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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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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설날이 음난해?!
글쓴이: 베이모르
작성일: 12-02-08 02:13 조회: 2,674 추천: 0 비추천: 0

*음난(吟難):어려움을 읊다, 난세를 뜻함.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그래요. 오늘은 바로 까치들의 설날이라구요!"

"너 뭐야?!"

"지금까지 인간들이 독차지했던 '복'들, 이제 우리 까치들이 접수하겠습니다!"

"까치들이 설날을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설날 하루 전, 그리고 까치의 설날."

"오늘 안에 설날을 되찾지 못하면,"

"우리나라에 커다란 불운이 찾아옵니다."

"까치들에게서 설날을 되찾아 주세요."

설날이 음난(吟難)해?!

-writen by 베이모르

시작합니다.

2013년 2월 8일. 오전 6:23.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난 일어났다. 아침 6시. 방학 주제에 너무 일찍 일어난 것 아닐까.

뭐, 이런 것도 일종의 습관 탓이겠지. 1년동안 꼬박꼬박 아침시간에 일어났는데, 방학 며칠간 좀 쉰다고 그 습관이 변할 리 없다.

그러고 보니 어제 뭔가 찜찜한 기분으로 잠들었던 거 같은데....

난 무심결에 달력을 바라봤다. 2월 8일. 내일은 설날. 그런데 토일월이다.

...이게 뭐냐고!

어째서 하필 이렇게 요일이 절묘한건데? 놀토, 일요일 전부 올킬이냐! 말만 설날이지 사실상 하루짜리 휴일이나 다름없잖아.

작년 추석도 토일월이더니.... 이건 2012년 멸망설보다 더한 재앙이다! 멸망은 그냥 지나갔지만 설날은 바로 내일이잖아. 뭔가 인간이 신의 분노를 산 게 분명해!

설날엔 시골로 올라가기도 해야 하고, 제사니 벌초니 해서 귀찮은 것도 많다. 어떤 의미에선 그냥 토 일 이틀 쉬는 것보다 손해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밖에서 어린애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설날이니 신난다는 건가....

까치들의 설날은 어저께라.... 이럴 땐 까치들이 부럽다. 뭐, 실제로 까치들에게 설날이 있을 리 없지만. 적어도 토일월이라는 저주받은 설날보단 나을 것 같다. 아니, 그래 봤자 금토일이잖아?

분명 까치들도 우울해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부스럭."

"......?"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금 쯤 부모님들은 전부 일 나가셨을테고. 분명 나 혼자일텐데?

물론 도시 아파트에 쥐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그럼 대체 뭐지?

잘못 들었나, 싶었을 때 쯤 다시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싱크대 위의 커다란 서랍. 원래 그릇을 넣어두는 곳이지만, 워낙 넓어서 여유공간이 많다. 사람 한 명은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설마, 해서 서랍장 문을 열어봤다.

그 순간, 뭔가 커다란 게 떨어져 내리고.

"까까까까까!"

?! 뭡니까 저 괴상한 소리는? 뭔가 새 우는 소리 비슷한 거 같은데?

"우에엥, 아파요."

떨어져 내린 그것은, 우는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여자애다. 머리엔 자그마한 아얌을 쓰고, 알록달록한 색동 한복을 입고 있다. 긴 치마 아래로 살짝 보이는 작은 버선이 앙증맞다.

요즘 같은 때에 한복, 이라는 것도 상당히 드물지만.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그녀가 문지르고 있는 엉덩이 쪽이다. 엉덩이 쪽에 붙어있는 건 뭔가 길쭉하고 까맣고 흔들거리는 게─ 꼬리...?

뭔가 참신한 코디다. 한복에 코스프레라니. 이것도 나름 귀여운...게 문제가 아니잖아!

"너, 너 뭐야? 왜 우리 집 서랍에 들어가 있었던 건데?"

"음,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여자아이?"

"그런 녀석이 왜 하필 서랍에 들어가 있었냐고!"

"어, 뭔가 맛있는 냄새가...."

무시하기냐!

하지만 그녀는 내 반응 따윈 아랑곳 않고, 갑자기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거, 뭔가 대놓고 도둑질 당하고 있는 거 같은데?

"우웅, 분명 이 근처에서 냄새가 나는데...."

여자애는 엎드린 채로 집 안의 서랍들을 하나하나 열어 보고 있었다.

엎드려서 움직힐 때마다 씰룩이는 엉덩이 라인이.... 아, 한복이란 원래 이렇게 색기가 넘치는 옷이었구나. 거기다 엉덩이와 함께 흔들거리는 꼬리 부분이 너무나도 앙증맞다.

역시 도둑질도 예쁜 애가 하면 귀엽....

"야,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와, 나 두 번이나 귀엽다며 넘어가 버릴 뻔 했어.

대체 이 녀석 뭐냐. 남자를 유혹한다는 한국판 서큐버스냐?

"저기 있죠."

어느 틈엔가 내 앞으로 다가온 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내 손을 그녀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살포시 감싸쥐며.

"저거 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손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 쪽엔 작은 서랍이 있었는데,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참고로 저건 내 식량창고다. 매 주마다 일주일 치 간식을 저기다 쌓아두곤 했었는데, 동생 녀석이 자꾸 가져가서 결국 자물쇠를 채웠다. 어제 막 일주일 치를 채워넣었으니까 아직 만원 어치는 쌓여 있을 텐데....

혹시 저 안의 과자 냄새를 맡은 건가?

"저걸 내가 왜 열어줘야 되는데?"

내 싸늘한 일침에, 그녀는 다시 내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완전히 내 앞에 붙어서서, 약간 땀이 맺힌 손으로 내 손을 다시금 꼬옥 쥐고.

이렇게 밀착하니 키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좀 작은 애라는 생각은 했지만, 실제론 내 가슴팍에 겨우 닿을 정도로 작다. 그런 그녀가 내 얼굴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젖힌다.

상당한 키 차이 때문에 목이 아플 텐데도 아랑곳 않고. 단지 반짝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날 응시하며.

속삭이는 듯 한 목소리로.

"...안돼요?"

우아아아아악! 버...버틸 수가 없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저도 결국 남자였습니다.

오전 6:35.

우걱우걱.

"......."

우걱우걱.

"맛있냐?"

우걱우걱.

"......."

"하나 더 주세요!"

"없어!"

네가 다 먹어치웠잖아! 일주일 치를 5분만에 다 먹어치우는 녀석은 처음 봤다고!

"와아, 인간들의 음식은 정말 맛있네요."

그녀는 배를 톡톡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과자로 배를 채운 거냐!

...그런데 방금 마치 자신이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하지 않았나?

"자기네들끼리만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살았다니.... 역시 인간은 사악해요."

"......."

그러고 보니, 그녀의 엉덩이 쪽에서 살랑거리는 꼬리가 계속 눈에 띈다.

동물 코스프레라. 아예 자신이 동물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플레이인가? 확실히 그 쪽이 훨씬 실감 날 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저 꼬리는 어떻게 착용한 걸까. 단순히 옷에 붙인 거면 저렇게 생동감 있게 살랑거리진 않을 거다. 언뜻 들은 얘기론 엉덩이 구멍에 끼우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꼬리 딜도 같은 것도 있다던....

헤헤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되어 버렸다.

"후앙?!"

헤헤헤헤헤.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 순간 날아온 그녀의 주먹에 푸콱, 하고 벽을 향해 돌진☆

강하다...! 저 덩치에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온 거야?

따, 딱히 기분 좋은 건 아니니까 일단 소리를 지르도록 하자.

"너야말로 무슨 짓이야? 꼬리 좀 잡아당긴 것 가지고!"

"암컷의 몸을 함부로 건드리는 게 어딨어요?"

"어차피 진짜 꼬리도 아니잖아."

"진짜 꼬리 맞거든요!"

아하, 진짜 꼬리였...? 뭐냐, 그 말도 안 되는 억지는?

하지만 가짜가 저렇게 능숙하게 살랑거리진 않을 테고. 무엇보다 방금 콱, 잡았을 때 느껴진 그 보드라운 감촉이 너무나도─!

그나저나 저 꼬리는 대체 어떤 동물의 것일까? 까맣고 길쭉한 게 새 꼬리 같은데.... 까마귀?

"까치거든요!"

"뭐야 너? 독백을 읽었어?!"

혹시 독심술의 숨겨진 달인이라던가?

"어쨌든 전 까마귀 따위가 아니에요. 엄연한 까치라고요. 학명은 Pica pica sericea gould!"

"피카피카...?"

백만 볼트도 쏘나?

"...까치 군단 1대대 3중대 5소대 소속. 임무는 담당구역의 인간 감시 및 사생활 침해. 이름은 '희작'이에요."

그녀는 뭔가 명함 비슷한 것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뭔가 거창해?! 그런데 임무가 뭔가 이상한 거 같은....

아니, 그나저나 까치라면서 왜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거지? 아무리 봐도 코스프레로 밖에 안 보이는데.

"...'복'이라고, 알아요?"

그녀는 자신의 명함을 매만지면서 그렇게 물었다.

복...? 설날에 항상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하고 '세뱃돈 주세요'라고 해석되는 바로 그 복?

"맞아요. 인간들은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지만, 복이란 건 꽤 엄청난 힘을 갖고 있어요. 인간들이 번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복 때문이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소매춤에서 복주머니 같은 것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걸 흔들어 보이며.

"우리 까치들은 복을 거의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항상 차가운 둥지에서 추위에 떨며 살아야 했죠. 하지만 그 중의 몇몇 까치는 운 좋게 복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 극소수의 까치들은 이렇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용모를 뽐내듯 한바퀴 빙─하고 우아하게 돈다. 폭이 넓은 한복이 그 회전을 따라 아름답게 펄럭인다.

"인간의 모습이 될 수 있었어요."

"아...."

이제와서야 깨달았다. 내 '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에 답해주기 위해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한 거구나. ...또다시 생각을 읽혀 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연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극소수만이 복을 받았던 걸론 부족해요. 더 많은 까치들이 복을 받아야 해요."

뭔가 자기가 하는 연설에 심취해 버린 것 같다. 그래, 이런 녀석들 종종 있찌. 혼자 신나서 얘기가 산으로 가든 말든 떠들어대곤 하는 녀석들.

"그래서 인간들의 설날을 빼앗기로 했어요."

"......?"

뭐냐, 뜬금 없이? 갑자기 설날을 빼앗겠다니?

지금까지의 얘기도 상식적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저 말은 정말 황당하다. 애초에 설날이란 게 빼앗을 수 있는 거야?

그제서야 깨달았는지. 그녀도 아, 하고 자기 머리를 콩, 쥐어 박았다.

"저도 모르게 너무 많이 얘기해 버렸네요. 이거 원래 기밀인데...."

암, 그래. 깨달았구나. 그래서 연설엔 자기 컨트롤이 필요한....

"죄송해요, 저희들의 기밀을 안 이상 죽어주셔야겠어요."

"뭐...?!"

이건 뭐야?! 왜 난데 없이 죽으라는 건데?

애초에 네가 맘대로 떠들어댄 거잖아!

...그렇게 투덜거릴 시간 따위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왓!"

순식간에 머리 위로 뭔가 스쳐 지나갔다. 와, 보이지도 않았어.

뭔가 쨍그랑, 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설마 접시 같은 걸 던진 건가?

남의 집 물건 함부로 부수지 마!

"운이 좋으시네요."

"좋긴 개뿔!"

방금 접시가 깨진 것 만으로도 엄마한테 죽을 운명이라고! 살림을 중시하는 우리 사정에서 기물 파손은 최소 사형이란 말이다!

"앗!"

또다시 접시 하나가 날아왔다. 정확히 내 머리를 조준한 직구! 와, 피한 것 만 해도 기적이야.

하지만 날아온 건 접시 하나 뿐이 아니었다.

콰콰콰쾅! 하고 뭔가 듣기만 해도 오싹오싹한 소리가 들려오고.

뭐가 날아오는지도 보지 못한 채 난 정신 없이 옆으로 굴렀다. 윽, 방금 공격으로 대체 몇 개나 되는 식기들이 깨졌을까.

아니, 지금은, 지금 만큼은 미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여유따위 없는지도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저 정체 모를 동물코스프레에게 죽을 위기니까! 우왁!

"작작 좀 하라고!"

또다시 날아온, 이번엔 좀 큰 도자기 비슷한 걸 피하고 나서, 난 소리질렀다.

대체 뭐냐고! 아직도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애초에 자기 혼자 신나게 떠들더니 갑자기 '죽어 주세요'라고 하면 누가 납득하는데?

상황에 개연성이 없잖아, 개연성이!

"하지만 그건 저희들의 기밀인걸요."

"그러니까 기밀을 왜 떠벌리냐고! 복이니 설날이니, 그런 황당한 얘기 듣고 싶지도 않았어!"

"황당하다니요! 저희가 이 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데요! 심지어 방송국 테러까지 준비했... 아, 또 말해버렸다. 에헤헤."

"그러니까 말하지 말라고!"

거기다 이제 와서 데헷, 하고 귀여운 표정 짓지 마! 왠지 죽어주고 싶어지잖아!

또다시 콰콰쾅! 하고 온갖 식기들이 날아온다. 진짜 죽어주고 싶은 건 아니니 일단 피하도록 하자.

필사적으로 굴러 탁자 아래로 숨었고, 탁자 위로 쨍그랑! 하는 파열음이 수십 개씩 중첩되어 들려온다. 거의 폭발음 수준이다.

젠장, 상황이 곤란하다. 날아오는 식기들을 맞아도 죽고, 피해도 엄마한테 죽는다. 아니, 이미 식기들은 상당수 깨져 있고 맞아도 깨지는 건 똑같으니 피하는 게 상책인가? 집안 꼴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이를 빠드득, 간 순간.

"자아, 이번엔 피하지 말라구요."

뭔가 머리 위가 붕 뜨는 것 같더니.

위를 올려다 보니, 탁자 째로 들어올려 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코스프레가 보였다.

뭐뭐뭐뭐냐, 저 무식한 힘은?! 그 무거운 탁자를 150cm도 안 되는(어림짐작하기로) 조그만 애가 가볍게 들어올렸어?

"이번에 맞아 주시면 키스해 드릴게요!"

우오오, 그것 좋다... 아니 그 전에 그거 맞은 시점에서 이미 시체잖아!

"혀 넣고, 침까지 섞어서, 딥키스로!"

그거라면 좀 이야기가 다르....

"갑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는 탁자를 더 높이 들어올렸다.

우와, 저 엄청난 살기.... 역시 맞아주는 건 안되겠어! 혀 넣고 침까지 섞은 딥키스가 무지무지 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저건 무리야!

부웅,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나고.

거대한 탁자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내게 덮쳐온다.

그와 동시에 난 있는 힘껏 옆으로 굴렀지만.

"우아악!"

그 순간 엄습해 오는 통증. 정빵은 피했지만 발목 쪽을 맞아버린 것 같다.

"와아, 맞았다!

"자, 맞아줬으니 딥키스를...."

"일단 죽고 나서요."

치사해! 내가 소녀의 부탁을 들어줘서 순순히 탁자에 맞아주기까지 했는데! 아니 순순히는 아니지만 어쨌든 맞았는데!

"음, 이거면 될라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도마 위의 식칼을 들어 보였다.

아니 저건 도자기나 접시 수준이 아니잖아! 진짜로 죽일 셈이냐?

식칼을 든 손을 흔들며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 그 모습엔 이미 '진짜 죽일거냐'는 의문따윈 무의미해졌다.

상황이 안좋다. 발목 쪽을 맞아서 움직일 수가 없다. 그녀가 저렇게 여유부리는 이유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이겠지.

혀 넣고 침까지 섞어서 하는 딥키스...는 기대도 안했지만 어쨌든 물 건너 갔고. 이제 다가온 그녀가 칼로 배를 가볍게 푹, 찌르면 끝나는 거다.

피할 수 없다.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

이대로 죽는건가, 라고 생각한 순간.

"까─악."

"......?!"

뭔가 이상한 소리와 함께 창문 쪽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검다. 검은 몸통과 까만 눈동자. 그리고 까악거리는 울음소리. 이건 확실히 까마귀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왜 까마귀가 우리 집에 들어온 거지? 도시 근처에 절대 있을 리 없는 새 중 하나가 까마귀일텐데.

뭐, 난데 없이 동물코스프레를 한 여자가 나타나서 날 죽이려 드는 상황에, 까마귀 정돈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레벨이긴 하지만.

"뭐에요, 까마귀 주제에?"

내게 다가오던 희작은, 갑자기 나타난 까마귀를 귀찭다는 듯이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언젠가 한 번 들은 적이 있다. 까마귀와 까치는 서로 사이가 안 좋다고.

그리고 까마귀는 까치한테 약하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까치가 있는 곳에 당당히 나타난 걸까.

그렇게 까마귀와 희작은 서로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까─────악."

까마귀가 갑자기 길게 울음소리를 빼더니. 희작에게 달려들어서는.

그녀의 눈을 쪼아버렸다.

"아얏! 뭐에요 이거?!"

비명을 지르며 희작은 눈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 주위를 까마귀는 까악까악, 울면서 뱅글뱅글 돈다.

이건 설마, 그녀의 시선을 끌려고 이러는 건가?

하지만 어째써? 까마귀 주제에 내 위기를 알고 구해주려는 건 아닐텐데?

"다행히도 늦진 않았군요."

"......?"

등 뒤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방울이 짤랑짤랑 흔들리는 것만 같은 소리.

뒤돌아 보니, 웬 여자애가 서 있었다.

복장은 희작과 비슷하다. 화려한 색동 한복에, 머리 위엔 작고 앙증맞은 아얌. 그리고 엉덩이 쪽엔 까만 꼬리까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차이점이 더 많다. 일단 갈색 땋은 머리의 희작과는 달리, 까맣고 긴 생머리가 눈에 띄고. 그 다음으론 약간 경직한 둥근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 큰 차이는 분위기다. 대책없는 말괄량이(지만 귀엽긔) 같은 느낌이 희작이라면, 그녀는 뭔가 말 없고 차가울 것만 같은 느낌이다. 달리 말하자면 쿨데레? 그러나 특유의 정갈하고 수수한 느낌이 돋보여서, 그런 무뚝뚝함 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생전 처음 보는 소녀. 그러나 그녀는 나에 대해 알고 왔다는 듯이 얘기하고 있다.

'늦지 않았다'라니, 그렇다면 그녀는 내 위기를 알고 구해주러 왔다는 걸까?

"낭아가 시선을 끌고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그녀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피하죠."

소녀는 건조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낭아라니? 시선을 끌고 있다는 걸 보니 저 까마귀를 말하는 건가?

역시 날 도와주러 온 게 맞는가보다.

하지만 그녀는 대체 어째서 날 도와주며, 까마귀는 어떻게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거지?

뭔가 의문 투성이다. 아니, 저 동물코스프레 살인마가 나타난 시점부터 이미 엉망진창이잖아!

"빨리 따라오세요. 그녀에게 당하고 싶습니까?

그렇게 내가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쯤. 갑자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지금은 이러쿵 저러쿵 생각할 때가 아니지. 저 까마귀가 얼마나 버틸 지도 알 수 없고.

결국 난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등 뒤에서 계속해서 우지끈 쨍그랑 소리가 들리는 게, 심하게 불안하다고!

오전 6:51.

잠시 우리 아파트에 대해 설명하겠다.

일단 우리 집은 2층이다. 그리고 2층은 아파트에서 가장 낮은 층인데, 왜냐하면 1층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1층에 살아봤던 사람들은 알겠지. 엘리베이터나 계단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에 의한 쿵, 쿵 하는 끔찍한 소음들. 다른 층이라고 안 그렇겠냐만, 1층은 입구 쪽이라 특히 더 심하다.

따라서 1층은 대개 창고로 쓰인다.

뭐, 실제론 빈 방이나 다름없다. 말만 창고지 소유한 사람이 없으니 사용될 일도 없고. 그래서 문도 잠궈놓지 않아 말 그대로 빈 방이다. 대개 어린 애들의 놀이터로 이용되고 있긴 하지만.

"여기 쯤이면 안전한 것 같군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창고 문을 잠궜다. 창고 주제에 안에서 잠그는 식이라니....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그녀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직도 발목 쪽이 끊어질 듯 아프긴 하지만. 남자라면 이 정돈 참... 아야야야야.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옅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지금은 파스 밖에 없습니다만...."

품 속에서 파스 하나를 꺼내 보이는 그녀. 보통 발목 같은 데에 파스를 붙이던가? 그것도 배 같은 데나 붙일 정도로 커다란 건데.

아니, 그래도 괜찮아! 여자애 품 속에서 나온 온기 깃든 파스라니! 그거라면 내게 있어선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다고!

...그 까치 녀석을 만난 후로 내가 상당히 이상해진 것 같다.

"그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파스를 내 발목에 붙이기 시작했다.

찌이익, 하고 껍데기 부분을 떼어내고. 발목 쪽에 가장자리부터 섬세하게 접착시킨다. 발목을 감싸도록 위치도 정확하게.

의외로 정성 담긴 그녀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멋쩍스러워 졌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저기 있잖아."

"예?"

"넌 왜 그렇게 날 도와주는 거야?"

"......."

내 물음에, 파스에 집중하던 시선을 살짝 갸우뚱 하는 그녀.

"하지만 그렇잖아? 갑자기 나타나서 날 구해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치료까지 해 주다니. 방금 처음 만난 주제에 너무 친절하잖아?"

"...필요하니까요."

"......?"

파스를 다 붙였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시선을 내게 맞추고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도움?"

내 도움이 필요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애초에 난 평범한 변태고등학생일 뿐인데. 방금 여자애한테 죽을 뻔 할 정도로 약하기까지 한데.

거기다 대체 무엇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지?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있을 리 없는데.

내 의아한 표정을 본 그녀는, 설명이 필요하단 걸 느꼈는지.

"...좋습니다. 하지만 에두를 시간이 없으니 일단 본론부터 말하죠."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굳은 목소리로.

"까치들이 설날을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

뭔가 직구를 맞아버렸다. 분명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얘긴데, 저렇게 당당히 말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얼마 전에 들은 얘기와 겹친다는 것도 신경쓰인다.

'그래서 인간들의 설날을 빼앗기로 했어요.'

라고 말했던, 까치인지 코스프레인지 하는 녀석. 그땐 다짜고짜 죽이려 드는 바람에 생각할 틈도 없었는데.

그 녀석의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거기다 지금 이 소녀 또한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설날을 빼앗는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아직 갈피조차 잡지 못하겠다.

" '복'이라고, 아십니까?"

소녀의 나즈막한 물음.

그래. 이것도 그 녀석에게 들었었다.

인간들이 번영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복'때문이라고. 또한 자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복의 힘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복'을 차지하기 위해 설날을 빼앗을 거라고─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 얘기가 빠르겠군요."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까치들은 복을 차지하기 위해 설날을 빼앗으려 했고, 이제 거의 성공한 상태입니다."

성공했다고? 이미?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하는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 항상 설날 때면 부르던 그 노래?"

"예. 그렇게 까치들은 선조 대부터 불려져 온 노래에도 언급될 정도로, 오랜 시간 준비해 왔던 겁니다. 그리고 올해에 와서 거의 완성상태에 이르렀죠."

그녀는 다시 한 번 심호흡하더니.

"오늘은 설날 하루 전, 그리고 까치들의 설날. 이미 때는 찾아왔습니다. 우린 내일이 오기 전에 설날을 되찾아야 합니다. 만약 되찾지 못한 상태에서 내일이 와 버린다면, 오늘 안에 설날을 되찾지 못한다면─"

쿠궁, 하고 뭔가 얼굴에 그늘을 깔고서.

"우리나라에 커다란 불운이 찾아옵니다."

"......?!"

야야야야야!

뭔가 엄청 건너뛰었잖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태클 걸고 싶은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라고!

그제서야 자신이 상당히 비약해버렸단 깨달았는지 아, 하고 입을 벌리는 그녀.

...너 설명 같은 거 잘 못하는구나.

"아, 됐다, 됐어. 이제부턴 내가 궁금한 부분을 하나씩 물어볼게."

차라리 내가 묻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난 그렇게 말했다.

그녀도 수긍했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럼 우선,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일단, '복'을 차지한다면서 왜 설날을 빼앗는 건데? 둘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내 물음을 들은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엔 명절이 두 개가 있습니다. 바로 설날과 추석이죠. 그리고 이 때 만큼은 인간들 모두가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님이나 조부님을 만나곤 합니다. 특히 설날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세배를 하기도 하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

"바로 인간들은 그 명절을 통해 복을 충전하기 때문이죠. 이를 조상들은 '쌍절지복(雙節之福)'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충전한 복들은 개인을 축복하고, 사회를 유지시키며, 국가를 지탱합니다. 전 국민이 명절을 통해 얻은 복의 총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명절을 빼앗는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쿠궁.

"우리나라 복의 절반을 강탈해 버린다는 얘기가 됩니다."

"아...."

조금은 맥락을 알게 된 것 같다.

즉, 까치들은 복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명절 중 하나인 설날을 빼앗으려 한 것이고. 설날을 빼앗긴다는 것은 우리나라 복의 절반을 빼앗긴다는....

잠깐, 이거 엄청나게 큰 일이잖아?! 이건 범국가 차원인데? 이런 일에 고작 나 정도 되는 녀석의 힘이 필요하다고?

...아니, 일단 궁금한 게 한 가지 더 남았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커다란 불운이 찾아온다'는 건 무슨 말이야? 그게 복과 관련된 일이야?"

"예. 일단 설날을 빼앗기면 복의 절반이 날아가는 셈이란 건 이미 말씀드렸을 겁니다. 그리고 그 복의 힘이란 게, 단순히 개인 차원에서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닙니다. 그 양에 따라 집단, 지역, 크게는 한 국가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국가 차원으로 모인 복들은 기본적으로 국가를 지탱하는 근본이 되며, 때때로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엄청난 기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예시를 들 내용을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왜적이 쳐들어와 망국 직전까지 갔던 '임진왜란'에서 극적으로 승리했다던지. 또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완전히 파탄나 있을 때, 기적적으로 나라가 일어서게 된 '한강의 기적'이라던지.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나라에 쌓여있던 복의 힘이 작용한 겁니다."

임진왜란과 한강의 기적이라.... 그 둘 모두 우리나라의 운명을 바꾼 대사건들인데.

거기에 모두 '복'의 힘이 관여되었다고?

"그 정도로 커다란 힘을 가진 게 복입니다. 그런데 그 복의 반절을 빼앗긴다는 건,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대들보의 절반이 무너져 버린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게 된 건물은 더이상 존속될 수 없겠죠."

"......."

"커다란 불운이─ 어쩌면 우리나라를 망국까지 치닫게 할 수 있는 커다란 불운이 올 겁니다."

건조하고 밋밋한 어조로 내뱉은 엄청난 으름장.

실패하면 나라가 망한다.

젠장,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져 버렸잖아. 그 정도의 일에 나 따위가 관여한다고?

"어째서─"

"......?"

"어째서 그런 일에 나 따위의 도움이 필요하단 거야? 이런 건 고위 관리나 특수부대 같은 데서 맡아야 하는 일 아니냐고. 왜 그냥 남자애일 뿐인 내 도움이 필요하단 건데?"

"당신이 아니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외치는 그녀.

날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의 눈이 너무나도 굳건하다.

그리고 그녀는, 조목조목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각자 복을 타고납니다. 개개인마다 가질 수 있는 복의 총량이 다른거죠. 유별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항상 팔자타령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게 타고난 복의 차이에서 온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제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복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운이 좋다고?

하지만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고 딱히 운이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평균. 보통. 난 항상 내가 그런 중간단계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왜 내가? 아니, 어떻게 해서 그런 걸 알 수 있는건데?

"만나지 않았습니까."

"......?"

"인간이 된 까치. 금수이면서 동시에 사람인 존재. 그런 자를 만난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썬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마어마한 복을 타고난 사람만이 그런 비상식과 조우할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이 된 까치. 희작.

갑자기 우리 집 서랍장에서 출몰해서, 내 일주일 치 간식을 강탈하고. 그런 주제에 은혜도 모르고 날 죽이려 든 녀석. 몰상식.

하지만 그거 갖고 내가 특별하다고 확신하는 거야?

그건 단지 우연일 뿐인데.

"그 우연을 조종하는 힘이 바로 복입니다."

"그래도 겨우 한 명 가지고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 거야? 그냥 단지─"

"저도."

"......?"

"저도 그런 존재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흠칫 놀라는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이래저래 소개가 늦었군요. 전 까마귀, '한아'라고 합니다."

까마귀─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 얘기는, 방금 날 구해줬던 그 낭아인가 하는 까마귀랑 동족이란 말인가?

까마귀와 소녀가 동족이라.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은 실감하기 어렵다.

...뭐,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다.

그 까마귀랑 호흡이 척척 맞았던 건 둘째 치고. 뭔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알 리 없는 비상식에 관해 해박하단 것도 셋째 치고.

무엇보다 저 꼬리. 그녀의 엉덩이 쪽에 달려 있는 저 앙증맞은 꼬리가, 상당히 신경쓰였으니까.

검고 깃털에 싸인 꼬리. 얼핏 보면 그 까치 녀석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길이나 모양 같은 게 약간씩 다르다.

저 꼬리가 가짜가 아닐거란 건, 저번에 까치와의 애무(?)로 진작에 확인했었다.

즉, 저 꼬리는 확실한 비일상의 증거.

부정할 수 없다.

"그럼, 다시 한 번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졌던 날 향해, 다시 그녀의 은방울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숙이더니.

뭔가 세배를 하듯이 몸을 낮추고.

"설날을 되찾아 주세요. 까치들을 막고, 저희에게 힘을 빌려주세요."

마치 간청을 하듯이.

단순히 무릎을 꿇는 것보다 더 공손한 자세로 부탁을 해 온다.

젠장, 비겁하다. 너무나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거절할 수가 없잖아.

비록 난 그냥 보통 남자애일 뿐이지만.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이 녀석이 멋대로 착각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부탁해 오면,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다.

비겁하다. 기분 좋게 비겁하다.

"에...저기, 그런데 뭔가 하나 빠트린 게 있었던 거 같은데."

"예?"

"저번에, 처음 도와달라고 했었을 때. 분명 타임리미트가 있었던 것...."

그, 뭐랬더라, 오늘 안─

에이, 설마.

"예. 오늘 안에 설날을 되찾아야 합니다."

"뭐?!"

오늘 안이라고? 오늘 안에 그,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일을 해치워야 한다고?

"오늘은 까치의 설날이니까요. 이미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내일이 오기 전에 진짜 설날을 되찾아야 합니다."

무리, 절대무리다아악!

어떻게 오늘 안에 그런 커다란 일을 해치울 수 있겠느냐고. 범국가적인 스케일인데! 그따위 것 고위관리나 특수부대도 불가능할 걸?

오늘 안이라니, 애초에 무리수 아니냐고!

그렇게 속으로 불평하던 날 향해, 한아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하지만 실패할 순 없습니다."

실패하면, 나라가 망한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더라도 실패따윈 할 수 없다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뭐, 그 정돈 나도 안다고.

그냥 조금 불평해 봤을 뿐이야. 조금, 아주 조금이라고. 쳇.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예?"

"어떻게 해서 설날을 되찾는 거냐고."

"그건 저도 모릅니다."

"?!"

뭐시라고? 몰라?

방금 전엔 뭐든 가능할 기세로 당당하더니. 정작 그 방법을 모른다고?

"까치들은 장기간, 하지만 매우 은밀하게 일을 준비해 왔습니다. 따라서 다른 종족이 그 일에 접근할 수는 없었고, 특히 그들에게 약한 우리 까마귀로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어쩔건데! 오늘 안에 되찾아야 한다며?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짧은데. 방향조차 모르면 뭐 어쩌자는 거야?

역시 이따위 일, 무리, 절대 무리야!

"하지만."

그렇게 또다시 불평하던 내게. 한아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은 있다, 라는 듯이.

"우리 바로 곁에, 그것에 대한 정보를 캐물을 단서가 있지 않습니까?

아, 하고 난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생각났다.

까치들이 준비한 음모니 당연히 까치들이 가장 잘 알 것이고. 그리고 그런 녀석이 운 좋게도 바로 위층에 있고.

이 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열쇠를 갖고 있는 녀석. 그 녀석은 바로─

까치, 희작.

오전 7:13.

일단 한아와 난 창고에서 나와서, 우리 집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틈으로 집 안의 고아경을 살펴봤다. 그런데 그 광경이....

"비겁하게 도망만 다니지 말고 덤벼 보라구요!"

"까─악."

우지끈, 쨍그랑.

"정말 미꾸라지 같이.... 좋아요. 그렇다면 내 필살기를 보여드리죠."

"까───악."

콰콰콰콰쾅!

"......."

정말이지 가관이다.

아직까지도 까마귀는 희작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고. 희작은 흥분해서 온갖 공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래, 좋아. 우린 지금 까치에게서 캐낼 정보가 있고. 그래서 까마귀가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는 것까진 좋아. 거기까진 너무나 좋은데. 좋은데...!

어째서 남의 집을 부수고 있는 거냐!

접시 창문에 던지지 마! 접시도 깨지고 창문도 깨지고 1타2피잖아! 그리고 필살기는 왜 쓰는 건데? 우아악! 냉장고가 박살나 버렸어!

바닥은 깨진 유리조각이 비산해 있고. 창문은 이미 남아나는 게 없으며. 심지어 가전기기들까지 대부분 파손되어 있다.

이거, 집 안에 미사일을 때려넣어도 이 정돈 아닐 거 같은데?!

"유감이군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한아.

그래 고맙다. 역시 내 맘은 너밖에 알아주는 녀석이 없...다는 개뿔! 너도 전혀 유감이 아닌 듯한 어조로 말하지 마! 너네 집 아니라고 그렇게 형식적인 말투 쓰지 말라고!

"...뭐,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난 그녀에게 그렇게 물었다.

희작에게서 정보를 캐내려면 역시 붙잡아야 할 테고. 그러려면 상당한 힘이 필요한데....

문제는 저 녀석, 상당히 세다. 접시 수십 개를 한번에 던지고, 탁자를 가볍게 들어올리는 녀석인데, 말 다했지.

나야 당연히 평범한 남자애 수준으로 약하고. 한아나 낭아도 전투계열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사로잡는다는 거야?

"까치 같은 금수들은, 복을 이용해 인간의 모습을 한다는 말은 이미 했을 겁니다."

한아의 대답.

그래. 이미 두 번은 들었다. 복을 가진 극소수의 까치들은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역으로, 그녀에게서 복을 빼앗는다면 그녀는 까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통 금수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론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죠. 그게 바로─"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소매춤에서 웬 주머니 하나를 꺼내 보였다.

작다. 색은 빨강. 가운데엔 한자로 '복'이란 글자가 자수되어 있으며, 입구 부분엔 끈이 달려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예. 바로 복주머니입니다. 금수들은 이 복주머니를 이용해서 복을 모읍니다. 그러니 그녀의 복주머니를 뺑사으면...."

희작은 까치로 되돌아간다.

까치의 모습으로 우릴 대항할 수 있을 리 없고. 그러니 우리들은 손쉽게 그녀를 심문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복주머니를 빼앗느냐인데....

"한 가지 힌트를 드릴까요?"

"......?"

"까치들은 꼬리가 성감대입니다."

"......!"

아, 그래서 그 때. 내가 희작의 꼬리를 잡아당겼을 때, 후앙?! 하는 괴상한 소릴 냈던 거구나.

꼬리 잡는 것 쯤이야. 빈틈만 보인다면 그다지 어렵진 않을 테고. 덤으로 쾔가에 젖은 여자애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

에헤헤헤헤.

난 정보를 캐낼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는 거지, 절대 흑심을 품은 건 아니라고 자부한다. ...아니, 약간, 손톱에 낀 때 만큼은 있나?

"저와 낭아가 그녀의 시선을 끌겠습니다. 그동안 그녀의 뒤를 돌아서 꼬리를 애무... 으흠흠. 할 수 있겠습니까?"

당근! 당근빠다지!! 그따위 것, 남자로써 일도 아니지!

거기다 너, 방금 얼굴 빨개져서 귀여웠다고. 에헤헤.

"어차피 지금 낭아의 체력도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니, 곧바로 작전에 들어갑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저기, 잠깐만."

"......?"

내 갑작스런 제지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딱 한 가지. 사소한 거지만 물어볼 게 있다.

타이밍을 놓쳐도 아득히 놓친, 지금 와서는 뜬금없는 질문이 되긴 하겠지만.

"저, 지금 생각 난 건데 말야. 우리나라가 망하니 뭐니 해도 결국 인간들 일이잖아? 그런데 인간들과 아무 상관 없는 너희 까마귀들이 왜 우릴 돕는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

"까치들이 설날을 빼앗는 데 성공하면 그들의 세력이 커질 테고. 그럼 그들과 앙숙인 우리 까마귀들이 불리해 집니다. 그러니 인간들을 돕는 거죠."

"......."

아하, 그래.

정말로 당연한 걸 물어봤는지도 모르겠다. 뻔한 이해관계인데.

조금만 생각해도 금방 떠오를 시나리오를, 괜히 물어봐서 시간 낭비한건가.

"...뭐, 그런 얘깁니다. 그럼, 이제 준비 되셨습니까?"

한아는 그렇게 물었다. 시선은 건너편을, 목표인 희작을 주시하며.

그래, 이 녀석도 지지한 거다. 동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니까.

우리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나나, 까마귀로써의 흥망을 앞둔 그녀나─ 결국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는 없다.

그게 당연한 거다.

그렇다면 나도 진지해져야 겠지. 진지하게 저 까치녀석에게 애무를.... 에헤헤. 꼬리로 가버리게 만들겠어!

"그럼, 갑니다."

오전 7:17.

우선 우리 집 구조... 아니 거의 반 폐허가 된 우리 집 구조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자.

일단 전체적인 모습은─ 이미 언급했듯이 매우 처참하다.

거실 한가운데엔 아마 탁자, 였을 것으로 보이는 파편들이 즐비해 있고.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냉장고 파편들과 함께 튀어나온 각종 음식류들이 널브러져 있다. 창문은 이미 다 깨져서 찬 바람이 집 안을 매섭게 파고든다.

그 외에도 반쯤 찌그러진 싱크대, 거의 완파된 서랍장, 심지어 벽까지 몇 군데 깨져서 방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이거, 고작 30분 정도만에 이 정도의 초토화가 가능한 거야?

콰직, 하고 뭔가 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제발 그만해 이 망할 까치녀석아아악!

하지만 지금도 미친듯이 날뛰고 있는 녀석이 내 독백을 들을 리 만무하다. 그녀의 눈에 우리 집 기물 따위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그만 부수라고!

그리고 그 폐허 사이로, 한아는 걸어갔다.

"뭐에요? 또 까마귀 한 마리? 친구 도와주러 온 거에요?"

낭아를 미친듯이 뒤쫓던 희작이 한아를 발견하더니, 비웃듯이 말했다.

까치에게 까마귀는 단지 '약자'일 뿐이니까. 하나든 둘이든 결국 전투력으론 보지 않는다.

뭐, 실제로 한아는 싸울 생각이 없기도 하고.

"자, 뭐해요? 빨리 덤벼 보...."

"보입니다."

"......?"

"팬티 보입니다."

"?!"

반사적으로 치마를 감싸는 희작. 그러나 그녀의 치마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애초에 그 긴 치마 사이로 팬티가 보일 리도 없고.

"뭐에요, 지금 장난치는 거에요?"

빠직, 하고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는 그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살기를 고오오오, 하고 내뿜고 있다.

하지만 한아는 전혀 아랑곳 않은 채.

"분홍색 곰돌이 팬티. 사이즈는 85정도. 약간 얼룩이 보이는군요. 속옷은 자주 갈아입도록 하십시오."

"뭐─?!"

외우듯 좔좔 읊어대는 한아의 말에, 희작은 움찔해서 다시 치마 쪽을 감쌌다.

그리고 치마 곳곳을 확인했다. 역시 아무데도 이상은 없다.

...그나저나 너 상당히 유아틱한 취향을 가졌구나.

"대체 어떻게─"

"음, 제가 특이체질이라 투시능력을 가졌...다는 둥의 헛소린 하지 않겠습니다."

의아한 눈으로 묻는 희작의 질문에, 한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희작의 치마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그 비결이라면, 단지─"

희작의 치마 쪽에서 뭔가 푸드득, 하는 소리가 나고.

"낭아가 보고 있었으니까요."

"까─악."

"?!"

한아의 말과 함께, 희작의 치마 속에서 까마귀가 날아왔다.

즉, 낭아는 몰래 희작의 치마 속으로 숨어들어갔고. 한아는 낭아가 가르쳐주는 대로 읊었던 거구나.

"아우으.... 정말, 까마귀들 주제에...."

볼에서부터 귀 끝까지 새빨개진 희작. 말도 하기 어려운지 자꾸만 더듬거린다.

...우와, 귀엽다!

"다음은 브라 쪽도 맞춰 볼까요?"

"이게 진짜...!"

우와악, 하고 참지 못하고 희작은 한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흥분한 상태인데다 그녀의 체력도 상당히 소모된 터라, 한아는 그녀의 공격을 손쉽게 피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아는 희작의 공격을 몇 번 휙휙 흘려보내고.

그 뒤로 "까─악."하는 소리와 함께.

"꺄앗!"

다시 희작의 치맛자락 속을 드나들기 시작하는 낭아.

희작은 필사적으로 치마를 감쌌지만, 고속으로 날아드는 새를 막을 순 없었다.

"아오, 이것들이 정말!!"

진심으로 이성이 날아가 버린 듯, 희작은 거친 숨까지 내쉬고 있다.

그런 그녀를 한아는 여유로운 눈길로 쳐다보고. 낭아는 계속해서 그녀의 주위를 뱅뱅 돌고 있다.

...와, 어그로 한 번 제대로 끌었구나.

그래서, 그 동안 난 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고?

당연히 그녀가 어그로를 잘 끌어주시는 동안, 침착하게 희작의 뒤편으로 숨어들고 있었지. 절대 희작의 흥분하는 모습 감상하느라 지체한 건 아니야!

일단 희작이 저렇게 날뛰고 있는 이상, 쉽게 빈틈을 잡기는 어렵다.

그래서 일단 거실 뒤편에 위치한 방 쪽에 숨기로 했다. 여기라면 쉽게 눈에 뛰지도 않을 테고, 기회가 오는 순간 곧바로 뛰어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서 상황을 조금 지켜보다가, 희작이 약간이라도 움직임을 지체하는 순간 뛰쳐나가 애무를 실시한다!

...네, 엉성합니다. 죄송합니다, 머리가 이거밖에 안되서.

어쨌든 지금까지 30분이나 날뛰어 왔으니, 빈틈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아아, 여기까지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부디 오해 없길 바란다.

"아직까지 스포츠브라로군요. 철저한 유아체형입니까?"

"까─악."

"꺄읏─! 가슴 속으로 파고들지 말란 말이에요!"

저 쪽은 상당히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듯 하다. 젠장, 나 혼자 방 안에 숨어서 뭐하는 거지?

뭐, 희작은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한 것 같다. 빈틈도 많아지고 고함 지르는 기세도 많이 약해졌다.

이정도 쯤이면 빈틈은 충분해 보이긴 하지만, 문제는 거리다. 나와 그녀의 거리는 10미터 정도.

내 신체능력으로 10미터 주파까지 약 2초 가량. 그 동안 희작이 알아채 버리면 모든 게 물거품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도록 할까.

"전혀 여성미라곤 차장볼 수 없군요. 아니, 로리콤들에겐 사랑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그러는 너는! 그 쪽도 나랑 키 차이 별로 안 나잖아요!"

"전 가슴도 있고 곰돌이 팬티도 입지 않습니다."

"읏...!"

아니, 어째서 졌다는 듯 한 표정을 짓는건데?

"자, 이번엔 여성으로서의 쾌감에 대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까─악."

다시 한 번 고속비행을 시작하는 낭아.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희작은 슬슬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아니, '여성으로서의 콰감'이란 말 때문이기도 하려나. 자칫하면 수간물이 돼버릴 가능성도 있고.

하지만 그 상태로 낭아의 고속비행을 당해낼 수는 없다. 계속해서 고속으로 날아드는 낭아에 의해, 희작은 계속해서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계속해서, 뒷걸음질 뒷걸음질....

어, 뭔가 이상한데?

낭아는 희작을 공격하거나 희롱하기 보다는, 오히려 뒤로 밀어내려는 것 같다. 희작에게 깊게 파고드는 것보단 주위를 뱅뱅 맴도는 듯 한 움직임이 그러하다.

의아한 눈으로 한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기회라고.

즉, 그녀는 내가 기회를 엿보는 걸 알고. 내게 기회를 주려고 희작을 뒤로 밀어내는 것 같다.

희작이 계속해서 뒷걸음질 친다. 그럴수록 나와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8미터, 6미터, 4미터... 지금이다!

난 재빨리 방문을 열어제끼고, 희작에게 달려들었다.

희작과의 거리는 약 3미터 가량. 주파에 약 0.8초.

이 정도면 가능하다!

난 전속력으로 달렸다. 희작의 아리따운 엉덩이라인과 살랑이는 꼬리가 가까워지고.

난 목표물을 향해 뛰어들...었는데. 그런데...!

"어라?"

쿠당탕! 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예, 그렇습니다. 저, 바보같이 유리조각 밟고 자빠졌습니다. 젠장.

"이... 이건 뭐에요?!"

그리고 당연히 들려온, 희작의 황망한 고함소리.

자빠져서 아릿한 고개를 겨우 들어보니. 얼굴이 새빨개져서, 하지만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새빨개져서 날 노려보는 희작이 있었다.

"이것들이..., 이런 작당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이죠...?"

진심으로 화난 듯 목소리까지 누그러뜨렸다.

보통의 흥분은 빈틈이 많지만, 이런 종류의 흥분은 좀 위험하다. 이성은 사랑있으면서 꼭지까지 날아간 상태니까.

까치인 자신이 까마귀 따위에게 휘둘렸단 사실에 화가 난 듯 하다.

흥분 때문에 고갈됐던 체력가지 리셋되어 버린 듯 하고.

...어쩌지?

이전까지의 모습이 난장판이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다.

3대 지옥 중 하나라는, 아수라라는 투귀의 살육의 장. 아수라장.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이 아닐까.

"우왓!"

쿠콰콰쾅!

매섭게 날아오는 접시를, 난 간신히 굴러서 피했다. ...와, 효과음이 이미 파열음을 넘어서서 폭발음에 근접했어.

저런 걸 맞았다간 죽는다. 분명 죽는다. 두 번 죽는다!

하지만 생각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또다시 날아오는 수십 개의 접시들.

아직 던질 접시가 남아있긴 한 거냐?! 이미 수백 개는 깨트렸을 텐데 대체 어디서 난 거야?

거의 총알 같은 강선을 그리며 날아온다. 저런 거 피할 수 있을 리가...!

"와앗─"

콰과광!

"괜찮으십니까?"

"으, 응...."

난 간신히 대답했다. 휴, 한아가 그 순간 구해주지 않았다면, 몸에 구멍이 수십 개는 났겠지.

"뭐에요? 도망만 칠 거에요?"

욱신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우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희작이 또 접시를 손에 든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젠장, 저 놈의 접시는 잔탄 제한도 없는 거야?

"아까처럼 또 알량한 작전이나 세우고 깔짝거려 보라구요!"

외침과 함께 접시가 날아왔다.

대비하고 있었던 지라 이번엔 비교적 쉽게 피한 나와 한아는, 일단 거리를 벌리기 위해 물러나기로 했다.

상황이 안좋다.

우리 집의 넓이는 30평 남짓. 어디든 그녀의 사거리 안이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이미 언급했지만, 나나 한아, 낭아는 전투계열이 아니다. 그에 반해 저 희작 녀석은 상당한 무투파 계열인 듯 하다.

유일한 파훼법이었던 '꼬리 애무하기!'도 실패해 버렸고. 이미 들통나 버렸으니 쉽사리 빈틈을 내줄 것 같지도 않다.

이제 와선 희작을 붙잡는 건 커녕 우리가 역으로 당해버릴 수도 있는 처지다.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수 없군요."

또다시 날아온 접시를 피하면서, 작게 중얼거리는 한아. 조그마한 목소리지만 마침 옆에 있었기에 들을 수 잇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체념하는 듯 한 어조가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 한 가지 더 방책이 있다는 듯. 그런 희망 차고, 확신 가득한 목소리.

"혹시, 뭔가 방법이 더 있는 거야?"

혹시나 해서 기대 담긴 물음을 한 내게, 한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률이 낮아서 차선책으로 두고 있었습니다만, 방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낭아, 하며 주변을 날던 까마귀를 부른다.

그리고 잠시 뭐라뭐라 귓속말을 하더니.

"할 수 있겠습니까, 낭아?"

"까─악."

알았다는 듯이 한 번 길게 울어 주고, 어디론가로 날아가는 까마귀.

그 모습에 의아해서, 난 무슨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 쪽을 천천히 돌아보더니.

"까치의 약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하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

뭔가 더욱더 의아해 졌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지금 상황에서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기도 하고. 목숨이 초단위로 간당간당하다 보니 살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아의 목소리에, 짙은 자신감이 배여 있었으니까.

오전 7:25.

달린다. 있는 힘껏 달린다.

목표물은 전방 15미터.

난 그 목표물을 똑바로 주시하며, 힘차게 외친다.

"가슴가슴가슴가슴가슴가슴!"

...참고로 말하지만 난 절대 변태가 아니야 변태가 아니야.

단지 이건, 그러니까, 음....

그 순간 접시가 강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콰콰콰쾅! 하며 굉음을 내는 저 흉기급 식자재.... 이미 몇 번을 봤지만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다.

하지만 예상하고 있었기에 쉽게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목표물에 돌진하며─

"엉덩이엉덩이엉덩이엉덩이엉덩이엉덩이!"

"꺼지세요, 이 변태야!"

그녀의 앙칼진 외침.

아,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절대 내가 변태라서 이러는 게 아냐. 이건 단지 그 녀석의....

"우왓!"

콰광! 하고 또다시 울려퍼진 굉음.

간신히 옆으로 굴러보니, 방금 전까지 딛고 있었던 바닥이 움푹 파여 있었다. 이젠 건물까지 부술 작정이냐?!

그렇게 반박하려던 순간.

"이거나 먹으세요!"

라고 말하며, 접시를 풀스윙하듯 허리를 젖혀 던질 준비를 하는 희작.

이건 위험하다.

거리도 지나치게 가깝고, 무엇보다 아직 자세를 가다듬지 못했다. 다시 한 번 회피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한데....

"이렇게 던지면 되는 건가요?"

쨍그랑! 하고. 경쾌하게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쪽을 돌아보니, 한아가 접시 몇 개를 손에 들고 있었다.

"제대로 던졌나 보군요."

"아으.... 이것들이 정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한아와, 그런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는 희작.

즉, 이렇게 된 것이다.

희작이 내게 접시를 풀스윙으로 던지려는 순간, 한아가 희작에게 견제용으로 접시 하나를 던졌고. 그 접시는 정확하게 명중! 비록 한아의 팔 힘이 세지 않아 폭발음 수준까지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견제는 확실히 된 듯 하다.

거기다 지금 어그로도 한아에게 끌린 상태.

좋아, 지금이면 할 수 있다!

난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날카롭게 쏘아본 뒤. 또다시 맹렬하게 돌진하며.

"팬티팬티팬티팬티팬티팬티!"

...정말 재차 강조한다만, 내가 변태라서 이러는 게 절대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약 2분 전, 한아의 설명부터 되짚어 보도록 하자.

"까치의 약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약점이 어딘데?"

"왼쪽 다섯번째 손가락 손톱 아래입니다."

"......?"

어째서 그렇게 부위가 협소한 건데? 오히려 꼬리 쪽보다 난이도가 높아보입니다만?!

"하지만 거긴 꼬리와는 또 다른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점?"

"예. 바로 성감대냐 아니냐의 차이죠."

"......?"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감대라니? 그러고 보니 꼬리 쪽은 성감대란 말을 했었지. 그럼 방금 말한 그곳은 성감대가 아닌 평범한 약점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런게 대체 무슨 이점을 갖고 있다는 거야?

"달리 말하자면, 그 약점을 이용할 수 있는 자가 한정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뭐...?"

그렇게 말하니 더더욱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점점 더 의아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한아는 작게 한숨 쉬더니 입을 열었다.

"처음에 꼬리를 노릴 때, 왜 당신을 시켰는지 아십니까? 저나 낭아 쪽이 훨씬 빠를텐데 말이죠."

"글쎄...."

"바로 꼬리가 성감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봅시다. 만약 남자가 당신의 성감대를 애무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기분이 좋겠습니까?"

"......."

그, 그따위 것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 그랬다간 내 17년간 지켜온 동정이,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으아아악!

"예, 바로 그겁니다. 여자든 남자든, 동성이 성감대를 애무하면 혐오감만 생길 뿐이죠. 그렇기에 저나 낭아는 꼬리를 노릴 수 없었던 겁니다."

'한아'와 '낭아'라니.... 난 방금 어디론가 날아간 그 까마귀를 떠올렸다.

그 까마귀, 의외로 암컷이었어?!

"제 여동생입니다."

그것도 혈육?!

"뭐, 어쨌든 방금 언급한 그 부위는 다릅니다. 단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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