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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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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이솔리테리 하바네라
글쓴이: 까레니나
작성일: 12-07-01 01:49 조회: 2,354 추천: 0 비추천: 0
지하이기 때문인지 이곳 시설은 창문 따위에 후하지 않았다. 나는, 창문 하나 없는 콘크리트 방에 처박힌 채로 내 앞에 있는 한 남자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아니, 사실은 노려보고 있다고도 할 수 없었고, 달리 시선을 둘 곳이 없어 그쪽에 눈길을 주고 있는 것 뿐이다. 이름이 정훈이라고 했었던가?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는 약한 편이지만, 들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 비슷하게 생각에 남아 있었다.
"담배 피우나?"
그가 물었다.
"아니."
"하기사, 피울 리 없겠지."
마치 나를 잘 안다는 것처럼 그는 그렇게 단정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중에서도 특히 정부 관련 단체 소속이라는 말이 명함에 한 줄 들어가는 사람들은, 나에 대한 몇가지 인적 사항을 아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대충 파악이 끝났다는 식이었다.
정작 자신은 피우지 않는 모양인지 그는 꺼냈던 담배 한 대를 그대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물론 환기가 되고는 있을 테지만, 지하 2천 미터 아래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닐듯 싶었다. 아마 어딘가에 금연 표지판도 붙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소감이 어떤가?"
"미칠정도로 답답해."
미칠정도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그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지만, 그건 진심이었다.
어릴 적부터 어딘가에 구속당한다는 것이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갇혀 있어야 한다거나, 아니면 꼼짝 않고 누워 있어야 한다거나, 어느 쪽이든 나는 오래 견디질 못했다. 돌아다닐 자유가 있다고 해서 집 밖으로 나도는 것도 아니지만, 단지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 자체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난처럼 감옥 갈 짓은 절대 하지 않겠노라고,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것이, 감옥보다도 더 지독한 곳에 끌려와 앉아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선뜻 협조해주면 되는 게 아닌가? 자네가 원하는 정도의 자유는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당신네들한테 협조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유의 침해야."
"그러면 뭐, 더 자유롭게 되는가, 아니면 더 구속당하는가 정도의 차이라고 하지."
정훈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사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고, 설령 틀린 말이라고 해도, 그걸 틀린 말이라고 밀어붙이기에는 내 양 손을 묶고 있는 수갑이 신경을 갈아 날을 세우는 것처럼 거슬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사실 나는 자네가 이렇게 나오는게 이해가 잘 안 가. 꼭 사상범이라고 하나? 그런 부류를 마주 보고 있는 느낌이거든.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자신의 안위 정도만 생각하는 차가운 인간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런 냉철한 사고 아래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종류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야. 도덕이라거나, 윤리라거나, 그런 것들이 자네 같은 사람한테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게 의외인가?"
내가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그들의 편견 중 하나였다.
"의외니까 하는 이야기 아니겠나?"
그는 이죽거렸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드는군. 자네 부모가 자네에게 자료들을 물려주면서, 자네가 그걸 아무렇게나 휘두르지 못 하도록 정신적으로 제동장치를 만들어둔게 아닐까, 하고 말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해본 적 없나?"
"그 사고방식이 주입된 거라고 해도, 아직 그게 틀렸다는 증거는 못 찾았으니까."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세상에,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런 반응이 튀어나오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어쨌든, 그러면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움직여줄 생각은 없다, 그런 확인만 다시 한 건가?"
그는 짐짓 우리, 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별로 대답할 마음이 들지 않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자네를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내보내줄 수도 없고. 사실 어떤 친구들은 당장이라도 머리를 열어서 뇌를 뒤집어보면 뭔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하기도 하던데. 지금 뇌를 뒤집어놓는 방법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을 자네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한데, 어떤가?"
물론, 그들의 기술로 뇌를 뒤집어본다고 해서 기억을 읽는다거나, 사고의 구조를 파악한다거나 하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아마, 그런 소리를 한 것도 일선의 과학자들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에 묶여 있는 관료들 쪽일 것이다.
"그정도 지적 수준으로는 불가능할걸?"
"그대로 전해줘도 되겠나?"
"마음대로 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하기는 했지만, 물론, 아직까지는 날 죽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아마 그런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표정은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있을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자네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니까, 좋게 말해서 신체적 고통을 가한다거나 하는 방식도 상당히 괜찮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도 괜히 애꿎은 사람을 괴롭힐 생각은 없으니까. 가학적인 취향은 없거든.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정신이 아주 이상해져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위험 부담이 있기도 하고."
"지금까지 악역을 자처하고 있지 않았나?"
그렇지만, 몸이 망가지는 정도는 별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자명했다.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게 물음을 무의미하게 반복해보다가, 어쩌다보니 정말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고, 그런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뭐,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라고 할 생각은 없네. 어차피 시간은 상당히 넉넉하니까. 자네를 여기 잡아두고 있는 이상에는 말이야. 자네 같은 사람들일수록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그런 부분에까지도 꼭 나에 대한 단정이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쨌든, 나는 잠깐 인상만 찌푸렸고, 그는 그런 것까지도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사실, 재미있겠다 싶기도 했다. 아마 노리개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을 터다.
그러다가, 문득 멀리서부터 낮게 울리는 소리와 진동이 벽을 타고 흘러왔다. 상당히 무거운 물체가 바닥에 떨어진다면 그런 비슷한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었다. 이곳 지반에서 지진이 날 리는 없고, 무슨 장비가 잘못되서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그는 지금까지 뒤에 서 있었던 여자에게 물었다. 왜 여기 들어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는 내가 여기 끌려왔을 때부터 거기 서 있었다. 어쨌든 그라고 그걸 알 수 있을 리는 없었고, 여자가 글쎄요, 라고 입술을 떼자 정훈은 신통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한 번 나가보게. 나는 이 친구하고 이야기를 끝내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여자가 돌아서 나가려는 순간이었을까. 여자는 정장 외투의 품 속에서 무언가 검은 물체를, 알아차리기도 어려울 속도로 꺼내 앉아있는 정훈의 목덜미에 후려쳤다. 정훈은, 기절한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즉사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없이 그대로 책상 위에 고꾸라졌다.
잘 보이지 않았던 그 물건은 권총이었고, 여자는 그대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총구를 정훈의 머리에 가져다댔다. 나는 총성을 기다리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만, 그 여자 또한 무언가를 주저하는 것이 있었는지, 바로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쏘지 마."
무슨 생각 때문에 그런 말을 꺼냈는지는 나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눈 앞에서 피가 튀고,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자신도 굳이 죽여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인지 여자는 별 표정 없이 권총을 거뒀다. 대신, 권총을 다시 고쳐잡고 쓰러진 정훈의 목덜미를 한 번 더 후려치기는 했다. 쏘지는 않았지만, 그 일격만으로도 그대로 죽고도 남지 않을까 싶었다.
"이 인간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네."
여자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다보기만 했다.
"무르다고."
그제야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그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쓰러진 정훈의 품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곧 여자는 옷 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하나 찾아냈고, 내쪽으로 다가왔다.
"손 내밀어 봐."
시키는 대로 하자 그는 내 수갑을 풀어주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당장 수갑을 풀어준 것만으로도 무슨 이유 때문인가 같은 것 따위는 사소한 문제로 밀려났다.
여자는 별 감정 없이 다시 말했다.
"권총 쓸 줄 알아?"
"조금은."
얼마나 의미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권총 사격 정도는 해본 적이 있다.
"나한테 쏘지만 않으면 되니까."
내 생각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 여자가 말했다.
"저기, 지금 뭘 어쩌려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범위가 큰 질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떠오르는 더 좋은 물음이 없었다. 여자는 품 속에서 권총과 탄창 몇 개를 꺼내 내 쪽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별 거 있어? 널 구해주려고 하는 거지."
제대로 된 답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끌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권총을 쥔 손을 외투 속에 감춘 채로 문을 열고, 여자는 굳이 나를 불러세울 생각조차 없다는 듯 그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하는 수 없이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래도,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따라갈 수는 없지 않나 싶어 그렇게 한 번 물어보았다.
"수직 갱도 승강기로 갈 거야."
승강기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그 중간에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여럿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권총을 고쳐 잡아야 했지만, 다만, 방금 전의 폭발 때문인지 그들은 부산스럽게 여기저기로 뛰어다녔고, 그래서 굳이 우리에게까지 시선을 줄 여유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나는 한참 긴장한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여자의 뒤를 따랐다. 그는, 여기서 뛰는 것이 오히려 더 눈에 띌 것이라 생각했는지 태연하게 두꺼운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통로를 걸어나가고 있었다. 페인트조차도 칠해져 있지 않아 거친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콘크리트 천장엔 군데군데 길쭉한 형광등이 늘어서 있어, 통로를 흐리게만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우리가 걸어온 통로와 중성미자 관측기로 향하는 통로가 십자로 교차되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곳에 서 있었던 한 남자가 우리를 보고 먼저 물어왔다.
"자네, 어딜 가나?"
"승강기 쪽으로요."
여자는 짐짓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뒤에 있는 녀석은 왜?"
"외부로 이송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과장님이."
둘러대는 말이라기엔 서툴렀지만, 여자 또한 그 이상으로 지어낼 말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 그런데 왜 자네 혼자만 나온 건가?"
"한 명 이송하는 정도를 가지고 부산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있나요."
"그런 일은 예정에 없었던 것 같은데. 확인해봐도 되겠나?"
지금 내가 여기 있는게 그정도로 이상하게 보였던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있는 이들이 평균적으로 의심이 많은 것인지, 솔직히 알 수 없었다. 남자는 무전기를 꺼냈고, 나는 아무래도 일이 쉽게는 풀리지 않을 모양이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동안 여자는 지체 없이 옷 속에 감추고 있었던 권총을 꺼내 그에게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도 그 속도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이기보다 총성이 먼저 들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조준은 정확했는지, 방금까지 걸어오고 있었던 남자의 머리 한 쪽이 사라졌고, 그 틈새로 원래는 그 안에 들어있어야 했을 것들이 튀어나와 허공 중에 흩뿌려졌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굳어있는 동안, 그리고 그 남자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반응하기까지의 지연 동안 여자는 근처에 있었던 캐비닛으로 몸을 숨기고 나를 잡아당겼다. 여전히 경황이 없었던 나는 그가 당기는 대로 몸을 숙이기는 했지만, 생각에는 사람이 총에 맞으면 저렇게 죽는 건가, 하는 것만이 들어찼다.
여기저기서 총탄이 날아오기는 했지만 캐비닛이나 그 근처에만 박히고 있었다. 여자 또한 대응 사격을 하고는 있었지만, 캐비닛에 숨어서 등을 돌리고 있는 채로는 그게 누군가를 맞추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몇 발을 더 쏘고 나서 탄창을 갈아끼우고, 내게 말했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네. 돌파할테니까, 정리하고 신호하면 따라와."
"돌파한다니?"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지만, 그가 지금 이 순간 바깥으로 뛰어나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무어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가 여기 가만히 있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걱정되면 엄호 사격이라도 해."
그는 캐비닛 바깥으로 뛰어나갔고, 거기에 맞춰 저편에서 들려오는 총성 또한 한층 거세졌다. 그의 말처럼 엄호 사격이라도 해야겠다 싶었지만, 고개를 내밀기도 어려웠고, 그리고 빠르게 뛰어가는 그를 피해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어쨌든, 여자는 총알 세례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반대편 캐비닛들과, 다른 통로들 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 나서, 아마 그의 것일 권총의 총성이 두 번씩 울릴 때마다 그쪽에서 울리는 총성은 점차 잦아들었다.
"나와."
그 총성이 모두 멈췄을 때에서야 여자는 그렇게 소리쳤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통로 쪽으로 나오자, 주위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이 바로 보였다. 처음 당했던 남자와 꼭 같이, 총에 맞은 흔적은 모두 머리에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뛰어든 모습에 비해선 무섭다 싶을 정도로 침착한 조준 사격이었다.
그곳에서부터 승강기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뭔가가 폭발한 거 같았는데, 그것도 네가 한 거야?"
내가 물었다. 그 폭발음을 신호삼아 일을 시작한 걸 보면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정수 시설에 시한폭탄을 설치해뒀어. 물 처리량이 분당 1톤 정도 밖에 안 되긴 하지만, 어쨌든 그걸 날리면 적당히 시선도 끌고, 시설 내부를 조금 망쳐놓는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시한폭탄이었다면, 나와 그 자신이 언제 어디에 있을지를 모두 계산해둔 상태였다는 의미였을 터다. 돌파하겠다면서 총알 사이로 뛰어나가는 과격함에 비해서는 한참 꼼꼼해보이는 준비였다. 그렇지만, 당장 그의 모습은 꼼꼼하다느니, 과격하다느니 하는 수사 따위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표정했다.
"이름이 뭐야?"
내가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물음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걸 아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 대한 판단의 기초가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이하린."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쏠 수 있는 사람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잠깐 하긴 했지만, 어차피 쓸데 없는 소리 이상은 아니었다.
"이대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초속 15미터로 움직이는 승강기라고 하지만, 2천 미터를 오르자면 20분 넘게 걸릴 수밖에 없다. 벌써 여러 명을 죽이고 난 상태에서, 그 20분 동안 아무 일도 없다면 그게 오히려 신기하지 않을까.
"지상에도 경비가 있긴 하니까, 아마 지하에서 상황 파악이 끝나면 바로 연락이 올라갈 거야."
"승강기를 멈춘다거나 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
"강제 조작하면 멈출 수도 있긴 한데, 중간에 멈춰놔서야 아무 의미도 없지. 그렇다고 지금 상황 수습하기도 바쁜 지하로 다시 내려보낼 수도 없고, 그네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지상으로 올라가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지상에서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게 문제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정도 판단력은 있겠지."
상대방의 판단력에 기대는 방식이 그리 좋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지하 2천미터에서 지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이 나라에서 이런 밀실을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굳이 이곳에 시설을 차려놓은 이유이기도 할 터다.
한국 중성미자 연구소, 줄여서 한중연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중성미자 관측을 위해서 고갈된 텅스텐 광산 밑에 만들어졌다. 아니, 실은 지금도 대외적으로는 중성미자 관측을 위한 시설이라고 알려져 있을 터다. 그러나 중성미자니, 암흑물질이니 하는 것에 대한 연구가 어느정도 소강 상태가 되면서, 어차피 아주 폐기하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유지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는 이 시설의 목적을 어느 시점에서 전환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넌 어디 소속이지? 정부 소속은 아닐 거고."
당연한 말이지만, 정부 소속이면서 정부 기관을 뒤집어놓을 리는 없으니까. 아직까지 내게 특별한 적의를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말을 붙이고는 있지만, 그의 의도나 목표 같은 것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러니까 정부의 나를 끌어들이려는 것과 비슷한 목적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 테러리스트야."
하린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사실, 나는 한국어로 자신이 테러리스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 테러리스트라는 단어의 어감은 현실감이 없다 싶을 정도로 기묘했다.
"여긴 테러 목표 중 첫 번째였어. 잠입한 다음에 정수 시설을 폭파하고, 널 꺼내온다는 게 내 시나리오였지. 아직까지는 특별한 문제는 없어. 설명이 됐나?"
"무슨 테러 단체 소속이라도 되는 거야?"
"단체 맞아. 1인 단체."
그리고 그 1인이라는 것은 그 자신을 가리키는 말일 테고. 이전까지 무표정했던 것에 비해, 자신이 테러리스트라는 이야기를 꺼낸 이후로는 얼굴에 감정이 살짝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내 나이 정도나 됐을까? 어쨌든 나이는 많이 잡아도 스물을 넘기지 않을 것 같았고, 그래서 치기어린 망상 같은 것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게 설령 망상이라고 해도, 이정도 규모가 되면 현실과 구분하는 것 따위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테러에도 목적이 있을 거 아냐?"
"너도 잘 알 텐데?"
그의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네가 소심하게 여기 처박혀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나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뿐이야."
한 바퀴 돌린 말이기는 했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협조를 거부하는 것이 소극적인 형태라고 한다면, 협조를 요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적극적인 방법일 것이다. 거기까지는 무리가 없었지만, 다만, 당장은 이 일의 당사자라고는 할 수 없을 사람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설 작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의아하기는 했다.
"신경 전산화 프로젝트의 중단?"
그는 말 대신 고개만 한 번 끄덕여 보였다.
"제3자가 이런 일에 나설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제3자?"
하린은 거뒀던 시선을 다시 내게 고정했다.
"생각하기 나름이지."
더 묻는다고 해서 딱히 좋은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결국은 그저 자신이 그러고 싶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멈출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붙들고 이유를 되짚어봤자 의미 없는 일일 뿐이다.
내 대처방식이 소극적이라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아니, 방금 전에 정훈이라는 남자 앞에서 곱씹었던 것도 그런 종류의 생각이지 않았던가. 다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특별히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원의 크기는 지극히 협소했고, 그에 비해서 내가 마주하고 있는 자들의 힘이라는 원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에게 테러를 가한다는 것 같은 가능성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고 해서 적극적인 저항 따위를 했을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이 근처에 차를 대놨으니까, 거기까지만 가면 될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권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물론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승강기 안이 넓은 것도 아니고, 그들은 우리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는 입장이니까. 지상에 올라갔더니 사방에서 우리를 겨누고 있는 총구에 포위되었다, 하는 그림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다.
"못할 건 없어."
하린이 말했다.
"아직까진 그쪽에서는 널 죽이는 경우는 피하려고 할 거야. 나만 적당히 처리해서 넌 생포하는 쪽으로 하는 게 그쪽 생각이겠지. 제압해야 되는 대상은 나 밖에 없고, 거기다 여자니까, 올라오자마자 총부터 쏘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잠깐 머뭇거리는 정도면 충분해. 거기다 이곳 요원들은 권총 이상의 무장은 없어."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에서, 자신이 생각한 시나리오에서 일이 벗어날 가능성 따위에 대한 불안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정작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내쪽이다.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다시 2천 미터 아래로 처박히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그렇다고 하린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에는 그에게 의지하는 쪽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이라고는 해도, 어차피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도 사람을 죽이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리라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선택지가 둘 밖에 없는 지금 이 순간 그런 윤리를 들이밀어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 자체에 충격을 받기에는, 나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승강기는 차근차근 갱도를 타고 올랐다. 중간중간 버려진 갱도들이 보였고, 규칙적으로 매달려있는 형광등이 그 안을 흐리게 비추고 있었다.

지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할 때, 하린은 외투에서 통조림 캔 비슷한 것을 꺼내 토치 라이터로 그 위에 튀어나온 심지에 불을 붙였다. 조금씩 타들어가며 연기를 내던 캔은 곧 연막에 가까운 새카만 연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외투 안에 무얼 얼마나 집어넣고 다닌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모든 단계에 대해서 미리 계산해놓고 있었던 것이라면 당연한 준비이기도 했다. 지상에서부터 송풍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연막이 승강기 안을 가득 채우는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승강기 주위를 포위하고 있을 이들을 순간 머뭇거리게 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듯 싶었다. 그의 말처럼, 상대가 잠깐 주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문이 열리면, 바로 앞으로 뛰어나가. 조금 앞에 바위가 있으니까 그 뒤로 숨으면 될 거야."
나는 연막 속에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하린은 권총을 쥔 채, 승강기가 지상에 닿기를, 그리고 승강기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권총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지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걸 들고 누굴 겨눌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내 안위를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전부 내어맡기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20분이 넘는 상승 끝에 승강기는 지상에 닿았고, 승강기 안에 차 있었던 연막이 밖으로 빠져나가 주위를 덮기 시작했다. 하린이 기대했던 것처럼 그 근처를 포위하고 있었던 이들은 순간 당황한 것 같았고, 그와 나는 연막 속에 드문드문 보이는 인영 속으로 뛰어들었다.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하린은 계속 방아쇠를 당겼고, 그럴 때마다 연막 속에서 드문드문 한 명 씩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연막 속을 향하고 있었던 총구를 돌렸을 때, 우리는 이미 그 앞에 있었던 바위 하나를 엄폐물 삼아 몸을 숨기고 있었다.
상대도 바로 다가오지는 못했고, 우선 갱도 주위의 기물과 나무 뒤로 몸을 숨기기부터 했다. 대충 여덟 명 정도가 보였는데, 하린도, 나도 권총을 쏘아붙여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뒤에 숨어있는 이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한 탄창을 비우고 탄창을 교환하면서, 하린은 이번에도 외투 속에서 테이프를 둘둘 감아 공처럼 만든 덩어리를 꺼냈다.
"라이터로 불 붙여서 던져."
내가 잠깐 주춤하자, 그는 방금 전에 연막탄에 불을 붙이는데 썼던 토치 라이터까지 꺼내 내게 내밀면서 재촉했다.
"뭐해?"
어쩔 수 없이 나는 시키는 대로 그 덩어리의 한쪽 끝에 빠져나와 있는, 심지처럼 보이는 하얀 끈에 불을 붙였다. 그 심지가 타들어가는 속도를 보면서 잠깐 머뭇거렸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바위 너머로 집어던졌다. 그게 날아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하린은 귀부터 막았고, 나는 그가 권총도 버려놓고 귀를 막은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그 테이프가 둘둘 감긴, 조잡해보이는 수류탄이 떨어진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굉음이 주위를 휩쓸었다. 회색의 먼지와 검은 파편들이 튀어나와 하늘 위로 휘몰아쳤고, 바위 뒤에 숨어 있었지만 진동은 내장을 뒤집어놓을 것처럼 전해져왔다. 뭘 집어넣었는지 바위에 가려진 바깥에는 작은 쇠구슬 같은 것들이 날아와 땅 속에 박히기도 했다.
"빨리 가."
하린은 나를 거의 걷어차듯 발로 밀고나서 경사를 뛰어내려가는 내 뒤를 따랐다. 상대 또한 엄폐물에 숨어있었기 때문에, 그 폭발로 그들을 제압했다거나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바로 고개를 내밀지 못하도록 하는 정도로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 증거로 하린이 중간중간 뒤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을 빼고는 한동안 달리 들려오는 총성이 없었다.
잠깐 경사를 따라 내려가 도착한 곳은 주차장이었다. 다들 갱도의 승강기 주변에 모여있었기 때문인지 도중에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고, 주차장 또한 특별히 누군가가 지키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린은 주차장 한쪽 끝에 세워둔 차를 가리켰다.
조수석에 올라탄 나는 의자 뒤쪽으로 몸을 길게 기대고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따지고보면 특별히 한 것도 없지만, 한껏 긴장했던 탓인지 몸 전체가 묶였다 풀려난 것처럼 나른했고, 의자에 기대고 있었던 잠깐 동안 졸린 기분까지도 들었다.
그의 무표정함에 비해 의외로 차 안에는 이런저런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들어차 있었다. 유리창에는 토끼 인형 같은 것들이 붙어있기도 했고, 뒤쪽에는 큼직한 곰인형이 하나 놓여 있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걸 신기하다는 듯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에게 한 소리를 들을 것 같아 그러지는 못했고, 다만 흘끔흘끔 돌아보기만 했을 뿐이다.
"피곤해?"
하린이 물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의자에 기대고 있는 모습에서 바로 티가 났던 모양이다.
"조금."
"한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말 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묻지 않았어도 좋지 않았을까?
친근한 사이에나 할 법한 이야기를, 처음 보는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싶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그런 말을 하면 들 법한 어색함 따위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나는 결국 지금 내가 제정신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전히 차 안을 살펴보던 중에, 인형들 사이로, 대시보드에 놓여있었던 파란 뚜껑이 달린 흰색 플라스틱 약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약병에 붙은 레이블에는 질산암모늄이라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문득, 질산암모늄을 가지고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폭발물을 구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정수 시설을 폭파시켰던 폭탄, 내가 던졌던 수류탄,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약병 속에 들어있을 폭탄 같은 것들 모두 아마 그가 자작한 것일 터다.
"폭탄은 어떻게 만든 거지?"
"시약만 있으면 어렵지도 않아."
시약을 구하는 것보다도, 그 시약들을 어떻게 반응시켜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더 큰 문제일 터다. 그건 합성 과정 자체의 난이도와는 별개의 문제니까. 그렇지만, 그에 대해서 모르는 것들 중에서 그런 것 정도는 오히려 사소할 듯 싶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선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서로 별 관계가 없는 물음을 잇는 것 자체는 나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부분의 연구 프로젝트라는 것이 그렇지만, 신경 전산화 프로젝트라고 하는 연구 과제에 대해서도 일반인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무엇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인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드물다. 당장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연구자들 중에서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일 것이다.
"어쩌다보니까."
하린이 말했다. 그 뒤로 무언가 말이 더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어쩌다 알게 된 걸 가지고 테러까지 저지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게 신기한데?"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 않아? 그런데, 그런 이유를 아는 게 의미가 있어? 없을 거 같은데. 네가 왜 고생을 사서 하고 있었는지 하는 것하고 비슷한 거잖아."
그가 말했다.
"네가 어떤 부류인지 알고 싶으니까."
"나에 대해서?"
내가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그는 어깨를 잠깐 으쓱했다.
"그거야, 언젠가 더 알게 될 기회가 있을 거야"
그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걸까? 아니, 오히려 그 자신에게 얽힌 사연이 없다는 쪽이 이상하지 않을까. 아직 여러 마디 이야기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렇게 단순한 종류의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은 들었다.
"그보다 난 네쪽이 더 궁금해. 테러리스트와 한 차를 타고 있는 소감이 어떻지?"
"자기 스스로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것도 좀 우습지 않나?"
"그러니까 그걸 묻고 싶은 거야. 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당장 여기까지 오면서 죽인 사람만 해도 한두 명이 아니다. 그렇지만, 의외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봤다면 으레 떠오를 듯한 감정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런 식의 폭력에 익숙해지다 보니, 거기 반응하는 신경이 어느 순간 망가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구해준 건 고맙긴 한데, 그렇다고 테러에 동참하겠다거나, 동조하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는데……."
"은혜도 모르는 자식."
첫 반응은 그 말로부터 시작했다.
"이 정도 해줬으면 먼저 나서서 목숨을 다해 섬기겠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표정이 없어서 그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잘 분간할 수 없었다.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너도,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인가? 그런 거 있잖아. 세상에, 사람을 죽이다니! 당신도 똑같은 인간이야! 그런 식으로 말 하는 거."
그는 장난에 조소를 섞어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죽일만 했다, 그런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글쎄."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건 안 된다, 라는 말이 의미가 없어지는 시점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남는 것은 그저 생리적인 혐오 정도 밖에 없다. 나는 거기에 휘둘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그런 것에 휘둘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 또한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망설임 따위가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하린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려 웃어보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 인간 말대로 너한테 윤리라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 아니, 윤리 같은 것까지 갈 것도 없이, 일반인이라면 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겠지. 그런데, 그래서 죽일만한 이유는 없었고, 내가 괴물처럼 보인다고 하면 넌 어떻게 할 거지?"
기분이 상했는지 그는 말로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정작, 어조에서는 그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글쎄, 거기까지는……."
감정이 잘 정리되질 않았고, 그래서 판단도 서질 않았다. 날 구해줬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 다시 그런 곳으로 돌아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모는 차 안에 있어서도 안 될 것 같다는 것,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이든 감수할 수 있다는 각오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렇게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생각을 채우고 있으니, 생각만 복잡할 뿐 정작 기분은 그저 그런, 중립적인 쪽에 가까웠다.
"한중연 구덩이 속에 다시 처박히는 것도 괜찮겠지. 이번엔 두 다리를 잘라버리려고 들 걸?"
실제로 자르지는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짓을 하리라는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데?"
이해는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몰아세울 필요까지는 있나, 싶었다.
"나야 널 꺼내오기만 하면 프로젝트 진행 저지엔 의미가 있을 거라고 봤지. 데이터를 전부 날리고 연구자들도 여럿 죽은 후로 진행 속도가 한참 느려진 상태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사실은 이 자리에서 널 죽여버려도 목적은 달성할 수 있어. 데이터를 파기한다는 측면에선 오히려 확실하기도 하고."
그가 말했다.
"물론 그럴 생각은 없어. 아직 그정도로 괴물이 되지는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나야 네가 내 계획에, 네 말처럼 동조해주는 쪽이 좋기는 하지. 그래서 지금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한 거고. 그렇지만, 나야 여기까지 한 정도만 해도 어느정도 계획대로 된 셈이니까, 네가 싫다고 해도 상관 없기는 해. 그런데, 그러면 너도 나름대로 혼자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겠지? 다리가 잘리기 싫으면."
"이번에도 협조인 건가?"
나는 일부러 협조라는 두 글자 단어에 강세를 주었다.
"그래. 방향만 다른."
프로젝트를 저지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프로젝트의 숨겨진 목적에 문제가 있고, 그 문제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그런 거창한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당장 그 프로젝트가 좌초되면 내게 지금 같은 일이 더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도 그랬다. 문제는 그게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축적했던 데이터가 거의 모두 파기되었으니 멈출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던 프로젝트는, 속도가 줄었다고는 해도 어쨌든 진행되고 있었고, 그래서 프로젝트가 아주 중단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정부가 싫증을 내는 경우를 빼고는 없어 보였다.
"프로젝트를 중단시키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내가 물었다.
"글쎄, 아마 불가능하겠지."
기껏해야 힘들기는 하겠지만, 하는 정도의 반응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어처구니없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에 동조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인가? 생각 이상으로 쓸데없이 큰 바람이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 왜 하고 있는데?"
"말하지 않았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는 것 뿐이야. 희망으로 움직인다는 것도 순진하지 않아? 이러이러하게 하면 일이 다 잘 될 거라고, 그런 걸 믿는다는 것도 우습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대해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보통이긴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가지고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라면 솔직할 필요가 없는 부분에서까지 솔직했다는 것 정도일까.
"이런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라고 말할 것 같은데. 보통은."
"사실은 내가 계획을 다 구상해뒀는데, 이대로 하기만 하면 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하기를 바라? 내 생각을 가장하면서까지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러니까, 알아서 해."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가 싶었지만, 처음부터 설득이라느니 하는 부산스러운 일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고 가정해보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오히려 아직 차에 태워주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나름대로 도피 생활을 한다고는 했지만 삼 개월을 넘지 못 했다. 지금까지도 그 과정에서, 어떤 지점에서 꼬리가 밟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오히려 정부를 상대로 삼 개월이나마 버틴 것이 신기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번 실패했던 시도가 이제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라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는 그와 함께 있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무슨 과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경로로든 정부 쪽에 들어가 지금까지 발각되지 않은 채 지낼 수 있었다는 부분도 그랬고,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만큼 그가 나보다 정부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서는 밝을 것이라는 면에서도 그랬다.
"너하고 있는 쪽이 낫겠다 싶긴 해. 협조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누구 좋으라고 널 데리고 있어야 되는데?"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어. 솔직히."
나서지는 못했지만, 결국 이런 모든 문제들을 도망치지 않는다면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그런 생각만을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뭐, 상관은 없어."
그가 말했다.
"지금은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얹혀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은 당연했지만 말이다.
차는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 위를 달리고 있었다. 요즘은 흔하디 흔한 자동 운전에 기대는 대신 하린이 굳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은 이런 식으로 경로를 비틀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는 거지?"
"서울. 서울 근교에 집이 있어. 집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거기 살고 있긴 하니까."
집이 아니라면 창고이기라도 한 것일까? 불가능한 추측은 아니었다.
의자에 기댄 채로 유리창 밖 스쳐지나가는 산을 바라다보았다. 영월에서 서울까지 얼마나 걸리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추적을 피해 빠른 길 대신 돌아 간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그동안 잠깐 눈을 붙여도 되지 않을까 해서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오냐? 라는 말 정도를 빼고는 하린도 딱히 막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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