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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절대적인 사신
글쓴이: sopi
작성일: 12-07-01 23:13 조회: 3,219 추천: 0 비추천: 0




Chapter 1.

:: 어디까지나 평온한 죽음 ::



***


“식별번호 F-1000584, 이혜군. 지옥 절대법에 의거하여 이 시간부로 피고에게 ‘평온한 죽음’을 집행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의 여자아이를 짝사랑한 적이 있다.

잠깐만,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예쁜 아이였다.

상대적인 의미로도 절대적인 의미로도 그랬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좋아하지도 않았을 테니, 너무 당연한 소리겠지. 특별히 낭만적이고 운명적인 계기가 없는 이상 예쁘지 않은 이성을 좋아하게 될 리는 없으니까.

뭐, 그런 온도 낮은 이야기는 제쳐두고.

그 애는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상당히 초등학생답지 않은 여자애였다. 당시에도 그렇게 느꼈고 지금 돌아봐도 역시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인공 색소가 첨가된 짙은 군청색의 머리카락은 허리 아래까지 길게 늘어트려져 있었고, 항상 종아리를 덮는 긴 스커트를 입었다.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어보였던 그 애는 매일 누구보다 일찍 교실에 도착해 자신의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가끔 창가의 화분들에게 순서대로 물을 주기도 했다. 당시 나는 그 애가 화분에 물을 주는 모습을 보기 위해 무리해서 일찍 등교한 적도 있었다.

말은 해본 적 없다. 적어도 학기 중에는.

그 애는 매일 차체가 긴 호화로운 리무진을 타고 등교해,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그 차에 타고 귀가했다.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교문 근처에 그 커다란 검은 차량과 운전사로 보이는 늙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어쩌다 좋아하게 됐는지는 의외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단순한 흥미가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방과 후 교정의 화단을 걷고 있을 때였다. 뒤뜰에선 남자 아이들이 빗자루 배트로 야구를 하고 있었다. 노을이 저물고 있었고, 그 애는 그라운드가 보이는 교사 건물의 정문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현관 양 옆에는 펜지가 담긴 기다란 화분이 있었다. 그 애는 그걸 보고 있는 듯했다.

내가 그 곁을 지나가려 할 때, 때마침 펜지 속에서 작은 나비가 날아올랐고, 그 애는 깜짝 놀라며 머리를 감싸 쥐고 상체를 움츠렸다.

그때부터다. 그때부터 그 애가 좋아졌다.

그게 대체 무슨 계기냐고 묻는다면 나도 달리 할 말은 없다. 그냥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그 애의 귀여운 모습에 반한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겠나.

그 애는 아주 예뻤고, 그래서 굳이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어차피 나는 자연히 그 애를 좋아하게 됐을 것이다.

나는 딱히 그 애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언가 행동을 취한 적은 없다.

그 뒤로 거의 매일 같이 그 애의 모습을 눈으로 쫓고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나는 아마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렸을 때, 그 누군가가 ‘뭐야, 너도 XX 좋아해?’ 따위의 말을 할 것 같아서 싫었다. 왜냐면 그때 우리 반의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그녀를 좋아했던 까닭이다.

나는 내 감정이 아주 흔해빠진 것이라고 생각해 경원시했다.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때의 나를 한 대 갈겨주고 싶다.


그 애는 죽었다.


종업식 날이었다. 그날은 새벽나절부터 내내 도시 상공을 배회하고 있던 두꺼운 구름이 눈을 펑펑 뿌려 대서, 온 세상이 하얗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애는 어쩐 일로 걸어서 등교했다. 그리고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교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은 차량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애는 종업식이 끝나자마자 누구보다 빨리 교문을 나섰다. 반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무리를 지어서 교정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달려서 그 애를 쫓았다.

우리 학교는 제법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해 있어, 교문을 나서면 곧장 구불구불하고 긴 비탈길이 있었다. 구렁이의 몸통 같은 그 길을 그 애는 혼자서 돌을 차며 걷고 있었다. 륙색의 어깨끈을 두 손으로 각각 붙잡은 채.

그때 쫓아가서 그 애에게 말을 걸었다면 뭔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그런 생각도 했다.

나는 느긋하게 비탈을 내려가며 그 애의 뒤를 따랐다. 그 애의 모습은 이내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고, 내가 비탈을 다 내려갔을 때는 이미 거리의 어딘가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그 애는 그날 하굣길에서 트럭에 치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나는 그 사실을 방학이 시작되고 며칠 뒤 소문으로 알았다.

나는, 우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무감각한 태도로 그 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딱히 슬프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숨통을 조이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고, 아주, 아주 외로워졌다. 왜인지는 모른다. 마음속으로 나는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그 애와 붉은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던 걸지도 모른다. 분명 졸업을 하고 헤어지더라도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 맺어질 거라고.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나는 어떤 소문을 들었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의 친구들이 소곤대고 있었다. 그 애는 자살한 거라고. 교차로 앞에 서 있다가 일부러 달려오는 트럭 앞에 뛰어든 거라고.

그런 소문이 생기게 된 것은 그 애가 그 당시 처해있던 상황 때문이었다. 이미 대강 예상하고 있던 것이지만 그 애는 어느 부잣집의 외동딸이었다.

그 애의 부모는 딸의 교육에 매우 열성적인 사람들로, 매일 지독할 정도로 그 애에게 공부를 강요한 모양이었다. 심지어는 체벌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방과 후마다 운전사가 마중을 나왔던 건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항상 종아리를 덮는 스커트를 입은 건 체벌의 흔적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도 역시 이렇다 할 격한 감정의 파도는 느낄 수 없었다.

아마도, 스스로가 그 애의 그런 괴로움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이 너무 한심하게 여겨져서, 일부러 감정을 죽여 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며칠 뒤.

문득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지극히 충동적인, 모든 것을 내던지는 듯한 결심이었다.

훗날.

그 결심이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나 바꿔놓을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기까지, 회상은 끝이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11월. 초겨울의 차게 식은 공기가 골목에 감돌고 있다. 저 멀리서는 흐린 먹구름 뒤로 석양이 저물고 있었다. 그 희미한 빛이 주변의 한적한 주택가를 부드럽게 쓰다듬듯이 내려앉아 있었다.

내 앞에는 자그마한 키의 소녀가 똑바로 서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둥그렇고 넓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소녀였다.

나는 몽롱한 눈으로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왜인지 눈시울이 타들어갈 것처럼 뜨거워서 시야가 흐렸다.

“미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줄래.”

나는 고개를 바짝 들고 눈가를 비비며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했다.

“이혜군.”

소녀는 쥐고 있는 커다란 낫을 살짝 고쳐 쥐면서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죽은 생선 같은 푸르죽죽한 눈동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녀의 눈이 무척 곱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당신에게 평온한 죽음을 드리러 왔습니다.”

인공 색소가 첨가된 군청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내 첫사랑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신은 그렇게 말했다.


***


평온한 죽음 법.

이 세계에는 그런 법이 있다. 간략하게 그 개요를 설명하자면 이러하다.

21세기의 어느 날. 지옥의 한 위대한 지도자는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지옥으로 유입되는 영혼의 수가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

위대한 지도자는 그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와 인간 세상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이 적어진 이유를 알았다.

믿기 어렵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 착한 인간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의 인구 중 착한 인간이 차지하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져서, 자연히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의 수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비율은 지금도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정작 인간들은 매일 같이 과거에 비해 시대가 흉흉해졌다느니 그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지만, 지옥의 관점에서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더 이상 지옥으로 유입되는 영혼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위대한 지도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는 전 인류와 결탁해 지상의 주민들을 위한 하나의 법을 제정했고, 그게 바로 ‘평온한 죽음 법’이었다.

지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나이, 성별, 자격을 불문하고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는 때에 ‘평온한 죽음 서비스’를 신청할 권리를 가진다.

그 대신 평온한 죽음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죽은 뒤에 그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평온한 죽음 법의 핵심이다.

더 소상하게, 구체적으로 평온한 죽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자면 이러하다.

우선 평온한 죽음 서비스를 신청하면(가까운 관공서에서, 혹은 우편이나 이메일로 접수할 수 있다.) 신청한 인간의 수명이 1년 남은 시점에서 지옥의 사자가 그 인간을 찾아온다.

지옥의 사자는 대상의 남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1년간, 곁에서 대상을 보좌하며 대상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컨대 지옥의 사신들이 인류에게 제공하는, 애프터서비스가 아닌 비포어(before)서비스인 셈이다.

지옥의 사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다양하다. 사신과 함께 보내는 마지막 1년을 ‘피안기’라고 부르는데, 그 기간 동안 평온한 죽음 서비스를 받는 인간은 모든 물리적 피해로부터 보호받는다. 만약 피안기 이전부터 앓고 있던 병이나 상처가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치료받을 수 있다.

그 이외에도 가난한 사람을 위해 대신 일을 해주거나, 외로운 사람을 위해 말벗이 되어주는 등 여러 방면으로부터 봉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그 어떤 봉사 행위도 서로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에만 집행된다. 인간이 받고 싶어 하지 않는 봉사를 사신이 억지로 해주는 일은 없으며, 반대로 인간이 아무리 특정 봉사 행위를 강요한다 하더라도 사신이 봉사하기를 거부한다면 봉사를 받을 수 없다.

딱 한 가지, 인간도 사신도 거부할 수 없는 봉사 행위가 있는데, 그것은 대상 인간의 ‘죽음’을 막는 것이다.

평온한 죽음 서비스를 신청한 인간은, 피안기 동안 자신의 의지로 죽는 행위ㅡ즉 자살을 할 수 없다. 대상 인간이 정해진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옥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꽤나 중요한 일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서비스를 신청한 인간의 수명이 다 하면, 이윽고 사신이 그 인간의 영혼을 거두어간다. 다만 그것은 아주 안락하고 편한 죽음으로, 어떠한 괴로움도 없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평온한 죽음’이다.

뭐, 대충 이런 거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자잘한 규칙이 있고, 개중에는 봉사를 하는 사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딱 한 번 교체할 수 있다던가 하는 것도 있는 모양이지만, 더 이상 자세히는 나도 모른다.


중요한 건 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설령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그 평온한 죽음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고, 3년 전, 아직 중학생이 되기 직전의, 당시 14살이었던 내가 그 서비스를 신청했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평온한 죽음 서비스에는 또 한 가지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서비스 신청이 수리되어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지상에 파견된 사신들이, 전부 어리고 귀여운 외모를 가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모른다. 아마 그 편이 더욱 상품으로서 인기를 끌기 쉬울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어쨌든 지옥의 입장에서는 되도록 많은 인간이 이 서비스를 신청해주는 편이 좋을 테니, 그들 나름대로 판촉 전략을 꾸민 것이다.

그 어린 사신들은 모두 10살 전후의 외견을 가지고 있고, 항상 여우의 얼굴 모양을 한 가면을 품에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사호(死狐)라고 불린다.

죽음을 관장하는 여우.

사신에 비하면 그 뜻도 운율도 굉장히 아기자기해서, 귀여운 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의 겨울방학을 코앞에 둔 11월.

내 곁을 찾아온 그 사호는, 놀랍게도 내가 초등학생 때 짝사랑했던 여자아이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이혜군, 당신은 20XX년 2월 20일,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평온한 죽음 서비스를 신청했고, 그 신청은 즉시 수리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수명이 1년 남은 오늘, 20XX년 11월 11일부터 1년 뒤인 20XX년 11월 11일까지 지옥 절대법에 의거하여 ‘평온한 죽음’이 집행될 것을 지금 고지합니다. 집행은 저, 3종 견습 사신 루오렘이 주관합니다. 무언가 질문이 있으십니까?”

“한 가지 있어.”

“말씀하세요.”

루오렘은 잰 척하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마치, 장문의 발표를 실수 없이 끝마치고 조금 뿌듯해하는 초등학생 같았다.

실제로 초등학생 같은 사이즈였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비유가 되려나.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던가?”

루오렘은 희미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이 담긴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과연 지옥의 사신도 이런 스테레오 방식의 작업에는 걸리지 않는 모양이다.

별로, 작업을 걸려고 한 건 아니지만.

“……모르겠습니다.”

낫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며 루오렘은 고개를 저었다. 기억을 떠올리려고 필사적으로 고민해주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기뻤다.

“그래?”

하긴, 그런가.

그런 지나치게 만화 같은 기적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는 없겠지.

분명 아주 닮은 얼굴인 것뿐이리라.

아니면 심지어 닮지 조차 않았는데 내 뇌가 멋대로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후자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정말이지 면목이 없군.

누구에게 면목이 없냐면…….

“가령 학교에서 같은 반이 된 적이 있다던가 그런 건 어때? 얘기도 나눠본 적 없는, 반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왜인지 꼭 자신이 등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교실에 나타나는 기분 나쁜 자식에 대한 기억은 없어? 잘 떠올려줬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질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조차 못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것은 굳이 고민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는 걸 그녀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으니까,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구나.”

사신이 학교에 다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 얘기를 듣는다면 아마 웃어버리고 말 것이다.

바보취급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아마,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애초에 그럴 리 없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네?”

“아무 것도 아냐.”

내가 빙그레 웃어보이자 루오렘은 무표정인 채로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곤 이내 구두를 신은 발을 가지런히 모아 바른 자세로 서더니, 낫의 손잡이 부분에 달린 가죽 끈을 어깨에 걸어 그것을 등에 짊어졌다.

제비꽃 색깔의 원피스 자락을 두 손으로 가볍게 잡더니, 루오렘은 내게 다소곳하게 예를 표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1년간 당신의 곁에서 평온한 죽음 서비스를 수행하게 된 사신, 루오렘입니다.”

“오, 오……. 잘 부탁해.”

그 격식을 차린 인사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대처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니, 깨달았다기보다는.

비로소 ‘의식’했다.

첫사랑의 소녀와 꼭 닮은 그 얼굴에 시선을 빼앗겨 신경을 쓰지 못했던 부분.

이 애가 나를 찾아오게 된 경위.

“저어, 새삼스럽지만 네가 날 찾아오게 되었다는 건…….”

“네.”

루오렘은 무게 있는 얼굴로 끄덕였다. 그리고 담담하게 선고했다.

“정확히 1년 후의 오늘, 당신의 수명은 다 합니다. 동시에 당신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저는 당신의 영혼을 무사히 지옥까지 인도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하하.”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척이나 기묘한 감각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3년 동안 줄곧, 자신의 수명이 끝나는 날을 내심 손꼽고 있었다. 그 갈망은 어찌나 강했는지 커터 나이프로 손바닥의 생명선을 무리하게 반토막 내려고 한 적조차 있었다. 예컨대 나는 되도록 빠르게 죽고 싶었다.

왜냐면 나는 지옥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옥에 가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주 바보 같은 얘기가 될 것이다.

딱 중학생 정도의 철없는 꼬맹이가 떠올릴 법한 이유였다.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그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요컨대 나는…….

“……?”

내가 열정적인 시선으로 빤히 바라보자 루오렘이 눈짓으로 의문을 표했다. 거기에 상관하지 않고 나는 오로지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했다.


나는, 내 짝사랑인 그녀와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 애가 자살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러했다.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

정말로 그런 법칙이 존재하는지 그 여부는 알 수 없다. 그 애처럼 생전에 고생을 많이 한 가여운 영혼이 지옥에 떨어진다면 이 세상에 그보다 부조리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만약 그래도 그 애가 지옥으로 떨어졌다면.

그 애를 만나러 가자고 결심했다.

만나서,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냥 그 애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평온한 죽음’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바보 같다고 비웃어도 좋다.

하지만 3년 전의 나는 진심으로 그런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겨우 초등학생 때 가졌던 연애감정에 이렇게 매달리는 것은 단순한 아집이나 고집으로 보여 질지도 모른다. 나도 내 진심은 모르겠다.

다만 이번만큼은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망설이는 것을 관뒀기에 행동에 나선 것이다.

뭐, 거기까진 괜찮았다.

정말로 지옥에서 그 애와 재회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거지만.

어쨌든 꽤나 낭만적이고 멋진 이야기라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

지옥에 가기도 전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렇게 그 소녀와 재회해버리고 만 지금의 현실이었다.


***


“뭐어, 더 이상 서서 얘기하기도 뭐하니 일단 갈까.”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골목을 한 번 둘러본 내가 제안한다. 루오렘은 별다른 불평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기본적으로는 봉사 대상에게 복종한다, 였나.

나름대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이 존재에 대해 나도 어느 정도의 정보는 지니고 있었다. 그녀들에 대한 소식은 여러 매체에서 접해볼 수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매일매일 성심껏 보살펴준다던가, 사신이라는 직함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근사근하고 귀여운 보통의 여자아이라던가, 지옥에 떨어져도 좋으니 몇 년 정도 더 같이 살고 싶다던가……. 기타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나를 찾아온 사신은 TV에서 보던 것만큼 애교가 많아 보이지는 않지만, 이건 이것대로 수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쨌건 간에 얼굴은 최상으로 귀여우니까.

“난 집에 돌아가면 아마 바로 저녁 먹을 것 같은데, 넌 어때? 밥 먹었어?”

길을 걷다가 흘낏 돌아보자 고작 반걸음 뒤에서 나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루오렘의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커다란 낫을 등에 짊어진, 그 이외에 다른 짐은 일절 들고 있지 않은 독특한 차림이었다. 입고 있는 옷도 달랑 반소매 원피스에 나들이 모자뿐으로 계절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간소했다.

“춥지 않아?”

그다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물어둔다.

반쯤 예상했던 대로 루오렘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는 추위도 배고픔도 느끼지 않습니다.”

“사신이라서? 하지만 TV에 나온 사호들은 손수 음식도 만들고 또 맛있게 먹던데.”

“…….”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는 듯 이마를 오므렸다.

“저어, 사호가 무엇인가요?”

“어라, 모르는 거야?”

내 되물음에 루오렘은 한층 더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동그란 눈을 약간 치켜뜨고 당황한 듯이 입술을 벌렸다.

그것은 마치, 부끄러운 실수를 저질렀을 때의 절망적인 표정 같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지상에 오는 것이 처음이라서…….”

무척이나 위축된 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해왔다.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는 모양이다.

별로 그럴 필요는 없는데.

“헤에, 처음이구나.”

아까부터 무척 뻣뻣했던 것은 어쩌면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생각하자 그 생기 없는 무표정이 훨씬 더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런 걸로 사과하지 않아도 돼. 모를 수도 있지.”

“…….”

일단은 그렇게 일러두었지만, 루오렘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뺨을 부풀린 채였다. 아마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거겠지.

첫 임무를 실수 없이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까.

“다음부터는 조금 더 조사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니깐. 그냥 물어봤던 것뿐이야.”

“하지만 조금 전 제가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은 더 이상 같은 화제를 이야기할 수 없어졌습니다. 제가 흐름을 끊은 것이 아닌가요?”

루오렘은 상당히 필사적인 눈빛으로 물어왔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봤자……. 방금 전의 대화를 그렇게 섬세한 부분까지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글쎄.”

애매하게 대답하자 그것이 곧 긍정으로 들린 듯 루오렘은 무겁게 고개를 떨어트렸다.

“저어, 저는 이 임무를 맡기 전부터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상에서 봉사를 하는데 있어 그 성격이 일종의 장애물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와아.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루오렘은 긴 속눈썹이 도드라진 예쁜 눈을 약간 아래로 내리깐 채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억지로 참고 있긴 했지만 자칫 방심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설마 이렇게까지 자신을 궁지로 내몰 줄은 몰랐다.

한적한 주택가의 골목길.

가끔씩 지나가던 주민들이 나와 루오렘을 향해 흥미 본위의 시선을 던져댔다.

“저, 저기, 신경 쓰지 마. 별로 네가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곤란해지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마음에 두지 않아도 돼. 라고 할까 두면 오히려 내가 곤란해.”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당신이야말로 저를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봉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봉사는커녕 당신에게 짐이 되어서는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어째서 이만큼이나 완고하게 자신을 고립시킬 수 있는 거지.

말하는 것은 분명 옳지만, 스스로를 책망하기만 해서는 문제해결도 무엇도 되지 않는다. 꼭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해야 된다는 법은 없고, 때로는 타인의 도움을 수용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다. 그러니까 굳이 지금 내 배려를 거절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 상황에선 거절하면 그쪽이 더 내게 곤란하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그녀가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내 입으로 그 원리를,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나지 않는 범위에서 보기 좋게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곤란하다.

뭐가 되었건 간에 이 상황은 곤란하다.

행인들의 시선도 차츰 따가워지고 있다. 지금의 나는 시사 다큐 프로그램에 간혹 소개되는, 어리고 귀여운 사호에게 특정 봉사 행위를 강요하는 인간으로서 갈 데까지 가버린 그런 놈으로 비춰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있잖아.”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자 루오렘은 기다렸다는 듯 자조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담당 사신의 변경은 서비스를 신청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자택에서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즉각 수리될 것입니다. 물론 하루 만에 교체를 당하면 저는 무척 혼이 나게 되겠지만…….”

“너무 기죽어 있잖아!”

비관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런 게 아니야, 교체할 생각 같은 건 요만큼도 없다고. 난 애초에 너 이외의 사호는 필요 없어.”

상대가 당황하는 것을 보자 반대로 자신은 침착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겨우 차분한 목소리로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사실 긴장하고 있던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 짝사랑했던 여자아이를 앞에 두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던가, 부끄러운 것을 넘어 불온하기 짝이 없는 소리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지금도 이 녀석ㅡ동일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ㅡ을 이렇게 좋아한다.

그때의 감정은 거짓말처럼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은 채 내 가슴에 남아있었다.

“……?”

루오렘이 내 기세에 놀란 듯 작은 눈을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깜빡거렸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그녀의 왼쪽 허리춤에 당연하다는 듯이 매달려있는 그것ㅡ여우의 가면을 발견하고 거기로 손을 가져갔다.

가면은 원피스 위에 두른 허리끈에 걸려있었다.

“이거, 이 여우 가면. 너희들은 다들 이걸 가지고 다니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너희를 멋대로 ‘사호’라고 부르고 있어. 그건 그런 뜻이야.”

루오렘은 멍하니 내 손에 쥐어진 가면을 눈으로 쫓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으로 되뇌었다.

“사호…….”

“그래, 그건 너희를 지칭하는 말이야. 이곳에서는 말이지.”

애초에 누가 이 녀석들을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정착되어 당연한 듯이 불리게 되었다.

“자, 여기.”

내가 가면을 돌려주자 루오렘은 멍하니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물끄러미 여우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군요, 이것 때문에…….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걸 배웠습니다.”

“……별 말씀을.”

인사성만은 바르다고 할지, 성실하기는 확실히 성실하지만 철저하게 요령이 부족한 타입이었다. 결국 경험이 그 뻣뻣함을 유연하게 만들어줄 때까지는 계속 이런 느낌일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제가 심려를 끼쳐드렸군요.”

루오렘은 다시 허리춤에 그 가면을 끼운 다음 다소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저는 분명 당신이 저처럼 쓸모없는 사신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정도로 그런 생각을 가지지는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불만이 생기면 그건 그때 가서 내 입으로 직접 말할 테니까, 내가 아무 말도 없다면 그건 괜찮은 거야. 알겠지?”

타이르듯 말하자 루오렘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담당 사신의 변경은 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래, 그럴 일은 영원히 없을 거야.”

“그런가요.”

겨우 수긍한 듯 내 대답을 곱씹어보던 루오렘은 돌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분명했다.

웃은 것이다.

“너……. 웃을 줄도 아는구나.”

“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하긴 TV에 나온 사호들도 모두 너무 깔끔해서 되려 연기라고 생각될 만큼 보기 좋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방금 이 녀석은 겨우 입꼬리를 보일 듯 말듯하게 비튼 것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애도 그다지 잘 웃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그만 가자.”

“네.”

다시 걷기 시작하자 낫을 등에 짊어진 어린 사신은 왜인지 무척 뿌듯한 얼굴로 종종거리며 내 뒤에 따라붙었다.


***


[빼빼로를 준비해놨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from. 붕대리본]


“……아차차.”

휴대폰에 도착해있던 문자를 뒤늦게 확인하고 조금 죄스러운 기분이 된다. 딱히 사전에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리 스스로 챙겼어야 하는 이벤트를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한 소소한 죄책감을 느꼈다.

부득이한 사정이란 것은 물론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귀여운 사신에 대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의 첫사랑과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가 불쑥 찾아와 자신의 수명이 1년 남았다고 알려오고 있는데, 달력의 날짜에 ‘1’자가 4번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1’자 모양의 과자를 주고받아야 하는 부조리한 이벤트 따위가 대수겠는가?

뭐, 하지만 기왕 떠오른 것을 굳이 기억에서 소거할 이유 또한 없다.

휴대폰을 덮은 나는 시선을 먼 곳으로 던져 주변을 살핀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좁은 통로를 오가고 있는, 천장이 높고 드넓은 실내.

역 근처의 마트는 저녁 식사의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찾아온 가족 단위의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목적으로 이곳에 있다.

양친이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은 우리 집은, 식사 준비를 비롯한 가사 전반을 나와 여동생이 분담해서 처리하고 있다. 라고 해도 언제나 여동생이 무리해서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해버리기 일쑤지만, 요리만은 내 쪽이 한 수 위이기 때문에 주로 내가 담당하곤 한다.

물론 제대로 된 요리를 하는 건 일주일에 몇 번 안 되지만, 오늘처럼 특별한 손님이 있는 날에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밀고 있는 카트에는 포장된 야채와 고기, 슬슬 떨어져가는 조미료 정도가 담겨있다. 아직 오늘 요리의 테마가 될 재료를 찾지 못했다.

뭐, 말은 번지르르 해도 그렇게 대단한 건 만들지 못하지만.

대부분은 책에 쓰인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갈 뿐.

그래도 오늘만큼은 기합을 넣고 요리할 생각이기 때문에 재료 선정부터 힘이 들어가 있다. 평소와는 달리 손질이 된 것은 일절 사지 않았다. 그다지 칼을 잘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이 선택은 여동생에게 빈축을 사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 자존심이 양보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도 그럴게 우리 집에 제대로 된 손님이 오는 것은 처음이다.

간혹 리본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묶는 괴상한 여자가 방문하기도 하지만, 그 녀석은 올 때마다 직접 부엌에 들어가 요리인지 이계의 생물체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을 잔뜩 연성해서 혼자 만족스럽게 먹어치운 다음 우리에게 권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대접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런 연유에서도 우리 집에 제대로 된, 제대로 내 요리를 음미해줄 손님이 오는 건 처음이다.

별로 실력이 좋지 않더라도 힘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역시 노력해서 만든 게 맛없으면 좀 그렇겠지. 무난하게 맛있는 걸로 갈까…….”

그렇지만 오랫동안 고민하는 사이 약간 의욕이 꺾이고 말았다.

잘 생각해보면 우선 맛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정성이 들어갔다 한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제1조건을 완수하지 못한 채로 제2조건을 완수해봤자 본제에서는 벗어난 게 되어버린다.

게다가 좋은 대접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거추장스러운 허세보다는 소박한 진심이 담겨있어야 하는 거겠지.

“좋아.”

고심한 끝에 결론을 내리고 다시 카트에 쌓여있던 손질되지 않은 재료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그 사이 마트 안을 가볍게 둘러보고 돌아온 루오렘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끼어들어 카트에 손을 올렸다.

“제가 밀겠습니다.”

“응? 아, 고마워.”

“아니요,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저는 당신에게 봉사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거니까요.”

이제는 캐치프레이즈 비슷한 입지가 되어가고 있는 그 대사를 자랑스럽게 읊조리며 루오렘은 무거운 카트를 조금 힘겹게 밀며 따라왔다.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굳이 그 진지한 태도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기로 했다.

그녀가 노력하고 싶다면 노력하게 두는 게 최선이다.

“참, 그렇지. 뭔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던지 있어? 네 취향에 맞추는 편이 생각해보면 나을 것 같네.”

문득 생각난 것을 묻는다. 루오렘의 눈이 둔한 빛깔로 반짝였다.

“좋아하는 음식……인가요.”

“그래, 지옥에서도 식사 정도는 하지?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던가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을 못 느끼는 건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분명 저는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약간 몽롱한 어조로 내 얘기에 동의를 표한 루오렘은 아주 잠깐 동안 선 채로 고민했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어린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루오렘 쪽을 신기한 듯 뚫어져라 쳐다봤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그녀를 흘낏흘낏 엿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야 등에 자신의 키만 한 낫을 짊어지고 다니는 소녀의 모습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거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루오렘에게 향해있던 시선들은 이윽고는 곁에 있는 나에게로 옮겨졌다.

그들은 천천히 깨닫고 있으리라.

내가 이 어린 사신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이유를 말이다.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마치 도망치듯이 시선을 피했다.

“……뭐, 이런 건가.”

“뭐라고 하셨나요?”

내 혼잣말을 민감하게 포착한 루오렘이 재빨리 물어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두었다.

아까의 일로 학습한 것이 있는 건지 루오렘은 내가 한 번 괜찮다고 말하면 더 이상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았다.

“저, 좋아하는 음식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정말? 잘 됐잖아. 뭔데? 뭐든 만들어줄게.”

레시피는 참고하겠지만, 하고 장난스럽게 덧붙인다. 내 농담에는 별다른 리액션을 취하지 않은 채 루오렘은 한 호흡 정도 침묵했다.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이내 결심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가지.”

“응?”

“가지 요리가, 좋습니다.”

양손의 검지손가락을 서로 교차시켜 빙글빙글 돌리면서 약간 쑥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가지? 가지가 좋은 거야?”

얼굴을 붉히면서 짧게 한 번 끄덕인다.

별로 쑥스러워할 대목은 아닌 것 같은데.

다소 의아함을 느꼈지만 일단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뭐……. 네가 좋다면야 상관없지만. 더 비싼 음식을 말해도 상관없는데?”

“괜찮습니다, 다른 것은.”

가지에 대한 화제에서 벗어나자마자 급격하게 평정을 되찾았다. 정말로 좋아하는 건가? 별로 초등학생ㅡ정도로 보일 뿐 정말로 초등학생인지 여부는 불투명한 사신ㅡ이 좋아할 만한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취향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좋지 않겠지.

“그래, 그럼 그걸로 할까.”

나는 머릿속으로 가지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몇 가지인가 떠올려보며 야채 코너로 걸음을 옮겼다.

루오렘이 약간 들뜬 얼굴로 카트를 밀며 쫓아왔다.

그 모습을 등 뒤로 흘낏 엿보다가 조심스레 물어본다.

“저기, 어째서 가지가 좋은 거야?”

“네? 그건, 저어…….”

거기서 말끝을 흐리며 한 번 눈길을 피했다. 선홍색의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대답을 망설인 끝에 루오렘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보라색이기 때문입니다.”

“……엥? 그것뿐?”

“네, 그것뿐입니다.”

말한 것만으로 만족했다는 듯 루오렘은 약간 흡족한 표정을 하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보라색이 좋은 것 같다.

보라색인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모양이다.

“……너도 꽤 특이하구나.”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야채 코너에서 랩에 둘둘 감긴 가지 몇 개를 들어 카트에 넣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해본다.

“……?”

잘 들리지 않았는지 루오렘은 희미하게 턱을 옆으로 기울였다가, 이내는 카트에 담긴 가지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


“이런, 깜빡했네.”

“무언가 잊어버린 물건이라도 있으신가요?”

“응, 그런 셈.”

한손 가득 묵직한 무게의 비닐봉투를 든 채 마트를 빠져나온 시점에서, 나는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 가지 물품을 빼먹고 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막 계산대를 지나 마트의 유리문을 빠져나가기 직전.

코인 로커가 있는 입구의 넓은 공간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나는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생각나버린 이상 이대로 모른 척하고 돌아가는 것에는 저항이 있었다.

그러니까, 빼빼로 말이다.

불가피하게도 오늘은 그 과자를 주고받아야 하는 날이다.

평소라면 그런 이벤트 따위 콧김을 뿜으며 무시하곤 하지만, 이미 나한테 줄 생각이 만만한 녀석이 있는 모양이니 그 보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떡할까, 잠깐 기다릴래? 금방 사올게.”

“그렇다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루오렘은 드디어 자신의 차례를 찾았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며 앞으로 나섰다.

“그럴래? 그럼 부탁해.”

“네, 맡겨주세요. 그런데 무엇을 사오면 될까요?”

루오렘은 가슴 언저리에서 주먹을 꼭 쥔 상태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정작 가장 중요한 정보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옥에서는 유능한 사신이었을지 모르지만, 지상에서는 이것이 이 녀석의 첫 임무가 된다.

또 실수를 하기라도 한다면 한동안 풀이 죽겠지.

그것을 생각하면 되려 맡기기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렇지만 과보호를 할 수도 없고, 애당초 봉사를 받는 입장인 내가 이런 걸 신경 쓰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빼빼로라는 과자야. 이렇게 넓적한 손바닥 크기 정도의 상자에 들어있어. 아마 어딘가에서 왕창 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적당히 종류별로 사오면 돼.”

“알겠습니다. 금방 돌아올게요. 부디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래, 조심히 다녀와. 거스름돈 꼭 받고.”

“네!”

뭐라고 할지.

어린 딸을 심부름 보내는 것 같은 그림이 되었다.

루오렘은 드디어 내게 봉사다운 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다시 마트 안에 뛰어 들어갔다.

등에 짊어진 커다란 낫의 날 부분이 걸을 때마다 뒤뚱뒤뚱 흔들렸다.

주위의 시선이 단숨에 주목된다.

“괜찮으려나.”

그 모습을 잔걱정이 많은 부모 같은 눈으로 쫓고 있었다.

정말로 부모나 다름없었다.


***


“사왔습니다!”

“오, 수고했어.”

마트 앞의 자판기에서 탄산음료를 뽑아 내용물을 반쯤 비웠을 때 루오렘이 돌아왔다.

인근의 버스정류장에는 귀가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거리의 가로등에는 하나 둘씩 탁한 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겨울의 해는 짧아, 석양이 저물자마자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제는 푸르스름한 둥그런 하늘에 희미하게 별의 무리가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 거스름돈입니다. 그리고 부탁하신 과자.”

루오렘은 식재료가 담긴 것과 거의 비슷한 사이즈의 봉투를 환한 얼굴로 내게 내밀었다.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빼빼로가 마치 재고품처럼 쌓여있다. 개중에는 형광빛의 포장지로 둘러싼 다음 리본을 단 선물용도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제대로 실수 없이 사왔다.

딱히 실패하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건 이것대로 진이 빠지는군.

“고마워, 제대로 사왔네.”

“종류를 잘 구분할 수 없어 점원에게 물어보자 고르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자신의 그런 지혜를 칭찬해달라는 듯 뽐내는 얼굴로 말한다.

과연, 처음의 이미지만큼이나 지독하게 융통성이 없고 뻣뻣한 아이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야 이 정도 심부름은 해내지 못하는 편이 교육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만.

“저어, 틀린 것은 없나요?”

“없어없어, 완벽해.”

조금 많이 사온 감은 없잖아 있지만, 그 부분은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답안을 제시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잔반이 남는 종류의 식품은 아니니까 별로 상관없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가면서 하나 먹자.”

“네.”

마치 자신의 자리를 찾듯이 내 등에서 반발자국 떨어진 자리까지 종종거리며 뛰어온다.

“빼빼로 데이, 라는 플랜카드가 붙어있었습니다. 세일 행사도 잔뜩 하고 있었구요.”

“그렇겠지. 그런 걸 상술이라고 하는 거야.”

내 대꾸에 루오렘은 한층 더 의문스런 얼굴을 하며 물었다.

“특별한 날인 건가요, 오늘은?”

“뭐, 특별하다면 특별하려나…….”

1년에 하루밖에 없다는 점은 어느 의미로 맞다. 그렇지만 그것은 조금만 비꼬아도 말도 안 될 만큼 허술한 이유다. 그렇게 따지면 1년 중에 유일하지 않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별다른 계기도 없이 단지 날짜에 ‘1’이 네 번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날을 만들었다는 것도, 거기에 이끌려 이렇게 불필요한 지출을 해야 하는 것도 전부 바보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 사지 않으면 될 텐데.

하지만 막상 이런 삐딱한 태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그건 그것대로 유치해보일 수가 있다.

뭐가 그렇게 진지하냐면서 말이다.

결국 이런 건 적당히 속아 넘어가주면서 즐기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런 날인 모양이거든, 오늘은. 이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거야.”

“그렇군요, 풍습……인가요.”

별다른 설명 없이도 루오렘은 납득한 듯 끄덕였다.

“빼빼로 데이……. 11월 11일은…….”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는 로봇처럼 몇 번인가 같은 말을 되뇐다.

공부에 열심히인 초등학생 같은 그 모습에는 호감을 느꼈다.

이 녀석은 이 녀석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둘이서 하얀 초콜릿이 발라진 빼빼로를 나눠먹으며 걷는다.

간혹 행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나 손가락질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루오렘은 꿈에도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 줄은 모르는 듯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역에서 멀어져 시내를 휘감듯이 가로지르는 큰 강을 건너면 여기서부터 내가 사는 동네다.

언덕이 많은 땅에 주택들이 밀집해있는 한가해 보이는 거리였다.

어슴푸레하게 어두운 저녁.

벌레의 시체가 들러붙어 있는 가로등들이 일제히 점등되어 있다.

6시에 가까워졌을까.

저녁은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겠네.

어차피 늦은 거라면 조급해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가 문득 다시 떠올렸다.

남은 수명은 1년.

나는 1년 후에 죽는다…….

설마 이렇게 빨리 사신이 방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오히려 실감이 되지 않았다. 성인식을 치르기도 전에 나는 죽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죽음이란 건 뭘까.

새삼스럽게 그런 것이 궁금해졌다. 내 의식은 죽은 뒤에도 연속되는 건가? 아니면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기억조차 희미하게 되어버리는 건가?

딱히 기대한 건 아니지만 내 인생은 좀 더 원대할 줄 알았는데.

어렴풋하게 그리고 있던 길고 방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뚝 끊겨서, 칠흑처럼 검은 화면으로 변해버렸다.

분명, 그것이 죽음에 대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잠깐 쉬었다갈까?”

골목을 걷던 도중.

놀이터와 연결되어 있는 작은 공원을 발견하고 그렇게 제안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루오렘은 군말 없이 수긍해왔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내 말에는 기본적으로 순종하고 있었다.

내게 봉사하러 온 것이긴 하지만 딱히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고,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떤 명령에 불복종할지는 사호 본인이 결정하는 일이다.

즉, 사호 개인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는 얘기가 된다.

이 녀석은 어떨까.

그러니까, 어떤 명령이라면 싫은 내색을 할지에 대해서다. 이 녀석도 싫은 것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게 있다면 반대로 싫어하는 게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지 않은가? 아무리 사신이라도 감정은 있는 모양이니까.

“자, 여기 앉아.”

표면의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한 벤치에 앉은 다음 옆자리를 권한다. 나와 짐을 분할해서 들고 있던 그녀는 우선 빼빼로가 가득 담긴 봉투를 벤치 위에 내려놓은 다음 챙이 넓은 남색의 모자를 벗어 그 위에 올렸다.

둥그런 모양으로 눌린 머리의 윗부분이 드러난다.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커다란 모자를 벗자 더더욱 기억속의 그 소녀와 닮았다는 것을 느낀다.

아니, 그저 닮은 수준이 아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기억 속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처럼 똑같다.

심지어 머리색마저도.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탁한 군청색.

뿌연 가로등의 빛을 받아 둔중하게 반짝거리고 있다. 윤기도 광택도 절망적일 만큼 부족해 그야말로 표면에 페인트가 발라져 있는 것 같은 이미지였다.

루오렘은 가죽 끈을 달아 어깨에 메고 있던 낫을 머리 위로 벗었다. 그것을 벤치 끄트머리에 조심히 세워둔 다음 비로소 내 옆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왜 그러신가요?”

조금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스스로 정리하고 있던 루오렘이 의아한 듯 내 쪽을 돌아본다.

위험해.

잘은 몰라도 이건 위험하다.

이렇게 제대로 정면에서 보자 저 얼굴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가히 치명적이었다.

“아니, 아무 것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명백하게 티가 나도록 얼버무린다. 긴장이 전해지지 않도록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

내 반응이 의문스러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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