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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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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능력자가 머무는 그 어느 집단
글쓴이: 만월묘
작성일: 12-02-07 16:33 조회: 3,277 추천: 0 비추천: 0
0.
 [타겟, 좌표 29.111.323, 경로 D구역으로 도주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검은 리시버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훈은 손으로 누르고 주의 깊게 들어봐도, 아직은 당장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훈은 오늘 갓 이 부대에 입대했다. 오른쪽에는 『IMPARK』라는 이니셜을, 왼쪽에는 비녀 마크를 단 제복코트 몇몇이 길거리를 활보한다. 지훈의 양옆에서 달리고 있던 꼬맹이와 소녀만이 뭔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늦은 아침, 지훈과 대원들은 거리를 달려나가고 있었다. 주위는 이능력의 감지를 위해 설치한 센서들이 붉은 빛을 내뿜으며 사이렌을 울리고 있다. 지훈은 커다란 소음 때문에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참으면서 달린다. 그러나 미간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어서, 그만 그의 좋은 인상이 뭉개지고 말았다. 그걸 보면서 체리색 웨이브 머리를 흩날리는 옆의 선배, 은령은 피식 미소를 흘린다.
 "시끄럽지?"
 "아, 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으면 빠른 시간 내에 이 소음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은령은 후배를 생각해서 조언한 것이겠지만, 그렇게 쉽게 말해도 말이야 쉽다. 지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달린다. 앞에는 이 소동을 일으킨 범인으로 보이는 금발의 소녀가 도망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지훈의 부대원들이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지금 와서는 지훈은 오히려 범인이 도망친다기보다는 어디론가 유인해서 누군가에게 따돌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함정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갓 들어온 신참이 나설 자리는 아닌 듯해서 지훈은 입을 다물었다.
 옆을 힐끗 보니 성인 남성인 지훈에게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력을 내고 있는 꼬맹이가 보였다. 육안으로 아직 초등학생 밖에 안되는 외형의 꼬맹이는, 그 작은 몸집으로도 전혀 힘들다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꾸준히 발을 놀린다. 이렇게 가녀리게 보여도 그녀는 지훈이 속한 부의 부장이었다. 그래서 함부로 입을 놀릴 수는 없었다. 이 집단은 특수부대, 라고는 해도 거의 군과 똑같은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훈은 새삼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곳에 왔는지 느끼게 되었다.
 검은 말총머리의 부장은 혀를 차더니
 "아, 저거 진짜…. 도망치기만 하고. 안 덤벼오나?"
 "부장선배, 여기 시가인데…. 여기서 맞붙으면 민간피해가 클 거라고 생각됩니다."
 지훈이 무심코 솔직한 자기 감상을 내뱉는다. 다행스럽게, 부장은 콧방귀를 끼면서 넘겼다. 지훈이 부장을 부르는 호칭이 남다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예의를 담아 『부장』이라고 부른 지훈이었지만, 부장이 편하게 『선배』라 부르라며 거절했다. 그래서 그는 별 수 없이 절충한답시고 『부장선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지훈의 감상이 어지간히 맘에 들었던 모양인지 옆에서 은령이 맞장구를 쳐준다.
 "그래, 부장. 게다가 부장은 한번 싸우면 물불 안 가리잖아."
 "무… 뭐? 야, 그래서야 내가 마치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그냥 싸움에 발광한 년 같잖아…!"
 "그거지. 부장 간만에 맞는 말 했네."
 "야! 너, 막사에 가면 봐. 시말서 천장 쓰게 해주겠어!"
 "흥. 앞으로 부장이 내 뒤처리 없이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까짓 천장 얼마든지 써줄게."
 "이게 진짜?! 솜씨 좋게 지 상관을 협박하고 있네?!"
 "두분,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요…? 타겟이 모퉁이를 돌고 있어요!"
 부장과 은령 둘이서 옥신각신 하고 있자 이윽고 소녀가 길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다. 지훈과 일행도 질세라 속력을 내서 놓치지 않게 거리를 좁혀든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뛰어도 왠지 소녀와의 거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었다. 투명한 어떤 장벽이 그들 사이를 막고 있는 것처럼, 지훈 일행이 속력을 내도 소녀와의 거리는 좀체 좁혀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이 사실을 깨달은 부장은 어금니를 으득 깨물더니, 귀에 달린 검은 소형 리시버의 마이크를 내리면서 말한다.
 "백두옹부 부장 이세희, 타겟과 교전을 실시한다! 이상!"
 "네?! / 뭐?!"
 그리고 반대편에서 응답이 오기도 전에 리시버의 전원을 끈다. 그 우렁찬 외침에 당황한 건 지훈과 은령이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부장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걸 자각하고 말았다. 필시 이 상태에서 진전이 없다는 것에 화난 것이리라. 그렇지만 교전만큼은 절대 해선 안되는 일이다. 은령이 방금 말한대로 부장은 싸울 때 물불 안 가리고 덤비기 때문에 잘못하면 민간인이 다칠 수도 있다. 게다가 만일 하나 타겟이 무방비 상태로 부장의 공격을 맞는다고 해도 큰일이다.
 기본적으로 지훈의 집단은 아무리 위험한 타겟이라도 강공하는 걸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자신이 공격해도 될 때는 어디까지나 목숨에 위협을 받을 때, 즉 정당방위의 영역에 놓일 때에만 가능한 행위다. 이렇게 부장이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건 명백한 부대 내 규칙 위반이라는 걸, 지훈과 은령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순간적으로 말리려고 해도───그들의 부장은 실행력이 발군이었다.
 곧바로 전방을 향해 뻗은 부장의 검지손가락에서 환한 구(球) 형태의 발광체가 모인다. 형광빛을 내는 발광구는 삽시간에 오백원짜리 동전으로 크기를 불리더니 즉시 사출된다.
 피융-!
 하고 흡사 권총탄환이 쏘아진 바람소리가 울린다. 발광구는 소녀의 다리를 노리며 일직선으로 쏴졌지만 그 찰나에 소녀가 타이밍을 잰듯이 도약한다. 발광구는 타겟을 잃고 운동력이 떨어진 것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땅에 충돌한다. 흙먼지가 지훈 일행을 덮쳤지만 개의치 않고 추격을 계속 한다. 부장은 짜증난다는 티를 팍팍 내며 신경질을 냈다.
 "아, 진짜 저거! 완전 약삭빠르네!"
 "그러니까 부장, 하지 말라고… 야?!"
 저도 모르게 위험발언을 한 은령을 제쳐두고 부장은 한번 더 발광구를 발사한다. 그러나 이번엔 소녀는 왼쪽으로 살짝 움직여 발광구를 피한다. 무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서 피했다. 어딜 봐도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주는 소녀의 모습에, 지훈은 아무 말도 못하고 마른 침만 꿀꺽 삼킨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지훈 일행도 막지 못할 엄청나게 강한 이능력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전율이 등골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부장이 하는 짓을 말리지 못했다. 부장의 검지손가락에서 연속적으로 똑같은 사이즈의 발광체가 쏘아진다.
 콰강! 하고 굉음이 거리에 넓게 퍼진다.
 "부장선배, 그런 식으로 쏘면 타겟이 맞을지도 모른다구요!"
 지훈의 울먹이는 외침에 부장은 아웃 오브 안중이라는 뉘앙스를 가득 담아 말한다.
 "괜찮아! 힘 조절해서 쏘고 있어!"
 "결국 일단 맞추겠다는 소리잖아요!"
 거의 게틀링포 뺨치게 사출되는 발광구는, 그러나 타겟을 한번도 맞추지 못하고 땅에 처박혀 먼지구름만 일으킬 뿐이었다. 부장이 제대로 조준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다혈질에다 매우 어려 보이긴 해도─실제로도 어리지만─, 사격 실력은 부대 내에서 손 꼽을 정도로 우수하다고 한다. 웬만한 스코프가 없어도 육안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니, 다방면으로 봤을 때 초인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부장 앞에서 타겟은 수를 읽고 있다는 듯이 요리조리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
 "부장선배. 타겟이 너무 빠른데요…?"
 저쯤 되고나면 이제 신기 수준이라고, 지훈은 남몰래 감탄한다. 하지만 부장은 뭐가 맘에 들지 않는지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는 남들이 듣기에도 한번에 이가 부서질 것만 같은 부드득 소리를 낸다. 지훈은 직감했다. 여기서 잘못 건드렸다간 앞으로 부대 내의 생활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란 걸. 12세의 소녀 부장은 침을 땅에 뱉고는 조금도 속력을 줄이지 않고 계속 달린다.
 "저 녀석, 완전히 우리 수를 읽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내 공격이 가기 직전에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부장이 푸념을 늘어놓자 거기에 은령이 무언가 생각나 눈을 반짝거린다.
 "어? 부장 공격이 오기 전에 미리 알아챌 정도면…. 그럼 『마력감지자(Mana Chaser)』인가? 기본적으로 『신비형』은 마력이 있어야 하니까. 부장 이능력도 신비형이지?"
 "아니. 감지하는 계열은 아닐 거야. 애초에, 그냥 감지 계열의 이능력자였으면 센서가 울릴 리도 없잖아. 그렇다면 녀석은───"
 "───『화염력자(Pyrokinesiser)』 쪽이겠네요?"
 끼어들기 힘든 베테랑들의 대화 속에 겨우 자리를 차지한 지훈은 속 시원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건 좋지 못한 짓이었다. 부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지훈을 주시한다. 지훈이 쓸데없이 아는 척해서 기분이 상한 부장이었다.
 "신입, 해박한 건 좋은데 멋대로 끼어들지 마라. 뒤진다. 총알이 좋지 않은 곳에 맞을 수도 있어."
 사형선고였다.
 "옙."
 꼬리를 만 개처럼 바로 목소리가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지훈이었다. 자신이 조금 여성스럽다는 말을 주위에서 조금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자신의 성 정체성과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어째 지훈은 부대를 잘못 지원했다고 후회했지만, 이제 와서 다 부질없는 짓이란 건 알고 있었다. 어딘가 처진 기세의 지훈과는 다르게 한발한발 힘껏 내딛는 부장은 다시 귀에 손을 댄다. 리시버의 동그란 버튼을 눌러 전원을 키고는 전파 상태를 확인한다. 아직 양호했다. 좋아, 부장은 마음을 잡고 막사에서 리시버를 통해 들려오는 정보를 다시 재분석한다.
 "좌표 29.111.323, D구역 그대로. 아직 틀에는 벗어나려 하진 않네. 그나마 다행인 건가."
 지훈은 콘크리트가 파인 길거리를 돌아보고는 전혀 다행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꺼내면 막사 안에서 무슨 짓을 당하게 될지 두려웠기 때문에 입을 꾹 다물기로 했다. 자고로 서당 개 3년이면 글을 읽는다고. 지훈은 입대한지 3시간 만에 부대 내의 암묵적인 룰을 이해해 버린 것이다. 슬슬 지훈의 숨이 차오르려고 할 때 부장이 그를 불렀다.
 "네?"
 "신입, 너는 이제부터 여길 이탈해 좌표 29.111.320을 통한 C구역으로 이동한다!"
 그 말은 가히 그에게 가혹했다. 지훈은 약 3시간 전에 막 들어온 신참 중에 신참, 말하자면 이 일에 걸음마도 떼지 못한 갓난아기와 마찬가지인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이 상관은 지금 자신에게 뭐라고 하는지 지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좌표나 각 구역을 외우기도 전에 출동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설령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해도, 평범한 일반시민일 적의 얘기일 테니 부대 내의 기밀유출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것도 문제다.
 지훈은 약간 당황하며 답한다.
 "근데 부장선배, 전 아직 좌표나 경로도 배우지 못하고 바로───"
 "타겟의 반격이다! 수그려!"
 "으악?!"
 부장의 외침에 딱 알맞게, 바로 지훈 앞에서 불기둥이 날아온다. 고출력 화염방사기와 맞먹는 화염줄기. 그것을, 지훈은 아무런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 막아냈다. 아니, 정확하게는 튕겨냈다. 한번 맞으면 재도 안 남고 홀라당 태워버릴 섭씨 1000℃ 가량의 불기둥은 지훈의 코 끝에 닿일만한 거리에서 순식간에 제멋대로 하늘로 치솟아 올랐던 것이다. 불의의 습격에 당황한 지훈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지훈이 그러던지 말던지, 은령과 부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타겟을 뒤쫓는다. 신입이 낙오되는 것보다 목표물을 우선시하는 것이 과연 프로답다. 지훈이 가만히 주저앉아 입만 뻐끔뻐끔 거리고 있자 그의 리시버에서 부장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알았지, 신입? 29.111.320, C구역이다! 들었으면 냉큼 일어나서 뛰어!]
 "자… 잠시만요, 부장선배! 근데 왜 다같이 안 가고 저만 따로 행동하라는 건가요?"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가라면 가라지, 왜 이리 말이 많아!]
 부장의 호통소리 뿐이었다. 리시버가 쩌렁쩌렁 울린다. 만일 리시버에 자동음향조절 기능이 없었다면 지금쯤 지훈은 오른쪽 귀를 영영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훈은 허둥지둥 짧게 대답하고는 일어서서 먼지를 턴다. 처음 입은 제복코트에 얼룩을 놔둘 수는 없었다. 그의 제복코트는 자신의 긍지와 열정,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 자체다. 자신이 내세운 의지를 여기에서 굽힐 수는 없었다.
 지훈은 재빨리 먼지를 털어내고는 다시 다리를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순간, 그는 입대하기 전에 미리 체력단련을 해두길 잘했다고 절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좌표 29.111.320, C구역.'
 지훈은 부장이 한 말을 되뇌인다. 아직 좌표와 구역을 잘 모르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훈이 리시버 끝에 달려있는 버튼을 눌렀다. 리시버를 통해 또 다른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막사에서 타겟의 움직임을 수시로 체크하고 있는 부부장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지훈은 모퉁이를 돌며 용건만 간단하게 말한다.
 "부부장님. 좌표 29.111.320, C구역이 어딘가요?"
 그러자 리시버에서 희미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대답이 돌아온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작았기 때문에, 지훈은 자동음향조절 기능에 매우 감사함을 느꼈다. 역시 문명은 발달하고 봐야한다.
 [시가지네. 원정사거리로 가.]
 "감사합니다."
 지훈은 짧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연결을 끊는다. 원정사거리. 원정대학교 주변에 있는 대학로다. 지훈은 누군가가 떠오르려고 했지만 지금 와서는 일 때문에 집중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생각을 접어두고 지훈은 찬찬히 자신이 있는 곳과 원정사거리의 위치를 계산한다. 그가 현재 위치해 있는 곳은 대략 원정사거리로 향하는 길목, 아마 북쪽 방향일 터다. 다행스럽게 거리도 멀지 않고 이 속도라면 2~3분 이내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다음은 시민의 안전에 대한 고려. 대학로기 때문에 온갖 상점들과 오락실 따위의 편의와 향락을 위한 시설이 즐비하다. 현재 방학인 점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이 많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늦은 아침이라는 시간대를 고려한다면, 점심이 곧 다가올 테니 식사를 위한 사람들이 늘 수도 있다.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인 셈이기 때문에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다. 지훈은 손톱을 깨물며 꾸준히 달린다. 눈 앞에는 바로 큰 거리의 상징인 상점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그때그때 보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건가.'
 세종시민들은 항시 사이렌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그곳이 학교든지 직장이든지 관계없이, 한 달에 한번씩 시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사이렌이 울리면 우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스스로 경계 태세에 들어가며,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던 사람들은 재빨리 가까운 건물에 들어가 숨기로 되어있다. 그리고 모든 가게와 집들은 문단속을 굳건히 하고 가만히 사이렌이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 이것은 법적 제재도 가하기 때문에 따르지 않을 시에는 자동적으로 반동분자라 억측하고 경찰에게 끌려가 버린다.
 그러나 지금은 실제 상황이다. 일단 교육대로 따라주겠지만, 이 틈을 타 소란을 일으키려는 어리석은 분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훈은 제발 그런 곤란한 일만 일어나질 않기를 마음 속으로 빌며, 다시 한번 모퉁이를 돈다. 그가 있는 곳은 원정사거리 북쪽 방향. 천만다행스럽게도,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아침부터 울리는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요란한 붉은 빛 때문에 지레 겁먹고 인근의 건물에 처박혀 있는 것이리라. 지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어느 건물 뒤에 숨는다.
 "아직 아무도 안 온 건가."
 아무래도 사거리에 먼저 도착한 건 지훈 혼자 뿐인 듯했다. 지훈은 잠깐 어이가 없어졌다. 분명 지훈이 속한 부는 『돌격부대』라고 불리는 진달래부의 지원요청을 받고 출동했다. 그런데 정작 지원요청한 사람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현황이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누군가가 근처에 있다면 하다못해 발소리라도 들릴 텐데 그런 비슷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일단 그 인간들은 나중으로 미룬다고 해도, 부장 일행이 늦다. 그녀가 오고 있다는 신호를 사이렌이 지우고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의 부장을 잘 알고 있다. 필시 지훈과 떨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타겟에게 공격을 가했을 것이다. 부장선배, 시말서는 피할 수 없겠지- 하고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는 지훈은 이윽고───리시버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포착한다.
 [신입! 들려?]
 부장이었다.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한 그 목소리가, 지훈에겐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켜 되려 경직되게 대답하게 만든다.
 "네, 네! 지금 북쪽 방향의 길 모퉁이에서 잠복하고 있는데요…!"
 그러자 부장은 경쾌하게
 [좋아. 우리가 지금 그쪽으로 유인하고 있어. 내가 말하면 바로 타겟에게 달려들어. 알겠지?"
 "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는 부장 쪽에서 일방적으로 끊었다. 그의 고막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남겨질 뿐이었다. 맙소사. 하필이면 내가 중요한 때에 이런 역할을 맡게 되다니. 지훈은 아연실색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분명히 부장은 그의 이능력을 너무 믿고 있는 것이리라. 어쨌든 일단 부장의 말이다. 겨우 신참 주제에 반론할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벽에 딱 붙는다. 심장고동이 빨라진다. 긴장감 때문에 손에서 진땀이 난다. 마른 침이 삼켜진다. 젠장, 지훈은 나지막히 독백을 뱉으며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에 집중한다. 아스팔트 보도 꺼지는 소리가 달팽이관을 직접 때리는 착각이 들면서 지훈은 심호흡을 한다. 조금 진정이 된 기분이 들었다.
 쿠광! 쾅!
 가까이서 폭발음이 난다. 지훈은 안 봐도 한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방금 전의 부장이 쐈던 발광구와 똑같은 소리다. 그대로 벽에 밀착하고는 고개만 살짝 내밀어 전방을 확인한다. 그의 시야에는 과연 추격하고 있는 말총머리의 부장과, 타겟이 되어버린 긴 금발의 소녀가 쫓기는 모습이 들어왔다.
 '정면에서 보니까… 왠지 좀 불쌍한데.'
 지훈은 소녀를 찬찬히 살피며 생각한다. 조금 전에도 봤지만 정면에서 보니까 그 실루엣이 뚜렷하게 보인다. 거의 몸집이 부장과 비슷한 소녀는 그 나이에 맞지 않는 무표정으로 부장의 공격을 피하면서 지훈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에 비해, 침착한 타겟과는 다르게 부장은 많이 뛰어서 그런지 얼굴이 꽤 많이 달아올라 있었다. 이쯤 되면 서로의 위치만 바꾸면 차라리 부장이 타겟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어라…? 근데 은령 선배는?"
 그러고 보니, 부장과 함께 추격하고 있던 은령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은령도 낙오된 건가, 라고 생각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언제나 부장의 뒤치닥거리를 도맡는다는 은령이 부장도 안 하는 실수를 범할 리가 없다. 지훈이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쯤───완벽하게 해답을 제시해줄 상황이 연출되었다.
 "기습조, 공격개시!"
 거의 사거리의 중심으로 온 부장이 외치자 양쪽에서 대원이 달려들었다. 오른쪽은 한가득 허공에서 물방울을 뭉치고 있던 은령, 왼쪽은 『쿠란(紅瀾)』이라고 불렸던 긴 고동색 머리가 인상적인 장신의 아가씨였다. 그랬다. 기습, 이라는 명분 하에 은령은 부장이 지시한 곳에 먼저 도착해 『수류력(Aquakinesis)』을 이용하여 수분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쿠란이라는 여성은, 애초부터 거의 단독행동으로 나섰기 때문에 지금 와서는 어떻게 연락이 됐는지 짐작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이 상황으로 봤을 때 지훈은 한가지 해답을 얻기에 충분했다.
 '타겟을 일부러 유인하고 있었구나…!'
 지훈은 이때까지 부장이 쓸데없이 날뛰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타겟의 도주로를 미리 이쪽에서 조작하려던 전략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좌표나 구역 등을 일부러 큰소리로 말한 것도 전략 중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면서 감탄마저 생긴다. 괜히 부장이 부장은 아니구나, 지훈은 짧게 경외의 말을 지어낸다.
 슈아아아아아아-!
 은령이 여태까지 수분을 모아 만든 커다란 물방울을 날린다. 커다란 물방울은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속도로 타겟에게 달려든다. 실상 물에는 수압 때문에 인간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은령이 만들어낸 것은 오직 사람을 가두기 위한 일종의 임시 감옥 비슷하다. 물론 오래 가둬두면 저체온으로 인한 심장마비나 익사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있지만, 부장은 당초부터 그녀를 잡는 것에만 주력하기로 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는 부장의 뜻이 가득 담긴 작전이었다.
 몇 초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서, 이대로 물방울이 타겟을 잡나 싶어 부대 전원이 움찔했지만───역시 상대도 호락호락 당해주진 않았다. 소녀는 잠시 멈추더니 땅을 짚는다. 그러더니 등산용 로프 굵기의 화염기둥이 솟아오른다. 화염기둥은 바로 옆에서 날아오는 물방울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반으로 가르더니 사그라든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원래는 은령의 물방울 한방으로 잡을 타겟이지만, 만약을 위해 들어놓은 보험과도 같은 쿠란의 시야를 가려버린 것이다. 쿠란은 타겟이 움직임을 멈춤과 동시에 허리춤의 기다란 일본도를 꺼내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물론 생각만 했을 뿐으로, 실상은 자루를 반대로 잡아 칼등으로 기절시킬 터였다. 그런데 예상 외로 물방울이 고출력의 화염기둥에 가로막히는 덕분에, 물방울은 삽시간에 수증기로 기화되어 쿠란에게 피해를 끼쳐버린 것이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쿠란이 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타겟은 이미 자리를 이탈하여 직진으로 달리고 있었다. 최후방어선인 신참이 드디어 벽에서 나와 타겟의 앞길에 서서 버틴다.
 "신입, 지금이야!"
 부장의 외침에 부응하겠다는 듯이 지훈이 오른손을 내밀고 막아선다. 그의 이능력은 『절대반사(Turning Point)』로서, 모든 이능력이나 물리적인 타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튕겨낼 수 있다. 지금 타겟이 정신없는 때에 그가 최후방어선으로 선택된 이유는,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그의 이능력 덕분인 게 당연했다. 부장은 그녀가 멋모르고 지훈에게 뛰어들면 반대로 튕겨내서, 그 반동으로 균형을 잃어 넘어진 소녀를 체포할 작정이었다. 그 계획이 이제 한발 앞으로 다가왔다.
 소녀가 달려온다. 심호흡 때문에 진정되었던 지훈의 심장박동 수가 다시 늘어난다. 호흡이 불안정해진다. 그러나, 자신이 막아내야 했다. 여기서 놓쳐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예감과 함께 지훈도 기합을 넣으며 소녀에게 달려든다.
 "우오오오오오옷!"
 그러나 타겟인 소녀는 전혀 미동도 보이지 않은 채, 다만 달리는 속력을 줄이지 않고 손을 허공에다 휘둘러 화염줄기를 발사한다. 고출력의 화염기둥이 날아오자 지훈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멈추고는 오른손을 내밀어 화염기둥을 위로 밀쳐낸다. 또 다시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기둥은 저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녀는 도움닫기를 하듯이 마구 달리더니 이내 도약해서는….
 콰직!
 "끄헉?!"
 지훈이 꼴나사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져 버린다. 소녀는 지훈의 머리를 발판 삼아 밟고는 증가한 운동력으로 더 멀리 날아가 착지한다. 그 상태로 자신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소녀는 앞길을 나아갔다. 하아, 지훈이 허탈하게 한숨을 쉬었다.
 "뭐하는 거야, 이 멍청이가!"
 부장이 짐짓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고함치더니 타겟을 다시 뒤쫓는다. 옆에서 따르던 은령과 쿠란만이 초라한 눈빛을 건네고는 사라질 뿐이었다.
 올려다 본 하늘은 이런 소동과는 관계없다는 듯이 파랬다. 파랗고 파래서, 지훈의 우울한 마음마저 감싸줄 것만 같았다. 지훈은 뒤쫓을까 고민하다가 이윽고 포기하며 대자로 길거리에 뻗는다. 떠다니는 구름만이 지훈의 심정을 대변해주겠다는 듯이 빠르게 흘러갔다. 지훈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왜 이리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야!!!"
 방년 21세, 2012년의 이른 겨울. 예지훈의 범상치 않은 생활은 우연찮은 해프닝으로 시작을 알렸다.


1.
 "후우…."
 공활한 푸른 하늘 아래. 거대한 빌딩을 앞에 두고 지훈은 심호흡을 한다. 왠지 모르게 손에 땀이 나는 듯해서 옷에 슥슥 닦아 보기도 한다. 옷매무새는 정돈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머리를 묶은 끈은 안 풀리게 단단한지 점검하고, 잊어버리고 온 물건은 없나 체크한다. 이상 없음을 재확인하자 어느새 그는 빌딩 문 앞에 서 있었다. 유리로 되어있어 안쪽이 다 비쳐 보이는 걸 막기 위해서인지, 문 전체에는 큼지막하게『IMPARK 본대』라고 적혀있다. 왠지 색 테이프로 붙인 듯한 그 모습이 어쩐지 조잡하게 보였다.
 "IMPARK라…."
 International and Multipurpose Psychic Army of Republic of Korea. 쉽게 말하자면 한국국제이능력특수부대. 이능력자만 거주할 수 있는 이『세종시』에서, 온갖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막기 위해 조작된 부대. 그는 혹시나 싶어서 외워둔 것을 상기하고는 코트 품에서 카드를 꺼낸다. 카드에는 지훈의 앳된 얼굴과 일반인이 알아보기 힘든 정체불명의 코드 따위가 새겨져 있었다.
 그의 옆에선 고층 아파트에서 쓰일 법한 인식기가 [카드를 대주십시오.] 라고 정중히 말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여기선 모로 보나 흔하디 흔한 방범장치일 뿐이지만. 지훈은 익숙하게 카드를 인식기 패드에다 대고는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열리는 자동문을 나서서 빌딩 안으로 발을 내디딘다.
안은 특수부대라고 말하면 우스울 정도로 다른 곳과 차이점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특수부대』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굳이 비유하자면───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민원실 같았다. 여기저기 서류들과 싸움하는 모습이며, 친절한 목소리로 상담하는 것하며, 익숙한 모습이 천지였다. 지훈은 평범한 비주얼에 10초 동안 멍- 해져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중앙의 안내데스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저기."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친절한 미소로 지훈을 맞아주던 안내원 아가씨가 잠시간 그의 복장을 보며 어리둥절한 모습을 짓다가 원상태로 돌아온다. 물론 지훈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지훈은 짧게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입고 있는 코트는 IMPARK 부대원들만 입는다고 하는 남청색의 제복코트였으니까. 지훈은 천천히 미소를 띄며 묻는다.
 "『무궁화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러자 안내원 아가씨는 남들이 다 알아볼 정도로 깜짝 놀란다. 그 모습을 본 지훈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목소리가 주변에 메아리 치는 착각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본다. 다행스럽게, 어느 하나 자신 일에 바빠서 이쪽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지훈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안내원 아가씨를 바라본다. 아가씨는 이번 일이 처음인 것처럼 허둥대더니 수화기를 잡고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용하게 속삭이듯이 말하는지라 지훈은 주변의 소음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안내원 아가씨는 몇 초 동안 짧게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윽고 다시 영업용 스마일 페이스로 돌아온다. 참 전환이 빠른 사람이네, 지훈은 생각했다.
 "이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고갱님.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고… 고객님?'
 지훈은 고객님은 상점 같은 곳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쓰는 말 아닌가, 라며 속으로 사소한 딴죽을 걸고는 안내원 아가씨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엘리베이터는 누가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커다랬다. 지훈은 그제서야 특수부대, 라는 압도적인 스케일에 긴장하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버튼을 누른다.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리자 지훈은 천천히 발걸음을 재고는 그 속으로 뛰어든다.
3층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가는 걸 느끼며 그는 주위를 둘러본다. 30명이 들어와도 넉넉할 공간에 자신 혼자만 있자니 그 공허함이 지훈을 때린다. 지훈은 전신에 흐르는 긴장감에 지지 않으려 위를 쳐다본다. 거기엔 최대인원허가수가 적혀 있었다. 56명. 아무리 봐도 웬만한 대형 백화점의 스케일과 맞먹는다. 지훈은 오히려 더 위축되어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설마, 충격요법 주려고 일부러 이렇게 설계한 건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쓸데없는 피해망상에 빠진 지훈이었다.
 왠지 모르게 지훈이 광장공포증에 빠지려고 할 때였다. 귀에 익은 벨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지훈은 도망치듯이 엘리베이터라는 짐승의 주둥이 안을 빠져나온다.
 지훈이 작게 한숨을 쉬며 앞을 바라보자 있는 것은, 웬 인식기들 투성이였다. 꼭 검문소를 연상시키는 좁은 공간에, 인식기까지 놓여 있으니 그야말로 자신이 비밀요원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요원이라면 철저하게 자신의 임무를 실수 없이 해내는 것이 도리. 그리고 지훈의 첫 임무는『무궁화부에 도달』하는 것. 지훈은 아직도 긴장으로 굳어 있는 몸을 애써 움직여 인식기 앞에 선다.
 예전에 추천서를 내면서 한번 사용해봤지만, 이곳의 인식기는 희한한 시스템 체계를 사용하는 듯했다. 그의 앞에 놓여있는 건 지문 인식기와, 안구 인식기, 음성 인식기의 삼종 세트. 하지만 하나하나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인식기들을 통해 총 데이터를 합산하여 인증 결과를 뽑아낸다고 한다. 그야말로 철저한 보안에 감탄하면서 지훈은 안내방송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한다.
 [오른손을 대주십시오.]
 지훈이 지시대로 오른손을 지문 인식기에 대자 인식기가 스캐너와 비슷한 한 줄기 섬광을 내뿜으며 위아래로 훑었다. 자신의 손에 묻은 땀 때문에 오작동이 일어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지훈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인식기는 고장 하나 안 나고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메세지를 읊고 있었다.
 다음은 안구 인식기. 지훈은 큼지막한 구슬을 연상시키는 렌즈에 오른눈을 댄다. 그러자 붉은 선들이 나오면서 지훈의 눈을 위아래로 훑었다. 인식기의 안내음에 따르자면 안구의 홍채나 망막, 시신경 세포 등의 자료가 인식기 내에 저장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라고 한다. 붉은 선들은 몇 초간 지훈의 눈을 훑더니 인증이 완료되었다는 안내음과 함께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음성 인식기. 짧게 목소리를 내어 발성기의 울림 및 입과 코에서 방사 되는 음원의 전파 유형을 검토하여 인식한다고 한다. 지훈은 어김없이 지시에 따라 짧게 아-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러자 음성 인식기의 화면에 OK라는 문구가 떴다.
 '이상하게 제일 복잡해 보이는 인식기인데, 유난히 빠른 거 같단 말이야.'
 실제로 그런지 알 수 없는 지훈은 그저 고개만 갸우뚱 거리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본래 같으면 열려야 할 문이, 아직도 굳게 닫혀 있는 현실을 보고 지훈은 슬슬 다시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설마 이 상황에서 오작동을 일으켰다고는 하지 않겠지, 지훈이 일말의 불안과 함께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의 예상을 깨트리듯이 다행스럽게 기기들은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다만 불행스러운 것은───
 위이이이이이잉-!
 "뭐, 뭐야?!"
 문에 달려 있던 사이렌이 붉은 빛을 발하며 공간 전체를 메웠다. 인식기에선 전부 [CAUTION : 침입자가 확인되었습니다.] 라는 붉은 경고 메세지만 띄우고 있었다. 지훈은 당황해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막 누른다. 우선 이곳을 벗어나 어떻게든 상활 설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 지훈이었지만, 그건 어느새 저지 되고 말았다.
 덥석.
 누군가가 자신의 양팔을 잡는 느낌이 들어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그곳에는 반달가슴곰과 맞먹는 무시무시한 덩치의 사내들이 있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이곳에 근무하는 수위 같았다. 지훈은 내심 안도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왜 수위들이 날 붙잡고 있는 것이냐. 설명을 해야 하는데 모든 질문에 응하지 않겠다는 저 험악한 얼굴은 무엇이냐. 그리고 그의 의문점은 간단히 해결되었다. 오른쪽에서 지훈을 잡고 있던 수위가 모자를 한번 고쳐 쓰더니
 "이봐, 형씨.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온 건가?"
 "에, 저기 그러니까…."
 "얼버무리지 말고 당장 대답하는 거야, 형씨."
 아니, 그 전에 사람 말을 들어주실 거면 그 얼굴 좀 치우고 말씀해 주시던가요! 지훈은 소리 지를 뻔한 자신의 속내를 꾹꾹 눌러 담았다. 솔직히 그들이 수위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그 누구라도 조폭이나 마피아 같은 거대 갱 집단에 어울릴 법한 외모들이었다. 거기다 한국인 치고는 조금 거무접접한 피부가 마이너스 효과를 더 부추겼다. 지훈은 가까스로 차분히 마음을 먹고 설명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왼쪽의 수위 형님이 불쑥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면서 협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빨리 불지 않으면 홍콩행 급속열차를 태워버리겠어."
 그들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지훈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훈은 그것만으로도 두려움의 농도가 한껏 짙어져서 무심코 마음의 소리를 내뱉는다.
 "싫은데요!"
 자고로 입은 모든 화의 근원이라. 지훈은 오늘 그 속담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되었다. 수위 형님들은 지훈의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연행하자."
 "아니, 잠깐… 아저씨들! 아니, 그러니까 형님들! 제 말은 그게 아니라요…! 아, 그전에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 그러니까…. 설명할 테니까 끌고 가지 말아주세요오오오오오오오!!!"
 죄인에겐 말이 아깝다는 듯이 수위 형님들은 지훈의 양팔을 낀 그대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질질 끌고 간다.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연행의 현장이 자신에게 닥쳐온 것을 실감한 지훈은 결국 담아뒀던 말을 모조리 뱉어내고야 말았다.
 "안돼! 나 아직 제대로 여자하고 사겨 보지도 못했다고…! 아무리 내가 동정이라지만, 이런 곳에서 순결을 잃긴 싫어어어어어어어어!!!"
 그의 뜻을 알 수 없는 외침만이 3층 전체에 가득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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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아,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저희 부부장님이 데이터 저장을 깜박하신 것 같더라구요~ 워낙 백치미가 매력인 분이신지라."
 유쾌하다는 듯이 활짝 핀 얼굴로 남자는 말한다. 걱정 말고 편한 마음으로 오라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지훈이 짧게 한숨을 쉰다. 지훈은 가까스로 이 남자에게서 구원 받을 수 있었다. 1층 수위실에서 꼼짝없이 밧줄로 묶여 있던─이때의 지훈은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구세주를 바라고 있었다─찰나에 이 남자가 대장의 명을 받아 왔다면서 지훈을 구출한 것이다. 여담으로, 부부장이란 작자는 3층에서 울리는 지훈의 목소리를 듣자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백치를 뛰어넘어서 아둔한 거 아니냐고 지훈은 작게 탄식했다.
 자신을『무궁화부의 얼굴마담』이라고 소개한 청년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산뜻한 발걸음으로 지훈과 함께 인식기들로 둘러싸인 3층의 대문을 넘어선다. 얼굴마담은 연신 내내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야~ 그건 그렇고, 아주 재밌었습니다. 비명소리요. 아니, 어떻게 상상이 비약하면 그런 엄청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건지. 아주 오래간만에 부대원들과 한창 웃었습니다. 이거, 이번엔 아주 유쾌한 신입이 들어왔네요~"
 "하하…."
 지훈은 사람의 첫인상을 대체로 네 분류로 나눈다. 예의가 바르며 어딜 봐도 품행방정해 보이는 사람, 소위 일진으로 보이는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기본적으로는 선인이나 성격이 어딘가 뒤틀린 사람. 요컨대 얼굴마담은 네 번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친절하면서도 어딘가 꼬여서 아무렇지 않게 남 앞에서 독설을 쏘는 사람. 장가는 이제 다 갔네, 지훈은 남몰래 통곡을 하며 얼굴마담을 따른다. 그의 햇빛을 떠올리게 만드는 환한 미소와는 대조적으로 지훈의 얼굴에는 잿빛 구름만 껴 있었다.
 대문을 넘어서자 그곳에 있는 건 텅빈 공간이었다. 정확하게는, 일차선 도로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넓은 복도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 너머에 큼지막한 나무결의 대문이 하나 더 있었다. 대문에는 다른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고 오직 널찍한 무궁화 마크만이 그곳이 어떤 곳인지 대변하고 있었다.
 무궁화부. 모든 이능력에 관한 범죄와 예방을 책임지고, 소문으로는 저 멀리 해외에 긴급파견까지 간다는 한반도의 정예들. 이른바 대이능력자 특수부대(對異能力者 特殊部隊)라 불리우는 집단의 본부. 그곳이 지훈의 눈 앞에 놓여 있었다.
 지훈은 다시금 대문의 웅장함이나 복도에 남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침을 삼킨다.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듯하다. 이대로라면 정수기에 쓰이는 20L짜리 생수통을 혼자 다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바로 대문 앞에 도착한 얼굴마담과 지훈은 가만히 서 있었다. 얼굴마담이 신참을 위한 배려인지 어서 열어 보라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지훈을 기다린다. 지훈이 마지못해 긴장감으로 경련을 일으키려는 손을 문고리에 올려놓을 참이었다. 문 너머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일방적으로 어느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상황인 것 같다. 그 소란은 지훈이나 얼굴마담이 꼭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다 들릴 만큼이었다.
 '방음 처리는 해놓은 거야, 여기…? 혹시나 누가 쳐들어와서 기밀정보라도 도청해 가면 어쩌려고 지금….'
 슬슬 그는 이 부대의 보안성이 철저한 건지, 느슨한 건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문 너머에서는 여전히 야단법석이다.
 「아. 왜 때리는 건가.」
 「찰지시네요.」
 「이건 뭔가 잘못됐어. 제군들, 난 여길 빠져나간다…!」
 「그렇게는 안됩니다!」
 「큭?! 나에게 뭘 꽂은 건가, 비서!」
 「여러분, 쫓아가세요! 책받침을 맞았으니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겁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특수부대가 아니라, 특수병원이 아닐까. 지훈은 생각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한 직감을 받은 지훈은 그 즉시 손을 떼고 뒷걸음질 치려 했다. 그 찰나에, 갑자기 문고리가 들썩이는 것이 아닌가. 지훈이 흠칫 놀랄 시간도 주지 않고 문은 벌컥 열리면서 그의 복부와 얼굴을 전면강타 했다.
 쾅!
 "책받침 때문에… 힘이, 빠진다…."
 엉덩이에 각이 진 책받침을 맞은 남자가 쓰러진다. 물론 문고리를 복부에 맞아 열린 문짝 뒤에 가려진 지훈은 보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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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무실의 전경이다. 인테리어 자체가 친환경 컨셉인지 여기저기 고동색으로 칠해진 벽이며, 나무결의 바닥이 인상적인 곳이다. 여차하면 고등학교의 교무실로 보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대원들 하나하나가 제복코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은 일제히 유야무야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훈은 아직도 쓰라린 콧등을 비비며 정면을 마주 본다. 앞에는 장발의 남성이 2M쯤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어쩐지 앳된 모습에 중후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기묘한 사내다. 옆에는 방금 전 사투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보이는 비서풍의 여성이 책받침을 들고는 태연하게 서 있다. 남성의 책상에는 역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명패가 놓여 있었다. 무궁화부 부장 및『대장』신선도. 이 특수부대를 책임지고 있는 우두머리이자 무궁화부의 부장이었다. 그래서 지훈은 묻는다.
 "저어, 대장님."
 "음? 무슨 일이지?"
 대장이라 불린 선도는 아무 표정 없이 신참의 말에 반응한다. 실로 자신을 30대 늙은이라고 소개한 것과는 다르게, 그 자신의 머릿결에나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다. 지훈 따위는 감히 상대가 안될 정도로 얼핏 보면 여자라고 느껴질 만큼 가녀려 보인다. 후루룩. 뭔가 묘한 소리가 분위기 파악 못하듯이 무궁화부 안에서 울린다. 지훈이 잠시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연다.
 "…왜 콜라에 밥을 말아 드시는 겁니까?"
 업무 때문에 불가결로 일찍 점심을 먹어야 하는 대장이었다. 그래서인지 현재는 그 많던 서류들을 어디로 치웠는지 온데간데 종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밥공기와 소소한 반찬들만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비서라고 불린『부부장』의 말을 인용하자면 식당에 가기보다는 이쪽이 효율적이라고 해서 채택한 방식이라 한다.
 물론 지훈은 그걸 이해할 수 있다. 자신도 학교에 있을 때, 숙제가 엄청 밀리거나 하면 밥 먹으면서 해치우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그런 문제를 아득히 뛰어넘어 상식 영역의 밖이었다. 콜라에 밥을 말아 먹는다. 이건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이다. 고상한 분위기와 합쳐진 그의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지훈이 보기로는 대장은 그다지 단 걸 좋아하진 않아 보였다. 실제로 대장도 한 숟갈씩 먹을 때마다 눈을 찌푸리는 눈치였다. 어떤 특수한 사정이 있는 듯해 보였다.
 선도는 말없이 누구나 다 들릴 정도로 꿀꺽 하고 입 안의 내용물을 삼킨다. 커다란 창문을 등 지고 있어서 그런지 방금 전에 비해 선도가 커 보인다. 따뜻한 햇살이 선도의 장발을 비추고 있다. 여전히 무표정인 그의 시선을 받은 것만으로도 지훈은 압도되어 질식해버릴 것만 같았지만, 정작 그의 어조는 꽤나 느긋했다. 겉으로는 강압적으로 보여도 속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 아닐까, 지훈은 생각했다.
 "아아. 이거 말인가. 조금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게 됐네. 약간만 설명하자면 내 이능력이 이능력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규칙적으로 콜라 따위의 탄산음료로 녹여야 하네만."
 '코… 콜라로 녹일 수 있는 이능력이라니. 대체 뭐지….'
 선도는 그건 그렇고, 하며 덧붙이더니
 "우리 부대에 지원하게 된 용의가 뭔가? 추천서를 가지고 오는 사람은 드문데 말이지. 그것도 몇 년 전의 추천서라면 더욱 그러하지."
 일순간 방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추천서』라는 것은 호칭상 추천서라는 것이지, 이 의미는 받은 그때부터 이미『정식 부대원』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물며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한 지훈은, 그저 단순하게 면접을 보는 것과 같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것은───한 남자에게 받은 자신의 확고한 의지였으니까.
 "지금부터 대략 몇 년 전, 어떤 분에 의해 구해진 적이 있습니다. 제가 위험한 건 아니었지만, 한순간이나마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거든요."
 지훈은 선도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잠시 엿본다. 선도는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하며 지훈의 말에 경청하는 듯하다─표정이 드러나지 않아 지훈은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지훈은 짧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뒷말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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