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고장난 거짓말쟁이와 꿈꾸는 사립탐정
글쓴이: 아스타르트
작성일: 12-07-03 16:43 조회: 1,853 추천: 0 비추천: 0

pr. 사립탐정은 꿈을 꾼다.

거짓. 거짓말.
예로부터 이 두 단어는 일종의 타부로서 남에게는 진실 되게 말하지 못하는 공공연한 비밀로서 내려져왔다. 역사상 수많은 창조와 개혁, 변혁과 발달은 저 두 단어로 시작해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세상은 거짓으로 이루어져있다. 거짓말을 하는 인간이 있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단순히 눈이 뇌로 보내오는 광경일 뿐 그것이 진실이라고 확정지을 수 없다. 어쩌면 눈앞의 사과는 바나나일지 모르고, 길을 걷는 사람들은 개나 돼지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느 것도 믿지 않는다. 진실에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러니깐 분명 눈앞의 믿지 못할 광경은 내가 거짓이라고 믿는 세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어때 ? 이래도 못 믿겠어 ?”
소녀는 헤엄치고 있었다.
유리처럼 투명한 그 소녀는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달빛을 받아 옅게 빛나며 하늘을 헤엄치고 있었다. 그것은 혹시 유령이라고 하는 것일까. 거짓된 세상을 더 진한 거짓으로 장식하는 무의미한 존재. 내 안의 유령의 정의는 이러했다. 검은 먹물에 진한 잉크를 떨어뜨린 것 같은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존재.
“그렇네. 못 믿겠는데. 애초에 아무것도 믿지 않았으니깐. ……그럼 너를 믿는 게 되는 건가.”
스스로의 모순에 실소를 머금었다.
지나친 부정은 긍정. 마이너스에 다시 마이너스를 곱하면 플러스. 눈앞의 유령은 나에겐 지나치게 모순적인 존재였다. 거짓된 세상에서 가장 거짓된 존재. 그럼 오히려 나는 저것을 믿어야 할지 모른다.
누군가에겐 플라즈마 덩어리인 저것을 나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좋은 것일까.
“…재미없네 너.”
소녀는 정색했다. 자신의 존재에 놀람도 의문도 가지지 않는 내가 어쩐지 못마땅한 것 같았다. 억울할 일도 많다. 유령이 놀라지 않는 인간에게 정색하다니.
“칭찬인가 ?”
“…욕이라구.”
“난 농담이었는데.”
“….”
소녀는 침묵했다.
나는 그 유령을 소녀라고 부르기로 했다. 유령의 존재를 인정했다 라기 보단 그것이 그녀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을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소녀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재미만 없는 줄 알았는데, 재수도 없구나.”
미약하게 냉기가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서늘하고, 차가운 그 분위기와 목소리에 나는 점점 내가 처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음을 직시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분위기에 나는 태연하게 마른 입술을 혀로 적셨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하는 특기, 특기라고 부르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아무튼 ‘그것’을 써서 이 자리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너는 유령일까 ?”
가볍게 대화를 시작한다.
“아니, 난 유령이 아냐.”
곧바로 영하로 떨어진 목소리는 영상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봄날을 그리워하는 개구리처럼 나는 그녀의 목소리 온도를 덥히고, 분위기를 쇄신해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럼, 넌 뭐지 ?”
“나도 몰라.”
기다렸던 대답. 스스로가 스스로를 모른다고 하는 가장 큰 허점. 나는 그 크고 건드리기 쉬운 허점을 파고들기로 했다.
“난 알 것 같은데.”
“…뭐 ?”
“난 니 정체를 알 것 같다고.”
“니가 무슨 수로.”

나는.
“일단 믿어봐. 난 알 수 있어.”
거짓말을.
“나에겐 그런 능력이 있거든.”
아주 잘한다.
“너의 정체가 지금도 눈에 선하게 보여.”
그것도 매우 자연스럽게.

거짓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지혜. 거짓말. 무엇보다 능숙하고, 무엇보다 자연스럽다. 거짓말에 뒤따르는 호흡의 변화, 심장 고동 수의 증가, 동공의 확장 같은 현상이 나에겐 전혀 없다. 그것은 곧 나의 거짓이 진실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의 분위기 자체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조금씩 흔들리던 움직임이 멈추고 떠돌던 눈빛이 나에게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도 아닌 플라즈마 덩어리도 아닌 그렇다고 안개는 더더욱 아닌 것이 무엇인지 그럴싸한 거짓말을 지어내야 한다.

“너는….”

머릿속으로 정리가 끝나고, 나의 입이 열렸다.
소녀의 눈이, 눈빛이, 호흡이, 정신이, 후각이, 촉각이, 그 외의 모든 감각이 나의 혀끝에 주목한다. 침을 삼키는 동작에 애달파한다. 조금씩 열리는 입이 답답한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그녀에게 현실이 된다. 내가 너는 유령이라고 말하면 그녀는 곧 유령이 된다. 그녀가 스모그에 의한 기이현상이다 라고 말하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 그녀에겐 상황을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고, 나에겐 ‘나의 능력’이라는 거짓이 근거가 되기 때문에 설득력은 몇 배로 상승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 상황에 달갑지 않은 이레귤러, 변칙이 끼어들었다.

“듣지마.”

다른 제 3자의 목소리.
나의 거짓을 현실로 만드는 작업을 방해하는 또 다른 목소리.
그 목소리는 눈앞의 불투명한 소녀의 것과는 다르게 교실에 적절히 울려 퍼지는 육성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놓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찰랑하고, 열린 운동장 쪽 창문에서 뒷문을 스치고 지나가는 달빛을 머금은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허공에 수놓았다. 바람에 담긴 달빛이 그녀의 매끄러운 머리카락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빼어난 외모를 가진 여학생이었지만, 그것이 그녀를 이루는 요소의 전부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에게 외모란 미비한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
아련함, 그리움과 외로움.
그런 깊고 짙은 감정을 가득 머금은 반투명한 동공이 나를 향해 있었다.
“…넌 뭐야.”
물었다. 내 목소리는 작고 어두웠다. 그렇기에 그것이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겨 나와 소녀의 사이로 걸어왔다. 교단을 장식한 소녀와 교실의 정중앙에 서있는 나의 사이로.
“잠시만 기다려줘.”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대할 때와는 너무나 다르게도 호의적이고, 호감이 있는듯한 행동이었다.
소녀와 여학생의 눈이 몇 초간 마주쳤을 뿐인데, 그것이 소녀에게 어떤 긍정적인 감정을 심어준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누구냐고 ?”
휙 하고 그녀가 몸을 돌렸다. 인위적인 몸놀림으로 하늘을 수놓는 머리카락이 코끝을 간지럽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몇 학년, 몇 반이야.”
어딘가 교직원 같은 질문이라는 생각에도 나는 실소를 참고, 그녀와 마주했다.
그리고.
나를 대신해서 눈앞의 여학생이 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한느루.”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저런 외모의 학생이라면 학교 내에 소문이 돌아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들어본 적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어지는 말 보다 더 이상할 수는 없었다.
“탐정이야.”
들어본 적 있는 직업이다. 누군가가 열광하는 평생 자라지 않을 것 같은 초등학생의 직업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추리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한느루’와 ‘탐정’의 조합만큼 이질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웃기시네.”
이번엔 내가 실소를 머금었다.


나 ?지아람-와 그녀-한느루-의 지독한 첫 만남이었다.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잊을 수 없는, 잊는 것이 불가능한.
그런 첫 만남이었다.

1) 거짓말쟁이는 고장이 났다.


“3월 31일이니깐. 31번.”
또 이런 패턴이다.
“오늘 31일 아닌데요.”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당연한 듯이 말했다.
주변의 모두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약하게 코웃음 치며 일어난 나를 쳐다보았으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맞으리라 본다.
“그래. 그럼…. 아니, 오늘 31일 맞잖아 ?”
쳇.
“31번. 지아람. 빨리 나와서 문제 풀어.”
속으로 혀를 차며, 나는 앉으려던 자세를 고쳐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칠판으로 직행. 약하게 키득키득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봐선 이런 내가 꼴 좋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벌써 4번째였으니깐.
“…망할 고전적인 선생들.”
틱, 틱 하고 몇 번 분필을 거칠게 휘둘러 약하게 성질을 냈다. 그걸 알아차릴리 만무한 선생이었지만, 다른 학우들은 모두 그런 내가 그저 고소한 듯, 웃기만 했다.
이것이 평소에 쌓은 업보라는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분필을 부러질 듯 강하게 휘두르는 것과 선생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욕을 하는 것뿐이었다.
“자, 맞았다. 이 부분 같은 경우는….”
자리로 돌아와 내가 풀어 놓은 문제를 다시 재 풀이하는 교사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보면 그 무의미한 행동에 나는 질렸다. 이미 내가 정확하게 적어 놓았던 것을 그저 다시 풀어가는 모습에서 고개를 돌려 교실 한편에 걸려 있는 달력을 쳐다보았다.
3월 31일. 그리고 나의 번호 31번. 벌써 5교시 중 4번의 수업에서 나를 지명했다. 나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지명에 지쳐있었고, 짜증나 있었다. 난 평범하게 눈에 띄고 싶지 않다.
띵,동,댕,동.
천편일륜적이다 못해 혹시 태초에 학교라는 것이 있었어도 이런 식의 종소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신물이 나는 종소리에 교사는 칠판에 공식을 적던 손놀림을 멈췄다.
“여기까지. 그럼.”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가는 교사의 모습이 왠지 처량했다. 아무래도 뒤에서 눈에 힘을 주고 있는 학생들이 무서웠나 보다.
어쨌든 수업은 끝났다. 뻐근한 팔을 뻗어 가볍게 기지개를 펴고 책상에 엎드렸다. 이럴 때 일수록 체력의 충전은 중요하다.
“성공률이 0에 수렴한다. 그치 ?”
“…말 걸지마.”
탁, 탁 하고 책상 위를 정리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익숙한 미성. 굳이 자려고 엎드린 나에게 말을 걸 정도다. 생각보다 뻔뻔하고 얼굴의 철판이 두껍다고 새삼 생각했다.
“라이어킹이잖아. 근데 이렇게 빈번하게 실패해도 되겠어 ?”
큭, 큭 하고 조금은 여성스럽지 않게 웃는 그 목소리에 엎드렸던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짙고 커다란 뿔테 안경. 반듯한 단발머리에 앞이마를 공개해서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상을 주고 있다. 연필로 그려 놓은 것 같은 부드러운 외모라 눈이 갈 만했지만, 짙은 뿔테 안경 덕에 귀여운 인상만을 풍기고 있어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진이람. 우연치 않게 모두에게 거북스러운 행동을 해도 짜증내지 않는 유일무이한 나의 짝. 어쩌면 그건 행운일지도 모르지만, 거부 반응이 일어나야 정상인 행동에도 자연스럽게 반응한다는 것은 반대로 불행일지도 모른다. 그녀와의 짝으로서의 요 한 달하고 반은 나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애시당초 서로의 이름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짝이 된 이후, 어쩐지 내 거짓말의 성공률이 매우 낮아진 것 같다. 나와 그녀 둘이 짝이 된 이후 우리는 이상하게 눈에 띄었으니깐. 선생님의 호출에 서로가 손을 들어 대답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별 이상한 별명으로 부르는 거 그만둬. 짜증나니깐.”
“맞잖아. 맨날 거짓말만 하고. 친구들한테만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방금같이 교사한테도 하고.”
사실 세간의 인식으로 거짓말은 친구들 사이에서 더더욱 하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래서. 그게 뭐 피해를 줬다는 거야 ?”
“가끔은 피해를 주니깐 문제지.”
하긴. 그녀에겐 조금의 미안한 감정정도는 가지고 있다. 바보 같은 교사를 속여 넘겨버릴 땐 가끔 그녀가 희생양이 되어 문제를 풀러 칠판으로 가곤 했으니깐. 때로는 교사의 ‘그럼 그 옆.’ 이라는 말이 무섭다. 특히 그녀가 약한 과목인 수리 시간의 경우엔 더더욱 그랬다. 나 때문에 불려 나가면 관자놀이가 뚫어져라 노려보곤 했으니깐.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 다음부턴 조심할게.”
“…부디 앞으로는 성공하길 바랄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이내 나에게로의 관심이 끊어진 듯, 다음 시간 준비에 열성이 되었다. 5분이나마 잘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참고로 다음 시간 국사니깐.”
“……망할.”
질문에 대답 못할 시 ?1점. 그것이 어떤 종류의 질문이던지, 언제 하던지 간에 상관없이 무조건 대답을 못하면 ?1점.
그리고 오늘은 31일이다. 나는 31번이고.
교사의 기분에 따라 ?1점이 ?2, -3점씩 가산 될 수 있으니 나 하나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괜히 국사 성적의 전교 평균 점수가 60점대 이하인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려던 팔을 풀고, 교과서를 꺼내 진도 나갈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어 보았다.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비집어 열면서.

☆★○●

지옥 같던 31번의 날인 31일의 학교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났다. 오늘 수업에서 유일한 반전은 국사 선생이 나의 번호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
이 이후는 보통은 야간 자율 학습이지만, 이 학교의 경우엔 다행이도 그런 틀에 박힌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종소리나 교사, 심지어 학생까지 어디 틀에 박아 놓은 것 같은 똑같은 것들이었지만, 이 부분 만큼은 유일했다.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야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좀 논다 하는 애들의 입학 경쟁이 엄청나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내일 보자.”
“그래.”
시답기는커녕 손톱만큼의 도움도 되지 않는 교사의 종례마저 끝나고, 이람과 비교적 편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른 놈들은 나와 이람의 자리까지 와서 나를 무시하고 이람에게만 잔뜩 인사를 퍼부어 주고 자리를 떠났지만, 사실 그런 것은 지금 와서는 어찌되든 좋다.
어차피 너희들도 가짜일 테니깐.
“…도서실에라도 갈까.”
모두의 하교가 끝나고 텅 빈 교실. 쓸쓸하게 봄도 겨울의 것도 아닌 싸늘한 바람이 교실을 한번 맴돌았다. 커튼이 펄럭이고, 고즈넉하게 깔리는 석양의 짙은 붉음이 차창과 아파트의 창문에 반사 되어 교실 내를 고독하게 비춰주었다. 석양과 냉온의 바람이 함께 주위를 돌고 돌았다.
“…쓸데없이 감정적이야.”
물론 이런 고독도 사춘기 소년의 특권일지 모른다. raison d'etre(존재 이유). raison d'etre에 관한 고민은 한참 허세부리기 좋아하는 꿈꾸는 소년의 존재 이유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사춘기는 벌써 예전에 끝났다. 지금 와서 그때를 회상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건 너무 꼴사납다.
“그래도 가끔은….”
……하지만 그래, 가끔은 괜찮을지 모른다.
나는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텅 빈 교실에 홀로 앉아 언제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예전의 고민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잡생각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던 도움도 되지 않을 그런 생각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라도 한번 시작하면 꼬리를 물고 도는 뱀처럼 한도 끝도 없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걸으며 끝을 찾는 바보 같은 소년처럼 나는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무의미하게. 그 어떤 행동보다도 무의미하게.
그리고.
모두가 사라진 이 텅 빈 교실에.
아득한 어둠이 내려앉고.
주변이 서서히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며 유일하게 달빛이 주위 사물만을 간신히 구분 가게 할 정도가 되었을 때.

소녀는 헤엄치고 있었다.
물리 법칙, 상식, 개념을 전부 다 무시하며 소녀는 자연스럽게 짙게 깔린 어둠의 한 가운데를 서서히 조금씩 헤엄치고 있었다.
“…안녕 ?”
그리고, 눈이 마주친 소녀가 인사를 해 왔다. 입가가 둥글게 말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고는 그렇게 인사를 해왔다.
나는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까.
인사를 받아칠까, 아니면 자연스럽게 못 본 척 할까. 그도 아니면 소리를 지르며 이 자리를 당장에라도 벗어날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루 만에 거짓말률이 0에 수렴하게 된 나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한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건 어떤 식의 한탄이냐고 하냐면.
‘고작 그 정도의 실패로 저런 환상을 보게 되다니. 나란 놈은 어디까지 한심한거람.’
이런 식의 스스로에 대한 한탄이었다.
애초에 눈앞의 저 헤엄치는 소녀를 ‘무엇’이라고 믿을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환상. 그것도 스스로 능력의 부재에 따라 느끼는 자책감에 생겨나게 된 부산물. 그 정도라만 생각하고 말았던 거다.
사실은 그 자리를 피했어야 한다고. 훗날의 나는 후회할지 모른다.
“안녕.”
둥실. 하고 소녀가 한번 크고 부드럽게 공중을 돌았다. 그 나비 같은 몸놀림에 나는 조금 감탄했다. 어딘가 기분이 좋은 듯 넘실거리는 움직임에 눈이 계속해서 따라갔다.
“…환상 치고는 섬세한데.”
나의 뇌가 만들어 낸 헛된 존재인 것 치고는 지나치게 섬세했다. 옷이 나풀나풀 흔들리는 모양과 얼굴 근육의 섬세한 움직임, 수수하지만 한 올 한 올 흩날리는 머리카락까지 마치 사실인 것 양 다가왔다.
“아, 못 믿는구나.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못 믿는 구나.”
앞머리 안으로 숨겨진 두 눈이 장난기로 빛난다고 느껴진 순간, 소녀가 점점 속력을 내며 다가왔다.
환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소녀의 몸놀림이 심상치 않았다. 점차 가속이 붙어 빠르게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양손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부딪힐 듯 빠르게 다가오던 소녀는 그대로 나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저 나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고 믿고 싶었지만 달랐다.
진흙탕을 한 바퀴 구른 것 같은 기분. 어릴 적 소나기를 잔뜩 맞고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한 시간 가까이 서있었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
“뭐…야.”
기분 나쁨. 찝찝함. 거북스러움. 구토감. 찐득거림.
그 어떤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지금 이 기분을 정확히 설명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굳이 예를 들자면 맞지도 않는 약을 먹고 하루 종일 거북스러운 상태로 토를 하고 있는 기분.
환상이 아니다.
나의 머리가 만들어 낸 환상이 아니다.
거짓에 잔뜩 물들은 세상에 가장 거짓말 같은 일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어때 ? 이래도 못 믿겠어 ?”
그 유령을 닮은 소녀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유령인가 ?”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어떤’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나도 몰라.”

소녀는 자신이 유령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너의 정체가 지금도 눈에 선하게 보여.”
거짓말률은 이미 0에 수렴한다. 그녀에게 나의 거짓말이 통할지 어떨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나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보다도 과연 이번에 내가 할 거짓말은 통할지 어떨지 그저 그것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이기적인 마음이 그저 시작이었다.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그리고 그 자리에 한느루가 나타났다. 어떤 사실 근거도 없이 대뜸 나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밝혀낸 소녀. 빼어난 외모에 아련함을 머금고 있는 작은 소녀.
아니라고 했어야 했다. 그때 나는 그녀의 정체를 묻지 말고, 그녀의 말이 오히려 거짓이라고 했어야 했다.
다만,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묻지 않고서 버틸 수 없었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탐정이야.”
직업. 그녀의 직업. 학생도 아닌 탐정이라는 직업.
“…웃기시네.”
그리고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

“자, 이제 어떡할 생각이지 ?”
한느루가 소녀를 등에 두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소녀 역시 나를 실눈으로 노려보고 있었지만, 방금 같은 한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녀를 기분 나쁘게 했을 때 보다 오히려 조금 더 호의적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한느루가 등장해서 그런 것인가.
“별로. 아무것도 안할 생각인데.”
비교적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 딱히 생각을 하고 거짓말을 하진 않으니. 몸에 녹아있는 습관. 혹은 클리셰라고 할까.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묻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럼 또 거짓말을 해야 되니깐.
“온통 거짓말이구나. 사는 이유, 이곳에 있는 이유, 학교를 다니는 이유. 심지어는 지금 니가 하고자 하는 말 까지도.”
“…흠.”
느루는. 꽤 자세하게. 나를 꽤 뚫어 보고 있었다.
“…아닌데 ?”
“거짓말.”
“진짜로 아니라니깐.”
“거짓말.”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야. 정직 하나로 먹고 사는 평범한 학생일 뿐인데.”
“거짓말, 거짓말. 온통 거짓말이야.”
이것 봐라….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근거는.”
“그런 거 없어. 왜냐면 넌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깐.”
…정답이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근거는 사실 필요 없다. 왜냐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깐.
한느루라고 했지.
그럼 이런 건 어떨까.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 당황할만한 어떤 주제로.
“……너 참 예쁘다.”
뭐, 과연 이런 말로 당황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으니 이정도로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짓말.”
음 ?
공백이 생겼다.
지금까지 당당했던 그녀의 말에서 공백을 찾았다.
나는 그녀의 당황을 읽어낸 공백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키는 아담해서 귀엽고, 머릿결도 매끈해 보여. 굉장히 잘 어울려. 곡선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그린 것 같은 눈썹에 커서 귀여운 눈이 꼭 강아지 같고, 그리고 ……….”
느루는 내 말이 이어짐에 따라 서서히 얼굴을 붉혀 갔다. 그리고 점점 내 말이 진행 될수록 어깨가 들썩 거리며 귀까지 붉어져 오는 것이 어지간히 창피한 듯 했다.
그리고 마침내 참지 못한 느루가 소리를 질렀다.

“거, 거짓부렁 하지마라 !!”

헙, 하고 느루는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양손으로 급하게 틀어막은 두 손이 앙증맞아 귀여웠다. 아니, 지금은 그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니지. 더 콕 짚어야 될 부분이 있지…!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핫”
절로 웃음이 튀어 나왔다. 어울리지 않는, 아니 자세히 보면 묘하게 어울리는 그 진한 사투리에 나는 몇 년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크게 웃었다.
“우, 웃지도 마라….”
“미, 미안 푸, 풒하하핫.”
웃다 지쳐 헐떡거리는 내 모습이 은근히 분한지 느루의 붉어진 얼굴이 본래 색을 찾을 줄 몰랐다. 서서히 그녀의 고개가 숙여지고 조금씩 울상 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놀림감이 된 것 같아 속상한 것 같았다. 이내 눈에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런.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후우. 진짜 미안. 조금 뜻밖이어서.”
고작 만난지 30분도 안된 그녀에게서 뜻밖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정말로 의외였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듯한 그 눈에 나도 모르게 위축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의외로 귀여운 면도 있잖아.
“흥….”
어딘가 삐진듯한 모습에 난 그녀를 달래줄 필요성을 느꼈다. 머금은 자연스러운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지만, 방금처럼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아닌 것이 충분한지 더 서러워하진 않았다.
“좋아. 넌 알고 있어 ? 저 소녀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고 있어.”
망설인 것은 나를 탓하기 때문이었을 뿐이지 말 속에는 확신이 담겨져 있었다.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어떻게 아는 거지 ?”
“그야 내가.”
그 대사는 앞으로 내가 수도 없이 듣게 될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내뱉는 시작을 알리는 말에 조금은 몸서리쳤다.
알게 모르게 전율이 밀려들었다.
“삼라만상과 만휘군상을 지배하는 꿈을 꾸는 사립 탐정이기 때문이지.”
“……중2병 ?”
“아, 아니여 !!”
전율이 아니었다. 소름이었다. 말 그대로 소름 돋는 대사였다.
저런 대사 실제로 입에 담는 사람 처음 봤어….
느루의 얼굴이 또 붉어졌다.
자기가 내뱉고도 창피해하다니. 누가 억지로 시킨 건가.

조금은 엉뚱하고 당황하거나 창피해지면 사투리를 쓰는 자칭 아카식 레코드를 지배하는 중2병이 의심되는 한느루.
염세주의에 쩔어 거짓말이 유일한 구원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나 지아람.
우리 둘의 비교적 어색하지 않고 엉뚱한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2) 유령은 사실 존재 했다.


“그럼, 얘기를 들어 보자.”
느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녀와 나는 그녀에게 집중했다.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안정감 있는 위치다.
책상을 붙이고 앉아 나와 느루, 그리고 유령 소녀는 3자 대면 하듯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나는 이 삼각형으로 대고 앉은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 서로를 바라보는 각도가 45도. 고개를 많이 돌릴 필요도 없고 정면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 보다 거짓말의 확률이 조금 올라간다. 좌뇌와 우뇌가 지배하는 영역이 다르니 사물을 공평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사라진다는 것.
뭐,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거짓말이니깐.
“나는….”
소녀의 입이 열린다. 반투명한 소녀가 책상 앞에 의자를 빼고 앉아 있는 모습은 지나치게 이질적이었지만, 그 나이 때 소녀라고 생각하면 그리 어색할 일은 없겠지.
“모르겠어. 기억이 나질 않아….”
침울한 듯 고개를 숙이며 소녀가 말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상실증 유령 소녀라. 지나치게 진부한 소재가 몇 개 섞이지 않았나 싶었지만 소녀는 소녀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것 같다.
“억지로 떠올리지 않아도 되니깐.”
느루가 상냥한 얼굴로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이, 눈빛이 소녀에게는 안심을 준 것 같다. 소녀의 괴로웠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같은 여성이라서 ? 아니면 뭔가 다른 힘이라도 있는 건가. 느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녀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 나와는 정 반대로.
“작은 것부터 해보자. 이름은 ?”
거봐. 내가 입을 열자마자.
“너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거든 !”
으르렁 하고 낮게 우는 강아지처럼 위협적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뭐, 작고 귀여운 개가 아무리 위협적이어 봤자 귀여울 뿐이다. 처음 만났을 때의 박력은 느루가 등장함으로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전이다.
그치만 저 표정은 며칠 전에 본 그거다. 내 거짓말이 들통 났을 때 담임선생님이 자주 짓는 표정. 즉, 화를 내고 있는 표정이다. 반장이 과로로 쓰러졌다는 말에 깜짝 놀라 반으로 뛰어갔던 담임이 몇 분 만에 뛰어와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물었을 때. 그때 그 표정이다. 난 과한 업무에 시달리는 반장을 돕고 싶었을 뿐.
물론, 거짓말이지만.
난 자신의 업무를 반장에게 떠넘기는 담임이 싫었고, 그 담임이 당황하는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했고, 내 평판은 또 한 단계 떨어졌다.
“자, 그러지 말고. 이름은 기억 나 ?”
“우우웅…. 기억이 안나.”
180도, 아니 540도 정도 태도가 변한다. 한 바퀴 반이나 돌 정도로 태도가 변한다는 건 거의 뭐 나는 원수고 느루는 은인. 이 정도의 태도 차이가 있다.
손가락을 아랫입술에 가져다 대며 귀엽게 고개를 젓는 소녀와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느루의 상냥한 눈빛에 나는 짧은 대면으로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신뢰 관계를 읽었다.
이해할 수 없다. 어째서.
“천천히. 조금씩 떠올려 보자. 차분히 생각해봐….”
느루의 말에 소녀가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딘가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에 느루의 안색도 함께 어두워져 갔다. 지금 느루는 진심으로 저 헛깨비에게 감정적으로 동화하고 있다. 단지 스치고 지나가면 기억속에도 없을 저 유령에게 감정적으로 동화하고 있다.
벗어나고 싶다. 이 자리를 뛰쳐나가 내일도 그저 평범한 거짓말로 평범하게 사람을 속이는 그저 그런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다.
“정…. 정….”
“응, 응 ! 정. 정 다음엔 !?”
불끈 쥔 양 손이 해냈다는 양 위아래로 팔딱거리며 소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격하게 반응하고 있다. 느루의 앙증맞은 그 두 손이 날아갈 듯이 휘저어지는 모양은 웃기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이쪽까지 덩달아 기뻐왔다.
알 것 같다. 어째서 소녀가, 저 정씨 성을 가진 유령 소녀가 느루에게 만큼은 풀어진 태도를 취하는지.
“넌 아카식 레코드를 지배하는거 아니었어 ? 그럼 저 소녀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쯤은 알아야 되는거 아냐 ?”
나는 그 기분 나쁜 상냥함과 친절함에 공격적으로 물었다. 그것이 내가 가진 세상을 부정할 줄 밖에 모르는 성질과 정 반대되는 것 같았기에.
“그래서 이름을 물어 보는거야. 나는 확실히 아카식 레코드를 지배하는 사립 탐정이지만, 지금 그녀는 그저 ‘유령’이니깐. 유령에 대한 것은 이미 사전적 정의로도 충분해.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녀’니깐….”
과연. 유령에 대한 것도 물론 아카식 레코드에는 정의되어 있겠지. 하지만 그건 단순히 유령의 정의이지 이 눈앞의 기억을 잃고 괴로워하는 소녀의 정의는 아니라는 건가.
불편한 능력이다 정말.
아니, 애초에.
“믿지 못하겠는 걸. 그런 능력이 있다고는.”
“이 소녀에 관해서는 ?”
“존재한다는 판단의 근거가 충분하니 있다고 믿을 수 있어. 하지만 넌 아냐. 아직 아냐.”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가락질이 기분 나쁜 것인지, 아니면 내 말투가 기분 나쁜 것인지 귀엽게 미간에 내 천자를 그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 자체가 서툰 것 같다. 아무리 봐도 그저 귀여운 것을 보면.
“근거라…. 그럼 좋아 기다려.”
저 유령 소녀가 존재 한다는 근거. 그것은 환상 치고는 지나치게 섬세한 대화의 내용.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스치고 지나갔을 때의 그 불편한 느낌. 환상으로 치부하기엔 구체적이다. 그러니 존재한다고는 믿는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흠. 흠. 이름. 지 아람.”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수첩을 펼쳐 무엇인가 찾더니, 헛기침으로 목을 풀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가 그녀의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게 하는 근거들을.
“생년월일. 93년. 9월 12일.”
여기까지는 학생부를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니 굳이 멈출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질 내용은. 학생부를 봐도. 성적표를 봐도 나오지 않는다. 가족밖에 모르는, 아니 심지어 가족도 모르는 그런 비밀들.
“7살. 10월 17일. 돌부리 걸려 넘어져 무릎에 흉진 상처가 있음. 이때 처음으로 피에 관해 트라우마가 생김.”
“그렇다고, 어머님께서 말씀해 주셨지.”
나는 조금 당황하고 있다. 어째서. 아는 거지.
다만 평정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들어 보기로 했다. 만약 느루가 그저 수첩을 읽는 것뿐이라면, 내용을 모른 채 읽기 시작한 것이라면 그녀도 곧 깨달을 것이다. 나에 관한 것을.
“10살.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김.”
“11살. 아파트 3층 높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짐.”
“12살. 맨홀에 빠져 전치 3주…. 잠시만.”
느루는 그저 수첩에 적힌 내용을 읽을 뿐이었지만, 조금씩 내 생애에 관해 이상한 점을 눈치 채기 시작한 것 같다.
“13살도, 14살도…. 뭐야 이거….”
“좋아. 믿어 주지. 네가 뭐든지 알 수 있다는 걸.”
꼬아놓은 다리를 풀고, 방향을 바꾼다. 턱을 괸 팔을 바꾼다. 조금 더 늘어지고 거만한 자세로 바뀌어 간다. 그것은 점차 내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
느루는 계속해서 수첩을 읽었다. 목소리로 내지 않고 그저 눈으로만. 계속해서 읽고 있었다.
“16살이 될 때까지 계속….”
“계속 ?”
하지만 곧 느루가 본인의 수첩에서 눈을 때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1년에 한번은 죽을 뻔 했…네 ?”
“…그래.”
“하지만 2년 전 부턴 그런 위기가 사라 졌어. 그건 네가….”
그건 나 혼자 만의 비밀. 내가 언젠가 잦은 죽음의 위험 끝에 깨달은 나만의 비밀.
“네가….”
그만. 말 하지 마.
무거운 분위기였던 느루와 나 사이. 영원히 비밀로 간직해야할 이야기를 발설하려는 느루의 목소리 대신 타이밍 좋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유일하게 이 자리에서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는 존재.
“정 세아 !”
“…….”
“내 이름 ! 정세아. 정세아였어 !”
느루는 세아의 외침에도 나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세아는 느루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못할만큼 본인의 이름을 떠올리는데 집중하고 있었던 거겠지.
“자, 우리 유령씨가 얘기하잖아. 들어 줘.”
“…그럼. 지금은 그녀의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으니깐.너와의 이야기는 다음번에.”
미안하지만, 너와 그 이야기를 더 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 세아와의 이야기를 듣고, 난 집에 가고, 자고 일어나서 모든 것을 말끔히 잊으면 너와의 인연도 거기서 끝이다.
“자, 그럼 이야기를 들려 줘.”
느루가 고개를 돌려 세아를 바라보았다. 그 진지한 눈빛에 나도 느루에게서 고개를 돌려 세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엇인지 궁금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끝인걸 ?”
“큭큭.”
아무래도 세아는 자신의 이름을 떠올린 것이 최선이었나 보다. 그 짧은 개그 코너 같은 허무함에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런 내 짧은 웃음에 세아와 느루 모두 노려보듯 나를 쳐다보았지만, 딱히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자기네들 생각에도 허무하긴 하겠지. 고작 장고 끝에 얻은 것이 달랑 이름뿐이라니.
“세아야. 내일도 이 시간에 볼 수 있을까 ?”
나에게서 고개를 돌린 느루가 세아에게 말했다. 그 진지한 목소리에 나도 세아도 그저 느루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꿀 것 같거든.”

생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어쩐지 시선을 빼앗겼다. 근래에 본 미소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순수하게 세아만을 위한 미소였지만, 근처에 있는 나에게로까지 그녀의 감정이, 생각이 전달되어 오는 듯 했다.
마냥 거북스러운 부드러운 감정이었지만, 이상하다.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

“바이 바이.”
둥실 하고 떠오른 세아가 교실을 나서는 나와 느루에게 ?정확하게는 느루만을 위한 것이겠지만- 손을 저으며 배웅해 주었다. 느루 역시 웃으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고, 나는 가볍게 손을 한번 들어주었다. 느루의 인사에는 웃어 주었으면서 내 인사에는 검지를 눈 밑에 가져다 대며 혀를 내민 이유는 뭘까.
세아와 헤어진 우리는 아무런 대화 없이 계단을 내려 왔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하교한다는 상황이 익숙치않을 뿐이지만, 그녀는 어떨까.
살짝 쳐다보니 어떤 고민이 있어 보이는 표정이다. 그 고민의 내용은 과연 세아일까 아니면 수첩에 적힌 나의 비밀일까.
“참고로.”
조용한 분위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황이 어색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저 해두고 싶은 말이 있었을 뿐이지만.
“나는 내일 안 올거니깐.”
올 이유가 없다. 나는 그저 평범하게 거짓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 과정에 정 세아의 정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잊어버리자.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 잘 해결해 봐.”
서둘러 신발을 갈아 신고, 먼저 교정을 나서려고 했다. 그리고 이 교정을 나선 순간 모든 것을 깔끔하게 잊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입만 열지 않았다면 말이지.
“…너, 요즘 거짓말 실패하고 있지 ?”
“……그게 무슨 상관인데.”
사실이니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느루는 그것까지 알고 있는건가. 만물의 이치를 알고 깨닫고 지배하는 사립 탐정이라. 꿈같은 이야기다.
“별로 상관없지만. 알려 줄 수도 있어.”
“무엇을 ?”
“왜 너의 거짓말이 신뢰를 잃어 가는지.”
이 얼마나 모순된 말인가. 거짓말의 신뢰.
하지만 나에겐 중요하고도 소중한 표현이다. 나의 거짓말이 어째서 신뢰를 잃어 가는지라.
“잦은 거짓말은 신뢰를 잃는다. 단순히 그 얘기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
“…아니면, 뭔데.”
씨익.
무엇보다 장난기 넘치는 그녀의 웃음에 표정이 굳어지고 반 발짝 뒷걸음 쳤다. 그 장난기 어린 웃음도 타인에겐 귀엽게 보이겠지만, 나에겐 그저 불길할 뿐.
“내일 봐아 !”
어느새 신발을 다 신었는지 느루는 빠르게 교정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알고 싶으면 내일 오라는 건가….
그나저나. 한느루. 저렇게 뛰면….
“한느루 !!”
“왜에 !”
50미터쯤 멀어 졌을까. 나는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적당히 멀어질 때까지 나는 어린아이처럼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만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녀는 격렬하게 뛰어감에 따라 허벅지 위에서 놀고 있던 치마도 함께 펄럭거리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팬티 보인다 !!”
“뻥치지마 !! 속바지 입었거든 !”
50미터나 멀어져서 서로 소리치며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지만 기왕 시작한거….
“흰색인거 다 보인다고 !!”
“흐엑 !”
정체불명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녀가 몸을 180도 돌려 자신의 치마를 들춰봤다. 창피를 모르는 건지 아는 건지 모르겠군.
뭐 그래봤자 느루의 눈에 보이는 거라곤 검은색 속바지뿐일 테지만.
“이, 이 거짓말쟁이이이 !!”
“크크큭.”
하얀 교복 상의로 비치는 속옷의 색이 흰색이었으니깐. 상하 세트로 입는 경우가 많으니 그저 던져본 거짓말이지만 뭐 다행히 맞았던 것 같다.
“잘가 !”
나의 인사에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치다 말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높게 든 그녀의 손이 교정에 걸린 국기 마냥 펄럭이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고 느껴졌다. 앞문으로 벗어나는 그녀를 눈으로 배웅하고, 반대 방향으로 학교를 벗어났다.
자, 내일은 어떻게 할까.
잠시 어울려 볼까. 아니면 잊어버릴까.
교문 끝에 걸린 나의 발은 고민 때문에 멈춰 섰다. 잊고 싶다면 발을 때고 교문을 벗어난 순간 깔끔하게 잊어버린 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아니라면 기억하자. 내일 다시 그녀와 그녀를 만나야 할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교문에서 발을 땐 나는 결국.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
그런 귀찮은 일에 더 휘말리고 싶지 않다. 그저 난 보통의 인간이고 보통의 거짓말쟁이일 뿐이다. 일상을 벗어나는 진실 따위 나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러니 그저 오늘 저녁에 내가 본 것은 꿈만도 못한 망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정 세아가 무엇인지. 한 느루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이었으니깐. 세아가 과연 유령일지. 유령이라면 어째서 유령이 된 것이고 왜 하필 내가 혼자 있을 때 말을 걸어 온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한 느루. 자칭 삼라만상과 만휘군상을 지배하는 꿈을 꾸는 소녀. 그 의미가 아카식 레코드를 지배 하면서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라면 꿈속에서 아카식 레코드를 지배하는 것인지도 의문이고, 어떻게 나를 그렇게 잘 아는 것인지. 그 수첩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다 잊자. 그게 편할 테지.

“뭐, 거짓말 이지만.”

미안, 전부 거짓말이야.

--

4기에 도전했던 것 수정하고 살을 붙여서 다시 재도전 입니다. 으히힣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