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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고 써보자! ~Goodbye Prologuer~
글쓴이: 일방통행
작성일: 12-07-06 16:58 조회: 1,658 추천: 0 비추천: 0

~Goodbye Prologuer~







1장 9kb 탈출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와 그에 대한 설명을 쓰세요.'

한 대학의 자기소개서 주제였다. 왜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할 단어 이야기를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프롤로거(Prologuer)’

서막, 을 뜻하는 영어단어 prologue에 접미사 ?r를 붙인 단어이다. 사실 사전에도 없는 누군가가 만든 단어이다. 그 뜻은 ‘프롤로그만 쓰고 뒷내용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소설은 novel이고 소설가는 novelist이므로 프롤로거는 prologuist라고 하는 게 맞을 거다. 실제로 prologuist는 이미 있는 단어이기도 하고.

뭐 이런 영어 단어 차원의 이야기는 재처두자. 내가 프롤로거 중에 하나라는 게 문제다. 나는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이다. 라이트노벨 작가가 되려면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입선해야 한다. 최소한 1챕터 분량의 원고를 요구하고, 본 공모전의 경우 1권 분량의 원고를 요구한다. 그러나 내게 1챕터 분량이란 전력을 다해야 겨우 채울 수 있는 양이고, 1권 분량이란 도전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양이다. 이게 내가 만년 지망생인 이유이다.

하여튼, ‘프롤로거 탈출!’이 지금 내가 건 슬로건이란 거다. 목표는 어엿한 한 권 분량의 원고 완성이다. 그리고 그 원고를 어느새 투고 마감이 2달 앞으로 다가온 공모전에 투고하는 게 목표이다. 이 공모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 최대의 라이트노벨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대략 반년마다 있는 공모전이다. 내가 활동하는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기한이 다가옴에 따라 투고를 준비한다, 포기한다는 등 조금씩 언급되고 있었다.

공모전 마감까지 앞으로 남은 날 수는 대략 60일. 퇴고와 기획서 작성에 드는 날 수를 빼면 실제로 원고를 쓸 수 있는 기간은 40일. 1권 분량은 글자 수로 따지면 대략 14만자~18만자 정도 된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16만자로 잡자. 간단한 산수를 통해 하루에 4000자 정도 쓰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유롭다. 꾸준히 쓰면 가능할 거다.



*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시간은 금방 흘렀고 어느새 이제 남은 날자는 한 달. 자, 한 달 전에 세웠던 계회에 다르면 이제 10일 후 원고가 완성되고, 남은 시간 동안 기획서와 퇴고 작업을 할 때였다. 그러나 현재 내 원고의 용량을 확인해보면 9kb이었다. ‘어 좀 썼네? 예상외로?’라고 생각하면 낚인 거다. 많이 쓰는 국민 워드프로세서의 빈 파일을 열고 용량을 확인해보자. 9kb가 나온다. 즉 한달 동안 한 글자도 안 쓴 상태다.

물론 변명거리는 있다. 나는 한국의 고등학생이고, 열심히 공부하는 건 학생의 본분이다. 중간고사다, 체육대회다 해서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소설은 쓸 때마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전부 폐기처분해버렸다. 결국 ‘프롤로거 탈출!’이란 내 슬로건은 완전히 실패해 버렸다. 이제 투고를 위해선 하루에 1만자쯤은 써줘야 한다. 하지만, 내 근성을 볼 때 사실상 불가능하다.

... 대략 이런 고민을 안은 채 이른 아침 등교를 하고 있는 나였다. 머릿속은 어떻게 쓰지, 같은 걸로 가득 차 있었다.

“어, 우워억!”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갑자기 뒤에서 두 손이 튀어나와 내 시야를 가렸다. 불의의 습격에 괴상한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헤헤, 서방님, 안색이 좋지 않아요?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아, 화영이 너였냐...”

범인은 이화영. 내 후배로서, 고등학교 1학년이다. 참고로 이 기괴한 ‘서방님’이란 호칭은 얘가 ‘선배는 내 남편!’ 이라면서 붙인 거다. 매우 마음에 안 드는 별명이지만 얘가 붙이려 했던 별명 중에서 그나마 나은 것이기에 놔뒀다. 선배라고 부르라고 아무리 말해도 절대 안 듣는다.

“헤헤, 용케도 아셨네요?”

일단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화영이 빼고는 없다. 화영이는 내 시야를 가리던 손을 풀더니 이제는 팔짱을 끼었다. 우우,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러나.

“좀 떨어져.”

화영이는 내 말에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불평을 다른 사람들, 특히 남자애들에게 하면 내가 나쁜 놈이 되어버린다. 화영이는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나름 귀여운 애니까 말이다. 학교에서 인기도 많으니까.

“서방님,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얘가 나를 따라다닌 것은 중학교 때 부터였다. 고1 때 학교가 달라 잠시 떼어놓은 게 다였고, 이렇게 같은 고등학교에 따라온 거다. 나를 이렇게 좋아해주는 애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나도 얘가 싫지만은 않다. 물론, 여자 친구로 삼고 싶다, 같은 의미가 아니라 좋은 후배라는 이야기이다.

“헤헤, 안 떨어뜨리시네요.”

“아아, 이제 지쳤다.”

“자, 저한테 기대세요.”

그렇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내가 좋아하는 애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화영이도 잘 알고 있다. ‘상관없어요. 서방님을 언젠간 한설 선배로부터 뺏어오고야 말겠어요!’ 라며 내 마음을 설이로부터 자신에게로 돌리겠다는 각오를 다질 뿐이다.

“헤, 어느새 도착해버렸네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서방님.”

화영이가 한 말 그대로 어느새 1학년과 2학년이 나뉘는 계단에 도착해 버렸다.

“수업 잘 듣고, 너도 잘 가.”

“네-!”

내 인사를 듣고 기뻤는지 환한 얼굴로 가버린다. 아아, 이제야 텐션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화영이 때문인지 오는 동안 소설 생각을 못했다. 다시 고민하기 시작할 찰나, 누군가가 내 등을 툭 쳤다.

“좋은 아침, 오선규. 방금 거 화영이었지?”

참고로 내 이름이 오선규다. 이 녀석은 화영이 빠돌이(?)로서, 화영이에게 사랑받는 나에 대한 질투를 불태우는 녀석이다.

“맞어. 근데, 방금 거 조금 아팠다?”

아니, 조금이 아니었다. 마치 원한을 담은 일격에 맞은 것 같은 고통이었다.

“부러운 자식, 야 어떻게, 화영이 같은 애가 너를 좋아하게 된 건지...”

“그 말, 화영이 앞에서도 할 수 있냐?”

이 녀석, 화영이 앞에서는 내 욕을 한 마디도 못한다. 아니, 아예 화영이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한다. 순간 쫄아버리는 이 녀석.

“...., 미안. 근데 공모전은 잘 되가? 이제 벌써 한 달 남았지?”

미안하다면서 아픈 곳을 찌르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도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둘은 경쟁 상대였다. 나와 다른 점은 이 녀석은 프롤로거 따위가 아니다. 벌써 여러 번 한 권 분량을 완성, 공모전에도 몇 번씩 나가본 진짜 지망생이다. 물론 전부 떨어지긴 했지만. 이 녀석과는 우연히 내가 다니는 지망생들을 위한 사이트에서 만났고,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인 것을 알고 친해졌다.

“종환아, 그 얘기는 하지 말자.”

“여전히 잘 안되나 보네. 힘내라. 그럼 나중에 보자. 건필!”

열심히 잘 쓰라는 의미의 ‘건필’은 우리들 사이에서 통하는 인사말이었다. 괜찮은 어감에 좋은 뜻이어서 서로 자주 쓰고 있었다.

“건필!”

김종환.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 계에서 나름 유명한 이름. 냈다 하면 최종심 진출. 그러나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안타까운 녀석이었다. 해어져서 각자의 반으로 향했다.

교실 안.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에 듬성듬성 자리가 비어있었다. 이 시간대가 가장 구상하기에 좋다. 자리에 앉아서 노트에 설정이나 적었다, 지웠다 했다. 종환이를 보니 다시금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게 부담으로 온다.

그렇게 한참이나 설정이나 짜면서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계속하던 중,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서방?”

‘서방’, 굉장히 싫어하는 호칭이다. 화영이가 나를 ‘서방님’으로 부르는 것은 교내에서 나름 유명하다. 종환이 말고도 부러워하는 남학생들은 많다. 그렇기에 나를 서방 따위의 괴호칭으로 부르는 놈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놀리는 것이 분명한 호칭이기에 나는 매우 싫어한다.

하여튼 나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제한속도 최소 1만자/day의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서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뭐냐, 이른 아침부터 무슨일이냐?”

어느새 내 눈앞에 있었던 목소리의 주인은 내 소꿉친구 이은주였다. 쇼트컷에 여자치곤 큰 키가 잘 어울리는 쿨 한 소녀. 소꿉친구로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고 있다.

“바쁘지 않으면 나 좀 도와 달라고.”

참고로 ‘친구이상 연인미만’ 따위의 애매한 관계는 절대 아니다. 그저 친한 친구 사이이다. 서로 돕고 사는 관계 ? 라기에는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 이다.

“이번엔 또 뭐냐?”

일방적으로 도와준다고 해도, 친구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절대 협박이나 적절한 회유에 의한 것이 아니다, 라고 해두자.

“노트좀 빌려줘! 오랜만에 공부란 걸 좀 해보게. 전교 1등의 노트로 열공하면 성적이 조금이나마 오르겠지?”

무리한 부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무슨 과목의 어떤 범위의 노트가 필요한데?”

“2학년 시작 후로 전과목.”

그런 말을 하는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열의로 타오르고 있겠지. 뭐, 이은주 성격 상 3일 정도면 식어버리긴 하겠지만.

“자, 여기.”

가방에 든 노트 한 권을 꺼내주었다.

“뭐야, 전 과목이라니까.”

“그게 전 과목이다.”

“헛소리 말고 빨리 내놔.”

“맞거든. 직접 펴서 보시던가.”

난 내 노트 전부를 줬을 뿐이다. 내 말을 듣고 그녀는 노트를 펴고 싹 훑었다.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야, 이게 뭐야? 이것도 필기냐?”

그녀의 감상소감 되겠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런 말 할 자격이라도 되나?

“중간 중간 빠지고, 내용도 적고, 이게 정말 전교 1등 노트냐?”

상당한 악평. 뭐, 그렇게 말해도 저건 진짜 내 노트다.

“나한테 과도한 기대를 했네. 그래, 정말 미안하게 됐다.

“아 뭐야, 헛짓 했네. 하여튼 노트 준 거 자체는 고마웠다.”

그녀는 나에게 노트를 던지고 가버렸다. 나는 날아오는 노트를 받은 뒤 집어넣었다. 자, 후일담이라고 할까, 이번 일의 결말-, 그것은 나는 아침동안 구상이든 집필이든 한 글자도 못했다는 것이다. 나의 시름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



그날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점심시간이었다. 하아, 쉬는 시간 동안에도 온갖 일이 있어서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결국 점심시간까지 한 것은 0. 선생님들의 수업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글은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았다.. 점심을 먹을 시간. 조금 꾸물대다 보니 어느새 다른 애들은 전부 식당에 가버렸다. 나도 슬슬 가볼까,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가는 도중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한테 시선을 보낸다. 나는 2학년 전교 1등 이었고, 1학년 퀸카로 불리는 화영이의 애정 공세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상당히 유명인인 거다. 그런 시선에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도중, 종환이가 보였다.

“어이-! 아직 점심 안 먹었지? 같이 먹을래?”

식당으로 가는 것으로 보이는 김종환. 친구 놈들은 나를 전부 버리고 가버렸기에, ‘이 나쁜 놈들.’ 하면서 혼자먹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마침 잘 되었군 그래, 하고 같이 먹자고 권유하였다. 먹으면서 지망생으로서 라이트노벨 창작에 관한 이야기도 좀 하고 말이다.

“그래, 너도 버려졌냐?”

아무래도 나와 상황이 같은 듯 했다.

“이, 조금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다 가버렸군.”

“쩝, 난 4교시부터 쓰던 글을 계속 쓰다 보니 그렇게 됐어.”

이 녀석은 나와 다르게 성실하군. 근데 수업도 안 듣는 건 심하지 않나? 나도 안들어서 뭐라 그럴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식당 앞이었다.

“이, 서방님~!”

화영이가 그곳에 있었다. 환한 얼굴로 이쪽에 다가오는 화영이 & 그 자리에 굳어지기 시작하는 나와 종환이.

“아, 이쪽은 김종환 선배님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이화영이에요.”

와서 종환이이게 선배님 이라며 바르게 인사하는 화영. 나한테도 그렇게 대해줬으면 좋겠다.

“헤헤, 서방님. 아직 점심 안 드셨으면 같이 먹죠?”

얘, 분명히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옆을 보니 심히 긴장하고 있는 종환이를 볼 수 있었다. 좀 침착하라고..

“아, 뭐, 종환아 괜찮겠지?”

“으, 응. 당연.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하고 싶어.”

‘으, 응. 당연.’ 까지는 버벅댔고, 그 이후에는 부끄러운지 기관총처럼 말을 쏘아댔다. 그 말을 꺼낸 뒤 종환이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뭐,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영이는 돌아서서 그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야, 긴장 풀어 짜샤.”

종환이는 여전히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이래가지고 밥이나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 녀석이랑 함께 조금 진지하게 지망생으로서 대화를 나누려 했던 내 계획도 완전히 망해버렸다고 할 수 있겠지.

셋이서 조금 기다린 끝에 밥을 받아 4인용 테이블로 갔다. 조금 늦게 갔다고 식당은 대성황. 어디든 학생들로 꽉 차있어서 자리 찾기가 조금 힘들었다. 내 앞에 화영이가 앉고, 옆에 종환이가 앉는 자리배치였다. 종환이는 여전히 기합이 팍 들어간 긴장한 상태였고, 화영이는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솔직히,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다.

“헤헤, 서방님~.”

나를 보면서 방긋 웃는 화영이. 조금 바보 같아 보이면서도 귀여운 게 화영이의 웃음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만 둬 줬으면 좋겠다. 종환이가 질투하고 있었다.

“바보 같으니까 그렇게 웃지 마라.”

이런, 오히려 역효과였다. 화영이는 내 말을 듣고는 울상을 지으려 했고, 종환이는 ‘감히 화영이를 울리다니!’라는 느낌으로 나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아니, 나보고 뭐 어쩌라고!

“그래도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게 더 나아... 그냥 웃어라.”

“네, 헤헤헤.”

내 말을 듣고 다시 웃는 화영이. 이제 좀 둘 다 진정되었다. 둘 때문에 신경 쓰여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었다. 다시는 화영이와 종환이를 붙여서 밥 먹지 말아야지. 중간에 껴서 나만 괴로워진다.

“서방님. 밥맛이 없으신가 봐요?”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화영이. 아니, 바로 네가 원인 중 하나라니까? 옆에 종환이 때문에 직설적으로 말해줄 수도 없고 상당히 곤란했다.

“그렇지 않아. 밥은 잘 먹고 있어.”

“아니에요, 영 시원치 않아 보여요 . 제가 먹여드려야겠어요,”

... 목적은 그쪽이었냐! 화영이는 말 그대로 ‘자 앙~!’하는 식으로 밥을 조심히 떠서 반찬을 올려놓고 나에게 내밀었다.

“야, 야! 뭐하는 거야!?”

“자 앙~ 하세요, 서방님.”

옆을 보니 종환이는 거의 나를 죽이려고 드는 기세였다. 솔직히 무섭다.

“저기, 다 같은 반찬이고 네가 받은 거니까 네가 먹지 그래?”

“자 앙~ 하세요,”

안 들어먹는다. 화영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런, 어떻게 하지? 역시 이럴 땐 그냥 받아먹어야 되는 건가? 잘 모르겠다.

“혹시 나중에 부족하다고 하진 않겠지? 내게 뺏어먹거나 심지어 먹여주세요 같은 생각은 하지 마라.”

내가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화영이가 자기한테도 똑같이 해달라고 하는 상황이다. 아마 그 순간 나는 종환이에게 죽을 것이다.

“네 물론이죠. 서방님이 먹는 것만 봐도 저는 배불러요.”

으으, 오글거려. 손발이 오그라든다! 하여튼 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화영이가 주는 밥을 받아먹었다.

“자, 그럼 한 숟갈 더~.”

“야! 넌 밥 안먹냐? 적당이 좀 해. 너도 밥 먹어야지.”

화영이는 내 말을 듣고 자기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한 숟갈 먹였으니 이제 된 건가? 옆에서 종환이는 매우 슬픈 얼굴로 밥을 먹고 있었다. 마치 여자 친구를 남에게 뺏긴 남자의 얼굴과도 같았다. 꽤나 볼만한 얼굴이었다. 미안하다,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나도 이제 겨우 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 부러운 자식.”

으아, 무서워. 종환이 녀석, 눈이 죽어있다. 가만 놔두면 뭔가 저지를 것 같았다.

“저 선배? 선배도 얼굴빛이 좋지 않아요?”

화영이가 엉뚱한 걱정을 했다. 하지만 효과는 만점이어서 종환이의 얼굴은 빨개지기 시작했다.

“어, 어, 별로 그렇지 않아... 그저 밥맛이 없, 없어, 그래, 그냥 식욕이 없을 뿐이야.”

이제 얼굴은 완벽히 빨개졌고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종환이였다. 설마, 이 녀석, 자기한테도 ‘자 앙~’을 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저 선배, 얼굴이 빨개요! 열이 있는 것 같아요.”

엉뚱한 데서 걱정하기 시작하는 화영이. 웬지 라이트노벨 남주인공의 둔감함을 연상시켜서 웃음이 나왔다.

“풉, 아 웃겨.”

입으로 소리내 버렸다. 둘다 나를 쳐다 보기 시작했다.

“저, 저 서방님은 왜 웃는 거예요!”

“웃지 말라고!”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당황하는 화영이와 부끄러워서 화를 내고 있는 종환이었다. 결국, 둘이 진정된 것은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밥을 다 먹고 화영이와 헤어졌다. 그제야 종환이에게 말을 걸 여유가 생겼다. 조금 상담을 하고 싶어졌다.

“야, 내 이야기 좀 들어 줘.”

“그래. 뭐 글 쓰는 데 슬럼프라도 왔냐?”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버리는 녀석. 이러면 조금 쑥스럽다.

“야, 나 한글자도 못 썼어. 좀 도와줘.”

“뭐? 너 미쳤냐? 이제 한 달 밖에 안 남았거든?”

아아,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근데, 안 써지니까 어쩔 수 없었다.

“야, 근성 있게 쓰려면 어떻게 써야 되냐?”

“화영이를 나한테 넘겨라. 그러면 될 거다.”

남은 이렇게 진지한데 농담이나 하고 있었다. 아니, 이 녀석 성격상 진지하게 이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인 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좀 진지하게 해주면 어디 덧나?”

“공물을 바쳐라.”

무슨 소리야? 화영이한테서 뭔가 받아오라는 건가? 제발 이상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화영이라면 분명 뭐든지 줄 것 같지만, 너무 미안해진다.

“뭘 바치면 되냐?”

“사진! 귀엽게 웃고 있는 사진을 바쳐라!”

눈을 크게 뜨며 흥분하는 종환이. 흡사 범죄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다행히 요구하는 물건은 정상적인 것이었다. 적당히 구하거나 찍어다 주면 되겠지.

“알겠어. 약속하도록 하지. 자, 이제 진지한 조언을 들어볼까.”

자, 그 후 종환이는 한참동안이나 자신의 라이트노벨 창작에 대한 담론을 들려주었다. 캐릭터 조형이라든지 스토리와 캐릭터의 관계성 같은 상당히 재밌는 이야기로 우리 둘은 열을 올렸다.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프롤로거 탈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럼 건필!”

“건필!”

그 뒤로 헤어졌다. 점심시간도 이렇게 날아가 버렸다. 정말 순식간이군 그래.



*



그 후 오후수업도 오전수업과 마찬가지로 아무 소득 없이 지나가 버렸다. 선생님들의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글을 끄적여봤지만 한 글자도 소득이 없었다.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라고 했다.

방과 후.귀가준비로 바쁜 반 친구들이었다. 최근 대세에 의해 ‘자유로운 야간자율학습(?)’이 시행되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밤하늘을 보며 하교했지만, 이제는 저녁노을과 함께 집에 간다. 참고로 야자 째는 이야기, 야자 시간에 노는 이야기로 라이트노벨을 쓰려 했던 내가 전국적으로 야자 자유화가 대세가 되면서 포기했다는 안타까운 뒷이야기가 있다.

자, 그런 이야기는 넘어가도록 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하던 찰나, 은주가 다가왔다. 이 녀석은 또 뭘 하려고 하는 거지...

“아침에 한 이야기의 계속!”

웃으며 달려오는 내 소꿉친구. 분명 아침에 공부를 한답시고 내 노트를 빌려갔고, 실망해서 다시 돌려줬었지.

“이번엔 뭐냐? 노트라면 너도 봤잖아? 별로 도움 안 될 거라고.”

“이번엔 조금 다른 이야기거든.”

조금 다른 이야기라니, 뭘까? 솔직히, 무척 귀찮은 일이 될 것은 확실하다.

“스터디 같은 거 해볼 생각 없냐?”

뜬금없이 웬 스터디냐.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구랑? 그리고 왜?”

“누구겠어, 너랑 나, 그리고 조금 더 멤버를 모아서 할 거야. 아무래도 성격상 이런 거 없으면 중간에 공부 포기할 것 같아서. 내가 공부 좀 한다는 데 싫어?”

분명 저쪽이 이쪽한테 부탁하는 것임에도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 이럴 때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내가 왜? 네가 공부하겠다는 데 왜 나까지 끌어들이는 거냐?”

난 공모전 준비 때문에 매우 바쁘다. 사실 태도가 문제가 아니라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든 거절해야만 한다.

“소꿉친구 좀 도와줘라.”

“안 돼.”

애초에, 이 녀석이 공부하겠다고 나서는 거 자체도 매우 이상하다. 뭐 잘못 먹은 거 아냐? 물론 걱정해줄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야... 성적 떨어졌다고 부모님이 다시 안올리면 용돈 줄인 댔단 말이야!”

그런 불손한 의도가 숨어있었군. 그러면 더욱 더 도와줄 수 없다. 내가 왜 이 녀석의 용돈을 지키려고 내 귀중한 시간을 투자해야 되지? 안 그래도 하루에 1만자씩 써야 돼서 곤란한데 말이야. 스터디 까지 하려면 더욱 곤란하다고.

“후훗,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갑자기 씽긋 웃는 은주. 도대체 저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또 쓸데없는 협박이나 회유를 하겠지.

“스터디 구성 멤버 말인데...”

하? 누굴 끌어들인다는 거지? 설마 설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각하다.

“설이 데리고 올 수도 있어. 네가 좋다면 말이야.”

“설이?”

“후후후. 네가 화영이의 애정공세도 다 물리치고 바라보는 그 한설 맞습니다.”

끄으응...

“만약 네가 참여한다면 바로 들여올 수도 있어. 일단 관심도 보이는 것 같고.”

상황이 다시 바뀌었다. 고개를 까딱하고 흔들며 나를 떠보는 은주. 나는 그녀의 마법과도 같은 제안에 그냥 ok해 버릴 뻔 했다.

“확실한 거지? 낚시라던가 그런 거 아니겠지?”

“물론. 내가 너한테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치겠어.”

그 순간, 공모전 준비가 떠올랐다. 아 시간, 시간. 아무리 설이랑 같이 공부한다고 해도 너무 많이 뺏기면 곤란하다.

“야, 시간은 언제로 할 건데?”

“걱정 마. 공모전 준비 때문에 그러지? 너 하나도 안 쓰는 것 같긴 한데, 뭐,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로 할 거야. 그 정도면 시간 많이 안 뺐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설이가 참가해준다는 데 더더욱 거절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 확인을 한 가지만 하도록 해야겠군.

“근데, 나 스터디에서 뭘 하면 되냐?”

“음-? 과외선생님 비슷하게 하면 될 것 같아. 일단 전교 1등이니까 너한테 배우는 방식으로 갈 거 같아.”

괜찮은 조건이네. 나는 ok 하고, 그녀는 잘 됐다면서 설이에게 연락한다고 했다.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너, 설이에게 푹 빠졌구나. 화영이도 정말 불쌍하지. 가망 없는 싸움을 하는 건 아닌지 몰라.”

나는 화내지도 못하고 얼굴만 빨개져서 가만히 있었다.

“놀리지 마!”

하아, 이래가지고는 종환이 녀석에게 뭐라 그럴 자격이 안 되는 군. 하여튼 그 후 별 일 없이 집에 갔다. 집에 가는 내내 공모전과 스터디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



“안녕 오빠?”

집에 돌아가 보니 모르는 여자아이가 맞이해주었다. 나는 외동아들이었고, 여동생 따윈 없다. 이런 사촌 or 조카도 없다. 그런데 얜 도대체 누구지?

“넌 누구니?”

초등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꽤나 영악하다. 초딩이라고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나는 서지민이라고 해, 오빠는 오선규 오빠지?”

음, 처음 보는 초딩 여자애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얘가 누군지 호기심은 더욱 증가하기만 했다.

“선규 왔니?”

나와 서지민의 대화를 듣고 엄마가 맞아주었다.

“어? 집에 있네?”

엄마는 커리어우먼(?)이기에 늦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가 집에 잇을 때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가 많았다. 뭔 일 있나?

“아, 그 얘기부터 해야겠구나. 나랑 네 아빠랑 부부동반으로 한 달 동안 해외출장을 가게 돼서 말이야.”

아, 또 출장인가? 우리 부모님은 국제 물류회사에 다니고 있다. 따라서 자주 출장을 가게 된다. 그래서 혼자 집에 남는 것은 익숙하다. 그래도 이렇게 두 분이 함께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것은 드물다.

“중요한 거래처여서 말이지...”

필요도 없는 변명을 하는 엄마였다. 그래서 도대체 언제 나가는 거지?

“오늘 밤 비행기로 바로 나가게 됐어. 갑작스럽겠지만 내일부터 잘 지내렴.”

“빨라!”

아니, 어떻게 아들에게 하루 전에 말해 줄 수가 있지? 뭐, 하루 전에 부모님의 해외 출장을 알게 되는 것도 익숙하다. 자주 급한 출장이 터지기도 하고. 주된 원인은 이렇게 떠날 때가 되어서 알려주는 부모님의 스타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참, 두 번째로 앤 뭐야?”

지금도 우리 옆에서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여자아이를 지목하며 말했다. 나는 이 애를 처음 보았으며, 그동안 기억을 뒤져봐도 전혀 모르는 여자아이다. 얼굴을 모르는 지인 명단에도 적당한 후보가 없었다. 즉,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나, 이상한 거 아닌데, 선규오빠?”

이상한 건 절대로 아니지만, - 굳이 따지자면 외모는 귀여운 편에 속한다. - 모르는 여자아이가 집에 있으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잘못 없다고!

“얘네 부모님도 같이 출장을 가게 돼서 말이야... 한 달 간 네가 맡아줄 수 없겠니?”

“뭐? 내가, 애를, 혼자서, 한 달 동안, 맡으라고?”

내일 갑자기 부모님이 사라지고, 돌봐야 하는 식객(?)이 생간다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빨리 좀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 바쁘다고? 그리고, 고등학생 아들에게 남의 집 딸을 맡긴다고? 맡기는 사람이나 맡는 사람이나...”

“나는 선규오빠랑 둘이 있어도 괜찮은 데...?”

옆에서 문제의 식객(?)이 될 사람이 끼어든다. 아니, 네가 괜찮은 게 문제가 아니라 내 사정이 문제라니까?

“우린 널 믿는단다. 지민이 엄마, 아빠도 괜찮다고 했단다.”

우와. 정말 무책임한 부모님이구나... 믿는다고 해도 하나도 안 기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그건 미안. 자꾸 말하려고 해도 기회가 없었네.”

웃으면서 사과하는 엄마. 일단 부모님이 갑자기 없어진다고는 해도 이런 일에는 익숙하고 경험도 많기에 딱히 생활에 문제는 없다, 문제는 시간을 많이 뺏긴다는 거지.

“그렇게 됐으니 잘 부탁해, 선규 오빠!”

인사하는 서지민. 부담 백배다. 이 꼬맹이를 돌보려면 시간을 훨씬 더 많이 뺏길 게 분명하다.

“자, 그럼 엄마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이제 그만 가보도록 할게.”

아빠는 얼굴도 못보고 해외출장에 가는구나... 하여튼 서지민과 함께 엄마를 배웅한 뒤, 드디어 둘만 남게 되었다. 이렇게 남으면 무척 힘들고 곤란해진다. 러브코미디에서나 좋지 현실은 시궁창이다. 한숨부터 팍팍 나온다.

하여튼 지금 급한 것은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다. 일단 얘랑 대화 좀 해야겠군.

“서지민? 저, 나랑 얘기좀 하자.”

“지민이라고 불러줘 선규오빠.”

뾰로통한 얼굴로 자신의 호칭을 정해주는 지민이었다. 자기보고 지민이라고 불러달라니 그럼 그렇게 해 줘야겠지. 하여튼 나이에 걸맞게 귀엽다. 아니, 내가 딱히 로리콘이라는 건 아니고.

“아, 지민아? 일단 몇 가지 물어볼 께 있어.”

“응? 뭐든지 물어봐.”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순수한 아이인 것 같다. 뭐든지 대답해주겠다, 라는 듯 한 밝은 표정이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일단, 너, 초등학생 맞지?”

“응, 나 4학년!”

흠, 초등학교 4학년인가? 그럼 11살이겠네. 하여튼 투정부리거나 귀찮은 행동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보통 초딩들은 무개념으로 행동하지 않나? 아님 얘가 조금 특별한 건가? 하여튼 조용히 나와 이야기 하는 이 아이는 굉장히 점잖아 보였다.

“음, 너 보통 학교 몇 시에 가냐?”

“학교는 8시 30분쯤에 가는데?”

“아, 좀 많이 느리네.”

저 시간이면 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했을 시간이다. 이거, 조금 문제가 생긴다. 내가 정상적으로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아침에 밥만 해놓고 나가야 한다. 즉, 뒷정리 및 문단속을 얘가 다 해야 한다.

“지민아? 오빠는 아침 일찍 나가야 돼. 혼자서 뒷정리랑 문단속 할 수 있니?”

“걱정하지 마, 난 엄청 일찍 일어나거든. 한 6시? 보통 그쯤에 밥 먹어!”

헐, 이런 초등학생이 있었을 줄이야. 좀 독특한 아이인 것 같다. 아니, 부모님이 맞벌이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생각해보니까 그 쪽이 맞는 것 같군. 다행이었다.

“흠, 그럼 다행이고. 그럼 내가 아침 먹는 시간에 같이 먹자.”

“그래.”

문제는 아침만이 아니다. 할 것 진짜 많네. 일단 방부터 확인하자.

“일단 방은 어디를 쓰니?”

“아줌마가 저기 있는 손님방을 쓰라던데?”

호오, 엄마가 기본적인 것 정도는 해주고 갔나 보네. 같이 방으로 갔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방이 3개인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래서 방 한 개가 남는다. 손님방이라는 호칭은 처음 듣지만 아마도 남는 방일 것이다.

“자, 봐봐 오빠. 벌써 짐도 풀었잖아?”

마치 자기 집 자기 방처럼 내게 자랑하는 지민이. 호오? 정말 살던 것처럼 되어 있다. 침대는 원리 있던 시트 위에 자신의 베개와 이불을 놓았고 ? 참고로 분홍색 캐릭터 침구여서 나이에 맞는 귀여움이 느껴졌다. - 비어있던 책상과 책장에는 조금의 짐이 놓여있었다. 아마 옷장에도 옷이 들어가 있겠지.

“이정도면 뭐 내가 신경써줄 부분은 없겠지? 방은 마음에 드나?”

그래도 혹시 몰라 확인해보는 나.

“응, 괜찮아. 방은 좋아.”

어느 새 침대 위에 누워서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지민이. 침대가 어른용이어서 몸집에 안 맞게 꽤나 커보였지만 뭐 문제는 없겠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인가, 하고 있었다. 방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음, 이제 슬슬 저녁에 관해서 이야기해야겠군.”

“와, 저녁 먹는 거야? 슬슬 배고파지려고 하고 있었는데.”

나는 저녁 이야기를 하자고 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지민이는 배가 고팠나 보다. 조금 보기 안쓰러운 얼굴을 하면서 배를 잡고 있다. 조금 과장된 연기가 섞여있는 것 같긴 했다. 뭐, 식사 때도 다가오고 하니 저녁을 만들면서 함께 이야기하도록 할까.

“음, 그러면 이 시간 때쯤에 저녁 해주면 되지?”

“응, 참 밥 짓을 때 도와줘야 되는 거야?”

음, 보통 이 나이 대 애들은 식사 만드는 거 돕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돕겠다는 데 도움을 받도록 할까. 그러면서 지민이에 대한 평가를 식객(?)에서 동거인(?) 정도로 올리는 나였다.

“뭐 할 줄 아는데?”

“시키는 건 뭐든지 하는데... 퀄리티는 보장할 수 없지만.”

베시시 웃으면서 말하는 지민이. 하하하,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라, 조금 시키기 두렵군. 대충 하고자 하는 의지는 강한 것 같으니 그릇 정리나 도와달라고 하면 되겠지.

“음, 그냥 그릇 나르는 것 정도만 해주면 될 거 같아.”

“응!”

자, 대충 밥을 했다. 반찬은 있는 것으로 대충 때우기로 했다. 하아, 내일부터 밥 짓는 인생이 시작되는 건가. 나와 지민이는 밥을 차리고 밥상에 마주보고 앉았다. 그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밥은 맛있니?”

솔직히 조금 긴장된다. 맛없어, 라든지 먹기 싫어, 같은 반응을 보이면 어쩌나, 하고 있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음, 괜찮아. 밥 잘하네 선규오빠.”

칭찬을 들었다. 뭐, 초등학교 4학년에게 칭찬을 들어도 그다지 기쁘진 않지만 잘 먹어 주니까 다행이긴 했다.

식사를 하고 나서, 함께 정리를 했다. 다행이 지민이는 제대로 도움이 되었다. 밥 먹고 정리가 끝난 뒤 나는 방에서 글이나 구상하고 있고, 지민이도 방에서 숙제나 하다가 TV나 보고 있었다. 말하자면 평온한 오후였다. 글이 한글자도 안 써지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죽을 맛이었다. 가끔 써질 때도 한 A4 한쪽쯤 채우면 마음에 안 들어서 지워버리기 일수였다.

그렇게 의미 없이 컴퓨터 앞에서 워드프로세서를 붙잡고 끙끙 앓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은주였다. 아, 그러고 보니 지민이랑 번호 교환을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이은주 ? 한설 섭외 완료! 시간은 목요일 저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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