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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도깨비 팬티는 튼튼해요?!
글쓴이: 그린아구
작성일: 12-07-03 14:11 조회: 2,154 추천: 0 비추천: 0


도깨비 팬티는 튼튼해요?!



-여는 이야기



“그러니깐, 도깨비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에서 태어난단 말이지?”

나이는 17. 성별은 남자. 170정도의 키에, 조금만 외모에 신경을 써서 꾸민다면 인기폭발이 될 듯한 잘생긴 외모를 가진 소년이. 자신의 앞에 서있는 천진난만한 미소로 히죽히죽 웃고있는 소녀에게 묻는다.

“응. 맞아!”

긴 생머리에 아름다운 미모와 성숙한 가슴, 그리고 매끄러운 허리곡선을 가진 소녀이지만, 전형적인 ‘한국미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분홍색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도깨비.

흔히 사람들은 도깨비라고 하면, 머리에 뿔이 달렸다거나 스파이크가 달린 방망이를 들고 다닌 다던가, 이빨이 흉측하고 마음씨가 못 됐다든가 등등.

우리는 도깨비를 무섭고 악한 존재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우리 문화에 일본 문화를 마구잡이로 뒤섞임으로 인해,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지금까지 전해지는 잘못된 ‘환상’이다.

실제로 도깨비는 뿔이나 스파이크 달린 방망이처럼, 우리들과 전혀 다른 점이 없이 우리와 똑같이 생겼다.

거기다가 겁이 많고 순진하며,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해서 무시무시한 괴물이라기보다는 친근한 친구 같은 존재가 바로 도깨비였다.


“.........그리고 그 도깨비란 존재가 바로 당신이라고?”


소년의 앞에 서서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분홍 머리의 소녀는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였다.

“응!”

바보스럽다고 할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 아니 도깨비.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패, 팬티에서 태어나는 겁니까?!”


소년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채로 머리 위로 물음표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하는 소녀에게 소리친다.

아까도 말했듯이 도깨비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다가 버린 물건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빗자루라던가 부지깽이 같은 물건에서 태어나는 게 대부분이며, 현대에 들어서는 버려진 컴퓨터 나 휴대전화에서 태어나는 스마트한 도깨비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소년의 눈앞에 있는 저 소녀는,


분홍색의 여자 속옷(속되게 말하면 팬티라고 하는)에서 태어났다.


“후아? 그게 어때서?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은 물건이 도깨비가 되는 건 당연한데? 특히 피가 묻은 물건 같은 거에서 말이야.”

소녀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고, 사람의 피가 묻은 물건이 도깨비가 된다고 하니 팬.......아니 여자 속옷에서 도깨비가 태어나는 일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혹시 이거 꿈인가요? 아름다운 산님들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오느라 너무 피곤해서 깊은 잠에 빠진 겁니다. 예, 맞아요. 도깨비, 특히 여자 속옷에서 태어나는 별난 도깨비가 있을 리가 없지요.”

소년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기지도 않는 이 멍청한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있는 힘껏 문다. 자기 딴에는 세게 문다고는 했지만, 막상 고통이 싫어서 잔뜩 힘을 빼고 살짝 살이 잡힐 정도로 무는 소년이었다.

“우앗? 내, 내가 대신 물어도 될까?”

어느새 곁에 다가온 소녀가 소년이 대답하기도 전에 소년의 귀를, 강아지가 개 껌 물듯이 물어버린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빌어먹을 도깨비가아아아아아아아!!!!”

아무래도 꿈이 아닌 듯, 엄청난 고통에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소녀를 밀쳐낸다. 하지만 역시 사람보다는 힘이 센 도깨비라서 그런지 소년의 귀를 달콤한 껌을 씹듯이 우물우물 거리며 소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파, 아파! 아프다고! 아, 정말 진심으로 아프니깐 제발 그만해 주세요! 이제 꿈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깨달았다고요!!!”

귀를 물린 소년이 두 손을 싹싹 빌며 울먹이는 표정으로 부탁하자, 소녀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뗀다.

화끈거리는 귀와 진득하게 귀의 안속과 바깥을 흘러내리는 소녀의 타액을 느끼면서 몸서리치는 소년.

“역시 인간의 피부는 말캉말캉 부들부들 하구나!”

찹찹거리며 무시무시한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소녀의 얼굴을 보며, 소년은 그대로 좌절모드, 즉 ‘OTL' 자세를 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져 버린다.

“처음부터 방을 내준 다는 말에 아무 의심도 없이 따라 온 게 잘못이었습니다. 아니 애초에 버스에서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고요!”

어떤 가수의 어떤 노래가 생각나는 소년이지만, 지금은 노래나 흥얼거릴 정도로 유쾌한 상황이 아니었다.

소년이 분홍색의 여자 속옷에서 태어난 도깨비 소녀를 만나게 된 것은, 자신의 잘못된 성격을 고치기 위해 강원도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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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름다운 곡선, 봉긋 솟은 봉우리, 그리고 매혹적이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저 자태를!!! 하악, 하악, 나는 이제 살짝 가버릴(?)지도 몰라!”

남들이 들으면 자신을 변태라고 생각할 것임을 알면서도 소년, 환웅은 얼굴을 붉히며 거친 숨을 내쉰다.

“하아악! 안아 봐도 되겠습니까? 아니 안을 거야!”

환웅은 그렇게 말하며 벽에 붙인 대형 포스터를 두 팔을 벌려 끌어안은 뒤에 얼굴을 마구 비빈다.

환웅이 그토록 열광하는 대상은 여자 아이돌도, 아름다운 미모의 배우도, 매혹적인 몸매의 모델들도,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미소녀도, 수능에 나온다는 영어단어는 더더욱 아닌.

금강산의 절경을 한 폭의 사진으로 담아낸 대형 포스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떤 몰상식한 인간이 만든 말 인가! 이 아름다운 금강산의 자태와 한낱 배고픔 따위를 비교하다니! 그것은 금강산 여신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모독!”

어느 평범한 고등학생인 환웅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성보다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환경을 더 좋아하는 소년이다. 포괄적으로는 자연 동경. 구체적으로는 자연 애착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어서 통일이 되면 금강산 여신님의 아찔한 곳까지 사진으로 담아 낼 수 있는데.......”

환웅은 금강산 포스터에서 떨어져 입맛을 다시면서 장롱에 모셔 두었던 여행용 가방을 꺼내 든다.

“하지만,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들로 금강산 여신님의 대한 사랑을 대신하겠습니다!”

환웅은 여름방학과 동시에 강원도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군.......”

환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침울한 표정으로 바뀌는 소년. 소년이 강원도 여행으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나는 것은 마지막 만찬과 같은 것이다.

[환웅아, 이제 너는 고등학생이란다. 언제까지 틈만 나면 산이나 바다로 놀러 갈 셈이니?]

산골에서 자라다가 도시로 오게 된 후부터, 소년은 자연과 사랑에 빠지게 됬고, 시간만 나면 산이나 바다를 찾아 이 지역, 저 지역 돌아다녔다. 그러다보니 앨범이 2권이나 가득 찰 동안, 미래를 위한 시험성적은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의논한 끝에, 네가 그토록 원하던 강원도로 한 달간 여행을 보내주기로 했다.]

공부에 소홀히 하며 자연에 미쳐 놀러 다니던 자신의 삶이 잘못 되었음을 알기에, 따끔히 혼날 각오를 하고 있던 환웅은 생각지도 못한 강원도 여행에 쾌재를 부르며 기뻐했다.

아니 했었다.

[그 대신, 이번 여행을 끝으로 자연에 대한 그 잘못된 사랑을 전부 끊도록! 방 안에 도배한 사진들과 앨범 다 버리고 이제 다시는 산이나 바다로 놀러가지도 않고 오로지 학생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거라!]

강원도 여행은 잘못된 환웅의 자연 사랑을 끊기 위해,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에 불과했다.

“하아, 하긴 저도 알고 있었다고요. 제가 말투도 이상하고 정신도 이상한 녀석이라는 걸. 좋아요. 좋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이 자연에 대한 사랑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뛰어난 자연 학자가 되고 말겠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말하면서 용돈을 모으고 부모님을 졸라 겨우 장만한 고성능 카메라를 목에 두르고 여행용 가방을 손에 든다.

“자, 그럼 강원도를 향해 출발!”

강원도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환웅은 미리 끊었던 표를 내고 강원도로 가는 버스를 찾아 움직이는 데, 난처한 표정으로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 터미널을 헤매는 할머니를 발견한다.

“연세가 많으신 노인들에게는 사람들로 북적한 버스 터미널이 복잡할 수도 있겠지?”

환웅은 그렇게 말하며 당황모드에서 좌절모드로 향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묻는다.

“저기, 어디 가세요? 혹시 여기가 처음이시면 제가 조금 도와드릴까요?”

환웅의 물음에 할머니는 한 방울의 물도 없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에구, 즒은이 고맙구와. 내 강원도로 가는 버스를 몬 찾아와, 내 이리 고생을 하고 있었코 도와준다 하이, 정말 고맙수와.”

환웅의 손을 꼭 잡으며 강원도 사투리를 남발하는 할머니. 환웅은 할머니가 꼭 쥐고 있던 표를 받아 자세히 살펴본다.

“어라? 할머니 저랑 같은 버스 타시네요? 그것도 옆자리요.”

우연의 일치인지, 할머니는 환웅과 같은 버스를 타며 옆자리에 앉게 될 사람이었다.

“아이고 즒은이, 어째 강원도 같은 꺼주(초췌)한 고스루 가는 기래요?”

할머니의 짐과 자신의 짐을 버스의 짐칸에 실은 뒤에 버스로 올라온 환웅에게 할머니는 집에서 삶아 온 듯한 계란을 건네주며 묻는다.

“아, 제가 강원도로 한 달간 여행을 가게 돼서요.”

“기래, 강원도에서 지낼 집은 구했는감?”

할머니의 물음에 환웅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아뇨, 가서 근처의 산장이라도 구해봐야지요.”

강원도 여행이 갑자기 정해진 터라, 한 달 동안 머무를 집을 찾지 못하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됐다. 부모님은 강원도에는 숙박업체가 많으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강원도의 산골에서 노숙하게 될까 걱정되는 환웅이었다.

“혹시 산골 구서케 있는 마실(마을)이라도 괜찮수와?”

“주변에 아름다운 산을 두르고 있다면 오지라도 좋아요. 어차피 저도 어렸을 땐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오히려 도시보단 시골이 더 편해요.”

환웅은 어렸을 때 부모님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느라 환웅을 시골에 있는 할머니에게 맡겨져, 부모님의 품 대신에 산이나 들판을 뛰 다니며, 숲 속에서 잠이 드는 등, 자연의 품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그러다가 사정이 나아져서 부모님과 함께 도시에서 살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때부터 자연을 갈망하면서 자연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래, 기래, 그럼 이 할머이 집에서 지내지 않겠사? 내 딸이 지내든 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잠도 자고 밥도 줄 테이.”

할머니가 말해준 마을 주소를 집에서 들고 온 노트북으로 검색해보자, 강원도의 깊은 산골에 위치해 있었다.

“뭐, 그럼 저야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숙박할 곳이 있을 까 걱정도 되고, 숙식비로 나갈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할 것이라 생각한 환웅은 숙식을 무료로 제공해준다는 할머니의 말에 아무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기 가면 내 딸 언나(아이)도 있을꺼이, 즒은이와 나이가 같으니 잘 지내드래요.”

할머니는 간절히 원하던 물건을 손에 얻은 것처럼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작게 ‘흐흐흐’ 하고 웃었다.

숙식을 해결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던 환웅은 그런 할머니의 미소를 보지 못한 채, 버스는 강원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첫 번째 이야기.



“여가 내 집이구마 데우(많이) 힘들아 즒은이?”

강원도에 도착하고 나서 버스를 타고 또 한 시간을 달리고, 또 두 시간 동안 산을 걸어서 할머니가 산다는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혈기왕성한 소년인 환웅도 숨이 찰 정도로 오랫동안 걸었는데도, 할머니는 멀쩡해 보였다. 아마도 환웅이 무리해서 할머니 짐까지 모두 들고 있어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쪼꿈 가더(조금 가면) 우리 집이 나오 드래요.”

할머니가 사는 마을은 산으로 둘러 싼 분지에 위치해 있었다. 넓은 평야에 비해 지어진 집이라고 해야 5~6채에 지나지 않았고, 넓고 넓은 밭과 논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할머니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으로 가는 입구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듯, 할머니의 초가집은 허름하고 기둥에 균열이 조금씩 가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의외로 초가집의 안은 새로 보수를 했는지 마루며 벽이며 새것같이 깨끗했고 벽을 툭툭 쳐보아도 환웅의 주먹만 아플 뿐이었다.

“여 방이 내 딸이 살아생전 지내 싸던 방이야. 내 딸이 죽은 후에도 깨끗이 치와사(치어와서), 문데기(먼지) 하나 없어.”

할머니가 가리킨 방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환웅. 구멍하나 없이 멀쩡한 창호지로 된 문을 열자 인형이나 분홍색의 가구들이 환웅을 맞이했다. 딸이 살아생전 지냈다는 방은 10살 전후의 여자아이의 방에 가까웠다.

병을 얻어서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던 딸은 아마도 어린 소녀라고 생각하는 환웅이지만, 아이까지 있다고 했으니 분명히 성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랑 또래인 아이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뭐 저랑 같은 나이면 아이가 아니라 청년이지만요.”

어디라도 놀러간 것일까 할머니가 말했던 환웅과 동갑인 아이는 집안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환웅은 나중에 집에 오면 인사하기로 하고, 방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응?”

분홍색의 여자 속옷(그것도 하의)가 방바닥 한 가운데에 책상의 한 가운데에 놓여져 있었다.

“서, 설마 아이라는 사람이 여자였나요? 이건 그 분의 그, 그거고?”

재빨리 속옷에서 시선을 떼고 방을 나오는 환웅. 간단히 차린 밥상을 들고 오던 할머니가 방 밖에 나와 있는 환웅을 보고 밥상을 내려놓으며 묻는다.

“어째 밖으루 나와 있는가? 방이 너무 더와서 나와 있는 가?”

“아, 아뇨. 혹시 저랑 같은 나이라는 아이가 여, 여자 분이신가요? 방도 이 방을 쓰고요?”

어쩐지 다 큰 성인이 쓰기에는 인형과 분홍색의 가구가 많은 방이었다. 아마도 환웅과 같은 나이의 손녀가 이 방을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예시지(여자아이) 예시. 우리 언나는 내하고 같이 자니께 걱정하지 말드래요.”

“아니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러니깐 책상에 있는, 패, 패패패패패패, 팬티가.........”

아무리 자연을 사랑하는 소년이라고 해도, 여자의 그것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비정상적인 사춘기의 남자가 아니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말을 더듬는 환웅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밥상에 앉으며 환웅에게 자리를 권한다.


“그, 빤스 말하는 거이와? 그 내 딸 유품이래요. 유품.”


“유, 유품? 이 팬티가요?”

“그래, 그게 내 딸이 가장 애끼던 물건이었사. 사위가 딸 생일 때 사준 거래요.”

선물 치고는 음흉 하군요, 환웅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왠지 슬퍼 보이는 할머니 때문에 팬티에 대한 생각을 접고, 할머니가 권해준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현미로 된 밥과 시래기 국, 그리고 김치와 삶은 감자가 다인 밥상이었지만, 정말로 맛있었다. 특히 시래기와 물만을 넣고 끓인 시래기 국을 텐데도 맛깔스럽고 담백해서 평소보다 먹는 것보다 두 배나 더 폭식을 해버린 환웅이었다.

즐거웠던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 온 환웅은 딸의 유품이라는 팬티에는 신경을 끈 채 짐을 푼다. 환웅의 보물인 카메라를 책상에 올려놓고(팬티가 책상에 놓여 있었지만, 환웅은 유품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입을 옷들을 꺼내 방안에 있는 장롱에 넣기 위해 분홍색의 장롱 문을 활짝 열었다.

“어라라?”

장롱은 형형색색의 저고리와 한복 치마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것도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개량된 개량 한복이었다.

“제 옷을 넣을 자리가 전혀~ 없는데요? 그나저나 왜 이렇게 한복이 많은 거지? 할머니도 백색의 한복을 입고 다니셨지만, 이건 어른이 입는 한복이라기보다는 여자아이가 입을만한 한복인데?”

환웅은 아마도 손녀의 옷으로 보이는 한복들을 뒤로하고 이미 가득 차 버린 장롱을 닫는다. 장롱 옆에 있는 텔레비전만한 크기의 서랍을 발견하고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는 사진앨범과 의문의 부적으로 가득 담겨져 있었다.

“앨범과 부적? 뭐지? 이 웃기지도 않는 조합은?”

환웅은 알기 어려운 한자가 쓰인 부적들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려놓고 앨범을 꺼내 펼친다. 남의 사진 앨범을 보는 건 엄연히 사생활 침해지만, 이런 알기 쉬운 곳에 무방비로 앨범을 놔둔 사람이 잘못한 것이다(물론 자기가 멋대로 서랍을 열어서 찾아낸 거지만).

앨범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성숙한 숙녀가 되어가는 사진들이 담겨져 있었다. 이 사진 앨범은 할머니의 딸이 살아있을 때 찍은 사진을 모아 둔 앨범이었던 것이다. 조금 뒤로 넘기자 할머니의 딸과 잘생긴 청년이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혼례를 올리는 사진이 있었다.

“아, 이 숙녀 분이 딸이시고 이 잘생긴 청년이 사위가 되는 거구나.......”

대충 가족 관계가 파악이 된 환웅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음 장으로 넘기자 할머니와 딸, 그리고 사위가 함께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이 가득했다.

“꽤 행복한 가족이었군요.”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가득했던 앨범을 닫으면서 환웅은 중얼거렸다. 버스에서 한탄하는 듯이 속 이야기를 털어 놓았던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딸은 병을 얻어 돌아갔고, 사위의 행방은 딸의 죽음과 동시에 행방이 묘호하다고 했었다.

“옷은 그냥 가방에 보관해야하나?”

꺼내 놓은 부적과 앨범을 다시 서랍 속에 돌려놓으며 짐에서 푼 옷들을 다시 정리에 가방에 넣었다. 여름에도 불구하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찾아 온 것을 확인한 환웅은 잠을 자기 위해 방 한쪽에 접혀 있는 이불을 펴고 그 위에 누웠다.

“하암. 졸리긴 졸린데 잠이 오지 않아.”

강원도 산골에서, 그것도 아주 깊은 산골에서 보내는 첫날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일부터 아름다운 산들을 구경한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쓸쓸한 지금과는 다르게 화목해보였던 앨범 때문에 알게 모르게 마음이 쓰이는 탓인지, 정말 단순하게 자기의 집이 아니라 남의 집에서 자게 된다는 약간의 불편함 때문인지. 먼 길을 떠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뒤척인 후에야 잠에 들게 되었다.


01


<하늘에서 인간을 다스리기 위해 내려온 신의 자손이여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으.......응?”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이 깬 환웅은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소리의 주인은 도포와 갓을 빼입고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채 서있었다.

“누, 누구세요?”

환웅은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만나 본 듯한 친근함이 느껴지는 노인에게 묻는다.

<놀라지 말게. 나는 자네의 조상 중 한 명이라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내리 찍었다.

“하압?”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환웅과 노인의 주변의 풍경이 바뀌자, 환웅은 너무 놀라 숨이 멈출 뻔 했다. 분홍색의 가구와 인형이 가득했던 방이 드넓은 들판으로 바뀌어 있었다.“여, 여기는 어디지요?”

<자네의 얼마 멀지 않은 미래라네>

노인의 말을 끝으로 갑자기 두 개의 괴성, 정확하게 괴성이라기보다는 짐승의 포효에 가까운 소리가 울려 퍼지며, 두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죽여라!!!”

두 무리의 사람들이 그 말을 동시에 내뱉었고, 드넓은 들판에서 두 무리가 달려들어 맞붙기 시작했다.

한 쪽은 나무를 거칠게 깎아 낸 방망이를 들고 휘둘렀으며, 다른 쪽은 짐승의 발톱에 가까운 손톱을 세우고 맞섰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은 서로를 물어뜯고, 방망이를 휘두르고 손톱으로 베면서 격렬한 싸움을 시작했다.

“제, 젠장! 그만둬!”

아름답던 들판이 금세 붉은 피와 살로 물들면서 살육의 전장이 되는 걸 지켜보던 환웅이 소리친다.

<소용없네. 그들은 우리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막상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고 해도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네.>

노인이 말하고 있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다. 더 이상 이 잔혹한 혈투를 지켜보기만 한다면 인간으로써의 무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막을 수는 없나요? 이 끔찍한 상황을 막을 수 있냔 말입니다!”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다. 환웅 보다 어려보이는 아이와 걷을 힘도 없어 보이는 노인을 막론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 끔찍한 다툼을.

<물론 막을 수 있다네, 오직 자네만이 이 지독하고 무의미한 전쟁을.>

노인은 환웅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

“네?”

들리지 않았다. 노인이 분명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는데, 이 지독하고 무의미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었는데, 들을 수 없었다.

“.................”

피와 살이 가득한 들판에서 싸우고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환웅을 가리키며 무어라고 소리쳤다.

귀가 먹은 것만 같았다.

옆에서 다급한 표정으로 외치는 노인의 목소리도, 환웅을 향해 달려드는 한 무리의 광인들의 외침도.

노인이 지팡이를 다시 한 번 들어 내려치고, 광인들의 피가 묻은 손톱과 방망이가 환웅을 향해 휘둘러졌다.

“하아.......하아.........”

꿈이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조상이라던 노인도, 들판에서 살육을 벌이던 사람들도 없었다. 그저 할머니가 내준 인형과 분홍색 가구가 잔뜩 늘어선 방에 환웅 혼자 누워있을 뿐이다.

“꾸.......꿈이었나?”

흥건히 흐르는 땀을 훔치며 환웅은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땀이 흘려 찜찜한 마음과 방금 끔찍했던 꿈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기 위해 세수를 하기로 하고, 차가운 물만 나온다는 욕실로 향했다.

쏴아아.

누군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응? 이 시간에 누가?”

욕실 앞에 놓여져 있는 건 장롱을 열었을 때 걸려있던 것과 똑같은 사이즈의 저고리와 치마였다.

“아.”

분명히 환웅과 비슷한 나이의 손녀가 있다고 했었다. 이때까지 어디에 있다가 온 건지 모르는 소녀에게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해 기척을 숨기고 방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데-

덜컥, 하고 욕실의 문이 열렸다.


환웅과 비슷한 키를 가진 분홍모리의 소녀가 나체로, 그것도 물에 흥건히 젖은 채 욕실에 서있었다.


“우........우아앗? 아아앗?”

여자의 알몸을 봤다는 창피함과 쑥스러움에 얼굴을 잔뜩 붉히며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는 환웅에 비해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환웅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그쪽은 누구래요?”

자기가 알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지, 창피함을 모르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녀의 물음에 환웅은 대답 대신 욕실 앞에 놓여진 한복과 속옷을 소녀에게 던진 뒤에 욕실 문을 닫았다.

“......... 그냥 땀에 젖은 채로 자겠습니다.”

환웅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돌린다. 단지 여자의 알몸을 봤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이지 남다른 취향 탓에 그다지 흥분하지도 않고 쉽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는 환웅이었다.

“잠깐 거기 서보래요!”

자기가 알몸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채고 한복을 주섬주섬 입은 분홍머리의 소녀가 환웅을 불러 세운다.

“내 할머니가 말한 새 장난감이 당신이야?”

소녀는 생일날의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잠시, 장난감이라니요?”

물건 취급 입니까? 환웅은 소녀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응! 서울에서 날 위해 할머니가 가져 온 장난감!”

묘하게 들뜬 소녀를 뒤로하고 방을 향해 빠르게 뛰어가는 환웅. 자신도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알몸인 상태로 욕실 문을 벌컥 열지 않나, 자신을 장난감이라고 하지 않나, 환웅만큼이나 이상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소녀였다.

“어, 어디 가는 거야?”

소녀가 환웅이 도망치자 당황하며 환웅을 뒤따라오면서 묻는다.

“우앗? 빠르다? 이거 노세요! 자러 가야 한다고요! 지금 새벽 1시라고요! 1시!”

나름 전력을 다해서 도망쳤는데도 소녀에게 단숨에 붙잡힌 환웅은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여주면서 소녀에게 소리친다.

새벽 1시. 이상한 꿈 때문에 잠에서 깨지 않았다면 충분히 자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남의 말은 도무지 듣지 않는 소녀였다.

“전 내일 일찍 일어나서 젖은, 아니 촉촉한 산님들의 사진을 찍으러 가야 한다고요! 그리고 ‘그래서’라니요! 새벽 1시에는 잠을 자는 게 기본 상식입니다!”

환웅은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소녀의 손을 떼어 내면서(의외로 힘이 쌔서 떼어 내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잘못한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선생님의 목소리로 말했다.

“........ 좋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노는 거야.”

소녀는 아쉽다는 듯이 말하며 할머니가 주무신다는 방으로 향했고, 겨우 이상한 분홍머리 소녀에게서 벗어난 환웅은 한숨을 내쉬고는 잠을 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02


찌르찌르 짹짹~♬

달콤한 새소리와 창에서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에 잠에서 깨어나는 환웅.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행복한 아침! 자자, 고작 이 정도에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산님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간단히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환웅은 책상에 올려두었던 카메라를 집어 든다.

“음?”

카메라와 함께 놓여져 있던 딸의 유품이라던 팬티가 사라졌다.

“하긴, 소중한 유품이라고 했었지요?”

할머니나 그 이상한 소녀가 치웠을 것이라 생각하며 언제 방에 들어와서 치웠을까 고민을 하는 환웅. 하지만 금세 포기하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방을 나선다.

“아이구, 즒은이. 해가 뜬지도 얼마 안됐는데 어이가나?”

마당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닭장에 모이를 던져주고 있던 할머니가 외출차림의 환웅을 보며 묻는다.

“아, 여기 뒷산에 산책 좀 다녀오게요. 하하.”

할머니의 눈매가 먹이를 놓치지 않는 독수리처럼 변하자, 환웅은 식은땀을 흘리며 멋쩍게 웃는다.

“그래? 혼자 갈 수 있겠나? 짐승길이 많은 산이라 외지 사람은 길을 잃기 쉬어.”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대부분의 산들은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혹은 편하게 등산을 즐길 수 있도록 산길을 다듬는다. 그런 ‘다듬은’ 산과 달리 ‘다듬지 않은’ 산은 매우 위험하다.

길조차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산은 어떤 맹수가 있을 지도 모르고 어느 쪽으로 가야, 산을 나갈 수 있는 지도 모르는 죽음의 미궁 같은 산이다.

“그럼, 어떡하지요? 저는 꼭 산 속 이곳저곳을 찍어야 하는데요?”

야생 산에서 조난을 당했던 경험이 있는 환웅이기에, 그리 크지 않은 산이라고 해도 섣불리 올라갈 수가 없었다. 곤란해 하는 환웅을 보며 할머니는 살짝 미소를 짓고,

“걱정 말게. 내 손녀를 깨워서 즒은이 길 안내 해 달라고 부탁해 보겠어.”

“네? 잠..........”

할머니는 환웅의 대답도 듣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잠이 덜 깬 분홍 머리 소녀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다.

“우.......우웅. 아직 더 잘 거란......... 앗! 장난감! 나 몰래 놀러가려고 했사!”

소녀는 졸린 눈을 비비며 볼 맨 소리를 하다가 외출 차림의 환웅을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제부터 장난감 취급입니까. 환웅은 이상한 소녀보다 할머니와 같이 가는 게 더 나을거라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었다.

“일단 가서 씻고 와.”

할머니는 소녀를 욕실로 보내고 환웅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저 언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 품에서 자라왔어. 늙어 빠진 노인의 품에 자라느라 저 나이를 먹고서도 아직 언나라요. 이 마실에 늙은이 밖에 더 있겠나? 부모도, 친구도 없이 혼자 외롭게 지내 온 불쌍한 언나라네. 내 여기서 한 달 간만 머물면서코 저 불쌍한 언나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겠나?”

너무나도 간곡한 부탁에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환웅이었다.

“산에 간다고 했었나?”

씻고 와서 그런지 뽀송뽀송해진 얼굴로 분홍머리의 소녀는 여느 때처럼 개량한복을 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아........ 응.”

할머니의 한이 서린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환웅은 나름 상냥하고 친근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금방 도시락 챙겨줄 테이, 여서 기다리라요.”

할머니는 닭장에서 꺼냈던 달걀들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고, 마당에는 분홍 머리의 소녀와 환웅만 남게 되었다.

“있지, 그쪽 장난감은 이름이 어떻게 돼?”

“나이는 17, 이름은 환웅.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이고요 한 달 동안 여기에 신세지게 되었으니 잘 부탁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환웅. 소녀는 허리를 90도로 깍듯이 인사하고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렇게까지 직각으로 숙여서 인사하지 않아도 돼. 그나저나 저는 제 소개를 했는데, 그쪽은 노코멘트 입니까?”

“으음? 노코멘트? 그게 뭐래요?”

그런 간단한 영어도 못하는 거야? 환웅은 진심으로 대한민국의 학생으로서 소녀의 앞날을 걱정한다.

“나이라던가 이름이 라던가 본인에 대해서 소개를 해달라는 소리입니다.”

환웅의 말에 배시시- 하고 곤란한 문제를 웃음으로 넘기려는 아이처럼 미소를 지어 보이는 소녀.


“나 이름이 없어.”


소녀의 말은 너무나도 예상외의 말이라 순간 사고가 멈춰버릴 뻔 했다.

“그리고 인간의 나이로는 17살. 너와 동갑이야.”

환웅은 이름이 없다는 말에, 인간의 나이로는 어쩌구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 환웅은 알고 보니 이름이 ‘나 이름이 없어’ 라는 유쾌한 결말이기를 바랬다.

“이, 이름이 없다고?”

“응.”

소녀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환웅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게 말이 되느.........”

“자, 이거 배고프면 묵어. 요 달걀이 좋은 것이라 맛날 거래요.”

환웅의 말을 자르듯이 할머니가 막 삶겨서 모락모락 김을 품어내는 계란을 바구니에 가득 담아 들고 나와 환웅에게 건네준다. 환웅은 나중에 사정을 듣기로 하고 바구니를 받아 든 채 이름 없는 소녀와 산으로 산책을 가기로 한다.


03


“후........ 후후후.........후아아.”

변태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환웅. 역시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된(방치된) 산이라서 이때까지 환웅이 보았던 다른 산들보다 더 깨끗하고 매혹적이었다.

“어째서 산을 보면서 흥분하는 거야?”

산에 오르자마자 자신을 내팽겨 두고 흥분한 상태로 사진을 찍고 있는 환웅에게 불만을 토하는 소녀.

“‘어째서’라니요. 보세요, 저 나무들의 고운 자태와 황금비율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게 배열된 모습들을! 그리고 매끄러운 산의 능선과 향긋하고 상쾌한 이 공기마저 저의 정신을 아늑하게 만들고 있다고요”

황홀한 표정으로 말하는 환웅을 보고 볼을 가득 부풀리는 소녀.

“장난감! 어째서 나랑 놀아주지 않는 거야?”

“환웅입니다. 뭐, 아직 한참 남았지만 시간은 많으니 이쯤에서 끝내지요.”

소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할머니와의 약속이 떠오른 환웅은, 카메라를 다시 목에 걸고 토라져 있는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부모도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내 온 불쌍한 언나라네.]

같았다.

환웅이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도 친구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 왔다는 것이.

외로웠을 것이다.

환웅처럼 자연에 미치는 성격이 아닌 이 소녀에게는 이 산골이 갑갑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일단 인원수가 두 명이니깐 놀이가 제한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둘이서 즐길 만한 놀이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요.”

환웅의 말에 토라졌던 소녀는 소녀에게 알맞은 아름다운 미소로 답했다.

“꺄하하! 정말 재밌었어!”

어둠이 깔린 산은 정말로 위험하기 때문에 해가 저물기 전에 산을 내려오면서, 소녀는 아이다운 미소를 지으며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규칙도 모르면서 의욕만 앞선 소녀 때문에 많이 애를 먹은 환웅이었지만, 소녀의 미소를 보니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름이 없다고 했었지요?’

이름이 왜 없는 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환웅이었지만,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물어보기로 하고 소녀를 따라 산을 내려갔다.

“응?”

환웅 보다 앞서 걸어가던 소녀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다.

“무슨 일이야?”

환웅이 묻자, 소녀는 위협을 느낀 고양이처럼 무언가를 잔뜩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야.”

소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산 입구에 지어진 할머니의 집에서 처음보는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남성용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써서 머리스타일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허리에 찬 기다란 검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쪽으로 온다.”

그 사람은 환웅과 소녀를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돌려 그들에게 다가왔다. 환웅의 말에 환웅의 등 뒤로 숨어버리는 소녀를 보며, 다가오는 사람에 대해 적개심이 생겨버렸다.

“반갑습니다. 당신이 여기서 한 달 간 머물게 된 사람이라면서요?”

놀랍게도 남성용 정장을 빼입은 그 사람은 와이셔츠가 터질 것 같은 가슴과 매끄러운 허리 곡선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렇습니다만, 당신은 누구죠?”

남성용 정장을 입었어도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스타일과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인은 중절모를 벗어 가볍게 인사했다. 영국 신사 같은 인사를 무시하고, 환웅은 여인의 허리에 찬 검에 시선을 집중하며 묻는다.

“저는 ‘신사’ 라고 합니다. 단지 그 정도만 알고 계셔 주세요.”

상냥한 안내원 같은 말투로 그녀는 자신을 소개했다.

“여기 온 이유가 뭐야?”

환웅 뒤에서 숨어서 고개만을 빠끔 내미는 소녀. 소녀의 물음에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답한다.

“하하, 여전하군요. 저를 보면 그렇게 이를 들어내는 건.”

그녀는 웃음을 멈추고,

“역시 제가 ‘대행자’ 라서 그런 건가요?”

대행자? 무슨 서비스업의 일종인가요? 환웅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에 반에 분홍머리의 소녀는 잔뜩 이를 악물고 정장차림의 여자를 노려볼 뿐이다.

“단지 ‘푸른빛’을 만나러 왔을 뿐입니다. 볼일은 끝났으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죠.”

그녀는 다시 한 번 영국 신사처럼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고는 환웅과 소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푸른 빛?”

네온사인을 말하는 건가, 이런 산골에 푸른빛이 나올 만한 게 있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는 환웅.

“우리 할머니 이름.”

소녀는 멀어져 가는 그녀를 노려보며 환웅의 등 뒤에서 나온다.

“푸른빛이면 아무리 봐도 가명이잖아.”

“우리 할머니는 이름 대신에 ‘그쪽 세계’에서는 푸른빛이라 불러.”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만하는 소녀였다.

무언가 있다.

분명 환웅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정장차림의 여자라던가 대행자라던가 푸른 빛이라던가 그쪽 세계라던가. 환웅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사정이 분명히 있다.

“집에 가죠.”

하지만 묻지 않는다.

할머니의 딸과 사위가 어떻게 됐건, 소녀가 이름이 없건, 의문의 여성이 할머니 집에 찾아왔건. 남의 사정일 뿐이다. 환웅은 단지 한 달 간 집에서 머물게 되는 투숙객일 뿐이다. 단지 그뿐인 주제에 남의 복잡한 사정에 참견할 권리 따위는 없다.

남의 일이다. 환웅은 그렇게 생각하며 소녀를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

“그래, 우리 이쁜 예시! 실컷 놀다 온 거야?‘

소녀와 환웅이 마당에 들어서자, 할머니를 보고 소녀가 달려가 품에 안겼다. 정장차림의 여자 때문에 잠시 뚱해 있던 소녀였지만 금세 미소를 되찾은 소녀는 할머니에게 속사포로 환웅과 산에서 놀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오늘 장난감이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땅따먹기’나, ‘술래잡기’나, ‘비석치기’나, ‘공기놀이’나 ‘솔방울 멀리 던지기’하면서 진짜 재밌게 놀았어! 또 그것만 한게 아니라, 또, 또!”

“그래, 그래 재밌었겠구나. 즒은이 고마워 내 언나랑 놀아 주느라 힘들었지?”

“아뇨, 저도 재밌었는걸요.”

앨범에서 보았던 것처럼 행복해 보이는 할머니와 소녀의 모습에 환웅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배고프자? 즒은이한테 내 신세를 졌으니, 특별히 오늘 맛있는 닭 괴기로 얼른 저녁을 차릴 테니, 기다리라요.”

할머니는 환웅에게 정말로 고마웠는지 닭을 잡아 요리해주기 위해 씨암탉 한 마리를 잡아 부엌으로 들고 갔다.

“신세를 지고 있는 건, 전데요..........”

환웅 때문에 부인중 하나를 잃게 된 수탉이 환웅을 노려보자, 환웅은 미안하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소녀는 오랜만에 닭고기를 먹는다면서 환웅에게 고맙다고 하고는 만세를 부르며 마당을 방방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 큰 소녀 치고는 모자란다고 해야 할지,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여러모로 어린 그녀였다.

큼지막한 씨암탉을 푹 삶아 만든 백숙으로 배불리 저녁을 먹은 환웅은 선선한 마루에 앉아 오늘 찍은 사진들을 확인한다.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어.”

오늘 신나게 놀아서 그런지 피곤하다던 소녀를 재우고 돌아 온 할머니가 환웅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기운이요?”

“그래, 기운. 즒은이가 가지고 있는 기운은 평범하지 않아.”

꼭 티비에서 나오는 무당 같은 말을 하는 할머니. 환웅은 자신이 별나다고 생각했지,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제가요?”

“아주 뛰어나, 이 세상에서 즒은이 보다도 뛰어난 기운을 가진 사람은 읎네.”

할머니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환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칭찬 고맙습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 환웅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환웅을 지켜보며 비장한 표정으로 폭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오늘부터 내 손녀를 자네와 같은 방에서 자게 할 거라.”

기분 좋은 상태로 사진을 확인하던 환웅은 하마터면 카메라를 땅바닥에 떨어트릴 뻔했다.

“무...무무무무, 무슨 소리입니까?”

“늙은이와 같이 자는 것보다는 친구와 같이 자는 게 더 즐겁지 않드래요?”

할머니의 말에 환웅은 고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뇨, 안 돼요. 안됩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동성인 친구일 때입니다. 다 큰 여자랑 한 방을 쓰시게 하다니요? 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고요?”

환웅의 말에 할머니는 껄껄 괜찮아, 즒은이 하며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면서 중얼거렸다.

“글쎄. 당하는 쪽은 인간인 즒은이쪽 일 것이래요.”

환웅의 귀에도 똑똑히 들릴 정도로 또렷한 중얼거림이었다.


04


“죄송합니다만 그것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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