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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고양이, 코알라, 그리고 나
글쓴이: twind
작성일: 12-02-07 12:33 조회: 2,707 추천: 0 비추천: 0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순서로는 처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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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을 위한 부실이지만, 별로 대단한 물건은 없는 작은 방, 여자 넷이 있다.

정정.

여자 셋과 여장 남자가 하나 있다. 이 방에서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나밖에 없으니 자연스럽게 여장남자는 내가 된다.

바지 대신 교복 스커트를 두르고, 머리에 가발을 뒤집어 쓴 것을 여장으로 볼 수 있다면 말이지.

흐름에 넘어가서 이 꼴이 되었지만, 도대체 내가 여장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어?”

나를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보는 셋에게 물었다.

소재다.”

우선 대답한 것은 좀비. 아니, 종미 누나다. 평소에는 퀭한 눈동자를 하고 있으면서 오늘 따라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잘 어울려.”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한 것은 은영이.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밝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오늘은 살짝 눈이 풀린 것 같다. 그런데 여장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 칭찬인가?

마지막으로 아무 말도 없는 세인이.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푸른 눈으로 나를 빤히 보고 있다는 점이 평소와는 다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셋 다 나의 여장 모습에 흥미가 넘치고 있다.

어째서?

다시 말하지만, 화장을 한 것도 아니고, 여성스러운 복장을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가슴을 부풀러 올린 것도 아니다. 그냥 가발을 쓰고 치마를 둘러쓸 뿐이다. 치마만 두르면 좋아하는 남자애들도 아니고 왜 저렇게 내 여장 모습에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알아요. 안다고요. 내 체격이나 얼굴 때문이겠지.

사진 찍어도 될까? 딱히 네가 여장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가 아니야. 이런 남자도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하면 남자를 대하기도 쉬워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이미 핸드폰을 꺼내서 카메라를 나를 향해 들이대면서 은영이는 물었다. 안 된다고 하면 엄청 시무룩해할 것 같다.

퍼뜨리지만 않는다면 괜찮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은 찰칵 소리를 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지 않으면 의사를 확실하게 알 수 없는데.

내 허락이 떨어지자 종미 누나도 핸드폰을 꺼내서 찍기 시작했고, 심지여 세인이까지 나를 찍기 시작했다.

사진이 찍히는 것은 상관없다만, 사진이 퍼져서 여장을 좋아하는 인간으로 낙인찍히면 곤란한데.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세 여자의 요구에 따라 팔을 올리거나, 팔짱을 끼거나, 허리에 손을 올리거나 하는 등 포즈를 취했다.

아주 사소한 의문인데. 세 사람은 나를 도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야?”

소재.”

, 그렇겠죠.

생물학적으로 남자로 분류되는 주제에 여자 같은 얼굴을 갖고 있어서 내가 그나마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남자.”

이건 은영이. 그냥 친구라고 말하면 안 되나?

탈 것.”

세인아…….

내가 불만스러운 시전을 보내자 세인이는 무표정하게 눈을 깜빡였다.

이동식 침대.”

그게 그거잖아.

반대로 묻지. 너에게 우리는 뭐냐?”

종미 누나가 묻자 다들 궁금한지 나에게 몸을 내밀었다.

나는 종미 누배, 은영이, 세인이를 차례로 가리키며 말했다.

좀비, 고양이, 코알라.”

나는 언데드가 된 기억이 없다만.

종미 누나는 불만스러운 듯 도끼눈을 떴고,

까칠하다는 말이야?”

은영이는 나를 노려보았고,

…….”

세인이는 그냥 무표정하게 있었다.

누나는 이제 곧 우어어.’하고 말할 거잖아.”

시체가 썩어가듯 점점 좀비화가 진행된다.

좀비라고 불리기 싫으면 빨리 완결 지어.”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걸 아니까 제가 이렇게 협조해주고 있는 거잖아. 조용히 집필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주고, 이렇게 치마까지 두르고, 가끔 간식까지 준비해주잖아. 그러니까 빨리 쓰고 완결 지어.”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자 종미 누나는 도피하듯 노트북 화면 뒤로 몸을 웅크렸다.

허리 펴.”

우우우…….”

아직 좀비화 되기는 일러.”

이렇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데 갑자기 내 등 뒤에 무언가 들러붙었다. 그것은 내 옷을 잡고 기어오르더니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배에 다리를 둘렀다.

아직 집에 갈 시간 아닌데.”

코알라.”

목을 휘어 감는 힘이 평소보다 강하다.

혹시 마음에 안 들었어? 코알라 귀엽잖아.”

포악해.”

그거 속설이라고 그러던데. 무척이나 온순하다고 해.”

게을러.”

그건 사실이다.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고 깨어 있을 때는 거의 먹기만 하니까.

아읏.”

목에서 느껴지는 약한 통증과 함께 등골이 이상해져서 요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깨물지 마. 으읏. 핥지도 마.”

오오~”

종미 누나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빠른 타자 소리가 부실 안을 울린다.

방금 낸 소리가 누나에게 영감을 준 모양이다. 그건 기쁘지만, 어떤 상황에서 쓰일지 자세히는 생각하기는 싫다.

그 때 갑자기 등이 가벼워졌다. 돌아보자 은영이가 코알라 소녀를 품에 안고 있다.

부실 안에서는 안 하기로 했잖아.”

내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세인이지만, 은영이 말은 잘 듣는다.

세인이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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