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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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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바운리스의 악의
글쓴이: 하란
작성일: 12-07-04 14:21 조회: 1,605 추천: 0 비추천: 0

모든 것은 에디가 모기에 물리면서 시작되었다.

누이와 함께 들판을 뛰놀던 꼬마는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힘껏 뛰어 달콤한 파이가 구워지는 냄새가 흘러나오는 집으로 돌아왔다. 손을 씻고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테이블 위로 손을 뻗은 에디는 자신의 오른쪽 팔 위에 벌레가 문 것 같은 자국이 생긴 것을 보았다.

“누나, 이거 봐.”

“모기 물렸네?”

“그것보다 이거 멋지지?”

벌레에 물려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자국이 마치 TV에 나오는 악당의 마크처럼 생긴 것이 그저 신기하여 에디는 파이를 집어먹는 것도 잊은 채 누나에게 자랑하기 여념이 없었다. 그 자랑은 양떼를 우리에 넣고 돌아온 아버지에게도 이어졌다.

귀여운 아들의 팔에 생긴 자국에 인상을 찌푸린 아버지는 서랍에서 약을 꺼냈고 조금은 시원하면서도 쓰라린 약의 느낌에 에디의 인상도 찌푸려졌다. 그리고 가족은 어머니가 구운 파이와 함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렇게 평온안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엄청난 통증 때문에 일어난 에디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라 말 할수 없는 쓰라림과 저림을 느끼는 오른 팔을 바라봤을 때 에디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엄마아아아아-!”

아들의 비명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어머니는 서둘러 윗층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고, 그녀는 에디의 팔을 보자마자 아래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보! 여보!”

아들에 이어서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아버지는 황급히 윗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본 것은 부을대로 부어오른 팔, 그리고 흘러내리는 고름, 그것을 잡고 울고 있는 아이와 아내였다.


“분명히 저 웅덩이 때문이라니까요.”

병원에 다녀 온 어머니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붉어진 얼굴로 남편을 향해 말했다. 병원에서도 ‘무슨 벌레이길래 이렇게 된 거죠? 맨체스터로 가서 진찰을 받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의사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확실히 부부역시 수십년을 이 마을에 살면서 벌레에 물려서 하루만에 이렇게 된 일은 본 들은적도 본 적도 없었다.

“축사 근처에서 놀다가 물렸으니 분명 그 웅덩이 때문이예요. 항상 물이 고여 있어서 벌레들이 드글거렸으니까.”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며 아내는 남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의 말을 들으며 남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래전부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초원의 한쪽 구석에는 오래 된 물웅덩이가 있었다. 트럭 한 대 정도의 너비를 가진 곳이라 물웅덩이라고 불렀지만 남편은 한 번도 그 웅덩이의 바닥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 초원의 풀이 모두가 마르고 근처 레이크디스트릭트의 호수들이 말라붙을 때에도 그 웅덩이가 마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덕분에 집안 소유의 초원에는 언제나 풀이 마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가끔 이것은 웅덩이가 아니라 근처 그래스미어 호수의 바닥과 연결된 연못일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 남편은 ‘확실히 그럴지도. 원체 마르지 않으니’라며 웃어 넘겼다.

“어차피 그 웅덩이 주변은 풀이 많아도 양떼들이 가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물을 다 없애버려야겠어요. 오, 에디. 그 어린것이 병원에서 아직도 울고 있겠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부인의 어깨를 토닥이며 남편은 축사 구석 어디에 양수기를 넣어 두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재작년 봄가뭄 이후로 쓰지 않았으니 조금 손을 봐야겠지만…어차피 양들도 다 새끼를 낳아서 한가한 터 였다.


“아담, 양수기 좀 빌려주게.”

“여어, 에디가 병원에 갔다더니 좀 괜찮은가?”

몇 번이나 시동을 걸어 보았지만 영 신통치 않은 소리만 들려 온 탓에 남편은 옆집의 친구에게 양수기를 빌리기로 했다. 그는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남편은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서 들려 온 소식은 좋지 않았다. 맨체스터로 옮겨진 아들은 염증이 번진 탓에 집중치료실로 들어갔다.

“그다지 좋지 못해. 염증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하네.”

“저런, 혹시 병원에 다시 가야 한다면 제나는 우리집에 맡기게. 자, 양수기 좀 찾아보실까?”

집에 혼자 남아서 동생 걱정에 훌쩍일 딸을 걱정 해 주는 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해하며 남편은 그를 따라 창고로 들어갔다.

“어디 보세…여기 있구만. 별 이상은 없을거야. 저번달에 수로 정리를 하면서 썼을 때는 문제가 없었거든. 그런데 양수기는 어디에 쓰려고 그래?”

“에디가 벌레에 물린 게 ‘그 웅덩이’ 근처였거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없애 버리려고.”

“아아, ‘그 웅덩이’인가. 잘됐네. 거기는 지나 갈 때마다 벌레가 꼬여서 귀찮았으니. 양떼들도 잘 가지도 않고.”

‘그 웅덩이’라는 말에 친구는 곧바로 알아들은 듣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처음으로 그 바닥을 보겠구만? 그 웅덩이는 우리 어릴 적에도 있었잖아.”

“그렇지.”

친구가 건네준 양수기를 옮기며 남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이 어릴 적 축사에서 뛰놀았을 때도 웅덩이는 그 자리에 있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주 어릴 적 그가 밥을 먹을 때에도 그의 아버지로부터 그 웅덩이에 대한 추억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부인의 이름이 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에디에게 무슨 일 있어?”

[아니예요. 다행히 열도 내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흉터는 남을 거라고 의사가 말하더군요.]

부인의 말에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흉터는 이곳에 사는 남자들에게는 누구나 하나 둘 갖고 있는 액세서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저 아들의 목숨이 안전하다는 사실에 그는 신에게 감사드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도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그에게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자식이었다. 자식을 위협한 것을 없애는 것은 부모의 의무였다.


그는 곧바로 양수기를 들고 웅덩이로 갔다.

넓은 초원에는 군데군데 언덕이 있었고 웅덩이는 그 언덕 한쪽의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초원은 왕의 사냥터였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왕이 더 이상 사냥터를 찾이 않았던 이유는…

“뭐였더라?”

갑자기 떠 오른 기억에 그는 뒷 이야기를 생각해 봤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젊은 시절 동네 어른에게 들은 기억은 있었다.

그는 더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휴대용 발전기와 양수기를 연결했다. 웅덩이 주변의 흙은 물에 젖어 질척거리고 있었기에 그의 작업은 늦어졌다.

손을 넣기도 싫은 물웅덩이의 물은 전혀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더러웠다. 이렇게 더러우니 양들 역시 오기 싫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양수기에 시동을 걸었다. 양수기가 소리를 내면서 털털거린다 생각했더니 곧 양수기에 이어진 호수가 팽팽하게 불어났다. 더러운 물은 그 호스를 타고 저 멀리 수로에 버려질 것이었다.

바닥이 좀 깊다 한들 두세시간이면 이 정도의 웅덩이는 바닥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집에 혼자 남겨둔 딸이 걱정되었기에 그는 모자를 고쳐쓰고 집으로 향했다. 딸과 함께 밥을 먹고 돌아 올 때 쯤이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것이었다.


세 시간 후, 그는 조금도 줄지 않은 웅덩이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초원에 풀어놓은 양들이 그가 서 있자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던지 주변에 슬금슬금 다왔지만 결코 웅덩이 근처로는 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그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이 웅덩이는 자신의 아들 뿐만 아니라 양들도 겁 먹게 만들고 있었다.

더 많은 양수기가 필요했다.


“그 웅덩이 하나 마르게 하는데 양수기가 뭐 그리 필요하다고 그러나?”

동네 회관에 있는 공용의 양수기 두 대를 빌리자 관리자인 헤더씨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헤더씨가 기억하는 그 웅덩이는 양 스무마리가 마시기 시작하면 금세 바닥을 드러 낼 것 같은 작은 웅덩이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아담네 양수기로 네시간을 넘게 퍼내도 전혀 줄지가 않아요. 빌릴 수 있다면 더 빌려가고 싶습니다만 한번에 두 대로 제한되어 있으니….”

“에디가 그 웅덩이의 모기에 물려서 맨체스터의 병에 갔다지. 만약 그 두 대로도 모자르다면 말하게. 우리 집에도 아들녀석이 사 놓은게 한 대 있거든.”

“감사합니다.”

헤더씨의 배려에 고개를 숙이고 그는 양수기를 다시 트럭에 실었다. 세대의 양수기였다. 오늘 내로 그 웅덩이를 말리리라.

그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열두시간 후,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양들은 밤이 되었지만 잠들지 못했고 퍼낸 물 때문에 수로는 넘치기 직전의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웅덩이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가 소문이 퍼졌는지 동네 사람 몇몇이 자신들의 발전기와 양수기를 들고 그를 찾아왔다. 하지만 웅덩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 본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뭔가의 불길함을 느끼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웅덩이를 그대로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많은 양수기로 퍼 내도 줄지 않는 것을 보면 소문대로 그래스미어 호수의 바닥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래스미어를 퍼 내기 전에는 이 웅덩이도 마르지 않을 걸세.”

단지 그것 뿐 만은 아니었다. 나이들은 자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웅덩이를 마르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소문을 듣고 웅덩이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많은 양수기를 빌릴 수 있는 이 때 이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두 번다시 시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의 아들이 물렸고 나중에는 그의 딸이 물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그는 양수기와 웅덩이를 노려보았다. 끝을 볼 것이다.


삼일이 지났고 에디가 마을로 돌아왔다.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팔과 하얗게 질린 얼굴의 에디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웅덩이를 말리는 일을 그만 두라고 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에디였지만 그 웅덩이에 사는 벌레가 다음에 물어뜯는 것은 자신들의 아이일지도 몰랐다.

삼일이 지날 때 까지 웅덩이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여덟대의 양수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응?”

상황을 보러 왔던 남편은 한 대의 양수기가 연기를 낸 채 멈춰있는 것을 보았다. 호수의 한 부분이 불쑥 튀어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가 걸려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마침 아침에 양떼를 풀어주러 나온 마을 사람들 역시 그와 함께 양수기를 살폈다.

돌멩이를 들어 올릴 정도의 수압은 아니었기에 분명 오래 전 누군가가 웅덩이에 버린 무엇인가라고 생각한 그는 양수기에서 호스를 뜯어내었다.

“뭔가 안에 들어있어요.”

그는 호스를 만지면서 말했다. 마을 사람중에 한명이 마침 주머니에 있던 가위를 건넸고 그가 그것을 받아들어 비닐로 된 호스를 잘라 내자 호스 안에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뭐지?”

호수 안에 끼어있는 그것은 정사각형의 네모난 것이었다. 진흙이 들러붙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상자같은 것이 분명했다. 그가 그것을 호수에서 빼어낸 잡은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연못에서 들렸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이거 방금 웅덩이에서 들린 거 아냐?”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놀라서 웅성였다. 그 중에 아흔살이 넘은 마을의 노인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천둥이 아니다. 노인은 마을의 오래 된 전설을 생각해냈다.

땅이 소리를 낼 때는…

“상자 같은데?”

에디의 아버지가 그것을 주워 든 순간 사람들은 웅덩이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큰 소리를 낸 웅덩이가 놀라운 속도로 물이 줄어들고 있었다. 남아있는 일곱 대의 양수기가 물을 계속해서 수로로 내보냈고 몇분 후 웅덩이가 바닥을 드러내었다.

삼일 내내 퍼 냈던 웅덩이가 순식간에 말라버리는 모습을 보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채 에디 아버지의 손에 들린 상자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좋지 못한 징조였다.

마을 사람 중 하나가 말라버린 웅덩이를 살펴보았다. 모두가 말한 그래스미어 호수로 연결되는 통로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성인 남성의 허리 쯤 올 것 같은 깊이의 마른 웅덩이가 전부였다.

“…삼일 동안 물 퍼 낸 거 아니었어?”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더러운 흙을 씻어내자 색이 조금 바랜 나무상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역사에 무지한이라도 그것이 매우 오래 된 나무상자라는 것을 알 수 잇을 정도의 오래되고 투박한 디자인이었다.

“일단 경찰에 연락하고…맨체스터 박물관에서 가져가라고 하죠?”

마을의 남자들 모두의 시선이 그 상자에 집중 된 가운데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에디의 아버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은 자신의 땅에서 나온 물건이고 그가 발견했기에 소유권은 그에게 있을 터 였다. 만약 이것이 오래 전의 대단한 보물이라면 나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보물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 오래 된 물건이라면 틀림없이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단 열어 봅시다.”

그가 그렇게 말 했을 때 사람들 사이에 무거운 술렁임이 일었다. 누구나 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웅덩이의 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땅의 소리들이 그들로 하여금 그 상자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니, 그것은 박물관에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우리가 열려다가 상자가 상할수도 있고 말일세.”

아흔이 넘은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을 막았다. 그때 마을 회관의 문이 열렸다.

“아빠.”

“제나? 왜 혼자서 여기까지 왔어?”

소녀는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아버지의 품에 파고들면서 투정부렸다.

“엄마 아빠 너무 늦는다고 그래서…아빠 보려고….”

자신의 품을 파고드는 딸을 끌어안으며 그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아무 보석도 장식도 없는 단순한 상자지만 안에 대단한 것이 들어있을지도 몰랐다. 원래 중요한 것은 허름한 곳에 두는 법이 아니던가. 뭔가 팔 수 있는 것이 나오면 딸에게도 좀 더 좋은 자전거를 사 줄수 있을테고 자신의 낡은 트럭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디의 치료비에 보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열어 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노인 몇몇이 눈을 감았다. 분명히 부정한 것인 것인데 -


그가 상자를 연 순간.

그 안에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모두가 일어섰다.

그리고 달렸다.

그것으로부터 도망쳤다.


상자를 연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자신의 팔을 잡으며 일그러지는 딸의 얼굴이었다.




후에 마을의 이름을 따서 ‘바운리스의 악의(惡意)’라고 불리는 그것은 그렇게 세상에 나타났다.




- 17년후.


호수지방의 아침은 고약하다. 언제나 짙게 피는 물안개에 조금만 아침 산책을 하더라도 옷이 축 젖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아,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말입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는 짙게 낀 안개를 바라보면서 투덜거렸다. 그의 투덜거림에 소총을 든 경비병이 흘끗 그를 쳐다보았다가 곧 고개를 돌렸다. 마치 안개속에서 다가 올 무엇을 기다리는 것 처럼 경비병은 안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경비병이 아무 대꾸를 하지 않자 남자는 툴툴 거리면서 자신의 가운을 벗었다. 실험실에서나 입을 것 같은 가운을 입은 채 초원을 돌아다니는 것이 이상했지만 이곳에서 자신이 ‘연구원’임을 알리는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응?”

가운을 털어내던 남자는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이른 아침이었다. 지금 시간에 돌아다닐 사람은 없는데…

경비병 역시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면서 총을 잡았다. 곧 안개를 헤치고 다가온 것은 경비병과 연구원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경비병과 연구원은 서로의 얼굴을 한번씩 바라보고는 곧바로 절도 있는 경례를 했다.

“바운리스 8구역 환상종 연구원 데이비드 바로우맨! 공작님을 뵙습니다!”

“바운리스 8구역 경비소대 이완 모팻! 공작님을 뵙습니다!”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것은 긴 금발의 여자와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였다. 여자는 그들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잘 안다기 보다는 알 수 밖에 없는 여자였다.

영국의 다섯 공작중 하나. 노섬브리아의 공작.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환상종을 상대할 수 있는 로얄 가드의 수장이라는 것이었다. 바운리스의 모든 구역은 그녀의 관리 하에 있기에 경비병과 연구원은 자신들의 까마득한 상관을 보면서 자신들이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었나 빠르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다. 바운리스에 들어가기 위해서 왔으니.”

그녀의 말에 경비병과 연구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확실히 그녀는 정찰을 위해서 자주 바운리스에 들어가고는 했다. 그러나 혼자서 들어간 적은 없었다. 그녀와 같은 로얄 가드들이 중무장을 하고 그녀를 호위하고는 했다.

“혼자서…말씀이십니까?”

연구원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렇게 했다가는 무슨 꼴이 날 것인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들어가는 순간 온갖 급의 환상종들이 드글대는 바운리스에서 아무리 그녀라고 할 지어도 한시간 이상 생존이 힘들 것이다. 환상종들에게 쫓기고 쫓겨 결국은 먹이가 될 것인데.

“혼자가 아니다.”

그녀의 말에 경비병과 연구원은 그제서야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크지 않은 키에 특별히 기억에 남기 힘든, 아무런 특징을 가지지 않은 아시아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도 그제서야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제나는 오늘 아침에 목격되었나?”

공작의 말에 연구원은 새벽에 보았던 결계를 기억해냈다.

“오늘 새벽 7구역에 한번 접근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아직 바운리스 안을 돌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그래, 한 시간 정도 후 본부의 연구원들이 올 것이다. 이쪽으로 안내 해 두도록.”

“알겠습니다. 정말로…괜찮으시겠습니까?”

“응? 아아, 걱정 없다.”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경비병의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경비병과는 다르게 연구원은 어째서 본부의 연구원들이 이곳에 오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가졌지만 그녀에게 되묻지는 못했다. 그의 임무는 공작이 시키는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지 그 명령의 기원을 살피는 것이 아니다.

동양인 남자와 사라지는 공작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연구원은 곧 손가락을 튕겼다.

“기억났다! 저 남자!”

갑작스러운 연구원의 행동에 경비병은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동양인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으아! 싸인 받아 둘껄!”

날뛰는 연구원을 한참을 보고 나서야 경비병의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기억났다. 환상종을 상대하는 동양인이라면…


“여기가 바운리스군요.”

감격에 젖은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여자는 코웃음쳤다.

“재우, 그대에게는 특별한 광경도 아니지 않나?”

경비병과 연구원이 있던 곳에서 백미터쯤 지나왔을 때 거대한 철책이 둘의 눈 앞에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결계영역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일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철책을 넘어 두 사람은 걸음을 계속했다.

“분위기야 비슷할지 몰라도…역시 바운리스라고 하면 악의의 원조니까요. 시초는 언제나 성스럽지 않습니까. 그것이 어떤 것이던지.”

재우라고 불린 남자는 이제는 신이 나는 듯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그녀의 앞을 걸었다.

“그것보다 제나는 어떤 환상종입니까, 앰버?”

재우의 질문에 앰버라고 불린 여공작은 어깨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내며 대답했다.

“악의가 세상에 퍼졌을 때 제일 가까이에 있었던 존재다. 에디와 더불어서 1급 환상종이자 사실상 바운리스의 여주인이지. 에디의 누나이기도 해.”

공작의 대답에 재우는 런던에서 보았던 에디를 떠올렸다.

1급 환상종인 에디.

단지 오른팔만이.

덕분에 바운리스 밖으로 끌려나와 세상에 둘도 없는 삼엄한 감시 아래서 환상종 연구의 기원이 된 소년을 생각하면서 재우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매우 흉폭하다. 바운리스의 결계가 다른 곳들보다 훨씬 두꺼운 이유가 제나 때문이기도 해. 다른 환상종과는 다르게 매일같이 결계 밖으로 나오려고 안달 나 있으니까.”

제나가 밖으로 튀어나올 경우 벌어질 참상을 상상하며 앰버는 몸을 떨었다. 그때 멀리서 무엇인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리에 앰버가 미소지었다.

“제나가 우리를 알아챈 것 같군.”

곧 주변의 공기가 바뀌는 것을 재우와 앰버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검을 잡은 앰버의 손바닥에 땀이 조금씩 배어들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나타났다.

“…나왔네.”

앰버는 모습을 드러낸 제나를 바라보았다.

악의가 세상에 퍼졌을 때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기껏해야 여덟살을 넘지 않았을 소녀는 초첨없는 눈동자를 굴리며 그들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멈춰 선 제나는 입을 벌렸다. 그리고 벌린 입을 통해 무엇인가가 슬금거리며 공기중으로 기어나고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녀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인간이 죽을만큼 공포를 경험했을 때 지을 수 있는 표정이 그런 것이리라.

그리고 제나의 입에서 기어나온 그것이 둘의 냄새를 맡고 소리를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바운리스 전체를 흔들게 하는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앰버가 외쳤다.

“저것이 너와 같은 1급 환상종이다, 재우! 해치웟!”

재우는 입술을 핥았다.

그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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