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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노벨 작법서
글쓴이: 한사현
작성일: 12-07-01 06:08 조회: 3,173 추천: 0 비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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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0

라이트노벨에서의 좋은 프롤로그란 다음 조건을 만족한다.

히로인 혹은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하며,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가를 독자에게 확실하게 전달해 이후의 전개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동시에, 이후의 전개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

1

“저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요, 편집자님.”

“저렇게 써놓으면 누구나 다 못 알아 듣습니다아.”

라이트노벨 출판사 노블엔젤의 제 3 통조림실.

편집자는 ‘라이트노벨,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쓸 수 있는가!’ 라는 책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솔직히, 라이트노벨을 잘 쓰고 싶다면 이런 책을 읽는 것보다 지금 당장 책상에 앉아서 습작을 쓰는 걸 추천해요오.”

“그런 대사 나중에 편집할 때 골치 아프실 텐데요.”

“전 설정상 편집자니까 어찌되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아.”

“캐릭터가 자기 입으로 설정이라고 말했어!”

“애초에, 성인이지만 외모는 중학생 레벨로 풋풋하고 귀엽고 보들보들한 편집자라는 설정이 말이 안 된다구요오. 그런 건 현실에는 없어요오! 세월의 힘을 뭘로 보는 겁니까아! 이 고등학생 작가놈!”

“주인공도 작가도 고등학생이라서 죄송합니다!”

“중학생이 편집자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던가, 중학생에게 손을 대면 범죄라서 설정상으로는 나이를 성인으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던가 하는 어른의 사정은 습작이니까 무시해버리라구요오!”

“중학생 외모로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자, 이정도면 현실 분들에게는 충분히 사과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죠오. 꼬우면 2차원으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아마 이 글 읽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2차원에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 텐데요!”

“시끄러워요. 본론입니다. 좋은 프롤로그란 무엇일까요오?”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프롤로그 아닌가요?”

“…듣고 보니, 캐릭터 매력도 그럭저럭 어필했고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가도 그럭저럭 어필했고 이 이후에 어떤 전개가 나올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없는 프롤로그네요오.”

“이제 편집자님이 얼마나 절벽가슴 로리처럼 생겼는가를 알 수 있는 일러스트 한 장만 있으면 완벽하겠네요.”

“자화자찬은 그만 해라, 이 작가지망생 녀석아아.”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까불어서죄송합니다편집자님.”

“진작 그랬어야죠오.”

편집자는 큼큼 헛기침을 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 후, 가능한 귀여워 보이고 싶은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어색하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고.

“그럼, 오늘의 수업을 시작해 봅 thㅣ다!”

혀를 씹었다.

~오늘의 수업~ 프롤로그 잘 쓰는 방법

“좋은 프롤로그가 뭔지는 위에서 대충 설명했으니 넘어가죠.”

“대충 설명한 걸로 괜찮은 겁니까!”

“사실 좋은 프롤로그의 조건에는 마감을 지킨 프롤로그라는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만….”

"피곤에 찌든 편집자의 얼굴이 됐어!“

“일단 다른 사람들이 흔히 겪곤 하는 프롤로그의 문제점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오. 자아, 예제입니다아.”

잘못된 프롤로그의 예제

제국력 2012년. 신마전쟁이 일어나서 와장창 우두둑 두두두탕탕탕 한후 내가 정의다! 더 이상 형제로 있지 않겠다! 마성 모독이다! 인간이 되기로 하셨군요! 마도시대 이즈 곤! 중세시대 이즈 커밍! 월드 이즈 더티풀!

해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아.”

“아니 잠깐만, 예제를 저렇게 날림으로 써도 돼요?”

“됩니다. 사실 작가 마음이니까요.”

“…….”

“대부분의 독자들은 제국력이라는 글자가 나온 순간 장대한 우주전쟁 역사나 판타지 전쟁 역사를 떠올렸을 거에요. 그럼 재미없다고오! 누가 그걸 10페이지나 읽어줘요오! 가끔 쓰기도 하지마안! 명작에서 쓴 거랑 네가 쓴 건 달라요오!”

“잔인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프롤로그는 라이트노벨에서의 좋은 프롤로그의 조건에 쓰여 있던, ‘히로인 혹은 주인공의 매력을 어필한다’ 혹은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가를 쉽게 알 수 있게 해 준다’ 라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아.”

“확실히 그렇죠. 세계관만 줄창 이야기하고 인물과 사건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음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재미도 없어서, 세계관을 읽다 ‘아 재미없어’ 하고 책을 덮어버리는 경우까지 생겨 버리고 말아요오. 그러니 저런 프롤로그는 대체로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아.”

“이렇게 딱딱한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읽다 지칠 것 같은데요, 편집자님.”

“걱정 마세요.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으니 지금부터 약을 빤 것 같은 해괴한 개그를 쳐 댈 겁니다! 가능하면 주사기를 등장시켜서 심의위원회가 거슬려 할 만한 녀석으로오!”

“아… 안돼! 차라리 넘어지기만 했는데 어째서인지 옷이 전부 벗겨져 버리는 에로씬을 넣어 주세요! 그건 왠지 심의에 안 걸린다고 하니까!”

“그런 건 투러브 트러블 다크니스에서나 찾으세요오!”

“갑자기 작품 이름 언급하지 마세요! 작중에서 등장하는 모든 작품이나 단체, 지명, 이름 등은 현실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 어른의 사정은 무시하라고 말했잖아요오!”

“그럼 이제부터는 무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라?”

“편집자님이 알아서 어떻게든 해결해 주시겠죠, 뭐. 저는 그냥 마구마구 곤란한 드립과 이야기를 싸질러 놓고 편집자님이 ‘이걸 어떻게든 해야 해’ 라고 삼일 밤낮을 고민해서 나온 해결법을 ‘아 귀찮아요 더 쉬운 방법 찾아주세요’ 하고 투덜거릴 거에요.”

“아… 아하하… 그, 그래요?”

“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학생회의 일존. 소드 아트 온라인. 고식. 하트커넥트. 하느님의 메모장. 초속 5센티미터. 숨더….”

“그마아아아아안! 경쟁사 작품은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

어째서인지 편집자님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소드노벨 작품은 안 돼요오!”

“에이, 소드노벨이라고 해 봐야 다들 알 텐데요 뭐. 지금 저희가 이야기하는 곳도 출판사 노블엔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어디인지 다들 알고 있을 거에요.”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오!”

“그럼 편집자님이 제게 휘둘리고 있으니 수업을 진행하죠. 저 프롤로그를 재미있게 읽으려면 뭘 해야 할까요?”

“입장이 바뀌었어어!”

“자, 그럼 시작.”

잘못된 프롤로그를 이렇게 고쳐 보자

그런 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 번 해 보자

“윗부분과 이 부분은 생략합니다. 이걸로 오늘의 강의는 끝.”

“이래도 되는 걸까요오… 저희야 매일매일 강의가 있지만, 독자 분들은 이번 강의가 첫 번째 강의일 거라구요오. 첫 번째 강의부터 이렇게 대충대충 넘어가면 나중에도 뻔할 거라고 생각할 거라구요오….”

“그럼 두 번째 강의부터는 딱딱 성실하게 하면 되겠네요. 그럼 전개가 눈에 훤히 보이면서도 예측에서 벗어난다는 조건 성립. 만세! 최고다!”

“…사실은?”

“귀찮아서요. 주인공의 귀찮음이 원고 바깥으로 튀어나와서 이번 프롤로그는 여기서 끝납니다.”

편집부 후일담

“왜 분량이 이렇게 적죠?” “길 필요가 없어서요.”

편집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편집자의 눈을 노려보았다.

“사실은?” “…….”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편집자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자… 작가….”

“작가?”

“작가분이… 귀찮다고 말씀하셔서요.”

편집장은 옆에 놓여 있던 죽도를 집어들었다.

…잠시만요. 그건 소드노벨 편집장님 캐릭터잖아요. 라고 편집자가 지적하기도 전에, 편집자의 이마에 죽도가 작렬했다.

편집장은 아이를 혼내는 엄한 부모의 표정으로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귀찮아도 일단 노력하는 것. 그것이 모든 소설의 기본입니다.”

그 말을 들은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다.

“…챕터 1은 지금 시점에서 과거로 되돌아갑니다아.”

그 후 ‘이야기하는 중에 딴 소리 하지 말라’고 한 대 더 맞았다.

CHAPTER 1.

0

책이 불타올랐다.

타오르는 불길을 등진 아버지의 얼굴은 그림자로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쓰레기는 읽지도 쓰지도 마라.”

“하지만….”

그녀와 약속했는걸요, 아버지.

“장르소설은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쓰레기다.”

“하지만….”

저는 어린아이인걸요, 아버지.

“너도 나처럼 작가가 된다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장르소설을 쓰고 싶은 걸요, 아버지.

“그러니, 이런 쓰레기는 읽지도 쓰지도 마라.”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1

나는 평범한 소년 E다.

소년 A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평범한 소년이다.

한 여자아이와의 첫사랑이라는 추억을 남긴 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과 싸우는 씁쓸한 사춘기를 겪으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와 어린 시절의 꿈과 기억이 어느새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평범한 소년이다.

중학교 시절에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대중문학의 거장이신 부모님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열기를 잃고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납득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어떨까?”

어릴 적, 장르소설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던 그 소녀.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보지 못하게 하는 나의 아버지를 피해 함께 만화영화를 보곤 했던 그 소녀.

어릴 적, 함께 작가가 되자고 약속했던 그 소녀.

그런 그녀도 어린 시절의 꿈을 잃고 방황한 적이 있을까?

“있을까, 없을까?”

나는 조용히 손에 든 책을 내려놓았다.

이 책은 한 천재 작가의 신작 장르소설이었다. 총 판매량은 이미 십만권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 나라의 정점에 올라선 괴물 작가의 괴물 작품 표지에 그려진 한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의 약간 뒤편에 비스듬히 선 소년이 소녀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소년은… 뭘 하고 싶은 걸까?”

그 해답은 아마 이야기 속에 있을 것이다.

옛 소꿉친구와 맺은 어린 시절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

옛 소꿉친구와의 약속을 떠올린 소년이 뒤늦게나마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고 소녀를 찾아가는 이야기.

마치 나와 그녀의 이야기 같다. 괜한 망상은 아니었다.

이 소설의 작가가…….

“저기, 잠시만 비켜 주시겠어요오?”

“아, 네. 죄송… 미안해.”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소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참 사색에 잠겨 계신 걸 방해해서 죄송한데… 그 책이 좀 필요해서요오.”

“미안. 완전히 생각에 빠져 있었네. …그런데, 이 책 사려고?”

“네? 네에. 그렇죠오.”

“어린아이에게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장르소설은 기본적으로 수위가 높고 자극적인 편이니까. 부모로써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책 중의 하나가 되고 만다.

“어, 어린아이라… 그… 그런가요?”

앳된 소녀는 떨떠름하게 헤헤 웃으며 책으로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

천재 작가의 신작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도록 큰 푯말을 단 큰 탁자에 책을 수십 권씩 쌓아 탑을 만들어 놓은 탓이었다.

“…웃, 우웃… …………저기.”

한참 동안이나 발돋움을 하던 소녀는 울먹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기, 저기, 저기요오.”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책을 집어 달라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능청스레 웃으며 앳된 소녀를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런 책 보다는 저어기 있는 동화책을 보는 게 어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하자. “전 어린아이가 아니에요옷!” 하고, 앳된 소녀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조용한 서점 내에서 소리를 질렀기 때문인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휙휙 날아들었다. 그러자 앳된 소녀가 흥분을 가라앉히더니 분노에 찬 조용한 목소리로 느물느물 말했다.

“저느으으은. 어린아이가아아아. 아닙니다아아아아.”

“………………거짓말 하지 마. 이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당신보다는 훠어어어얼씬 잘 알고 있어요오.”

“거짓말.”

“쳇, 그럼 증거를 보여드리죠오.”

앳된 소녀는 푯말을 손가락질하며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투고 생활을 시작.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보고 싶어할 익숙하고도 신선한 내용을 어린아이의 감성을 확실하게 자극하는 방법으로 썼다는 극찬을 받으며 거대 장르소설 출판사 노블엔젤 공모전의 대상을 수여. 나이를 먹으며 재능은 점점 꽃피었고, 중학생의 사춘기 반항기 시절을 다룬 소설로 두 번째 시리즈를 집필, 전국의 중학생들이 모두 읽어 보았을 것이라 불리는 공전절후의 대박을 침으로써 자신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입증. 그리고 이번에는 고등학생이 된 자신을 담아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했죠. 그녀가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그래 왔듯이, 고지식한 부모님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언짢은 컨셉과 테마를 담아서요오.”

“……어라?”

엄청나게 잘 알고 있었다.

“자아아, 이 정도면 충분하죠오? 그럼 잔말 말고 책을 내놓으세요오. 사람을 제멋대로 어린아이 취급 하다니, 못된 분이군요오.”

“그래, 그래. 이거 얕보면 안 되겠는걸.”

나는 산처럼 쌓여 있는 책 중 한 권을 집어 앳된 소녀에게 건넸다. 책을 받아든 앳된 소녀는 감사합니다, 라는 의례적인 대답을 한 후 종종걸음으로 계산대로 향했다.

“……….”

아주 잘 알고 있는데.

“뭐, 그래도 맞는 말만 한 건 아니지만 말야.”

나는 책 표지를 부드럽게 한 번 쓰다듬었다.

앳된 소녀는 이 작가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현재 고등학생이 된 이 작가는 내 또래와 함께 나이를 먹어 왔다. 동급생 중 절반은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자라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내가 이 작가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내 동급생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다.

나는 그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너는….”

이 책은.

나와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그녀.

함께 작가가 되자고 말했던 그녀의 작품이니까.

“너는, 어린 시절의 꿈을 잃어버리지 않은 거지?”

나는 책을 집었다.

역시, 아버지 몰래라도 읽고 싶다.

2

오후 여섯 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늦었군.”

“죄송합니다, 아버지. 갑자기 교실에서 글 내용이 떠올라서요.”

“그래? 그런가. 나중에 책상 위에 올려놓도록.”

“네. 알겠습니다.”

사실은 장르소설을 읽다가 늦게 온 것이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한 나는 계단을 올라 위층의 내 방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일 층에 계신 것을 조용히 확인한 나는 여동생의 방문을 작게 두들겼다.

“…저기, 동생님 계신가요?”

“갑자기 웬 존댓말이야? 오빠.”

방으로 들어가자, 여동생은 속옷 위에 외투 상의라는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침대 위를 뒹굴거리고 있었다.

“부탁이 있어서.”

“하긴 뭐, 오빠가 내게 살갑게 굴 때에는 항상 뭔가 부탁이 있는 법이지. 어디보자. 외박하게 도와달라고? 아, 오빠는 아빠 감시 때문에 연애도 못 하는 초식동물이었지? 미안.”

“…심한 독설인데.”

“독설은 진실이기에 독설인 거야. 안 그래, 오빠?”

배꼽이 살짝 드러난 여동생은 교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아니면, 사춘기 중학생 소녀의 연심을 휘어잡는 연애편지는 어떻게 쓰는지 물어보러 오셨나?”

“…너 말이야, 내 연애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그야, 오빠의 지금 얼굴이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처럼 완전 발정 상태니까 그렇지.”

“…….”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았고, 여동생의 말이 꽤나 일리 있는 말임을 깨달았다. 확실히 묘하게 기분이 들뜬 얼굴이었다.

“나는 오빠가 누구랑 연애하던 상관없지만… 누구인지 정도는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여동생이 볼을 부풀리며 퉁명스레 말했고, 나는 황급히 변명을 내뱉었다.

“아냐, 아냐. 연애와는 관계없는 부탁이야.”

“그럼 소설 문제겠네?!”

여동생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눈을 반짝였다. 표정도 굉장히 밝아져 있었다. 왜 그렇게 기뻐하는 건지 모르겠다. 여동생은 작게 키득거리며 말했다.

“하긴, 오빠는 소설밖에 모르는 바보니까. 학교 성적도 소설과 관계된 부분만 묘하게 점수가 좋고. 아니, 이건 아빠가 소설밖에 모르는 바보라서 그런 거겠지. 오빠는 아빠가 보여주는 소설이라면 항상 ‘이런 내용 쓰기도 읽기도 싫은데’ 라고 편식하는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 잘 알고 있네.

“나는 엄마를 닮아서 편집자 재능이 있으니까. 작가의 생각을 파악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한 여동생은 나긋나긋한 손가락을 쭉 뻗어 내 얼굴을 가리켰다.

“오빠는 지금 야한 책을 내게 맡기려 하고 있어!”

“난 여동생에게 야한 책을 맡기는 이상한 녀석이 아냐! 평범한 책이라고, 평범한 책!”

내 생각을 파악하기는 무슨! 이라고 투덜거리는데, 여동생은 어느새 짓궂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역시, 책 숨기러 왔구나?” “…어라?”

여동생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맞지? 맞지?” 라고 나를 추궁했다. 맞다. 나는 여동생에게 책을 숨겨달라고 부탁하러 왔다.

나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내 책장은 아버지가 수시로 감시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중학생 때 그 난리를 피웠으니 자업자득이지. 그래서, 무슨 책을 숨겨달라는 건데?”

“어제 말했던 그 책.” “뭐야, 야한 책 맞잖아?” “아니라니까!”

꽥 소리를 지른 나는 바깥에 아버지가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으… 정말…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부탁이니까 이 책 좀 숨겨 줘. 아직 덜 읽었단 말야.”

“흐응, 이 책을 읽어서 그렇게 야한 표정을 짓고 있었구나?”

“그래, 그래. 그러니까 좀 숨겨 줘. 들키면 곤란해.”

대꾸하기도 지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여동생에게 부탁했다. 여동생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좋아, 그럼 그 대신 독후감 써서 보여줘.”

“…독후감?”

“주제는 오빠가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가장 흥분했는가야.”

“…….” “거절한다면 협상은 결렬.”

여동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여간… 사춘기 여자애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잘 상상해봐. 오빠는 작가지망생이잖아?”

“알았어, 쓸게. 대신 절대로 들키면 않도록 해 줘.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뻔하지, 뭐.” 여동생은 담담한 목소리로, 내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었던 그 말을 입에 담았다.

이런 쓰레기는 읽지도 쓰지도 마라.

“…….”

“오래 전부터 들었던 말이잖아. 언제부터 들었던 건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안 그래?”

“그렇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 말을 듣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 들었던 그 말이 가장 잔인했는가는 기억하고 있다.

“아주 옛날이지.”

3

오후 여덟 시, 아버지의 서재.

“이런 쓰레기는… 쓰지 마라.”

아버지는 내가 보는 앞에서 내가 서재 책상 위에 두고 간 기획서를 갈기갈기 찢은 뒤 휴지통에 처박았다.

“네가 쓰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냐. 네가 쓰고 싶은 걸 찾아라.”

“…….”

제가 뭘 쓰고 싶은지 아버지가 어떻게 아시는데요.

나는 당장에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그 말을 억지로 가슴속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내 목소리는 분노 때문인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꿰뚫었고, 나는 벌거숭이가 된 것 같은 수치심과 불쾌한 답답함이 몸과 마음을 거칠게 휩쓰는 것을 느끼며 이를 꽉 아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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