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지금 구하러 갑니다!
글쓴이: 푸우니
작성일: 12-07-05 15:14 조회: 1,495 추천: 0 비추천: 0

1화 - 지금 구하러 갑니다!



1



-도시 밖 남동쪽 버려진 탑 꼭대기엔 두 개의 방이 있다. 오른쪽 방에는 그 누구보다 고귀하며 찬란한 존재의

공주가 용사를 기다리고 있고, 왼쪽 방에는 흉포하며 사악한 마녀가 자신만의 노예를 기다리고 있다.


이건 하나의 이벤트다. 당연히 공주와 마녀라는 말도 그냥 멋들어지게 표현해 내기 위해 갖다 붙인 말이고. 누가 보면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뭐하는 짓이냐며 성을 낼 수도 있을 만큼 유치했지만 그런 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동화 같은 허황된 내용이 아닌, 공주나 마녀를 구한 용사에게 돌아오는 보상이었으니까.

“흐흐!”

새로운 용병들을 발굴해내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는 용병조합이 간만에 제대로 된 일을 해내는 구나! 거기다 공주라는 말에 활활 타오르는 용사들에게 직접 그녀의 얼굴을 보여줌으로서 기름을 붓고, 보상금이라는 것으로 부채질까지 해주다니. 이건 뭐 자신의 능력에 조금이라도 자신감 있는 자들은 개나 소나 덤벼들 기세였다. 뭐 실제로 나 역시 공주의 얼굴을 오늘 처음 봤을 땐 한동안 넋이 나갔었지만. 그만큼 그녀의 미모는 가히 경국지색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늘하늘 거리는 금빛 머리에 완벽한 나이스보디, 거기다 상냥하게 휘어지는 눈웃음과 촉촉한 입술은 참말이지 군침이 돌……아, 아니. 그냥 아름답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그녀의 미모에 반해 내일 벌어지는 이벤트에서 마녀가 아닌 공주를 구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간단히 입만 적시기 위해 저녁에 들른 카페 안에서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마녀를 본 순간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다는 말. 그 말에 딱 어울리는 분위기의 마녀는 홀로 음료수를 홀짝거리며 처량하게 앉아있었다. 다른 이들이 빛이라면 그녀 혼자만이 새까만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오! 이거 낮에 보았던 마녀 아니야?”

순간의 충동에 이끌려 버리고 말았다. 그래, 이건 순간적인 충동이었을 뿐이야! 그녀가 불쌍해 보여서도, 혹시 후드를 벗으면 예쁠 거 같다는 기대 때문에도 아니라고.

내가 괜히 속으로 호들갑을 떨며 그렇게 말을 걸자 새까만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녀는 움찔 거리며 날 올려다봤다.

“아?”

눈이 마주치자 순간 입을 벌리는 그 모습에 나 역시 움찔. 축 처진 눈초리는 멍청하게 보였고 광대뼈 위로 박혀 있는 수많은 주근깨들은 약간의 거부감을 준다. 거기다 돌출된 입이 노안으로까지 보였다.

우왁! 이거 못생겼긴 진짜 못생겼구나! 찬란하게 빛나던 공주에게로만 괜히 모두의 시선이 갔던 게 아니라고. 나, 혹시 후회되는 행동을 벌여버린 건 아니겠지?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이시죠, 버러……아니. 용사님?”

“그냥 내일 이벤트의 주인공이 홀로 있기에 신기해서.”

“참가자시군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레 그녀의 앞에 앉아버렸다. 얼굴에 실망하고 그냥 돌아가기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이 허락되지 않는 걸 어쩌랴.

“죄송하지만 이벤트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공주에요.”

“뭐 일단은 마녀인 당신도 이벤트의 한 축이니까.”

“장난할 거면 그냥 가주세요. 버러지 주제에……아, 아니. 슬퍼지니까요.”

잠깐, 잠깐! 아까부터 묘하게 기분이 나쁜 건 왜인데?

“어차피 절 구하려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때 그녀가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에 난 가슴 한편이 아릿해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아, 이런 건 내 취향이 아닌데. 그래도 불쌍하긴 불쌍하잖아! 아무리 외모지상주의라지만 수십 명의 남자들이 모두 자신이 아닌 공주에게 간다면 얼마나 슬프겠어? 무, 물론 마녀가 더럽게 못생긴 건 맞지만.

“혹시 모르지. 내가 구하러 갈지도.”

“네?”

“왜 그런 거 있잖아. 내가 아무리 유명인을 좋아해봤자, 유명인에게 난 단지 수많은 팬들 중 한명일 뿐인 거. 아무리 용을 써도 공주가 나를 팬으로밖에 안 봐줄 바엔 그냥 당신을 구하고 말지, 뭐.”

“어머.”

“그니까 나한테 잘 보여라.”

그녀는 나의 말에 살짝 벌려진 입에 손을 가져다대고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만약 예쁜 사람이었다면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표정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추녀였다.

뭐 그래도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풀렸다면 그걸로 만족한……

“이거 재밌는 놈일세. 버러지치고는 매력적이야.”

뭐, 뭐라고요? 방금 그대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섬뜩한 말을 제가 들어버린 거 같은데 말이지요!?

“아, 음료수가 맛있다는 뜻이에요.”

“그, 그런 거 치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만.”

“호호! 착각이겠죠. 그리고 실제로 이 세상에 마녀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요? 저도 환상술사일 뿐이고, 공주도 환살술사, 그리고 용병인 당신들도 환상술사고.”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노력하는 거 같았다. 여기서 환상술사란 용병, 기사, 싸움을 익힌 자 정도로 보면 된다. 물론 아무리 그래봤자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처음엔 그냥 동질감과 동정심에 접근했던 것인데, 당신 정체가 뭐야!?

“아아, 만약 저를 구하려는 용사가 있다면 전 평생 그만을 바라보겠어요.”

“하, 하하하!”

“조금씩 조련시켜서.”

“……안녕히 계세요!”

벌떡!

역시 저 여자 이상해. 못생긴 주제에 정신 상태까지 미친 게 틀림이 없는 거라고! 내일은 무조건 오른쪽 방이다. 역시 마녀 따위 보다는 공주지!

“벌써 가시게요?”

“갑자기 집에 먹다 남은 빵조각이 생각나서……”

“하긴. 저 같은 추녀하곤 말 섞는 게 거북하실 수도 있겠죠. 먼저 말을 걸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후드를 푹 눌러쓰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또 다시 아까와 같은 어둠뿐이었다는 것이다. 지독할 정도의 고독함, 외로움, 쓸쓸함만이 존재했다.

“아, 진짜!”

털썩!

그렇기에 난 또 다시 충동적인 행동을 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농담이야, 농담! 먹다 남은 빵조각 때문에 숙녀를 혼자 놔두고 가겠어?”

“네?”

내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다시 털썩 앉아버리자 마녀는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놀란 모양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런 내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고. 제길! 나름 안하무인이라고 자부하는 나인데 왜 이런 부분에선 약해지는지! 뭐 안하무인이라는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나 같은 종류의 환상술사는 타고난 천성이라 어쩔 수 없다.

“뭐야, 진짜 반할 거 같잖아. 버러지 주제에.”

“……혼잣말을 할 거면 제발 들리지 않게 해줄래?”

“아? 들렸나요?”

너무나도 선명히 들렸습니다만.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요.

“후후, 죄송해요. 제가 워낙 못생겼다 보니 저만의 백마 탄 왕자님을 항상 꿈꾸고 있거든요. 이번엔 어쩌다보니 용병조합의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긴 했지만, 제가 세상을 떠도는 이유는 저만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예요.”

미안하지만 그거 평생을 가도 이루기 힘든 꿈이겠다. 일단 넌 너무 못생겼거든.

물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 한 여자의 희망을 뭉개버릴 정도로 난 사악한 남자가 아니었다. 이것에 대해선 그녀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정도라고.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네.”

“아니요. 어쩌면 내일이라도 당장 나타날지 몰라요.”

“그거 혹시 나는 아니지?”

“헤헤.”

“…….”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못생긴 여자가 하는 ‘헤헤’란 주먹이 불끈 쥐어질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지금부터 정했어. 헤헤거리며 애교를 떠는 여자가 이 세상 최악이야!

“우리 서로 통성명이나 해요.”

“아이레카. 보통은 아이라 불려.”

“전 카라에요.”

“오오, 이름은 예쁜데?”

“그 말, 은근히 상처라구요.”

카라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 볼을 부풀렸다. 물론 돌출된 입 때문에 전혀 예쁜 모습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아니, 분명 착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린 것이고. 솔직히 저런 여자에겐 동정심 이상의 감정이 생길 리가 없잖아?

“그런데, 아이.”

“왜.”

“당신은 정말 절 구할 생각이 있는 거예요?”

“조금은?”

“후후, 고마워요. 이런 분은 처음 만나 봐요. 그것이 동정심이라도 어쨌든.”

“솔직히 마음 같아선 당연히 공주를 구하고 싶긴 하지만 그녀는 경쟁자가 너무 많잖아? 그리고 내 목적은 일단 보상이니까.”

확실히 공주나 마녀는 두 번째 목적일 뿐이다. 내 첫 번째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으니까. 안 그래도 요즘 들어 주머니가 가벼워져 있는 참이었기에 내일의 이벤트는 나에게 있어 큰 행운이었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있어도 허세……아니, 내 능력을 사용하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그때, 카라가 한쪽 입 꼬리를 씩 올리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나만의 피앙세로 만들기 위해선 입버릇부터 고쳐줘야겠군.”

“뭐, 뭐라고?”

“호호, 아뇨. 그냥 절 구하려는 용자가 있다면 키스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호호호!”

“내일은 무조건 공주다! 무조건 공주! 무조건 오른쪽 방!”

현실은 냉정하단다, 마녀야. 그 말은 결코 하지 말았어야 해!



2



여관을 나오자 환한 햇빛이 대로를 비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활기에 찬 미소를 지으며 물건을 팔거나 사들였고 길가의 한편에선 음유시인들이 청아한 목소리로 거리의 활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너무나 평화롭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 그런 평화를 만끽하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태가 되지 못했다.

“으아아악! 늦었다!”

사람이라는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난 도시의 남문을 빠져나와 곧바로 저 멀리 보이는 버려진 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제 카라와 두 시간 정도 수다를 떨다 헤어진 뒤, 여관으로 돌아와 그냥 자기 아쉬워 전에 사두었던 소설책을 읽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왜 그렇게 필력이 좋은 거야, 작가 녀석! 조금만 보다 자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흡입되어 다 읽고 자버렸잖아! 아니, 그보다 그거 시리즈였나? 내가 어디서 샀었지?

웅성웅성.

그때 저 멀리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발견 한 나는 잡념을 떨친 뒤 다리를 교차하는 속도를 더욱더 올렸다. 다행히 아직 이벤트가 시작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타다다닥!

“허억, 허억!”

“그럼 먼저 공주와 마녀부터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막 탑에 도착하여 사람들과 섞인 내게 들린 것은 용병조합 마스터의 커다란 목소리였다. 공주와 마녀는 이미 탑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공주님, 제가 곧 구하러 갈게요!”

“저와 결혼해 주세요!”

저마다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남정네들은 오로지 공주에게만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 탓일까. 공주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위풍당당하게 걷고 있었고, 카라는 한 눈에 봐도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거기다 의상부터가 확 차이 났다. 공주는 새하얀 원피스였고, 카라는 어제 입고 있었던 새까만 후드티에 청색의 짧은 치마였다. 흑과 백의 극명한 대비다. 뭐 도대체 왜 짧은 치마를 입은 것인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다리 라인을 보고 있자면 사람들의 반응도 이해됐지만. 저 녀석, 몸매까지 완패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공주는 탑 꼭대기에 있는 오른쪽 방이고, 마녀는 왼쪽 방입니다! 그녀들은 지금 저희 용병조합 사람에게 안내되어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됩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그녀들 뿐! 도전자들은 저희 용병조합의 환영술사들이 만들어 놓은 환상과 싸우며 올라가야 합니다!”

막 그녀들이 탑 안으로 사라지자 마스터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은 채 우리에게 설명했다. 언제 보아도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에 비대한 몸이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용병조합의 마스터가 된 것인지는 영원히 미스터리일거다.

도전자들이 지켜야할 규칙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서로 공격만 하지 않으면 된단다. 그리고 가장 먼저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 공주나 마녀 둘 중 한명을 구해오면 되는 것이고. 하지만 왠지 모를 불길함이 계속해서 몸을 엄습하고 있는 것은, 저 마스터의 음흉한 눈빛 때문이려나.

“자, 그럼 이제 슬슬 입장하도록 합시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는 마스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돌겨억!”

자기가 무슨 대장군이라도 되는 줄 아나. 그렇게 말한다고 사람들이……,

“우워어어어억!”

“공주를 위하여어어어!”

두두두두두!

달리는 구나! 그것도 아주 미친 듯이!

“아우, 이거 내 스타일 아닌데.”

폼 나게 들어가려 했는데 왜 나도 사람들과 섞여 달리고 있는 건데!?



3



탑 안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분명 많은 사람들과 함께 들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주위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 여기까진 괜찮다고 치자. 어둠뿐이라면 그냥 유유자적하게 걸어 다니며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으면 되니까. 하지만 말이지, 아무리 그냥은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지, 도대체 내 뒤에서 쫓아오는 저 녀석들은 뭐냐고!?

“크히에엑!”

숨이 턱 끝까지 차고 올라 왔다. 다리가 욱신거렸고 온몸에선 힘이 풀려간다. 심장은 과부하가 걸렸는지 이젠 쿵쿵 거리는 걸 넘어서 달리고 있는 내 귓가에 까지 들려올 정도로 심하게 요동치며 쉬게 해달라고 외쳐 댔지만, 그럼에도 달리는 걸 멈출 순 없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심장마비로 절명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열심히 교차해 가며 내뻗는 다리를 멈추면 그 순간이 바로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여 놓는 일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달리고 또 달릴 수밖에 없었다. 살려면 무조건 달려야 했다!

휙!

내 바로 뒤에서 손을 열심히 휘적거리며 쫓아오는 괴생물체 때문에!

힐끗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미쳐버린 것이 분명한 사람이 나를 향해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동공엔 처음부터 초점이 사라져 있었고 광견마냥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을 보자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버렸다. 이건 진짜 장난이 아니잖아! 도대체 어떤 환상술사가 저런 놈들을 만들어 놓은 거야? 내 만나면 당장 주리를 틀어 주리라!

“우갸갸갹!”

주위는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고, 오로지 위로 올라갈만한 곳으로 무작정 달리다가 거리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릴 때면 그야말로 피의 전주곡을 부르는 사신이 눈에 들어오며 가슴을 철렁 거리게 만들었다.

순간 능력을 사용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관두도록 하자.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숨기는 것이 좋다. 누가 보고 심장이 쪼그라들기라도 하면 낭패잖아?

“오오!”

그때 내 눈에 희미하게 들어온 것은 틀림없는 계단이었다. 어둠에 적응하여 수축된 내 홍채야, 넌 정말 최고야!

타다닥!

한 번에 두세 계단씩 뛰어올랐다. 물론 내 뒤에 쫓아오는 괴생물체는 큰 발소리를 내며 계속 쫓아오고 있었고. 저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 거냐!

찌익!

그때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려 잠시 속도를 늦추자 괴물 같은 녀석이 손을 앞으로 내뻗어 내 등을 잡으려 한 것이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나며 정신이 퍼뜩 들었다. 등에 시원한 바람이 맞닿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옷이 찢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아, 비싼 건데!”

아니, 일단 푸념은 나중에 하자! 일단 사는 것이 급선무니까. 지금으로서는 부디 위에서만큼은 미친 게 분명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쿵쿵!

“……곧바로 나타나는 거냐!”

아아, 틀려먹었어. 쿵쿵거리는 울림이 위쪽에서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다고.

“크히이!”

“키헤에엑!”

곧 앞뒤로 둘러싸여버린 나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은 그런 나를 보며 마치 웃는 거 같은 표정을 하고서는 키득거렸다. 혹시 그 느낌 알아? 하찮은 마을 똥개가 실수로 비틀거린 나를 보며 씩 웃고 가는 그런 느낌. 한 마디로 기분 참 개 같단 말이지.

“후!”

일단 이곳에 진짜 사람은 나뿐이 없는 거 같으니, 지금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떼로 덤비는 저 야비한 녀석들로부터 벗어나야 하니까.

“너넨 뒤졌어!”

성난 외침과 함께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더 이상 인간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한계까지 찢어질 듯 크게 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체내에 있는 기가 폭파한 것처럼 맹렬한 기세가 순식간에 사방을 덮쳐갔고 동시에 주위에 있던 녀석들은 무언가에 화들짝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몸이 따끔 거릴 정도의 살기일 것이다. 마치 숙련된 암살자가 내뿜는……아니, 암살자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살기의 파동이겠지.

이 세상엔 환상술사라는 무인들이 있다. 보통 그 환상술사는 두 가지 부류로 나누는데, 한 가지는 지금 탑에다 환상을 걸어놓은 사람들처럼 마음속의 현상을 실체화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들의 몸을 변형시키는 환상을 부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환상술사의 부류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나 같은 존재의 무능술사가 있다. 말 그대로 무능한 술사들. 일시적으로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어 지독할 정도의 살기를 내뿜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능력도 없는 자들을 일컫는다. 세인들은 이런 자들은 허세의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라고 칭하며 경멸하고 무시한다. 이것에 대해선 복잡한 사연이 있으나 지금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일단은 공주나 마녀 둘 중 한명을 구하고 돈을 타먹는 게 우선이잖아?

“자아, 그럼 지금 구하러 갑니다아!”

뚜벅뚜벅.

지금부터가 진정한 유유자적한 행보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씩 올라갈 때마다 녀석들은 알아서 좌우로 길을 터주니 참으로 편리했다. 짜식들, 잔뜩 겁먹기는!

어쨌든 그렇게 한참을 위로 올라가니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짧게 표현했지만 정말 죽을 만큼 힘들 정도로 높은 위치였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괴상한 녀석들도 알아서 물러나 다리가 조금 아팠을 뿐 위험한 순간은 없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후아!”

드디어 도착했다아! 아아, 뭔가 하늘에 맞닿을 정도로 높은 산을 정복한 거 같은 짜릿한 쾌감! 또는 귀족 가문의 영애를 공략한 듯……아니, 이건 아니지! 어쨌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오른쪽의 새하얀 문과 왼쪽의 새까만 문. 당연히 오른쪽이 공주고 왼쪽이 마녀인 카라겠다.

“……그러고 보니 고민이네.”

누굴 구해야 하지? 누굴 구하면 되는 건데? 당연히 몸은 공주가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왼쪽이란 말이지. 그게 조금 불쌍하잖아? 어제도 내가 카라를 구할 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줬었고. 하지만 말이지……그 ‘키스’라는 거 때문에 내가 쉽게 결정을 못하는 거거든요!? 또 그렇다고 공주에게 가자니 왼쪽의 새까만 문이 어쩐지 축 처진 카라의 등 같단 말이야!

“허억, 허억!”

“헥헥!”

내가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밑에서 한 무리의 술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이구나!

“제길! 중간에 갑자기 다른 사람 몫까지 나한테 온 건지 개떼처럼 덤벼들었어.”

“나, 나도.”

“만약 사실이라면 누군지는 몰라도 평생 저주하겠어!”

……그거 나인 거 같습니다만.

“응?”

그 순간 제일 먼저 앞쪽에서 올라오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는 나의 모습을 보고 콧구멍과 눈구멍이 동시에 커지더니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청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난 순간적으로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벌써 내가 고생의 원흉이라는 것을 눈치 챈 건가!?

“공주는 내가 구할 거다아앗!”

……그게 목적이었습니까!

쿠타다닥!

“나와!”

“너나 비켜!”

쿵!

서너 명의 술사들은 서로 머리를 들이밀며 소리치더니 오른쪽의 새하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순간 마음까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새하얀 원피스를 입어 드러난 쇄골과 겨울의 눈처럼 느껴지는 깨끗한 허벅지와 각선미. 화사한 미소와 풍성한 금발. 저 여자, 진심으로 아름답다.

“저를 구하러 와주셨군요. 용사님들!”

그때 공주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공주는 아마 나까지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네, 맞아요! 그러니까 저랑 결혼해주세요!’라고 말할 뻔 했지만, 충동을 꾹 억눌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이미 공주는 나보다 먼저 방에 들어선 술사의 것으로 보이니!

홱!

등을 돌려서 곧바로 검은색의 문을 바라봤다. 아마 여기서의 소동은 그녀도 듣고 있을 것이리라. 혹시 울고 있을지도 모르지. 여자로서의 수치심과 외로움 때문에.

“어?”

뒤에서 공주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굴하지 않고 새까만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활짝 열어버렸다. 키스는 필사적으로 피하면 되는 것이고, 아무리 못생겼더라도 카라는 절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도 마음이 여리고 순수한 여자다. 적어도 나 하나쯤은 위로해줘야겠지.

화악!

순간 엄청난 양의 햇빛이 쏟아져왔다. 눈살을 찌푸리며 앞을 바라보자 새까만 후드티와 청색의 짧은 치마를 입은 카라가 내 쪽을 향해있었다. 머리 뒤에서 보이는 햇빛에 시커멓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표정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 감동하고 있겠지. 후훗! 이렇게 보면 나도 꽤나 좋은 놈……어?

“후후후!”

뭔가 이상하다?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카라의 다리가 저렇게 예뻤나? 삐쩍 마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나친 굴곡이 그려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완벽한 비율에 환상적인 각선미. 공주의 다리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그녀의 흐뭇한 웃음소리와 새빨간 머리카락이었다. 어제 보았을 땐 분명 푸석푸석하고 까맸는데 지금은 내가 본 그 어떤 머리보다 매력적인 색을 띄고 있었다.

“진짜 구하러 와줬구나?”

뚜벅뚜벅.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난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내가 알던 카라가, 어제 보았던 그녀가 아니잖아!

카라는 분명 돌출된 입에 자잘한 주근깨, 멍청한 눈이 세상에 둘 도 없는 추녀였는데……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용사에겐 키스를 주어야지. 앞으로 널 조련시키겠어!”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