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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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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비취색 베일의 밤
글쓴이: 웅곰
작성일: 12-02-09 02:43 조회: 2,645 추천: 0 비추천: 0

[토요일 11시, 인천공항]

휴일의 인천공항은 언제나 활기차다.

큰 소리로 외치는 가이드 주변으로 모여드는 중국 관광객들.

면세점에서 쇼핑이라도 한 듯 종이봉투를 한가득 들고 나오는 젊은 여자들.

행복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신혼여행을 가는 신혼부부.

세련된 옷차림으로 절도 있게 걸어가는 스튜어디스들.


2층의 입국장,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붐비는 C 게이트 앞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입국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예정시간에 맞춰 게이트 유리문 위에 설치된 전광판에 뜬 “착륙” 메시지와 함께, 런던발 한국행 비행기는 안전하게 인천공항의 활주로에 착륙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승무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하나 둘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10시간에 넘는 비행에 다들 지쳐 설렘 반, 피곤 반인 눈빛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들.

비행기에 연결된 통로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들 중, 눈에 띄게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나이는 한 스물 쯤 될까. 여자 치곤 훤칠한 키에 금발의 긴 생머리가 눈부시게 어깨 위로 흘렀다. 균형 잡힌 몸매에 큼지막한 티셔츠와 핫팬츠, 경쾌한 스니커즈가 너무나 잘 어울려, 그녀는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녀의 짐 또한 눈에 띄었는데, 정육면체의 상자에 손잡이가 달린 모양의 그것은 평범한 여행가방 으로서는 불편해도 한참 불편해 보였다. 짙은 보랏빛이 도는 고급스런 원목으로 만들어져 있고 도금이 된 테두리에 추상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 그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마술도구 상자나 메이크업 박스 같았다.

잠시 후, 사람들을 따라 입국 심사 줄에 선 그녀는 자신에게 몰리는 주위의 시선을 느끼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너무 꾸미는데 힘을 줬나.........?”

한국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 온 종일 옷가게들을 돌아다니며 골라둔 옷을 입고, 평소엔 안하던 화장까지 옅게 하고 온 그녀. 겉모습에 신경을 좀 썼다지만, 그녀는 사실 남들의 시선을 그닥 즐기는 편이 아니기에 오는 내내 자신에게 향하는 익숙치 않은 시선들에 부담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직업상 외국에 간다는 건 그녀에게 별 감흥 없는 익숙한 일이지만 이번 출국은 조금 특별했기에, 평소엔 안 하던 치장까지 해가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뭐라 해도 10년 만에 온 한국인 것이다.

그 아이는, 나와의 약속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손님?”

“아, 네.”

멍하니 있던 중 어느새 자신의 차례가 된 걸 깨닫고, 그녀는 검사대의 공항 직원에게 자신의 여권을 건넸다.

여권을 받은 공항 직원은 데스크 너머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살짝 감탄한 다음 여권을 보았다.

꽤나 어른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나이가 한국으로 치면 이제 막 고등학생이라는 것이 좀 의외였지만, 딱히 문제는 없다고 판단한 직원이 아무데나 적당한 곳을 펼쳐 도장을 찍고 다시 여권을 건네줬다. 그녀는 얼른 받아들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장의 자동문이 열렸다.

방문객들을 기다리며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국어, 멀리 유리벽 바깥으로 비치는 여름 햇살.

그녀는 가슴이 뛰었다.

................................................................

한여름의 산행은 역시 괴롭다.

방학식이 끝난 오늘, 나는 무더운 여름햇살 아래에서 교복 옷자락을 쥐고 펄럭거리며 마을 뒤쪽의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향하는 곳은 성 마르코 성당. 내 삼촌이 있는 곳이자, 내가 머물고 있는 곳.

중학생 때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엄마 대신 나를 키워준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성 마르코 성당의 주임신부가 된 삼촌이었다.

뭐, 성당에서 머문다고는 하지만, 성당 건물 옆에 있는 펜션 비슷한 청소년 캠프 전용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지라 별로 불편한 점은 없다. 삼촌도 성격이 깐깐하거나 보수적인 편이 아니라서 편한 생활을 하고 있고.

아니, 오히려 너무 개방적이라 문제일까.

“읏차.......다 왔나.”

생각에 빠져 걷다보니, 어느새 언덕을 넘고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어, 우뚝 서 있는 신의 집에 다다랐다.

성 마르코 성당은 규모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서 웅장한 느낌은 없지만,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들어오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경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성당 입구의 성모상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성호를 긋고 안으로 들어간다.

중앙 홀을 지나,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했다. 대성당의 입구 앞은 언제나 사회와 동떨어진 듯한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다.

성인(聖人)의 모습이 부조된 청동문을 밀고 대성당으로 들어간다.

모자이크 그림이 새겨진 유리창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와 나무 의자와 대리석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대성당 안에는 몇몇 마을 노인 분들이 앉아 졸거나 기도하고 계시고, 그 앞의 제대에서 사제로써 마땅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삼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거긴가.”

......이럴 땐, 거기밖에 없다.

“대체, 시도 때도 없이 자리 좀 비우지 말란 말이야.”

투덜거리며 성당을 나와 뒤쪽으로 돌아가자, 꽃들이 심어진 화단 앞에 담배를 문 채 쪼그려 앉아 평온하게 물을 주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제복을 입고 동네 건달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그는 인정하긴 싫지만 이 성당을 관리하고 있는 주임신부고, 덧붙여 내 삼촌이다.

“삼촌, 나 왔어.”

내 목소리를 들은 삼촌, 정하남 마르코 신부님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대꾸한다.

“그래, 오늘부터 방학이었지?”

“응.”

“축하한다. 성적표부터 내놔.”

........

역시 우리 삼촌은 쿨하다니깐, 하고 들리도록 중얼거리며 가방에서 성적표를 꺼낸다.

다행히도 이번 학기 성적은 고생한 만큼 좋게 나와 준 덕분에, 나는 기죽을 필요 없이 성적표를 당당하게 눈앞의 불량신부에게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성적표를 받아든 삼촌은 물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고는 대충 훑어보더니,

“뭐야 이거. 공부는 잘한다 이거냐.”

하고 불만스러운 듯이 도로 휙 던져준다. 그리고 다시 물뿌리개를 들고 화단에 물을 주기 시작하는 삼촌.

“.......”

못해도 비아냥 잘해도 비아냥이라니, 역시 우리 삼촌이야!

허, 하고 감탄하는 찰나, 먼 곳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일어나 누가 볼세라 담배부터 땅바닥에 비벼 끄는 삼촌. 그리고 차분한 표정.

......훌륭한 이미지 관리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있는데, 화단의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정하남 마르코 신부님 여기 계신가요......?”

특이한 억양에 고운 목소리.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나와 삼촌은 서로 쳐다보았다.

서로 궁금증이 커져갈 무렵, 건물 뒤쪽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

살며시, 숨을 삼켰다.

어깨까지 오는 금발머리에 청록색 또렷한 눈. 시원시원한 복장에 늘씬한 팔다리.

말로만 듣던 이런 이국의 미인을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인지라, 움츠러들 것 같다.

눈만 굴려, 슬쩍 옆에 있는 삼촌을 본다.

나와는 다른 의미로 놀란 듯, 당황함을 역력히 드러내는 눈빛을 보이며 일어난 삼촌.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감정의 동요가 보인다.

“......카일라?”

삼촌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놀랐다.

삼촌은 이 여자와 구면인건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초리로 삼촌을 바라보다가, 별 소득이 없자 그만 두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마자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싱긋,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 하고 인사했다.

“......카일라, 무슨 일로 온 거냐.”

당황해있던 나와 대조적으로, 차분한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입가에 어린 웃음기가 가신 채, 어느새 진지해진 표정으로 그녀는,


“어디 조용한 곳에서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해요.”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은 그녀를 잠깐 미심쩍은 표정으로 노려보더니, 알았다 하고는 물뿌리개를 나에게 맡긴 채 그녀와 함께 휘적휘적 성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지.”


그리고, 혼자 물뿌리개를 들고 멍청히 서있는 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누구였을까, 그녀는.

혹시 삼촌의 친구일까. 일단 삼촌은 유학을 다녀왔으니, 외국인 친구가 한 명 쯤은 있을 법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저런 미인이라니.......”

나조차도 부러울 정도다. 삼촌도 언제 저런 미인을 사귀어놓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뇌리에 그녀의 웃음이 다시 스쳐지나갔다.

여름 햇살 아래 해바라기처럼, 환한 웃음.

얼굴이 다시 화악 붉어지는 게 느껴진다.

----나는 혼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일단 씻자.”

그래, 땀 흘린 교복부터 갈아입고 진정하자. 남자는 여색에 휘둘리면 인생이 망하는 법. 주변의 어른들이 다들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아니, 그렇게까지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화단 앞에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숙소 쪽으로 이동한다. 걷다 보니, 문득 하나 의문이 들었다.

“......그 상자는 뭘까.”

그녀가 들고 있던, 보라색 나무상자.

모양을 보아하니 뭔가 귀중한 걸 담겨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그녀 또한 성당 관계자일지도 모른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한 달에 한두번 꼴로 가끔씩 이상한 걸 들고서 삼촌을 찾아오는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있으니.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어떤 목사 아저씨가 왔었지.”

오자마자 삼촌 손을 붙잡고 이 나라 유일한 실력파라느니, 엑소시즘이라느니... 아마 정신이 이상한 듯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 보는 눈이 있을 때는 자비롭게 대꾸해주는 듯하다가 사람들이 없어지니 바깥으로 뻥 차버린 삼촌. 그리고 나한테 문 바깥에다 소금을 뿌리랬지.

소금이라니, 언제적 풍습이야........ 그런 건 제쳐두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수녀?”

혼잣말을 해놓고는 스스로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된다. 영화도 아닌데, 그렇게 예쁜 수녀가 있을 리가. 나는 다시 원래 향하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토요일 오후 1시, 성 마르코 성당 내부 응접실]


성당 안의 응접실은 쓰는 일이 별로 없어 냉기만 가득 차 있었다. 청소도 별로 하지 않은 탓에 사방에 먼지가 잔뜩 내려 앉아, 방의 주인인 정하남과 손님인 카일라는 들어오며 사이좋게 기침 깨나 해야 했다.

“그래, 다시는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한 정하남은 방 한 켠에 위치한 소형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와선 소파에 앉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탁상 건너 맞은편 소파에 앉은 카일라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아저씨는 하나도 안 변했네요.”

그녀로부터 다시는 들으리라 예상 못한 친근한 호칭.

잠시 멈칫, 한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캔맥주를 목으로 넘겨댔다. 카일라는 깍지 낀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역시 그 애, 저를 기억 못하는 거 같죠?”

“...글쎄다. 니가 너무 예뻐져서 그런 거 아닐까? 나도 처음엔 못 알아볼 뻔 했지.”

정하남이 말했다. 카일라는 부끄러운 듯이 살짝 고개 숙이며 말없이 웃었다.

“뭐, 아주 머리 나쁜 놈은 아니니, 아직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혹시 아냐. 갑자기 딱하고 기억해낼지.”

그렇게 말한 정하남은, 마지막 모금의 맥주를 입에다 털어 넣더니, 찌그려 뜨려 쓰레기통을 향해 휙 던졌다. 호를 그리며 날아가 쓰레기통의 모서리를 맞고 튕겨 나오는 맥주캔을 보고 그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 말을 들은 카일라는 슬픈 듯 눈을 내리깔았다.

“기억해낼 수 있을까요.........”

“그래. 그러니까 계속 건드려봐. 포기하지 말고.”

“......뭔가 여자로써 자존심이 상하네요.”

카일라가 불만스럽게 대꾸하자, 정하남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걔 얘긴 그만두고. 무슨 일로 왔는지 용건부터 말해.”

“........알겠어요.”

카일라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내뱉었다.

“임무 때문에 왔어요. 성유물 [성 아가사의 베일]의 일시적 은폐.”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며, 카일라는 예의 나무 상자를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턱, 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 보라색 상자를 보자마자 느긋하던 안색이 확 변한 정하남은, 자기도 모르게 꾹 주먹을 쥐었다. 카일라의 시선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바티칸에서 내려온 명령이냐?”

“네. 하지만 위험한 일은 없을 거예요. 교황 선거를 앞두고 후보 추기경들이 성유물을 손에 넣어 세력을 키우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잠깐 동안 숨겨놓는 것이니까요. 매 선거마다 의례적으로 있었던 일이니.......”

그녀의 말을 들을수록 부들부들 떨던 그의 주먹이 탁상을 쾅 내리쳤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바티칸 시국을 나온 몸이야! 또 나를 이런 일에 끌어들여? 장난치나!”

“현직의 ‘대행자’가 아닐지라도, 주님을 받드는 사제라면 누구라도 마땅히 이 일에 협조해야만 해요.”

“주님을 받들어? 웃기는 소리! 바티칸을 받드는 거겠지! 그 잘난 추기경들과 함께 말이야!”

제 분을 못 이긴 정하남은 벌떡 일어났다. 그대로 카일라를 노려보았으나, 카일라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래된 코르크 색 같은 갈색 눈동자와 맑은 강물을 연상시키는 푸른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오랜 시선의 교환 끝에, 정하남은 풀썩 하고 도로 앉아 머리가 아픈 듯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두 사람을 무겁게 짓누르던 침묵이 이어지다가, 조심스럽게, 누그러진 어조로 카일라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한번만 눈 감고 넘어가요. 이곳이 제일 눈에 안 띄는 장소니까, 선택된 걸 거예요.”

“...........”

“게다가, 내가 있잖아요. ‘적합자’ 가 함께 있는데, 섣불리 성유물을 건드릴 바보는 없어요.”

그러니 아저씨, 하고 말을 이으려던 찰나, 정하남이 벌떡 일어났다. 아무 말 없이, 정하남은 옆방인 자신의 사무실로 건너가더니,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물품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뒤따라온 카일라를 등진 채, 정하남은 입을 열었다.

“카일라, 화내서 미안하다. 너도 명령받은 것 뿐일텐데, 괜한 화풀이를 해서.”

“아저씨.........”

“하지만 나는 가봐야겠다. 가서 따져야겠어. 한국에 어떠한 성유물이 들어온 일은 교구가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베일]같은 최상급 성유물의 은폐를 한국에, 그것도 하필이면 우리 성당에다 하라니. 이건 고의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 더러운 자식들. 나는 더 이상 그놈들의 개가 아니란 말이다......!”

카일라는 욕지거리를 씹어뱉으며 나갈 채비를 하는 그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말리고는 싶으나, 그가 왜 그렇게 화내는지 알기에 더 이상 나서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면, 먼저 유신...에게 말하고 가야죠.”

정하남이 벌컥 문을 열기 전, 카일라가 말했다. 정하남은 잠깐 멈춰서더니,

“그렇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성당의 관리도 맡겨 놔야겠지.”

하고는 걸어 나가 버렸다. 카일라는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


화장실에서 이를 닦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으로 향했다.

이 시간에 문 두드리는 사람이면 삼촌밖에 더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더니, 의외의 손님이 있었다.

“으으 으 우?(아까 그 분?)”

삼촌은 한숨을 쉬더니, 턱짓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래. 그러니까 얼른 가서 양치질이나 끝내고 와라.”

그제서야 치약 거품을 안 뱉고 칫솔을 문 채 나왔단 사실을 자각한 나는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등 뒤에서 삼촌이 그녀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뭐, 쟤는 원래 저런 녀석이지. 들어와.”

으으, 쪽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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