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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안녕하세요, 멀린입니다!
글쓴이: 레트리츠
작성일: 12-02-09 01:10 조회: 2,981 추천: 0 비추천: 0

안녕하세요, 멀린입니다!


§0 안녕하세요, 시작입니다!


- 타타타탁

여름의 긴 낮이 지나고 어둠이 완전히 거리를 물들인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 공원 입구에 키가 매우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두 사람이 급히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선선한 새벽 기온 때문인지 마스크를 쓴 채 검은색 후드 티를 입고 있었다.

"흐읍…."

그들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한 가쁜 숨소리를 주위에 울려 퍼지지 않도록 최대한 억눌렀다. 키가 큰 사람이 호흡 조절에 애쓰며 조용히 물었다.

"우릴 못 봤겠지?"

"응, 그리고 방금이 마지막 순찰이야."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있는 공원. 하지만 방금 간신히 마주치지 않은 경비원을 제외하면 이런 시간까지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저쪽 덤불 속으로 숨자. 어쩌면 저 속에서 관찰할 수도 있을 거야."

키 작은 사람의 제안에 두 사람은 탁 트인 공원 가운데의 잔디밭이 잘 보이는 방향을 확인하고 그쪽에 있는 덤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공원 안은 녹지조성이라는 명목으로 각종 나무와 풀들을 심어 기른 덕에 두 사람이 숨을 만큼 큰 덤불도 많았다.

키가 큰 사람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손으로 가린 채 화면에 비춰진 뭔가를 읽었다.

"예정된 시간이야. 올 때가 됐는데…."

그 때, 사각사각 하고 잔디를 밟는 발걸음 소리가 공원 입구에서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키 작은 사람은 입술에 검지를 펴고 갖다 대면서 소리죽여 중얼거렸다.

"왔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덤불 바깥에 뭔가가 보였다. 나타난 것은 한 쌍의 남녀였다.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걷는 덕에 성별과 복장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자! 여기 정도라면 이 시간에 사람도 없고, 또 넓어서 괜찮을 거야. 여기서 연습하자."

"그래! 여기라면 뭐…."

덤불에서 남녀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그러나 공원 안은 워낙 고요해서, 일상적인 음량으로 나누는 남녀의 대화가 덤불 속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다. 남녀는 잔디밭의 가운데 정도로 짐작되는 부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자, 넌 저쪽으로 가. 저 가로등 앞에 서 있어. 난 맞은편으로 갈 테니까."

남자의 말이 끝나고 둘은 갈라져 서로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어두운 색 바지에 하얀색 반팔 남방을 걸친 남자는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지 상당히 여유 있는 걸음걸이였다. 반면 수수한 밝은 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누가 볼까 불안한지 남자 쪽과 주변을 흘끔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이제 이쪽으로 와 봐. 내 바로 앞에 땅에서 30센티 정도 위로 지정하면 될 거야."

"오빠, 먼저 시범 한번만 보여주면 안 돼?"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지시에 여자는 어려운 부탁을 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 말에는 무언가에 대한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그래, 알았어! 그럼 먼저 갈 테니까, 균형 잡게 좀 받쳐줘!"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여자와 덤불 속에 잠복해 있는 두 사람까지 여섯 개의 눈동자가 남자를 주시했다.

"―."

남자는 나지막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과 동시에, 남자는 여자에게 중심을 의지한 채 끌어안고 있었다.

"읍!"

덤불 속에서 작게 경악의 신음을 억지로 막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가로등 아래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남녀에게는 들리지 않은 듯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녀는 자세를 고쳐서 마주 섰다.

"우와! 여기로 바로 왔네? 30센티 안 띄우고도?!"

놀란 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인지, 얼굴을 보았다면 토끼눈을 하고 있을 게 눈에 선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에 다시 놀라 나지막이 "어머" 하고 내뱉고선 허겁지겁 오른손으로 입을 막았다.

"하하하…. 너도 조금 더 연습하면 빛도 안 나고 한 5센티 정도만 띄운 채로 갈 수 있어. 물론 아무리 나라도 그거보다 더 적게 띄우는 건 무리지만."

남자는 오른손을 뻗어 가볍게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양 팔을 들어 남자의 손을 머리에서 떼어냈다.

"이제 나도 한 번 해 볼래."

남자의 시범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여자의 목소리에는 아까 담겨 있던 불안감이 사라져 있었다. 남자가 흐뭇해하는 듯 한 웃음을 흘리며 방금 전까지 서 있었던 잔디밭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그와 동시에, 덤불 안에서도 뭔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간다!"

여자가 선언하듯 말했다. 동시에 덤불 안에서는 잔디밭에 서 있는 남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음량으로,

"빨리! 이제 곧 쓸 거야."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덤불 속에서, 조금 둔탁하지만 분명히 '지잉' 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1 안녕하세요, 신입입니다!


내리쬐는 태양, 7월 말의 여름방학.

강렬한 태양광선이 빙하를 녹여서 아파트 9층에 있는 우리 집까지 시원한 물을 공급해 줄 수는 없을까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큰일 날 망상을 하던 여름날이었다.

"기후야아―."

아버지는 출장을 가시고, 어머니는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셨다. 덕분에 나는 한나절 내내 거실 소파를 차지한 채로 축 늘어져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런 평범한 하루가 점심때에 접어들자 언제나 소라게처럼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누나라는 생물체가 나를 불렀다.

"왜―!"

피부가 닿지 않았던 소파의 시원한 반대쪽 구석으로 이제 막 방향을 바꿔 누웠기 때문에 이름이 불린 것만으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저 누나는 방 앞에서 얼쩡대기만 해도 거기서 뭐 하냐고 으르렁댄다. 그런 누나가 저렇게 살갑게 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최~기~후~ 이리 와봐아―!"

윽, 소름. 아, 시원해지긴 하네.

누나 이름은 최가연. 스물한 살. 누군가는 누나의 모델처럼 쭉 뻗은 사지를 보고 감탄하며 꽃다운 나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 17년 인생에 있어 누나는 내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 주제에 법학 전공. 그런 누나가 저런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건 극구 사양이다. 필사적으로 무시하고 싶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하지만 그랬다간 평소의 의사소통 방법으로 나를 부를 것 같아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소리쳐 대답한 후 힘겹게 수면 옵션이 붙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거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누나 방 앞에 도착. 누나의 방은 그 안에 사람이 있건 없건 문이 항상 잠겨있기 때문에, 나는 그런 누나의 폐쇄성에 새삼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 도착을 알리기 위해 그대로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목 높이까지 들어 올려 문을 가볍게 세 번 노크를…

- 똑 똑 철컥

어라?

세 번째의 노크 소리가 들리는 대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손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어어…?"

합판으로 된 문을 두드리려 내뻗은 내 손은 문 대신, 티셔츠에 헐렁헐렁한 반바지를 입은 채 머리를 뒤로 올려 질끈 묶은 누나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하필 내가 노크한 위치는 누나의 키가 나보다 월등히 큰 까닭에 굳이 잘 뛰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던 심장 쪽, 정확히 말하면 그 앞에 있는 볼록한…

"너 이게…!"

- 찰싹

찰지구나, 내 볼…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희미해졌다.



"아야야야! 살살 좀 발라!"

"아, 알았어."

누나의 초강력 따귀를 맞고 기절한 나는 아까까지 누워 있던 거실 소파에 다시 누워 있었다. 아마도 누나가 눕혀뒀겠지. 내가 즉사라도 한 줄 알고 깜짝 놀랐단다. 에이 설마.

역시 미안했는지 누나는 연고를 가져와서 빨갛게 부은 뺨에 발라 주었다. 이것이 병 주고 약 주고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이구나.

"음… 미안. 나도 놀래서…."

"그러셨겠지."

기절할 정도의 크리티컬 히트였지만, 결국 내가 앞을 제대로 안 봤기 때문인데다 손이 나갈 만도 한 상황이라 누나와 나는 그냥 서로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

"아무튼, 원래 하려던 이야기 말인데, 지금 얘기해도 괜찮지?"

"괜찮든 말든 어차피 얘기할 거잖아."

"그건 그렇지."

옅은 미소를 동반한 짜증날 정도로 상쾌한 답변이다. 누나는 그 상쾌한 말투 그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게 말인데, 내 대신 정모 좀 나가라."

"정모? 무슨 정모?"

어리둥절한 내 반문에 누나는 짐짓 놀라는 투로 반문했다.

"엑? 너 요즘 애들 맞아? 정모 하면 정기모임 약자잖아, 정모."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그전에 요즘 애들이라니 누나가 할 소리야?

"아니, 무슨 말의 약자인지는 알아. 그거 말고 갑자기 웬 정모야?"

"아아, 동호회 정모야."

이 인간이 의외로 은둔형 외톨이 같은 짓만 한 게 아니라 동호회 활동도 했다는 게 조금 의외였다.

"동호회도 했어? 아니… 근데 왜 내가 대신 나가야 하는데?"

"그거? 그야 당연히 네 이름으로 가입했으니까."

또 그 상쾌한 말투…

"왜?! 왜 내 이름으로 멋대로 가입하는데?!"

"아― 그게 사실은 내 이름으로 신청했다가 거절당해서."

그걸 지금 내 이름으로 가입한 이유라고 설명하는 건가요. 애초에 거절당한 동호회에 다시 가입할 이유가 있어?

"아무 것도 안 했다고! 그냥 신청만 했을 뿐인데 왜 안 받아주는데! 심지어 같이 신청한 내 친구도 거절당했다고! 궁금하잖아!"

"하아. 그냥 포기하면 될 것을. 어쨌든 무슨 동호횐데?"

"아아, 오컬트랑 초능력을 다루는 동호회야. 이름은―"

……

……아, 최악이다.

이런 입 밖에 한 번 내뱉기도 부끄러운 이름의 동호회는 대체 뭔데?!

너무나도 부끄러운 관계로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입에 담는 것은 물론이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뇌가 오그라들 것만 같다. 대체 그런 이름을 가진 오컬트 및 초능력 동호회에 왜 하필 내 이름으로 가입했는지를 소몰이 창법으로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바다와 땅의 수분을 증발시키는 여름이 내 기운까지도 증발시켰는지, 안타깝게도 그런 기세는 마음의 소리로 그쳤다.

"그래, 그런데 왜? 정모를 하면 시간 되고 가까운 데 사는 사람끼리 만나는 거 아냐? 왜 굳이 내가 명의도용을 당한 동호회 정모에 누나 대신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에~ 싫어? 거기 여자애들 많다던데~"

됐거든. 여자애들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냉큼 협조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줘.

"그리고― 확인해 줬으면 하는 것도 있고. 그 사람들을 만나서 확인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긴 한데, 다들 각자 연락하거나 정모로만 만난다고. 남자라고 하고 가입했는데 내가 가서 호감도를 올릴 수는 없잖아?"

지금 동호회 회원 대상으로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도 하려고?

"그래서 친해지려면 정모에 가는 게 제일인데, 네 이름으로 가입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다 남자라고 알고 있단 말야. 이제 와서 여자라고 하기도 뭐하니까 대신 좀 가주라. 대신 그 대가는 확실히!"

누나는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자 슬며시 지폐 몇 장을 경찰관에게 건네며 무마하려는 사람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 쪽으로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붙여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누나가 나를 심부름꾼으로 부려먹는 일이 특별히 드문 일은 아니다. 또 그 때마다 누나가 말하는 '그 대가'가 매번 굉장히 짭짤했고 그렇게 어려운 일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부탁을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누나가 부탁하는 그 동호회 정모에 가서 사람들이 나라고 믿고 있을 누나의 행세를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행여나 들키기라도 하면 어떤 비난을 받을지 모를 일이니까.

"근데…."

"근데 뭐?"

그래서 어쩐지 이번만은 마음 한 구석에서 내키지 않아 말을 꺼내려는 찰나, 누나가 갑자기 내 말을 자르며 표정을 굳혔다.

"아~ 너 오늘따라 말이 많다? 저번에 우리 학교에서 내가 장기자랑 나갔을 때~ 내 뒤에서 같이 춤추던 여자애 정체를 한번 너희 학교에 뿌려볼까~?"

어쩐지 한 마디 꺼냈을 뿐인데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누나. 일이 뜻대로 안 되니까 조바심이 나서 협박 작전으로 돌아선 모양이다.

정말, 최악이다. 그 때 사고 싶었던 신제품 컴퓨터가 나오지만 않았어도 부족한 용돈 때문에 누나의 저런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았을 텐데. 결국 그런 협박에 이길 수 없었던 나는 순순히 정모에 대신 참가하기로 했다.

"아―알았어, 알았어. 가면 되잖아, 가면!"

"그래, 잘 생각했어. 대신 약속한 대로 대가는 확실히 계산해 줄게."

하지만 일단 그렇게 결정하고 나자 그 일에서 왠지 흥미로운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럼 그 대가 말인데, 이번 보상은 좀 다르게 줬으면 하는데."

"음? 무슨 얘기야? 네가 레벨 업 하도록 경험치라도 줄 수 있을 것 같니?"

아니, 그런 거 말고- 정보. 이 누나가 대체 그 손발이 퇴화할 것만 같은 이름의 동호회 회원을 상대로 뭘 알아내고 싶은 건지 궁금하다.

누나라는 작자는 적어도 학교 구내식당 식권 300장 정도는 걸려있어야 겨우 움직일 사람이다. 그런 누나가 안 가고 말 법한 모임에 나를 대신 보내면서까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라면 분명 무엇인지는 몰라도 엄청난 것임이 분명했다.

"누나가 뭘 궁금해 하는지 나한테도 알려줘. 돈은 비용만 대 주면 돼."

"헤~ 웬일이야? 지금 그거 동업하자는 얘기지?"

"동업보단 협력하자는 얘기지. 나도 누나가 뭘 그리 확인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하니까."

누나는 별 망설임 없이 내 제안을 수락했다.

"그게 그거지. 그래, 너라면 알아도 상관없겠지."

짐짓 조심스레 나한테만 얘기해 주겠다는 투였지만 뭐, 어차피 별 거 아니겠지.

그렇게 큰 기대 없이 던졌던 의문에 돌아온 대답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나도 처음엔 안 믿었지만 말이지― 그 녀석들, 진짜 마법사랑 초능력자들인 것 같아."


…………

침묵. 그리고 간신히 내 입에서 튀어나온 두 마디.

"…어? 뭐?"

농담이겠지.

"거기 회장이 마법사를 자칭하고 있어."

마법사? 음, 오컬트 동호회니까 그런 녀석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는데.

그렇게 묻자 그녀는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을 이었다.

"아니, 진짜 마법사라니까. 텔레포트라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마법사."

그렇게 심각한 표정만 아니었다면 분명히 나를 놀리려는 말로 들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걸 갑자기 믿으라니 그건 좀 아니지.

"에이, 그렇게 연기하면서까지 놀려먹으려고?"

"……."

누나는 눈초리 하나 변하지 않고 그 표정 그대로 갑자기 오른손으로 내 멱살을 잡았다.

"으왓?! 뭐, 뭐야!"

발버둥 쳐 봤지만 역시 허사. 스스로가 무한히 한심스러워지는 상황이다.

누나가 다른 손으로 이쪽에 주먹을 날리지는 않을까 하고 나는 내심 경계하고 있었지만 누나는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멱살을 잡은 채 나를 자신의 방으로 끌고 갔다.

- 철컥

비어 있는 왼손으로 자신의 바지춤에서 열쇠를 꺼내 방문을 연 누나는 나를 던져 넣듯 방 안으로 밀어 넣고선 자신도 방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잠갔다.

아니 왜 잠그는데.

"뭐하는 거야!"

"가만히 있어."

누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고서 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대기 모드로 해 두었는지 금방 바탕 화면이 나타났다.

한동안 누나는 마우스를 딸깍거리다가 오래 지나지 않아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자, 이것 좀 봐."

그렇게 말하며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투덜거리며 그 자리에 앉아 방금까지 누나가 조작했던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화면에는 동영상 플레이어가 실행되어 있었고, 검은 화면인 것으로 보아 특별히 뭔가 재생되고 있지는 않은 듯 했다.

"재생해 봐" 하는 누나의 말에 마우스로 재생버튼을 클릭했다.

화면은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잔디밭으로 바뀌었다. 잔디밭에는 왜소한 체구의 여성과 키가 큰 남성이 서로 제법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빨리! 이제 곧 쓸 거야]

소리를 죽여 다급히 속삭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이 장면을 찍은 사람의 목소리겠지. 게다가 화면 구석에 보이는 풀이라든지 화면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이 장면을 찍은 사람이 몰래 숨어서 찍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남자 쪽에서 양 팔을 펼치자 여자 쪽에서 순간적으로 밝은 빛을 내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여자는 어느 새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어? 방금 분명히…

나는 급히 영상을 처음 장면으로 다시 돌렸다.

[빨리! 이제 곧 쓸 거야]

같은 대사가 반복되고, 여자가 다시 번쩍 빛을 냈다.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여자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이미 남자 앞에 있었다. 누나 말대로 흔히 말하는 텔레포트라는 걸까.

"이거 합성 아냐?"

확실히 놀라운 장면인 건 맞지만, 마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합성이라고 생각할 장면이다. 실제로 요즘 합성 기술도 보통이 아니니까.

"합성이면 내가 지금 이걸 보여 주겠니? 이건 저 사람들이 마법 연습하는 거 내가 친구랑 같이 몰래 직접 찍은 거야. 휴대폰에도 있고. 그냥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 놓기만 한 거라고."

"음……."

정말이라면 확실히 놀라운 영상이다. 그렇지만 아까 처음으로 마법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와는 다르게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사라고 자칭하면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진짜일 수도 있긴 한데,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엔 못 믿겠어."

누나에게 담담하게 소감을 얘기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누나가 흥분해서 진짜라고 소리치며 우기는 장면을 떠올렸지만 정작 본인은 다른 방향으로 폭주했다.

"나도 아직 못 믿겠어. 내가 그 장면을 찍었지만 나도 아직 믿기 어렵거든. 그러니까 두 말하기 없기다? 혹시나 만약에 진짜 마법사라는게 밝혀지면 이걸 세상에 알리는 거야! 그래서 마법이 세상에 퍼지면 세상이 얼마나 편해지겠어? 그러니까 꼭 잘 해야 된다?!"

그렇게 누나는 특종을 갈구하는 기자 같은 대사를 덧붙이며 나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나는 아무래도 좋지만, 하고 중얼거리며 오른손을 맞부딪쳤다.



8월의 첫 토요일. 학기 중이라면 귀중한 주말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방학 중이었고 특별히 보충수업이나 학원수업을 받지 않는 나에게 이 시기의 주말은 단지 바깥에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날일뿐이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 회합에 대한 안내 문자 두 통을 일주일 전에 내 휴대폰으로 받아볼 수 있었다. 누나가 동호회에 가입할 때 내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 버린 덕이다. 먼저 온 문자엔 '회합예정'이라는 짤막한 단어로 시작하여 일시와 장소만이 적혀 있었다. 이어서 온 문자에는 '이 문자를 받는 회원은 30분 일찍 올 것'이라고 적혀 있었고, 두 통 모두 다른 말은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단체문자인 것 같은데 좀 더 성의 있게 보내면 안 되나?

"거기 가면 누구든지 잘 맞이해 줄 거야. 비공개 동호회인 만큼 딱딱하게 대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거기서는 전부 존댓말을 써야 되고, 가서 정모 대신 회합이라는 단어를 써야 돼. 다들 뭔가 스스로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모양이니까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비웃지 말고. 아무래도 회장부터가 스스로를 마법사라고 하는 동호회니까."

그렇겠지… 자기가 믿고 있는 바를 타인이 비웃는다면 누구라도 화가 날 거다.

"넌 거기 가서 네가 '벤투스'라고 하면 사람들이 알 거야. 벤투스는 라틴어로 바람이라는 뜻이니까 혹시 뜻을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하면 되고. 어차피 그냥 가서 신입이니 잘 부탁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알아서 여러모로 잘 가르쳐 줄 거야. 게다가 실제로도 처음 가는 거니까."

점심때가 되자 누나가 내 방문에 호쾌한 옆차기로 노크를 하는 동시에 문을 여는 기적을 행하며 들어와서 오늘 정모, 아니 회합에 대해 설명했던 내용이다.

"뭐야 그거, 오컬트랑 초능력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망상 자랑하는 동호회 아냐? 대체 왜 그런 동호회를."

"아~ 그치만 설마 그런 동호회일 줄 알았냐고. 거기다 회장이라는 작자는 마법사라고 주장하고. 더군다나 그런 동영상까지 찍었으니."

개인적으로 친해진다는 선택지는 누나가 선택하기엔 무리겠지. 아마 그런 선택지가 누나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았겠지만.

"아무튼! 이번 정모, 그러니까 회합은 네 첫 회합이야. 데뷔 무대라고! 그러니까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사람들하고 친해져서 와야 한다? 명령이니까."

그렇게 명령이라는 부분을 힘주어 얘기하지 않더라도, 첫인상부터 좋지 않게 찍히고 싶진 않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첫인상만으로 미움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까.

막상 출발하려니 내가 비록 낯을 가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게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어차피 다른 할 일도 없으니까' 하고 속으로 자기합리화를 마치자, 용기가 조금 생겨났다. 누나는 집에서 문자로 내 보고를 받으며 나를 도울 것이다.

- 끼익

"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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