. 날카롭게 세워진 손도끼의 날 끝이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강한 햇빛을 받아 영롱하고 아름다운 빛을 한껏 반사하고 있었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뮤리엘은, 날이 잘 세워진 도끼를 들고 멀쩡하게 서 있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 혹은 그 비슷한 것을 느꼈다.

“뮤리엘,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전 괜찮아요. 그런데 스테리오 씨는요?”

“난 멀쩡해. 다행이네.”

“네? 스테리오 씨 어깨는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그렇군요. 그럼 한 번에 끝내드릴게요.”

뮤리엘은 손도끼를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올렸다.

“아니아니아니아니잠깐잠깐잠깐잠깐 지금 대체 뭐 하려는 거야!”

“방금 스테리오 씨가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내 어깨가 무사하단 뜻이었지, 내 몸과 어깨가 작별인사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그런 무서운 해석이 가능한 거냐.

“아무래도 전달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럼 다시 물을게요, 목은 괜찮아요?”

“백주대낮에 살인극을 일으킬 셈이야?!”

“겨우 머리 하나 만큼의 키가 줄어들 뿐인데요. 적어도 평생 한쪽 팔을 못 쓰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머리 하나 만큼의 키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실제로 머리가 잘려나가는 거잖아! 차라리 한 쪽 팔을 못 쓰는 쪽이 낫지! ……아니아니아니 그렇다고 한 쪽 팔을 없애는 것에 동의한 건 아니고!”

다시 한 번 손도끼를 휘두르려고 했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어깨도 안 된다, 목도 안 된다……그럼 대체 어디를 자르라는 거예요.”

“‘자른다’를 전제조건으로 삼지 말라고. 그냥 넘어갈 순 없는 거야?”

“스테리오 씨는 분명히 스쿠터 운전은 많이 해 봤고, 가장자리에서 여유부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했죠? 근데 지금 상황을 보세요. 그나마 가장 나은 게 이 정도라고요. 잘못했으면 저랑 스테리오 씨 둘 다 줄도 없이 번지점프 할 수도 있었거든요.”

“그건 그렇지…….”

“잘못 했↗어요, 안 했↗어요?”

“잘못했지…….”

평소에는 못 듣는 억양 있는 말투를 이런 상황에서 듣게 되다니.

“혼↗나야 돼요, 안 혼↗나야 돼요?”

“혼나야지…….”

“몇 개 잘릴래요?”

“세 대……가 아니라 개수?! 한 개도 용납 못해! 5개만 자르면 끝이잖아!”

그 중 한개는 자르면 저승사자와 세이 헬로 헬로 하게 될 테고.

“아닌데요, 6개인데요.”

“???포함?!”

뭔 여자애가 이렇게 살벌하담.

“괜찮잖아요. 어차피 쓸 일도 없을 텐데.”

“아니, 그 발언은 나라도 조금 슬퍼지는데…….”

뮤리엘은 결국 손도끼를 다시 내린 다음에, 제의를 시작했다.

“알았어요. 그럼 자르는 것은 그만둘게요. 그래도 역시 스테리오 씨는 맞아야겠어요. 세 대만 맞도록 하세요. 이건 동의하죠?”

“아, 알았어. 세 대로 합의하자.”

내가 종아리를 세 대 맞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기적적으로 협상 타결이다.

사실 매를 맞는다는 것에 있어서 3이라는 숫자는 가장 적절한 수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안나(누나)에게 맞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몇 번인가 방금과 같은 물음을 접할 때가 있었다.

만약 0대나 한 대라고 하면, 내가 저지른 죄의 크기를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본다고 생각하여 처벌의 강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여섯 대씩 맞겠다고 하면 그건 내 생명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그 중간 타협점인 3대를 택하는 것이다. 구조적으로도 안정된 숫자가 3아닌가. 내가 이 숫자를 제시해서 협상에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바지를 걷고 맞을 준비를 하는 동안, 뮤리엘은 손도끼에서 날을 분리해 내고 있었다. 수시로 분리할 수 있다는 점이 간편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잘못하면 휘두르는 도중에 날이 어디로 튈지도 모른다는 사실 아닌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손을 봐 둬야겠다.

“그럼 딱 세 대만 때릴게요.”

다리 한복판에서 난 종아리를 걷은 채 맞을 준비를 하고 있고, 뮤리엘은 매를 대고 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 사람들이 별로 안 다니는 길이라지만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빨리 맞고 끝내야겠다.

“조금 아플지도 몰라요.”

뮤리엘이 그렇게 말하고는 종아리에 ‘한 대’를 가격했다.

“으하르허러억?!”

상상을 능가하는 뮤리엘의 파워에 나는 맞는 즉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허벅지 아래를 아예 못 쓰게 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이다. 감각이 없다고 표현해야 할까, 허벅지 아래를 파쇄기에 넣고 갈린 기분이다.

“남자가 아무데서나 무릎을 꿇는 게 아니에요. 남자가 무릎을 꿇어도 되는 때는 오직 운명과 맞설 때뿐이에요.”

“그 말……멋진 것 같긴 한데 너무 아파서 귀에 들어오지 않아…….”

맞는 시점의 고통도 어마어마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다리가 나아지지 않는다. 이거 진짜로 부러진 거 아닐까.

“어서 일어나세요, 스테리오 씨. 아직 두 대 남았잖아요.”

“제발 좀 봐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하잖아!”

“빨리 안 일어나면 때찌때찌 할 거에요.”

“귀여운 의성어로 말해도 무서워!”

“고통은 순간이지만 다리는 영원히 불구에요.”

“살벌해!”

나는 필사적으로 팔과 무릎을 이용해 기어서 도망쳤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뮤리엘이 내 허리를 밟았다. 난 그대로 다시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야! 넌 피도 눈물도 없냐!”

“그거라면 전에 잡상인한테 팔았거든요. 2천 5백 원에.”

“저렴하잖아!”

팔았다는 말은 사는 사람도 있다는 뜻인가.

“그만둬! 내가 다리를 다치면 브레이크를 밟을 수가 없잖아!”

“제가 대신 밟으면 되죠. 사실, 전 스테리오 씨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별 상관없거든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가 이 소녀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 내가 이 소녀를 만난 것? 내가 여행을 시작한 것?

“그럼 두 번째 갈게요.”

“사, 살려주세…….”

두 번째 매를 맞기 직전, 주마등을 보았다. 아빠, 형, 보고 있지?




“아파아…….”

내가 욱신거리는 양쪽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곁눈질로 뮤리엘의 반응을 살펴보았지만 뮤리엘은 쳐다보지도 않으며 흩어진 짐들을 하나 둘 정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매정한 여자 같으니.

“남자가 겨우 세 대 맞은 것 같고 왜 그렇게 엄살이에요.”

“말이 세 대지…….”

차라리 아까 다리에서 떨어지는 쪽이 이것보단 훨씬 덜 아팠을 것이다.

뮤리엘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런 말투임에도 왠지 짜증내고 있다는 기분만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 파트너끼리의 감이라는 것일까. 나는 뮤리엘이 가져다 준 짐을 받아 스쿠터 옆에 쌓았다.

“뮤리엘이 괴력으로 휘둘러서 충분히 아파…….”

넘어진 스쿠터를 천천히 세운 뒤, 받침대로 고정시켰다.

“사실 스테리오 씨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복에 겨워야 한다고요. 지금쯤 눈물까지 쏟으며 감사해야 할걸요.”

뮤리엘은 짐들을 처음에 있었던 순서대로 스쿠터 위에 하나 둘 올리기 시작했다.

“눈물은 나지만 감사의 눈물은 아니야. 애초에 그렇게 세게 내려치는 게 어디 있어. 혹시 잘못되면 진짜 완전히 갈 뻔했어.”

“다 생각을 하고서 적당한 데를 쳤으니까 괜찮아요.”

“진짜?”

“아니요.”

“야…….”

저건 다르게 해석하면 잘못 빗나가면 적당한 데에 맞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인가. 허벅지 아래에 아직 두 다리가 붙어있단 사실에 감사했다.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지만, 뮤리엘은 그저 흩어진 짐들을 다시 스쿠터 위로 올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뮤리엘이 올린 짐들을 정리한 뒤, 새 밧줄을 꺼내서 단단하게 묶었다. 흔히 우물정자형 매듭이라고 불리는 묶기로 상자들을 묶은 후에는, 다시 나름대로 연구해서 풀리지 않게 하는 마무리처리까지 했다. 다 묶고 여유가 생기자,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그런데 좀 이상한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스쿠터가 넘어진 지점까지 걸어가 보았다. 내 뒤를 뮤리엘이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스쿠터가 넘어진 지점에서, 조금 심하게 튀어나온 돌을 발견했다.

“왜 이 돌만 이렇게 튀어나온 거지?”

“글쎄요, 단순한 실수가 아닐까요? 다리를 만들 예산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는 날림공사라던가, 아니면 건축노동자의 작업미스라던가 말이지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뮤리엘은 디테일한 예를 들면서 별다른 감상은 내놓지 않았다. 확실히 내가 좀 오버하는 경향은 있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튀어나온 돌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미 돌은 빠른 속도로 달려왔던 스쿠터에 채여서 이미 살짝 들어진 상태였다. 돌의 양끝을 잡고 서서히 들어 올리자, 돌은 생각보다 쉽게 들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돌 아래에선 약간의 공간이 나타났다.

“아.”

“역시.”

나와 뮤리엘이 동시에 작게 탄성을 냈다. 돌 아래에서 나타난 것은 왠지 급조되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조잡한 나무 상자. 나무 상자는 오랫동안 묻혀 있었는지 습기가 잔뜩 배어 있어서 축축했다. 그럼에도 의외로 견고해서 양 손으로 들어 올려도 바스라 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뮤리엘이 상자를 꺼내고(꺼낼 때, 표정으론 드러나지 않았지만 불쾌감의 오라가 느껴졌다.) 내가 돌을 원래대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돌이 주변 다리의 높이와 같게 딱 들어맞았다.

상자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의 상자 자체의 무게만이 잡히는 느낌에 속이 비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상자를 흔들자 안에서 약하게 무언가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뮤리엘은 상자를 든 채 상자를 열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생각나서인지, 괜히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데요.”

“어차피 열어도 안에 남은 건 희망이잖아?”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희망이란 이름의 바퀴벌레가 뿜어져 나오면 어떡하죠?”

뮤리엘이 진심으로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갑자기 나무 상자에서 튀어나오는 수백 마리의 흑색 벌레들을 상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건 나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그래도 두고 가면 나중에 다시 생각난단 말이야 이런 건.”

“그럼 스테리오 씨가 여세요. 전 한 10km정도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을게요.”

“멀어!”

“전 벌레를 무서워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진 않거든요. 특히 바퀴벌레는 바글바글하고 득실득실해서 싫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나 혼자만 위험한 상황에 방치할 셈이냐.”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함께하고 있으니 혼자가 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같이 열자. 어차피 넌 혼자선 스쿠터 운전도 못하잖아.”

결국에는 상자를 열기로 결정했다. 뮤리엘이 상자를 들고, 내가 상자의 뚜껑을 재빠르게 여는 것으로 정해졌다. 우리 둘은 이때만큼은 한마음으로 최대한 상자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애썼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뭔가 잘못되면 일단 바로 스쿠터로 도망치는 거다.”

“전 스테리오 씨가 그렇게 말 안 해도 먼저 스쿠터를 타고 도망칠 작정이었어요.”

잔인하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나와 뮤리엘은 동시에 상자와 뚜껑을 내려놓고 방어 태세를 취했다.

“……?”

“…….”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잔뜩 긴장하고 있던 우리들을 무색하게 만든 상자의 내용물은 예상과는 많이 빗나갔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은 여러 장의 종이들의 가운데 봉을 끼워서 말아 놓고 끈으로 묶어놓은 뭉치였다. 언제부터 넣어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라 그런지 상당히 낡아 있었다. 뮤리엘이 상자 속에 있는 뭉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끈을 풀고 종이를 펼치자 지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기라도 하듯이 바스라기가 여러 개 떨어졌다. 뮤리엘이 자신의 앞으로 종이를 가져갔다.

“뭔가 적혀 있어?”

“각자가 자신의 일생처럼 무색하게 사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한 가지 사명과도 같은 것이 생겨났다.”

내가 묻자 뮤리엘이 종이에 적힌 내용들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옆에서 살짝 들여다보니 종이 위에는 여러 줄의 글자가 가득 써져 있었다. 글자들이 약간 희미하긴 했지만 읽는 데에는 충분했다. 내가 좀 더 얼굴을 가까이 대자 뮤리엘이 종이 뭉치와 그것을 담은 상자를 들고 일어났다.

“아직 갈 길이 머니까, 다리를 걸으면서 계속 읽도록 하죠.”

그렇게 말한 뮤리엘은 다시 스쿠터를 세워 놓은 곳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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