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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봉신기이담 리커런스
글쓴이: 미도네코
작성일: 12-07-03 23:11 조회: 1,577 추천: 0 비추천: 0

Intro

[뭐,뭐야. 이거……]

소년, 진유하는 자신의 손을 보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손은 강철로 만들어진 쇠였다. 몇 번이나 오므렸다 폈다 해보고, 몸을 움직여보자, 그에 따라 강철의 손이나 강철로 만들어진 팔이 같이 움직였다. 미약하게나마 웅웅거리는 모터소리도 들려왔다.

시야도 평소보다 높아져 있었다. 목소리도 자신의 목소리긴 했지만,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인형으로 틀어 놓은듯했다. 보라색 거울로 잔뜩 뒤덮여 있는 [도마뱀]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푸른색과 하얀색의 조합으로 이뤄진 강철의 몸. 흉갑에는 육각형의 거대한 보석 박혀 있었고, 그 중심으로 황금색 테가 장식되어 있었다. 등 뒤로는 하얀 망토가 달려 있었다. 투구의 이마에는 ㅗ자형태의 뿔이 달려 있고, 그 아래의 얼굴은 사람이 아닌 유리로 만들어진 보석안. 그것을 제외하면 얼굴 전체는 투구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사의 모습을 본 듯 했으나, 정확히는 기사의 모습을 모티브 삼은 로봇의 모습이었다. 자신은 옛날 봤던 애니메이션에서처럼, 혹은 요 근래 인기리에 방영한 변신로봇 영화에서 나온 로봇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며, 싸우는] 그런 [로봇]이 되었다!

봉신기이담封神機異談

리커런스 Recurrence

제1화 우화등선 羽化登仙

(0)

어두운 교내에는 달빛만이 비추고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말 그대로 자율인 청아고등학교의 교내는 이미 텅 빈지 오래였다. 그 복도를 중년 남자가 손전등 하나를 들고 걷고 있었다. 듬섬듬섬 난 턱수염에 추레한 트레이닝복 차림. 그 얼굴에는 피곤함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그는 수학선생님으로, 조만간 교육청에 급히 내야할 서류가 있어서 당직을 서고 있었다. 그러다 근무를 서는 수위아저씨와 야식으로 라면을 먹은 그는 운동도 할 겸 본관 순찰을 돌고 있었다.

복도에 걸리는 자자란 쓰레기들을 보며 그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담당구역이라고 해서 매일 매일 청소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치울 뿐 사이사이에는 치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바람이나, 어떤 것에 의해 복도 밖으로 나오고. 그게 매번 반복되고 있었다.

‘이 녀석들 제대로 청소를 안하네.’

그는 내일 교무회의 때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다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대략 3층 순찰을 끝냈을 무렵이었다. 그는 목이 뻐근한지 고개를 돌리며 이내 4층으로 올라가는 중간 층계까지 올라섰다. 눈에 거울이 들어왔다.

겉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거울로, 크기만 해도 꽤 장신인 자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비출 정도로 큰 거울이었다. 겉은 이미 낡았지만, 거울은 상당히 깨끗한 편으로 거울의 맨 아래에는 [축 개교 기념]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루에 물건 하나가 부셔지는 것이 학교 물품인데, 이 거울은 개교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부셔지지 않은 채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개교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대략 70년 전이니, 엄청나게 오래된 물건이자, 일종에 학교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었다.

“참나, 이 거울이 나보다 어른이라는 건가.”

나이로만 따지자면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연령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새삼 대단해보였다.

[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

그가 거울을 쳐다보고 있을 무렵 휴대폰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자정이었다. 그는 빨리 순찰을 끝내고 숙직실에서 잠을 자기위해 몸을 움직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어디선가 떨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눈앞에 있는 거울이 맨 위부터 아래까지 전부 보라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기이한 현상에 그는 깜짝 놀라 뭐라도 하려했지만, 그전에 강한 빛 무리가 그를 덮쳤다. 그리고 그 빛 무리가 사라지자마자, 그는 무언가 홀린 듯 계속해서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10분, 20분.

그를 발견한건 그와 같이 근무를 서는 경비아저씨였다. 경비 아저씨가 그를 툭하고 치자, 그는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계속해서

“보라색 거울이, 보라색 거울이……”

라고 중얼 거리고 있었다.

(1)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 같은 창작물에서 소꿉친구는 어느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이다. 그것이 이성이면 친구를 넘어서 연인이 될 것이고, 같은 동성이면 아무리 힘들어도 옆에서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이 된다. 이것이 창작물에서의 소꿉친구다.

‘하지만, 현실은 이거지.’

유하는 자신의 앞자리에서 떠들썩한 아이들 무리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학교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다. 그 아이들 중에는 아주 뒤떨어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선두에서서 아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속된 표현으로 잘 나간다는 아이들이었다. 유하의 앞자리에서 떠들고 있는 무리가 바로 그 무리였다. 공부뿐만 아니라 체육, 패션, 유행할거 없이 그 모든 것들의 선두에 있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그룹. 같은 학년인데도 불구하고 평범하디 평범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 한 아이들이었다.

그 무리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소녀가 있었다. 한눈에도 예쁜 아이였다. 그 외형만 보자면 TV에서 나올 아이돌보다 더한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모아 묶은 포니테일이 소녀의 활기찬 성격과 아주 잘 어울렸다.

소녀의 이름은 정수아라고 한다. 그 화려한 외모만큼이나 밝은 성격으로 반의 실질적 리더를 꼽으라면 바로 그녀를 꼽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유하의 소꿉친구였다.

‘뭐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말이지.’

수아와 유하는 초등학교 저 학년 때부터 같이 지내온 사이였다. 사이도 어느 누구보다 좋았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소녀는 유명한 사립여중에 가게 되었고, 자신은 평범한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 사립 여중이란 장소가 여기서 거리도 꽤 멀고, 전원 기숙사제인지라, 3년 동안 그녀를 본적은 없었다.

다시 고등학교에서 재회 했을 때는 자신이 알던 소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소녀가 그 자리에 있었다. 화려하게 핀 외모나 몸매는 둘째 치고, 성격도 자신이 알고 있던 수아와는 180도 정 반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달라졌다.

처음 재회했을 때는 서로 반가워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3년이란 시간은 서로 어색해진 사이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수아는 자신과 만나면 웃으면서 대해줬지만, 옛날과 같은 진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딱딱하고 형식적으로 대하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유하는 알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을 알고 싶어 하지 않구나‘ 라고. 하기야 자신과 수준도 다른 애가 어릴 때 약간 놀았다는 이유로 친한 척 하면 귀찮아 질 것이다. 유하는 그녀의 속마음을 파악하고 난뒤 굳이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이제 서로 소꿉친구였다는 사실도 어색해질 무렵. 2학년으로 진학하고 나서 그녀와 같은 반이 되었다.

물론 같은 반이 되었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녀가 만든 그룹 안에 있었고,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 속해져 있는 그룹의 아이들과 주로 놀았다. 미소녀와 소꿉친구라는 이유로 친구이상 연인 미만의 알콩 달콩한 관계가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창작물에서나 일어날 일이었다. 괜히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는게 아니었다.

“거기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나 말하고 있고.”

옛날에는 저런거 말하지도 않았는데. 유하는 그쪽을 힐끔 쳐다 보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 엎드렸다.

“헤에, 유하는 지금 내말을 믿지 못하겠다는구나?”

“?!”

바로 앞에서 들려온 소녀의 목소리에 유하는 한순간에 뜨끔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앞에는 생글 생글. 방실 방실이라는 표정이 잘 어울릴 웃음을 짓고 있는 수아가 있었다. 다만

‘눈이 웃고 있지 않아!’

눈은 죽일 듯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아니 믿지 못하겠다는 건 아니고. 아하하.”

수아가 한 이야기는 요즘 학교에서 떠도는 괴담이다. 지금 유하가 속한 2학년들이 쓰고 있는 본관. 4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에는 거대한 거울이 하나 놓여있다. 청아고가 개교하면서 기념으로 만든 거울로 햇수로만 70년이 족히 넘은 유서 깊은 거울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일명 파리거울로 유명했는데, 이상하게 그 거울 앞에 파리나, 모기 같은 벌레들의 시체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파리나 모기의 시체정도야 반에서도 발견되니 아이들에게는 그저 웃음소재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거울에는 요 근래 한 가지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바로 밤 12시. 그러니까 자정이 되면 거울 전체가 보라색으로 물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소원을 딱한 가지 이뤄준다고 한다.

그렇게 거울에 소원을 빌면 그곳에 있는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을 빈 사람의 소원을 이뤄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원의 가치만큼 요정은 빈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데, 그 장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원이 이뤄진 다음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 하얀 수정을 비추렴.’이라고 말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디에서나 나올법한 괴담 중에 하나였다. 인터넷에서 거울 괴담이라고 치면 이와 비슷한 괴담은 수십 개도 더 나올 것이다. 평소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법한 괴담이 학교 전체에 퍼진 것 은 얼마 전에 당직을 서다 전신 타박상을 입은 수학선생님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은 그저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그런거라 말하고 있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모든게 거울 때문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하긴, 믿지 못하는 것 도 당연할지 모르겠네.”

수아는 전부다 이해한다는 듯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왠지 그 미소가 더 불길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녀는 태연하게 소년의 비밀을 밝혔다.

“유하, 너는 이런 괴물이나 귀신 나오는 거 무~~~지 하게 싫어하지? 이런 괴담 같은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무섭지?”

“에엑?!!”

“어렸을 때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를 보고 울었던 건 여기에 있는 누구라지?”

생긋.

극상의 미소를 지으며 정수아양은 진유하 군에게 폭탄을 던졌습니다. 그야말로 소리장도(笑裏藏刀). 웃는 얼굴로 사람을 죽이는구나. 한순간의 모든 시선이 유하에게 집중되었다. 유하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인 체 외쳤다.

“그건 어렸을 때라-!”

“아니, 아니 굳이 변명할 필요 없어. 겁 많은 게 누구 잘못도 아니고. 그냥 선천적인 거라 어쩔 수 없잖아. 그치 울보 겁쟁이 진유하.”

결국 어린 시절 제일 싫어했던 별명까지 튀어나오자 유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니까!! 누가 그런 괴담 따위 무서워서 그런다는 거야! 그냥 어렸을 때는 조금, 아주 조금 무서워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헤에, 역시 그런가? 하긴 유하도 컸으니까 이제 그런 괴담 같은거 안 무서워하지?”

“당연하지! 나도 예, 옛날의 나랑은 달라!”

그러면서도 목소리는 은은히 떨려오고 있었다. 100%까지는 아니어도 50%정도는 겁을 먹었다는 소리였다. 그 사실을 수아도 잘 알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미안, 내가 유하에게 실언을 한 것 같네. 미안해요~! 유하야!”

“아니야, 나도 말을 함부로 한 것 같은데 뭐.”

수아는 애교가 잔뜩 깃든 목소리로 유하에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유하는 약간 기분이 풀린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며 수아는 한 번 더 폭탄을 던졌다.

“그러니까 오늘 유하가 나랑 같이 학교에 와보면 괜찮겠네!”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사실 유하 말대로 그 괴담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도 모르니까. 이런 건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잖아.”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점점 새파랗게 질려가는 유하를 보며 수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학교에 직접 와서 확인해보려 하거든. 그러니까 그때 유하도 같이 가자. 옛날처럼 유하가 이런 거 무서워하고, 겁을 내면 안 데려가려고 했는데, 이제 옛날이랑 다르다고 했으니까! 괜찮지?”

“?!”

한순간에 경악으로 물든 얼굴. 하지만 이미 내빼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내뺐다간 자신이 한말이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래 가보자! 가보자구! 까짓것 내가 가자면 못갈 줄 아냐!”

나도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고!

그리고 후회하는 건 그로부터 1시간도 채 흐르지 않고서였다.

‘그깟 남자의 자존심이 뭐라고!! 그냥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데!’

속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

어린 시절부터 헛것을 잘 봤다. 요컨대 귀신이라던가, 요괴 같은 것을 잘 보는 체질이었다. 밤에 자다가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 눈을 뜨면 귀신이 지나가고 있었고, 동네 뒷산에 아이들과 놀러 가서도 도깨비 같은 걸 보았다. 수련회가서 야밤에 한 담력시험에서는 귀신같은 것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은 귀신이나 요괴 같은 것이 소재가 된 이야기나 창작물은 절대 보지 못했다.

그 덕분에 자신의 어린 시절은 말 그대로 괴롭힘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은 유하의 말을 믿지 않았고, 조그마한 것에도 엄청나게 겁을 내는 유하를 보며 겁쟁이 거지말쟁이라고 칭하면서 왕따를 시켰다. 하루에도 괴롭힘을 당한 날이 당하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고, 몇 번이나 학교가 가기 싫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그때 수아가 곁에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을 보다 못한 할머니가 자신이 다니던 절의 주지 스님에게 자신을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 스님은 자신을 보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이 아이는 선골(仙骨)입니다. 옛날이라면 천하에 이름을 떨쳤을 텐데. 아미타불. 보살님께서는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골이라고 해도 뼈가 굳기 시작하면 보통사람과 다름없으니. 얼마 후면 평범한 아이처럼 지낼 것입니다. 다만 선골은 예로부터 신장(神將)을 현현하여 요괴와 싸운다고 하니, 후에 이 아이의 재능 깨울 누군가가 찾아온다면…’

“휴우……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유하는 자신의 입을 찰싹 때렸다. 그날,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 온 이후로 거짓말처럼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그런 것을 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 아직도 유령이나 요괴 같은 것에는 엄청나게 약했다.

도대체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을 찰싹 때리며 자책해보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요, 엎질러진 물이었다.

“저, 저기…”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다! 지금 이런 자책보다는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지부터 생각을 해야 한다!’

“저, 저저기……”

‘졸려서 잠깐 잤는데, 깨어나 보니 아침이었다고 할까? 아니 그건 좀 억지지? 그냥 저녁밥을 잘못 먹고 체했다고 할까? 이게 가장 낳은 변명인가? 어떻게 하면…’

“저, 저기요……!”

그렇게 한참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옆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그곳에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말 그대로 진짜 조그마한 아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제 막 입학한 중학생 같았다. 몸매도 흔적정도는 나와 있었지만, 말 그대로 [간신히]이었다.

얼굴도 동안으로 어린아이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눈. 볼도 젖살이 빠지지 않았다.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자랐는데, 머리 끝부분이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되어 있어 꼭 동화책에서 나올법한 공주님 같았다. 소녀는 책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며 유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 예!? 사서 선생님 무슨 일로”

청아 고등학교에는 3층에는 교실 3개 정도가 합쳐진 크기의 도서실이 존재한다. 대학이나 다른 시립 도서관에 비하면 조그마한 규모여도, 고등학교치고는 상당한 규모의 도서실이었다. 그런 도서실을 홀로 맡아 관리하는 것이 눈앞에 소녀였다.

이름은 유하린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천재 미소녀로 몇 번이나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다. 10대 초반에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중반에 유명대학을 졸업해, 결국엔 최연소 사서 자격증을 얻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취직한곳이 바로 이곳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인 청아고등학교의 도서실 사서였다. 17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의 천재인데다, 외형도 귀여운 여자아이였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는 교사, 학생 할 거 없이 좋아하는 일종의 마스코트였다.

유하가 그녀를 쳐다보자, 하린이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물기가 엿보였다. 책으로 가리지 못한 약간의 뺨도 잔뜩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뭐,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소문에 따르자면 소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1:1 개인 교육을 받고, 대학도 여대에 입학하고, 심지어 교육도 여교수님에게 받은 상태라고 한다. 덕분에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천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사서로 온 것도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학교에 부임하고 나서는 그런 성격이 약간 고쳐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남자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잘못하다가는 울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실에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거나, 울린다면 학교 지위를 막론하고 비난당하는 것이 학교 안에서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이 규칙은 신입생을 시작으로 학교의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해당했다.

“저, 저저기 그, 그러니까, 그게요. 그러니까- 도, 도서실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 저기 그러니까 이런 말해서, 죄송해요. 역시 나 같은 건, 나 같은 건-!!”

하린이는 울기 직전이었다. 만약 울기 시작해서 누군가 보기라고 한다면. 온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그리고 유하가 이곳에서 선택 할 수 있는 방안은.

“죄, 죄송합니다. 사서 선생님!!”

36계 줄행랑이었다.

“휴우, 큰일 날 뻔 했네.”

유하는 도서실을 나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칫 잘못 했다간 사서 선생님을 울릴 뻔 했다. 선생님, 학생 할거 없이 귀여움을 받는 소녀였다. 만약 그런 소녀를 울렸다간 풋풋해야할 학창시절이 거무튀튀한 잿빛으로 물들게 뻔 한 일이었다.

“뭐가 큰일 날 뻔 한 건데?”

“그야 당연히 사서 선생님을 울릴 뻔 한 거지. 만약 울렸다간 앞으로 학교 다니는데 착오가……”

“헤에-, 너 선생님을 울릴 뻔했구나.”

그런데, 지금 나 누구랑 이야기를 하는 거지? 잔뜩 굳어진 몸으로 유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있는 건. 사이드 테일의 여자아이.

“히,히이익?!”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한순간에 새파랗게 질려가는 유하. 이 무슨 호랑이를 피했더니 늑대가 나온 상황이란 말인가! 수아는 그런 그를 보며 여전히 생글 생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안녕 유하야?”

“네, 네가 왜 여기에?”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방과 후에 도서실에 자주 있다는 알고 있었으니까.”

“기, 기다려? 날?”

“응, 나도 집에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차라리 유하네 집에서 머물다가 같이 가는 게 어떨까 해서.”

“뭐!? 너 지금 무슨 말을-.”

“왜? 어렸을 때는 항상 같이 있었잖아.”

이해가 되지 않은 듯 수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니까 그건 어렸을 때잖아! 지금은-!”

“지금은?”

막상 말은 꺼냈는데,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그게-.”

“괜찮지?”

수아가 생긋 웃으며 다시 묻는다.

“잠깐만, 그러니까-!”

“괜.찮.지?”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물어볼게. 괜.찮.지?”

“…그냥 마음대로 해주세요.”

“어머, 다행이다. 혹시 너에게 폐를 끼친 게 아닐까 걱정이었는데.”

“…….”

유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

수아와 이렇게 집에 가는 게 얼마만일까. 중학교 이후로는 같이 가기는커녕 얼굴보기도 힘들었으니 최소한 3년 이상 일 것이다.

‘3년이라…’

몇년전만 해도 이렇게 둘이 걷는 게 당연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같이 걷는 것 도 서로 어색하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10분정도를 걷고 나서야, 유하가 살고 있는 빌라가 나타났다.

“아직도 여기에 살고 있구나.”

“자택이니까.”

유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열리자 정리가 되지 않은 거실이 눈 안에 들어왔다. 바닥에는 유하가 입고 있었던 트레이닝 바지가 널브러져 있었고, 소파에는 누워서 책이라도 읽고 있었던지 만화책과 소설책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부엌에는 설거지 거리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한눈에도 엉망진창인 집안 꼴.

“아, 아니 그러니까. 청소는 매일매일 했고, 이, 이건 아침에 시간이 없다보니. 그, 금방 치울 거야. 너는 앉아서 TV라도 보고 있으면…….”

유하는 황급히 들어가 변명하면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아가 주변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는?”

“저번 달부터 아버지 해외부임에 같이 따라갔어. 반년정도 후에 돌아올걸.”

“어쩐지 집안이 엉망이다 싶더니.”

수아는 현관 바로 옆에 위치한 방의 문고리를 돌렸다. 그녀의 기억대로라면 이곳이 바로 유하의 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렸을 때와 비슷한 구조의 방안이 눈 안에 들어왔다. 비어 있던 공간에 책꽂이가 더 생겼다던가, 침대 커버가 약간 바뀌긴 했지만, 방의 구조는 옛날과 다름없었다.

마치 잊었던 고향에 다시 돌아온 포근한 느낌에 수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저기 거기 보다는”

“여기에 있을게.”

황급히 뒤따라 들어온 유하를 쳐다보며 수아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그래도 거기보다는 거실 소파가…”

“여기가 편한걸.”

“…….”

수아가 다시 한 번 말하자 유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마저 정리하기 위해 나갔다.

그녀는 책꽂이를 살펴보았다. 어렸을 때 여기에 꽂혀 있던 건 각종 동화책이나 전집이었다. 하지만 지금 꽂혀 있는 것은 각종 수험서와 학습자료 그리고 몇 권의 만화책이 전부였다. 그러다 이내 몇 권의 책이 수아의 눈에 들어왔다.

“앨범?”

중학교 앨범과 어렸을 때 사진이 모여 있는 앨범이었다. 수아는 중학교 앨범부터 살짝 펼치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이내 유하가 속한 반을 발견한다. 지금보다 약간 앳된 얼굴. 학교 규정에 딱 맞게 자른 상고머리에 80년에 나올법한 뿔테안경. 진지하게 짓고 있는 표정이 괜히 웃음이 나온다.

몇 장을 뒤로 넘기니, 학교에서 한 활동들이 찍혀 있었다. 학교 축제라던가, 수학여행. 그곳에서 친구들과 같이 어깨동무를 하며 찍은 사진들이라던가, 그중에는 흔치 않게 여자아이들과 찍은 사진들도 있었다. 그곳에 있는 소년은 전부다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전부다 자신이 없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쌓아온 추억들.

그것이 왠지 모르게 소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어린 시절에는 단 둘뿐이었는데.

“뭐하고 있어?”

“아, 아니. 청소 한다더니 다 끝났어?”

수아의 말에 유하는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수아 옆에 있는 앨범을 발견했다. 유하의 시선이 앨범으로 향한 걸 본 수아는 황급히 그 앨범을 치우려 했다.

“어, 그거?”

“이, 이거, 그, 그러니까 책장에 찾아보다가.”

“앨범이네. 아, 오랜만이다. 나도 한 번도 안 꺼내봤는데.”

그러더니 유하는 수아 옆에 앉아 앨범을 가져와 열어보기 시작했다. 앨범속의 사진은 온통 수아와 유하의 사진이었다. 학교 소풍 사진이나, 학교에서 한 운동회 사진, 심지어 골목에서 놀고 있을 때도 찍힌 것은 그 둘 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가끔가다 유하와 그 부모님의 사진뿐이었다.

“정말 이때는 우리 둘뿐이었네.”

“그러게.”

수아의 말에 유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때 만 해도 서로의 친구는 단 둘뿐이었다.

유하의 친구는 수아뿐이었고.

수아의 친구는 유하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 세계에서는 약간만 달라도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괴롭힘을 당하던 때였다. 그 당시 유하는 한참 헛것을 볼 때였다. 수업시간 중에서도 갑자기 허공에 나타난 귀신을 보고 기겁을 하다던가, 소풍에서 나온 도깨비 같은 것을 보며 운적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더욱더 난감했으리라.

선생님은 유하의 부모님에게 애정 결핍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반대로 그것을 가지고 놀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믿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유하는 반에서 가장 겁쟁이에다가 말도 안 되는 것을 퍼트리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항상 무언가를 말해도 거짓말쟁이라고 놀림을 받았고, 가끔은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맞거나 괴롭힘을 당한적도 있었다.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수아의 부모님은 이혼하기 직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툼이 있었고, 아버지나 엄마나 각자의 애인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한 사정은 옆집에 사는 사람들을 시작으로 금세 아파트 전체에 퍼졌다. 그 아파트에는 수아의 학교 친구들도 살고 있었고, 그들의 엄마들은 만나기만 하면 그이야기로 소근 소근 거렸다. 그렇게 소근 소근 거리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아이들 귓가에 들어갔다.

아직 철이라는 걸 모르고, 말이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는지 모르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그걸로 수아를 놀리기 시작했다. 다만 유하와 수아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수아는 자신을 놀리는 애들이 있으면 끝까지 쫓아서 싸웠다는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수아도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고, 수아도 따돌리면 따돌려 보라는 듯이 행동했다. 반이 수아를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수아가 반을 따돌리는 형국이었다.

그러다 유하와 수아가 서로 만나게 되었다.

보이는것을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거짓말쟁이가 된 소년.

반 전체를 따돌리는 성격이 까칠한 소녀.

그 둘이 친해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수아는 유하의 말을 믿어줬고, 유하와 그의 엄마는 수아가 어떤 집안환경인지에 대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에게 그러한 말을 하려하는 아이들이나 수아를 보며 소근 소근 거리는 아줌마들을 보며 따끔하게 말을 해줄 정도였다.

그렇게 매일 매일 붙어 지냈다. 아침이나 밤에 잠들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둘은 함께였다. 주변에서 뭐라 하든 그 둘에게는 그다지 상관없었다. 서로에게 서로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수아가 나에게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린 시절. 수아와 처음 만났던 그날.

노을 진 낡은 놀이터. 그날도 아이들에게 단체로 얻어맞고, 괴롭힘을 당한 채 울고 있었다. 그때 괴롭히던 아이들을 전부 쫓아내고, 자신을 달래준 게 어린 시절의 수아였다.

그리고 수아는 울고 있는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줬다.

‘그게, 뭐였더라.’

무척이나 좋았던 말인 것 같은데. 그때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잖아.”

“어?”

유하가 고개를 돌리자 수아는 여전히 사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때, 우리 좋았지?”

“글쎄, 좋다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유하는 머리를 긁적이었다. 그런 소년을 보며, 소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 이때로 돌아 갈 수 있다면, 너는-.”

“그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뭐?”

유하의 말에 수아가 그를 돌아본다. 조금 실망하는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그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유하가 말을 했다.

“이때는 좀 많이 힘들었잖아. 이상한것도 많이 보이고, 친구도 거의 없었고, 너도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낫지 않아? 그때는 나뿐이었지만 지금은 네 주의에는 친구도 많잖아. 다 나보다 잘난 애들이잖아.”

“……”

“안 그래?”

고개까지 갸웃거리며 유하가 되물었다.

“그래. 네 말이 맞네. 찌질했던 그때보다는 지금이 훠~얼씬 더 낫지.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너보다도 더 재미있고, 나랑 잘맞는 친구들도 많고!”

그 말을 끝으로 수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분이 나빠진 얼굴로 유하에게 말했다.

“사진 보는 것도 질렸어. TV 볼래.”

“어, 어…”

유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수아는 거실로 나가버린 상태였다. 어째서 기분이 나빠진 거지?

(3)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11시쯤 학교에 찾아가니 이미 정문은 굳게 닫힌 지 오래였다. 여기서 포기해주면 고마울 텐데, 수아는 학교 뒤편 외진 곳에 있는 개구멍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학교 뒤에 만들어진 정원을 통해 본관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야밤인데도 불구하고 수아의 걸음걸이는 거침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교복차림, 즉 치마에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그것도 교칙이 허용한 선까지 최대한 고쳐 입은 옷이라, 조그만 격하게 움직여도 아슬아슬한 부위까지 보일 거 같았다.

‘쟤는 저렇게 입고도 저렇게 움직이나.’

살짝 혀를 차면서도 계속해서 그쪽 부위에 시선이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남자의 본능이었다. 조그만 더 올라가면 잘하면 보일지도……

그때-. 수아의 발걸음이 딱 하고 멈췄다.

“다 왔어.”

“여긴, 학교 뒤잖아.”

현재 위치는 학교 본관 건물 바로 뒤편으로 교무실 복도에 있는 창문 앞이었다. 아무래도 수아는 이 창문을 넘어서 학교에 들어갈 것 같았다.

‘만약 여기서 창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냥 집에 가겠지?’

제발 열리지 마라. 제발.

그렇게 간절하게 기원을 했는데, 그 결과는

드르르-.

너무도 자연스럽게 창문이 열렸다.

“아까 너 도서실에 있을 때 몰래 내려와서 외진 곳의 창문을 미리 열어났거든. 다행이 닫지 않았네. 먼저 들어가. 유하야.”

“…….”

수아가 살짝 비켜주자 유하는 약간을 떨떠름한 얼굴로 창문을 넘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너 내 뒤에서 내 허벅지 계속 쳐다봤지?”

“우,우아앗!?”

우당탕탕-.

소녀의 말에 당황한 유하는 그대로 발을 헛디뎌 복도에 넘어진다. 그런 소년의 모습을 보며 수아의 말이 이어졌다.

“헤에, 한번 찔러보긴 했는데. 맞았나보네. 역시 유하 너도 남자는, 남자구나?”

“무, 무슨-.”

“괜찮아, 괜찮아. 다 이해해!”

이해는 무슨!

유하가 뭐라 하기도 전에 수아는 부드럽게 창문을 넘어왔다. 참고로 말한건데, 그러고도 치마는 유동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야밤의 학교는 무섭다. 괜히 학교 괴담이란 말이 나오고, 여고괴담이라는 호러영화가 나오겠는가? 만약 지금 어렸을 때라면 귀신을 수십 번 도 더 봤을 것이다.

“으……”

그때가 다시 떠오르는지 유하는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면서 한층 더 수아의 곁에 밀착했다. 그 거리가 몇 센티도 되지 않아, 남이 본다면 유하가 수아를 뒤에서 안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아가 앞에 가고 있다가 이내 걸음을 멈추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유하야 뭔가 남녀가 바뀐 거 같지 않아?”

“괘, 괜찮아! 나는 양성평등주의자니까.”

“이럴 때만?”

“아,아니야.”

평소에도 유하, 본인은 여자애들에 대해 남자아이들과 차별 없이 대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자애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아, 보여줄 기회가 없을 뿐이지.

‘…왠지 비참해졌다.’

한참 꽃으로 뒤덮여 있어야할 학창시절에 연애는커녕 여자애들과 말해본적도 없다니.

그때 자신의 앞에 손이 내밀어졌다.

“정말이지 이런거만 보면 어렸을때랑 변한게 없네.”

수아는 살짝 웃으며 유하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그 웃음에는 기쁜 기색도 느껴졌다.

“어쩔 수 없네. 손잡아 줄게.”

“으, 응.”

유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재빨리 수아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감촉이 느껴진다. 제법 두꺼워진 자신의 손에 비해 소녀의 손은 어릴 때 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거 없이 부드럽고 조그맣다. 어렸을 때는 항상 애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헛것을 보고 울고 있으면 수아의 손을 잡고 집까지 같이 가곤 했었는데.

“그럼 갈게.”

수아가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자 유하도 살짝 앞으로 걸어갔다. 달빛이 워낙 강했던지라, 교내를 걷는것에는 그다지 문제점이 없었다. 그때였다.

“거기, 누, 누구 있어요?”

2층층계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약한 손전등빛이 자신들을 비춘다. 갑작스러운 빛에 유하와 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미, 미안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재빨리 손전등을 거뒀다.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이 제대로 두 명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서 선생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서실의 작은 공주님이라고 불리는 유하린이었다. 다만 낮과는 많이 달라보였다. 평소 하린의 근무 복장은 발목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쉬폰 롱스커트에 하얀색 와이셔츠에 여성용 넥타이이었고, 곱슬 진 긴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내린 후 리본이 장식된 헤어밴드를 착용했다. 도서실의 작은 공주님이라는 별명은 하린이의 외모뿐만 아니라 소녀의 옷차림에서도 나온 별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의도 검은색 핫팬츠로 예쁘고 가녀린 다리가 쭉 뻗어있었고, 상의도 평소와 달리 하얀 반팔 면티를 입은 덕분에 가녀린 그녀의 몸매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머리카락은 평소와 같이 스트레이트도 뒀지만 머리띠는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옆에는 대학생이 가지고 다닐법한 커다란 사이드 백을 매고 있었다. 그 가방크기가 어찌나 크던지 소녀의 바지 전부를 가릴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바지를 안 입은 것처럼 보일정도였다. 평소에는 보지 못할 소녀의 모습에 유하는 자신도 모르게 헤-하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것만으로도 야밤에 학교에 온 게 약간이나마 보상되는 느낌이었다.

콱!

힘을 주어 수아가 유하의 발등을 지그시 밟았다.

“아얏!”

발등에서 느껴지는 시큰한 아픔에 유하가 수아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짧은 코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런데 왜 여러분들이 이, 이 시간에 하, 학교에 있는 건가요?”

여전히 말하기가 어려운 듯 소녀는 재빨리 가방을 들어 반쯤 얼굴을 가리며 물었다. 역시 사서 선생님은 귀엽구나.

한편 하린이는 유하와 수아를 유심히 쳐다보며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1)이미 늦은 학교 안.

2)찰싹 달라붙어 있는 소년과 소녀. 자세히 보면 소년의 손과 소녀의 손은 꽉 잡고 있다.

3)소년의 옷은 보통 옷인데 소녀의 옷은 교복이다. 그것도 교복을 고쳐 입어 만화책에서나 나올법한 교복과 흡사하다.

4)얼마 전에 봤던 만화책에 따르자면 이다음에 이뤄질건…

“아우우우! 아,아아안돼요! 저, 저는 교사로서 이, 이다음에 이뤄질걸 인정 할 수 없어요! 무, 물론 사, 사랑은 좋은 거지만! 아, 아직 우리나라는 그 정도로 개방된 나라도 아니랄까, 서, 선생님 생각에는 두, 둘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거, 건전한 교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인 체 금방이라도 머리에서 김이 날것처럼 양팔을 방방 흔드는 하린이를 보며 이내 수아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유하 때문에 꽉 잡고 있는 손. 바보 커플 저리가라 할 정도로 붙어있는 몸. 자신의 교복. 야밤의 학교. 이걸로 연상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우,우아아앗!”

유하를 있는 힘껏 밀어버리며 수아가 재빨리 변명한다.

한편 유하는 수아의 힘에 복도 벽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치고 비틀비틀 거리다 우연히 그 옆에 있는 소화기 받침대에 발가락이 찧어 방방 뛰다가 그것도 모자라 얼마 전에 락스 칠을 해서 미끄러운 복도에 그대로 미끄러져 복도를 두세 바퀴나 굴렀는데도 불구하고 두 소녀는 여전히 자신에게 관심 없이 자기변명만 하고 있었다.

‘왠지 불행해…’

갑자기 어느 소설속의 주인공이 할법한 말이 떠오르는 유하였다.

“그, 그래서 여러분들은 교, 교실에 놓아둔 자료를 찾기 위해 이 시간에 학교에 찾아왔다는 말인가요?”

“예, 내일부터 수행평가 발표를 해야 하는데. 유하가 놓고 와서요.”

내가 언제!! 라고 유하는 외치고 싶었지만, 수아가 생긋 웃으면서 주는 무언의 압박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수아가 하린이에게 물었다.

“그러는 작은 공주님께서는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우, 우! 저, 저는 공주님이 아, 아니에요! 저, 저는 서, 선생님이에요.”

“아, 실례. 선생님께서는 여기는 웬일이시나요?”

생글 생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수아가 묻자, 하린이는 ‘우…’하고 짧게 볼멘소리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여러분이랑 비슷해요. 내, 내일까지 내야할 처리해서 내야 할 서류가 있는데 깜빡하고 여, 역시 저, 저 같은 구, 구제 불능은 이, 이곳에 있으면 안 된 거에요! 내, 내일 당장 이사장님께 사표내고-”

“선생님. 괜찮아요. 그 정도 실수는 누구나 다 한걸요. 저희도…(옆에서 수아가 살짝 눈을 찌푸리며 쏘아봤다.).아니 저도 실수를 해서 학교까지 다시 온걸요. 그러니까 그 정도 실수는 누구나 다해요.”

“그래요. 선생님. 저도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온걸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너무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되요.”

“저, 정말 그런가요?”

“그럼요. 괜찮아요.”

“여, 여러분들은 저, 정말 좋은 학생이군요! 저 감동했어요!”

수아의 말에 그대로 활짝 웃는 하린. 과연 학교 제일의 미소녀라는 이명은 괜히 있을게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웃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후광이 비취며-단순한 달빛이다.― 어두컴컴한 주변이 확 밝아지는 것 같다-이것도 달빛의 효과다.―. 라고 유하는 생각했다.

“어쨌든 도서실까지 가신다고 하셨죠? 저희도 4층에 있는 2학년 교실에 가고 있거든요. 괜찮으면 같이 가세요.”

“예! 그렇게 하도록 해요!”

수아의 말에 하린이는 벌떡 일어나 다시 손전등 빛을 비추며 천천히 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려는 수아의 옷자락을 유하가 잡아당겼다. 수아가 그를 향해 돌아봤다.

“손 필요해?”

“아냐! 그게 아니라. 너, 왜 선생님께 왜 그러는 거야?”

“뭘?”

모르는 척 태연히 수아가 조용히 되물었다. 유하는 소곤소곤 더 작게 말을 이어갔다.

“너, 그 공주님이라는 별명 선생님이 싫어하는 거 알고 있잖아.”

“어라, 들켰어? 왠일일까,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우리 진유하군께서?"

모르는 게 바보지.

학교의 작은 공주님이라는 별명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에게까지 널리 퍼진 별명이지만, 정작 본인은 가장 싫어하는 별명이었다. 공주님이라고 불리는 것 자체에 대해 부담스러운 것 같고, 사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지 공주님처럼 보호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본인 앞에서는 웬만해서는 그 별명을 안 쓰려하는데, 수아는 대놓고 작은 공주님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수아는 하린이의 뒷모습을 봐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왠지 마음에 안 들어. 저사람. 뭔가 잔뜩 가면을 쓰고 있는 거 같아서.”

“가면? 무슨 가면?”

“모르면 됐어. 알 필요도 없고.”

그러면 무뚝뚝하게 수아는 하린이의 뒤를 쫓아갔다.

원래 1층에서 3층까지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하린이는 3층층계 앞에서 유하와 수아에게 말했다.

“그럼 여기에서 기다려주세요. 제가 금방 가서 서류를 가지고 올 테니까요.”

“예, 저희도 여기서 기다릴 테니. 천천히 용무를 보고 오세요. 선생님.”

생긋.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수아가 배웅하자, 하린이는 손전등을 가지고 3층에 있는 도서실로 향해 갔다. 분명 아까까지는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저렇게 웃으며 배웅하는 수아를 보며 유하는 새삼 여자의 무서움을 느꼈다. 수아는 3층 도서실 불빛이 켜진 걸 확인하자마자 유하의 손을 낚아챘다.

“왜 그래?!”

“빨리 뛰어! 12시 정시에 거울 앞에 서 있어야한다 말이야!”

그러면서 막무가내로 수아가 유하를 이끌고 계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3층과 4층의 중간 층계. 그곳에 있는 거대한 거울 앞에 유하와 수아가 선다.

‘겨, 결국 와버렸네.’

어떻게든 오기 싫었는데. 도대체 나란 인간은 왜 감당하지 못할 말을 해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걸까. 유하는 다시 한 번 낮에 대책 없는 말을 한 자신의 입을 때려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내.

[열두시!]

알람으로 맞춰둔 핸드폰의 시계가 복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긴장이 유하를 감쌌다. 수아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게 십 초. 침묵이 그 둘을 감쌌다.

그리고 유하의 표정이 한순간에 밝아지며 말했다.

“역시 헛소문이었구나. 그 보랏빛 거울. 이걸로 됐지? 빨리 우리도 내려가자.”

바로 그 순간!

우우우웅!!

어디선가 공기가 떨려오는 소리가 들려온 듯싶더니-!

“?!”

거울의 윗면부터 천천히 보라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물감이 물에 번져나가듯 그 보랏빛은 천천히 하지만 어느 무엇보다 빠르게 거울 전체를 물들여가고 있었다. 그 광경에 유하도, 심지어 수아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거울이 보라색으로 완벽하게 물들었을 때!

화아아아악!!

거대한 빛무리가 그 둘을 감쌌다. 유하는 순간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4)

“으,으으음……?”

유하는 조용히 눈을 떴다. 눈에 보이는 건 노을 진 풍경이었다. 주변은 동네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공원이었다. 그곳에는 나무도 많지만, 중심에는 아이들이 놀기 위한 놀이터가 있었다.

‘여긴, 놀이터…?’

하지만 놀이기구가 워낙 낡아서 아이들은 아무도 찾지 않은 장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 수아와 유하가 둘이서만 놀았던 장소. 하지만 이 장소는 그가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공원 재 조성 사업으로 인해 사라졌다. 그런 장소가 어떻게 여기에. 거기다 내가 이렇게도 키가 작았던가?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너.”

“응?”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특유의 사이드 테일에 큼직한 눈. 몸이나 키는 영락없는 초등학생의 모습. 움직이기 편하게 소녀는 캐릭터가 프린트된 반팔 티와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소녀의 하얀 허벅지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수아였다.

“거기서 또 울고 있었던 거야?”

“울어? 내가?”

“그래! 울보 유하. 아까 너 놀리던 애들은 내가 혼내줬으니까,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러면서 수아는 천천히 다가와 유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이지. 유하는 나없으면 안되는구나.”

그러면서도 뭔가는 안심하듯 수아는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야. 우리 고등학생이 잖…”

“하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꿈이라도 꾼 거야?”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는 수아의 말에 유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꿈…이라고?”

“그래, 꿈! 아니면 뭐야! 지금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수아의 강압적인 말에 유하는 움찔했다. 수아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그러니까 고등학생이었던 건 꿈일 것이다.

“자, 돌아가자. 다시 우리 [둘]만 있자. 유하야.”

수아가 손을 내민다. 유하는 어렸을 때처럼 그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빨. 리. 제. 정. 신. 안.차.려.요!!!”

어디선가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며 무언가가 자신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한순간에 균형을 잃어버렸다.

“우아아아악!!”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머리도 아프다. 그리고 어지럽다. 이 모든 걸 종합해 하나로 묘사하자면 계단에서 미끄러져 뒹군 것 같은 충격이었다.

**

“……으, 으윽?”

아찔한 고통에 눈을 뜬 유하의 눈에 보이는 건 자신의 위에 올라타 쓰러진 하린이의 모습이었다. 여름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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