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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퇴마당하는 걸 좋아해
글쓴이: 이룬
작성일: 12-07-04 22:13 조회: 1,933 추천: 0 비추천: 0



그녀는 퇴마당하는 걸 좋아해.




0.

연푸른 머리를 포니테일로 가지런히 묶은 여자애가 쭈그리고 앉아서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일어서서 어디론가 걸어가는 그 애는 키가 148정도 돼보인다. 천천히 학교 풍경을 감상하며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그녀는 이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하늘거리는 그녀의 원피스가 바람에 날리자 치마가 너무 올라가지 않도록 여자애는 손으로 옷을 움켜쥔다.

1층 계단을 한 발씩 통통 올라가고. 2층 복도를 걷고 있다. 오른 손으로 지나는 창문들을 두드리며 걸어간다. 그 여자애의 손이 닿은 곳마다 깨끗한 물방울이 맺힌다.

학교는 개교기념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자애는 맑은 눈빛으로 어떤 교실 앞에 걸린 단체사진과 학생들의 이름들을 보고 있다.

찾았다.”

그 후 신이난 듯 깨금발을 뛰며 복도의 중간까지 달려간 그녀는 교무실 문을 촤락 열어 젖힌다. 거의 아무도 없는 고요한 교무실에 남자 선생님이 혼자서 당직근무를 하고 있다가 놀라서 문이 열린 곳을 쳐다본다. 가뜩이나 쉬는 날에 동료 선생님들 다 놀러가고 할 때 애인도 없는 자기는 이 곳에서 처량하게 학교 지기나 하고 있어서 열받는데 느닷없이 어떤 여자애가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자애는 그 남자를 바라보며 당당하고 씩씩하며 낭랑하게 외친다.

, 이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1.



내 이름은 강이한. 이로울 이, 나라 이름 한, 자를 써서 나라를 이롭게 하라고 할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지금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의 이수고등학교. 제법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당시 거의 울기까지 했으며 가족들과 축하겸 오랜만에 외식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고등학교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 설레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내가 이토록 이 고등학교로 오고 싶었던 이유는 주변에 다른 고등학교들은 거의 다 남고 아니면 여고였으니까. 남녀 공학인 이수 고등학교야말로 이 근방의 중학교 3학년생들 모두의 꿈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교문을 통과하면서 나는 학교의 풍경을 다시금 눈으로 확인한다. 참 넓고 근사한 학교다. 이런 학교에서 여자들과 썸씽이 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망상을 하며 건물 입구로 들어서는데 동아리부를 모집하고 있는지 예쁜 누나들, 그러니까 예쁜 여자 선배들이 입구 앞에서 홍보를 하고 있다. 치마가 상당히 짧은 것도 이 학교 교칙이라면 교칙이다. 염색이나 치마 길이는 물론 자율적인 동아리 활동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학교의 철학은 학생들을 마음껏 풀어놓고 육성하자(?), 활개치도록 냅두자, 알아서 다 놀고 나면 공부하러 오겠지 같은 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적이 나쁘거나 불량한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도시에서 가장 명문이고 학생들 또한 책임감 있으며 자유분방하고 쿨한 성격이 많아서 어른들로부터 인정 받는 등 되려 학교의 방식이 먹히고 있는 것이었다.

숨겨진 트릭과 신비스런 도구들. 마술부에 오세요. 미녀 조수들도 있어요.”

남자는 기합이다! 태권도는 정신! 끈기! 우리 함께 열정적인 대련을 해보지 않겠니?”

자자, 한 번 더 오는 기회가 아니야. 우리 신문 기자부에 들어봐. 루머란 루머는 다..”

같이 영화 보러 가요. 영화감상부 절찬리 모집중.”

각자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홍보를 하면서 귀여운 후배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는데 나는 어떤 부에 들지 갑자기 고민이 됐다. 물론 아예 안들고 반 애들과 지내는 방법도 있지만 그래도 시간날 때 동아리 활동을 틈틈이 해둔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추억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곳이 좋을까..’

교실까지 다 와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드디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영화감상부. 예전부터 액션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기에 그곳에서라면 액션물이나 SF물을 볼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꼭 액션물이 아니더라도 여자애들과 함께 공포물을 보다가 무서워서 내 품에 안기는 여자애를 가만히 안으며 다독이는 것도 나름 남자의 액션 같은 게 아니겠는가.

좋아! 결정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나는 조회시간이 끝나자마자 복도 끝 쪽에 있는 입부희망서를 한 장 꺼내서 반으로 돌아갔다.

이름.. ...... 취미.. .... ....”

그렇게 반 이상 쓰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정환이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 너 동아리 들려고?”

.”

무슨 동아리?”

영화 감상부나 들까 하고.”

야 그러면 그거 빨리 써서 내야겠다. 원래 그런 데가 인기가 많아서 사람이 빨리 차.”

그런가. 역시 그렇겠지?”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다시 앞을 보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쓰고있던 입부희망서의 절반 이상이 왠일인지 물에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옆에서 누가 물을 마시다가 흘렸거니 생각한 나는 다시 수업 시작 6분을 남겨두고 복도 끝까지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실수하거나 망칠 때를 대비해서 3장 정도 뽑아왔다.

....허억..”

그리고 수업종이 치기 전까지 빠르게 내용을 옮겨썼다.

, , 선생님 오신다.”

어떤 녀석의 외침에 시끌벅적 떠들던 애들이 각자 재빠르게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다 쓴 희망서를 책상 서랍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이 축축했다.

뭐야! 왜 또 젖어있어!”

그렇게 두 세 차례 쉬는 시간마다 다시 써봤지만 어쩐 일인지 계속해서 젖어있는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

나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고 천장을 올려다봤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뭐에 홀린 건가.

, 직접 가서 신청한다고 말하면 되지.”

그래. 직접 가서 반과 이름 말하고 부원이 되면 된다. 굳이 입부원서 같은 거 쓰지 않아도 들고 싶어서 왔다고 하는데 환영해주겠지.

나는 과학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한 층 위로 올라갔다. 2학년들 몇몇이 복도에서 잡담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 층에서 맨 왼쪽에 영화감상부가 있다고 했지.

문 앞에 도착한 나는 다른 예의 바른 후배들이 그러하듯이 똑똑, 하고 노크를 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직 없는 건가. 하긴 좀 이르긴 하다. 그럼 일단 돌아가기로 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 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으로 들어와.”

예쁜 목소리다. 여선배가 있는 거다. 목소리로 보아하니 작고 귀여운 천연 캐릭터 느낌이 난다. 나는 궁금해서 빨리 문을 열어재꼈다. 그런데.

푸와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부실 전체에서.. 쌓여있던 물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문을 열자 한꺼번에 휩싸이면서 나를 덮쳐버린 것이다!

물에 잔뜩 젖은 생쥐 꼴이 된 나에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역시 혼돈이라는 글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이 다 빠진 교실 안 쪽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바닥에서는 무슨 종인지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펄떡 펄떡 뛰고 있었으며 나는 입술 사이에 끼어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뱉으며 이렇게 온 몸이 다 젖은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다. 역시 뭔가에 홀린 거다. 귀신이냐! 악마냐!?

나와! 비겁한 유령아! 나를 가지고 노니까 즐거운 거냐! 그러지 말고 정정당당히 싸우자!”

2학년 선배들이 지나다니고 있는 복도에서 나는 허공에 대고 그렇게 외쳤고 모두들 나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여자선배는 그런 나를 보고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미친놈 취급을 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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