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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죽음의 날
글쓴이: Volf
작성일: 12-07-03 17:36 조회: 2,200 추천: 0 비추천: 0

2014년 4월 4일, 16;00, 날씨 흐림

[범사에 감사해라] 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왜 그런 당연한 것에 감사해야 하냐고 생각했다.

***

헉, 헉, 헉.

지저분한 오물이 널려있는 골목길을 달린다.

헉, 헉, 헉.

이마에 흐르는 땀을 더러운 교복 소매로 훔친다.

헉, 헉, 헉.

찢어진 교복바지 군데군데 상처 입은 다리에 다시 힘을 준다.

증기를 뿜어내는 과열된 엔진처럼 거칠게 숨을 토하며 ‘살아있는’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천천히 나를 쫓아오는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독한 놈들.........”

벽에 잠시 몸을 기대며 중얼거린다. 네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달린 탓에 다리가 휴식을 요구하며 후들거린다.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그들의 공허한 눈동자를 마주본다.

누구는 키가 작고, 누구는 키가 크다.

누구는 뚱뚱하고, 누구는 말랐다.

누구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사무원, 누구는 교복차림의 동갑내기 학생, 누구는 헐렁한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

공통점 없는 다양한 복장,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무려 세 가지나 있다.

첫 번째, 네 시간동안 쉬지도 않고 나를 쫒아왔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다는 것.

두 번째, 다들 하나같이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세 번째.

다들 사람이 아니라는 것.

사람이었으면 겁을 줘서 도망치게 했을 것이다.

사람이었으면 요리조리 도망쳐 지쳐 떨어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람이었으면 네 시간 동안 나 하나만 노리고 쫒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겁먹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지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집요하다.

수많은 창백한 얼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구멍이 텅 비었거나 눈알이 썩어 문드러져 나를 볼 수 없는 얼굴들도 하나 둘 끼어 있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그들이 내 살점과 피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처럼 석 달 동안 그들과 부대껴보지 않았어도 지금 그들이 걸치고 있는 옷에 묻어있는 핏자국과 살점 조각들을 보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축 늘어뜨린 팔을 휘적휘적 흔들며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들. 확실히 보통 사람보다 둔한 움직임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그들의 무서운 점은 인간보다 우월한 신체능력이 아닌 압도적인 숫자니까. 느림보라고 얕잡아 봤다간 어느새 불어난 숫자에 압도당해 허둥지둥 당황하다 그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거나, 똑같이 창백한 얼굴과 초점 없는 눈동자로 사이좋게 거리를 산책하는 신세가 된다.

그래, 그들은 좀비다.

오늘, 처음에 나를 쫓아오기 시작한 건 한 두 명의 좀비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뒤를 쫓아오는 좀비들은 열 명, 스무 명으로 불어났고, 결국 마흔 명이나 되는 좀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젠장!”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가쁜 호흡이 좀 진정된 데다, 뭣보다 좀비들이 어느새 내 코 앞 까지 밀려왔으니까.

대형마트에 간다는 원래 목적은 어느새 산산조각 나 버렸지만, 목숨이 우선이기에 어쩔 수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최대한 멀리 그리고 복잡한 경로로 좀비들을 혼란시키며 은신처로 후퇴하는 것 뿐 이다.

터벅터벅,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놈들을 흘끗 바라보며 계획을 짰다. 이대로 쭉 달리다 보면 세 갈래로 갈라진 길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좀비들을 따돌리는 것이다.

계속 앞만 보며 달린다. 도중에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 것과 누군가 길에 쌓아놓은 내 키 만한 쓰레기봉투 바리케이드를 걷어내다 손가락을 찔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 우와앗!!”

쓰레기봉투를 치우자마자 구더기가 꿈틀대는 허여멀건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친 것보다 놀라운 일은 아닐 테니까.

소스라치게 놀란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고동친다. 허둥지둥 뒤로 물러서기가 무섭게, 핏줄이 보일 정도로 창백한 손들이 하나 둘 쓰레기봉투 벽을 온 몸으로 밀어 무너뜨리며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앞뒤에서 동시에 나를 향해 휘적휘적 걸어오는 좀비들의 모습에 등이 축축해지는 걸 느끼며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길의 양 옆은 스프레이로 조잡하게 칠한 낙서와 피로 지저분해진 벽, 그리고 엉망진창으로 파괴된 상점들로 가로막혀 있다.

독안에 든 쥐처럼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나에게 마치 포기하라는 듯 터벅터벅 걸음소릴 내며 천천히 다가오는 좀비들을 노려보며 나를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싫다.

여기서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나에겐,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붕대와 반창고 투성이인 손을 피가 나도록 꽈악 쥐며,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편의점, 문구점, 그리고 세탁소를 지나 철물점 간판이 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저기다!

0.01초의 망설임 없이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한 철물점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좀비들도 서서히 내가 들어간 철물점을 향해 따라 들어온다. 재빨리 문을 쾅 닫아버리자, 문을 잡고 있던 좀비의 창백한 손가락 몇 개가 탁한 피를 흘리며 철물점의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진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손가락에 역겨워할 시간도 없이, 다시 문을 열려는 창백한 손들에 맞서 선반에 놓여있던 녹슨 철사로 문 손잡이와 문틀을 칭칭 감아 고정시킨 뒤 근처의 낡은 테이블도 끌어와서 문을 막아버렸다.

너덜너덜한 문을 봤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 앞에 펼쳐진 황량하기 짝이 없는 철물점을 본 나는 적잖게 실망했다.

공구나 접착제 등 잡동사니들로 가득했을 철제 선반들은 텅텅 비어있었고 그 사이로 녹슨 삽 몇 자루와 뭔지 모를 화학약품 통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 목표는 따로 있으니까. 애써 마음을 다잡고 나는 고개를 들어 문 맞은 편에 뚫린, 먼지와 거미줄이 잔뜩 끼여 지저분한 창문을 바라봤다.

약간 높은 곳에 뚫려있기 때문에 나는 통과할 수 있어도 좀비는 통과하지 못한다. 놈들의 썩어버린 뇌로는 지금 내가 계획한 것처럼 의자를 받침대 삼아 높은데 있는 창문을 넘는 간단한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하니까. 창문도 내 상반신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는 된다.

등 뒤에서 창백한 손으로 닫힌 문을 두드려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창문으로 손을 뻗었다.

이 창문의 잠금장치를 풀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손에 엉겨 붙는 거미줄의 감촉이 굉장히 기분 나쁘다. 다리끼리 키가 안 맞는 싸구려 의자는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에 맞춰 불안하게 흔들거린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감각 따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모든 정신을 오로지 창문의 잠금장치를 푸는 데만 집중한다. 그러나 녹이 잔뜩 슨 잠금장치는 삐거덕거리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만 낼 뿐 도무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쾅, 쾅, 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다.

거미줄이 잔뜩 엉겨 붙은, 상처투성이 손가락이 잠금장치를 건드린다.

삐거덕 삐거덕, 잠금장치가 붉은 녹을 흘리며 신음한다.

쾅, 쾅, 쾅! 삐거덕 삐거덕, 덜컹덜컹.

창백한 손바닥을 막아내고 있는 문의 비명이 점점 거세질수록, 긴장으로 조여든 뇌가 아드레날린을 마구 뿜어낸다. 그리고 그 아드레날린을 연료로 삼아 머릿속에서 불붙기 시작한 짜증이 마침내 폭발한다.

“빌어먹을, 왜 안 열리는 거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허리에 차고 있던 망치를 끌러 있는 힘껏 창문을 후려쳤다. 와장창! 창살이 밉살스러운 잠금장치와 함께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동시에 나를 지지하고 있던 의자의 한쪽 다리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부러진다. 당연히 그 위에 있던 나는 바닥으로 자유낙하.

“윽!”

골반 사이에 숨어있는 꼬리뼈가 뚝 분질러지는 것 같은 아픔과 함께, 창문 깨지는 소리에 화답하듯 지금까지 좀비들을 막고 있던 테이블이 시멘트 바닥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그 열린 문 사이로 마치 오물처럼 들이닥치는 좀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아, 하아........”

상황이 아까보다 더 나빠졌다. 내 등 뒤에는 단단한 콘크리트 벽. 빠져나갈 수 있는 창문이 있지만 받침대 삼아야 할 의자는 한쪽 다리가 부러진 상황. 그리고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좀비들. 도대체 오늘 마가 끼기라도 했는지, 도무지 잘 돌아가는 게 없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 속에서 심호흡을 하며 애써 냉정을 찾으려 노력하는 그때, 내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그래, ‘저것’이라면 이 상황을 반전시켜줄지도 모른다.

나는 창문을 후려 갈겼던 망치를 다시 허리에 차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녹슨 삽을 양손으로 힘껏 쥐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다가오던 좀비 하나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후려 갈겼다.

퍼억, 우드득!

나와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 좀비가 목뼈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휘청거린다.

움찔, 움찔.

이상한 방향으로 목이 돌아간 좀비가 나를 향해 흙과 핏자국, 그리고 살점으로 더럽혀진 손을 뻗는다. 나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어금니를 꽉 악물고 삽날로 소녀 좀비의 목을 내리찍는 것으로 답했다.

푸학! 두 번 다시 듣기 싫을 정도로 섬뜩한 파육음을 내며 삽날이 좀비의 창백한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창백한 피부와는 대조되는 검붉은 액체가 철물점 천장을 향해 촤아악 분수처럼 뿜어지는 게 내 눈동자에 비춰졌다.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간 것도 모자라, 이제는 떨어질듯 말듯 건들거리는 목으로 소녀 좀비가 다 죽어가는 벌레처럼 바들바들 몸을 떨며 다가온다. 그 끔찍한 몰골과 함께 검붉고 탁한 피비린내가 바늘처럼 코를 찌른다.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는 걸 억누르며 부들거리는 몸뚱이를 발로 걷어 차버리자, 건들거리던 목이 뚝 떨어지며 내 발 앞으로 데구르르 굴러온다.

피에 젖은 창백한 얼굴, 그 속에 박힌 공허한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 본다.

“윽.........!”

이제 내 정신력은 바닥났다. 뱃속에서 시큼한 뭔가가 울컥 올라오려는 것을 겨우 억누른 나는, 자신이 취했다는 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어떤 동화의 술꾼처럼 일부러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삽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아!!”

까앙, 와이셔츠 차림의 좀비가 머리가 함몰되며 옆으로 쓰러진다.

서걱, 지저분한 앞치마와 고무장화 차림의 좀비 손목이 잘려나간다.

푸왁, 삽날에 찔린 여자 좀비의 배에서 부패한 내장이 검붉은 액체와 함께 시멘트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사람이라면, 내가 이 정도로 저항하는 걸 보고 다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겠지만 이놈들은 좀비. 어떠한 감정도 이성도 없이 잠시 주춤거리기만 할 뿐 다시 일어나 나를 향해 걸어온다. 아까 머리를 함몰시켰던 와이셔츠 좀비의 가슴팍에 삽날을 쑤셔박아 밀쳐버리고,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먼지 잔뜩 낀 낡은 플라스틱 신너 통을 집어들어 상처투성이 손으로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먼지가 잔뜩 끼어 있는 탓인지, 아니면 위험한 화학물이라 열기 힘들게 해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 빌어먹을 신너 통은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것처럼 도무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열려라, 제발 좀 열려!”

다급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한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고 누가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날 보니 헛소리는 아닌 것 같다. 결국 신너 통의 입구 부분을 맨손으로 비틀어 뜯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반창고로 뒤덮힌 손가락의 상처가 벌어지고 그 사이로 신너가 들어가서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따갑고 쓰라렸지만 지금 그런 걸로 불평하는 건 사치다.

“저리 가, 까져버려!”

촥, 촤아악, 놈들을 향해 신너를 뿌린다. 역시나 사람 같으면 얼굴과 눈에 신너가 끼얹어졌으니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겠지만 좀비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럼, 이래도 끄떡 안하나 볼까?

텅 빈 신너 통을 집어던지고 호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그었다.

타악, 성냥 끝에서 작은 불꽃이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타오른다. 나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성냥을 신너를 뒤집어 쓴 좀비들에게 던졌다.

마치 별똥별처럼 꼬리를 그리며 날아가던 성냥은, 좀비의 창백한 몸에 닿기 무섭게 화아아악 소리를 내며 거세게 피어올랐다. 내 손톱만하던 불꽃은 순식간에 엄청난 크기로 몸집을 불려 좀비의 창백한 몸을 순식간에 집어 삼키며 타닥타닥 포효한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온몸이 불에 휩싸인 채 좀비가 허우적거린 탓에 주변 좀비들에게로 불이 옮겨 붙기 시작한 것이다. 화륵, 화르르륵. 순식간에 좀비 서넛이 불덩어리가 되어 물에 빠진 것처럼 팔다리를 허우적거린다.

“콜록, 콜록!”

화아아악, 순식간에 철물점 안으로 불이 번져나간다. 화학약품에 적셔진 부패한 살을 삼키는 역겨운 냄새와 매캐한 연기로 한치 앞도 안보이게 된 상황 속에서, 나는 바닥을 더듬어 부서진 의자를 가까스로 찾았다.

다리가 부러졌지만 재빨리 창문으로 몸을 걸쳐놓기만 하면 될 것이다. 의자를 벽에 기대고 그 위에 올라선 0.01초 만에 나는 창틀이 부숴진 창문으로 있는 힘껏 얼굴을 들이 밀었다. 창틀에 남아있는 유리조각 하나가 내 뺨을 살짝 긁었다거나, 불길 속에 허우적거리던 좀비 하나가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리는 내 바짓단을 거의 붙잡을 뻔 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건 내 생존, 그것 하나 뿐 이니까.

높이가 조금 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곧바로 몸을 밀어 창문 바깥으로 떨어졌다.

“크윽!”

털푸덕! 하는 둔중한 소리에 맞먹는 둔중한 통증이 왼쪽 어께를 후려쳤다.

시멘트가 깔린 맨바닥에 떨어졌으면 어께 뼈가 박살났을 거지만, 다행스럽게도 철물점 뒤편에 깔린 오만가지 잡동사니들이 완충 역할을 해서 그런 불행한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그 잡동사니 때문에 쓰레기 냄새가 베어버린 것과 교복 어께부분이 찢어진 건 결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지만.

“후우, 후우.......”

위기를 모면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갑자기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께가 무거워진다. 아무것도 잊고 이대로 한숨 자버리고 싶었지만 애써 몸을 털고 일어났다.

지쳐버린 들개처럼 푸욱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빠져나온 창문을 바라봤다. 부패한 단백질을 연료로 삼은 역하고 매캐한 연기가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빠져나가고 있었다.

“집단 화장이로군.”

은신처까진 제법 멀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걷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도 듣지 못할 재미없는 농담을, 마치 비웃는 말투로 지껄인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

서울의 번화가에서 약간 후미진 곳에 있는 반지하실. 이곳이 내 은신처다.

내가 오기 이전에 이 반지하실에 누가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른 후보지보다 깔끔한데다 여간해서는 좀비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아 이곳을 은신처로 삼겠다고 결정 한 게 벌써 석 달 전의 이야기다.

“으으윽, 우욱!”

좀비의 눈동자처럼 새까만 밤하늘 아래, 군데군데 깨지고 휘어진 가로등 불을 등에 받으며 그 반지하 은신처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변기를 붙잡고 잔뜩 토악질을 했다. 잘려나간 소녀 좀비의 목이 자꾸 머릿속에서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헉, 헉........”

석 달 정도 놈들과 부대꼈으면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할 텐데 내가 비위가 약한 건지 아니면 모두들 그런 건지, 여전히 좀비들이 익숙하지 않다. 부패하는 창백한 피부와 초점 없이 퀭한 눈동자, 그리고 힘없이 사지를 늘어뜨린 채 걸어오는 그 몸동작.......무엇 하나 역겹고 메슥거리지 않는 부분이 없다.

대충 구토를 끝낸 나는 변기 옆에 묶어둔 신문지 뭉치를 조금 찢어 입을 닦았다. 반지하실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오렌지색으로 물든 2014년 1월자 신문에는 ‘전국에 걸쳐 발생한 의문의 괴질’이라는 헤드라인이 붙어 있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석 달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지저분하게 얼룩진 신문지 조각을 변기에 넣었다.

석 달 전부터 대한민국에는 이상한 괴질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괴질에 걸린 사람들이 감기 증상을 보였기 때문에 정부도, 사람들도 예전에 유행했던 신종 플루가 또다시 재발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백신인 터미플루를 마구잡이로 사재기하기 시작했다는 것만 뺀다면 별 다를 게 없는 평범한 1월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뒤.

괴질에 걸려 죽은 사람이 하나 둘 나오면서 모든 것이 변해버릴 줄은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몰랐다.

변기 옆에 있는 세면기의 녹슨 수도꼭지를 튼다. 쪼로로로 소리를 내며 기운 없이 흘러내리는 게 영 시원찮지만, 처음에 녹물 나와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것도 감사히 써야 할 판이다.

“앗 따거!”

깨끗하고 차가운 수돗물이 반창고와 붕대 투성이 손에 닿자 알싸한 쓰라림이 느껴진다. 게다가 아까 신너통을 무리하게 열 때 아물고 있던 상처가 벌어져 더욱 더 쓰라리다.

빨리 장갑을 찾아서 껴야 할 텐데, 주변에는 내 손에 맞는 장갑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덕분에 내 손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상처투성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은신처 안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전국에 계엄령 선포’ 란 헤드라인이 써진 신문지를 뜯어 손의 물기를 닦았다. 헤드라인 밑에 총을 든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있는 군인들의 사진이 보인다. 괴질어 걸려 죽은 사람이 나온 뒤 머지않아 계엄령이 선포된 그날은, 지금 대한민국 땅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음의 날’ 이라고 붙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맑고 화창했다.

그때 나는 어디 있었는지, 그리고 ‘죽음의 날’이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따위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심지어 지금 내 머릿속에는 왜 갑자기 대한민국이 좀비천지가 되었을까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의문조차도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다. 의문을 풀 최소한의 단서마저 없는 것도 그렇고, 뭣보다도 정신과 육체 모두 다 궁지에 내밀린 지금 그런 걸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조차도 사치니까.

손을 씻은 뒤, 교복 주머니에서 이젠 하도 짜내서 납작해져 버린 메이드카솔 연고를 꺼내 아까 철물점을 나서며 뺨에 입었던 상처와 손에 발랐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연고를 바르는 게 청승맞아 보이는 거 안다. 하지만 전등을 킬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전기 자체가 아예 안 들어올뿐더러, 밤중에 훤히 불을 켜놓고 있으면 좀비들에게 나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꼴밖에 안 되니까. 게다가 위협이 되는 건 좀비 하나뿐만이 아니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생존자가 나쁜 생각을 품고 접근해 올 수도 있다. 물론 죽음의 날 이후로 석 달 동안 사람 한명 제대로 본 적 없으니 걱정이 지나친 걸지도 모르겠으나,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이럴 때 뭐든 철저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반지하실 문에 덕지덕지 매달린 잠금장치들처럼 말이지.

철사를 대충 휘어 만든 조잡한 걸쇠에서부터 자물쇠까지 총 다섯 가지의 잠금장치를 전부 채운 뒤, 나는 방 한가운데 놓여있는 낡아빠진 황토색 소파에 벌러덩 몸을 누였다. 그리고 소파 옆에 다리가 부러져 거의 비스듬히 기대놓다시피 한 협탁에서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크림빵을 집어 들어 우물우물 먹었다. 달콤한 크림의 당분이 지쳐있는 뇌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걸 느끼며, 나는 내일 뭘 할 건지 계획하기 시작했다.

뭐 언제나 계획이라고 해봐야 언제나 내일 먹을 걸 찾는다거나 쓸 만한 생필품을 어디서 어떻게 구해온다 정도가 전부였었지만, 며칠 전 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종이조각을 꺼냈다. 손바닥 절반만한 크기에 뻣뻣하게 코팅된 종이조각에는, 큼직하게 인쇄된 ‘부산 임시정부’라는 글씨와 함께 대한민국 국새와 대통령 사인이 있다. 며칠 전 서울 상공을 날아가던 비행기에서 뿌린 이 종이 한 장이 모든 걸 바꿔놨다.

흔히 이런 상황에서는 근거 없는 헛소문이 퍼져 사람들을 낚아댄다고 하지만, 헛소문도 그걸 만들어 퍼뜨리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하는 법이다. 석 달 동안 사람 구경 한번 못해본 나는 근거없는 헛소문에 낚일 가능성 자체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같은 비상시에 단순히 사람을 낚으려고 비행기까지 동원할 바보가 있을 리도 없다.

따라서 이 종이를 줍고 며칠 고민한 끝에,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은신처를 떠나, 저 부산 임시정부란 곳으로 가겠다고.

잘 알고 있다. 아무런 교통 수단 없이 오직 내 두 발에 의존해 서울에서 부산이란 먼 거리를 걸어가야 된다. 설상가상으로 사방에서 좀비가 득시글거리고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될지, 있어도 과연 나에게 호의적일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언제 도착할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여정을 떠나겠다는 내가 제정신으로 보진 않겠지.

하지만 부산에 도착해서 내가 얻을 이익을 생각해 본다면, 그 정도 위험은 무릅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부산에 도착해서 정부에 합류한다면 국민으로 인정받아 여러 가지 위험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나이도 어리다. 정부 입장에서도, 충분히 노동력으로 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사실 이게 더 중요한 이유인데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이곳에서 살아남아 뉴질랜드로 가야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한 상황에서는 뉴질랜드로 가겠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부산 임시정부에 합류한다면 어떻게든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몇 퍼센트인지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최소한 지금보다는 가능성이 늘어날 것은 분명하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목에 걸고 있던 작은 은색 별 모양의 펜던트를 열었다. 안에는 창백한 얼굴의 여자아이가 수줍은 미소를 지은 채 큰 곰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 들어있다.

한지혜, 내 여동생이다. 몸이 약한 터라 ‘죽음의 날’이 일어나기 일 년 전, 삼촌과 함께 뉴질랜드로 요양을 떠났다. 지병을 안고 있어서 늘 고생 했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본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뉴질랜드로 가는 걸 고집하는 건 내 동생 때문이다.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없는 지금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다면 지혜는 그야말로 혈육 하나 없는 외톨이가 돼 버린다. 그렇게 놔 둘 수는 없다. 지금껏 석 달 동안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맞았지만, 그때마다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던 데엔 ‘반드시 살아남아 지혜와 다시 만나겠다’ 는 의지의 힘도 무시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난 부산으로, 뉴질랜드로 가야 한다.

반드시.

그리고 부산으로 가려면.........

***

톡, 토독.

반지하실의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군데군데 장판이 벗겨진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음습한 냉기를 느끼며, 나는 벽에 걸린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벽시계를 쳐다봤다. 파르스름한 새벽빛에 비춰진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부산에 갈 궁리를 하다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다섯 시간 정도 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다. 해가 본격적으로 뜨는 여섯시부터 좀비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해야 한다.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너덜너덜 넝마가 돼버린 교복을 벗고 숨겨놨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흰색 반팔남방에 연갈색 가죽재킷, 그리고 청바지. 내 옷은 아니고, 헌옷 수거함에 있던 옷 중 그래도 가장 깨끗한 것들만 추린 거다. 이것들 구하느라 동네를 몇 바퀴 돌면서 좀비들과 술래잡기 했던 기억은.........정말이지 돈 주고 이야기해보라고 해도 이야기 하기 싫다.

어쨌든 그렇게 고생해서 구한 옷을 젖게 할 순 없으니 그 위에 비옷을 입는다. 레이서 헬멧을 쓴 푸루룽이라는 펭귄 캐릭터 무늬가 있는 애들 취향의 디자인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감사하게 써야 할 판이다.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검은 책가방을 등에 짊어진다. 내가 걸친 것들 중 유일하게 헌옷 수거함 출신이 아닌 이 녀석은, 좀비들에게 쫓기던 중 들어가게 된 여교 교실에서 얻은 거다. 역시나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지만.

세면대 위에 걸어둔 금 간 손거울 앞에 서본다. 뭐, 이 정도면 비에 대한 대비는 된 것 같다. 마지막 크림빵의 봉지를 뜯으며 나는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반드시 ‘오마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언제 도착할지, 어떤 위험이 닥칠지 예측할 수 없는 여행다. 고로 음식이든 생필품이든 든든하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 나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은신처 밖으로 나가 거리를 헤매며 쓸모있는 것들을 찾고 챙길 수 있는 것들을 최대로 챙기고 있다.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 어제 내가 들어간 철물점의 경우처럼 이미 쓸 만한 물건은 먼저 온 사람들이 싹쓸이 해가는 바람에, 작은 가게들은 그리 수확이 신통치 않았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하루 먹을 걸 챙기는 게 고작일 뿐. 결국, 서울에서 내가 원하는 물건을 다량으로 구할 만한 곳은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대형 쇼핑매장 즉 지금 내가 목표로 삼는 ‘오마트’ 같은 곳 뿐이다.

어제 좀비들에게 쫓겼던 것도 번화가에 있는 오마트로 들어가려다 실패한 거다. 마트 근처에 제법 많은 좀비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어제처럼 진입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만 세어봐도 대충 여섯 번째.

그래도 이번에는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질지도 모른다. 왜냐고?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은신처 구석에 기대놓은 것을 천천히 끌어냈다.

그것은 낡은 자전거였다.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누런 녹이 슬어 있고 왼쪽의 플라스틱 손잡이가 반쯤 깨져 철제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다, 뒷바퀴 살의 삼분의 일 정도가 어디론가 가고 없어져 있다. 안장의 상태도 걸작인데, 군데군데 가죽이 터져 누런 스폰지가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다.

돈키호테의 말인 로시난테가 자전거로 환생한다면 아마 이런 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이 구닥다리 자전거는, 어제 철물점에서 좀비들을 집단 화장 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주운 거다. 낡아빠진 몰골에 비해 움직이는 건 제법 괜찮았던 지라 쓸 수 있을 때까진 써먹어 보려고 가져온 건데, 겉모습이야 어떻든 간에 자전거를 타면 기동성이 늘어나니까 좀비들을 따돌리기도 더 수월해질 것이다.

“결전의 시간이로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크림빵을 전부 먹어치우고 걸쇠와 자물쇠로 잠겼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전거를 반지하실 위로, 좀비들이 들끓는 죽음의 땅 위로 올렸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텅 비워둔 은신처가 나를 전송했다.

탁탁, 마치 전장에 나서는 기사가 자신의 애마를 토닥이는 것처럼 자전거의 낡아빠진 안장을 몇 번 두드리며 나는 다시 한 번 결의를 굳힌다.

이번이 일곱 번째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근처 상점들을 뒤져보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자전거 위에 올라탄다.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낡은 자전거가 서서히 앞으로 나가는 걸 느끼며 다리에 더욱 힘을 줬다. 까마귀의 깃털을 모아 만든 것처럼 검은 먹구름이 뒤덮은 하늘 아래, 습기로 축축한 새벽 공기를 헤치며 나아가는 내 머리 위로 빗방울들이 우비에 부딪혀 토독토독 소리를 냈다. 그게 행운을 예고하는 건지 아니면 불행을 경고하는 건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오마트를 향해 비오는 거리로 나아갔다.

***

[범사에 감사해라] 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왜 그런 당연한 것에 감사해야 하냐고 생각했다.

그래,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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