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적색의 빛이 모든 걸 삼켜 버린다. 나는 피에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놈’의 눈동자가 나를 조롱한다. 이제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그 사람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사람을 돌려줘. 돌려주지 못한다면,

그의 목숨을 앗아간 복수를, 빛으로 빛을 이기지 못한다면 내가 어둠이 되겠어.

“드르륵, 촤르륵"

"드르르륵 촤르륵"

귀를 때리는 성가신 소리에 부스스 일어났다.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어.

“ㅡ촤르륵”

무슨 소리지,

어디선가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나고 있다. 시계가 고장 나기라도 한 건가? 희박한 가능성을 잠시 고려해보았지만 내가 쓰는 시계는 전자시계, 설사 고장이 난다고 해도 저런 소음을 낼 리가 없다.

‘누군가가 밖에서 장난이라도 치는 거겠지.’

침대 뒤에 있는 이중창문을 찾으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음?”

말 그대로 어딜 봐도 칠흑 같은 어둠밖에 없다. 창문은 열어두고 잠들었을 텐데, 평상시라면 내 잠을 방해할 길 건너편 가로등의 빛마저 보이지 않는다.

“안대 쓰고 잤나?”…….아니다. 얼굴을 쓰다듬어도 딱히 내 눈을 가리고 있는 물건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는 사이에 실명한건 아니겠지.” 어제 새벽까지 양자역학 관련 서적을 읽다가 깜박 잠들었었다. 그런 내가 일어나 보니 장님이면 성한 눈으로 마지막으로 ‘본’ 게 양자역학이 되는 것이지 않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나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평생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건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때였다.

몸의 제일 안쪽부터, 온몸이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고 있던 생각은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어버렸고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기절할 것 같은 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피가 끓는다. 아파.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와 버금가는 아픔이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차에 들이 받혀져 허공을 날았던 그 당시의 나는,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포물선운동을 마치고 몸이 콘크리트 도로에 부딪히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고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성이 뒤집히고 몸이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 이러다가ㅡ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격통에 그만 중심을 잃었다. 아, 넘어진다, 넘어져.

기댈 곳을 손을 내저으며 찾았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서 앞으로 쓰러지듯 무릎을 꿇는다. 몸이 바닥에 닿으면서 교통사고의 악몽이 다시 반복된다. 금방이라도 나를 찾아올 것이 명백한 타박상의 쓰라림, 출혈로 인해 다친 부위가 마비되는 꺼림칙한 느낌, 그리고 충격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라?

방금 몸무게를 실어서 쓰러졌잖아? 그대로 무릎을 세게 부딪쳤을 텐데, 아프기는커녕 바닥에 닿았다는 감각조차 들지 않아. 아직도 아프지만 처음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몸 깊숙한 곳에서 전해지는 고통만 느껴진다.

이건 내가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아, 포물선운동이 아니라 자유낙하였나?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중인 거야? 공기저항도 없는데? 있다고 해도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뿐인가?

대체 난 어디에 있는 거지. 그리고…… 이 빛은 뭘까.

내 목 언저리가 밝다. 빛나고 있어. 이건 뭐지, 심해에 서식한다는 발광하는 물고기인가?

그럼 난 깊은 바다 속에 있다는 건가. 용케 물도 먹지 않고 숨 쉬고 있네, 나.

손으로 목을 만졌다. 이 물고기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건지 빛은 그대로 있었다ㅡ 가 아니고, 물고기 따위는 없잖아! 그럼 왜 빛나는 거지? 이 빛은?

잠깐 어이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진화…… 아니, 내가 이 짧은 시간에 어둠에 적응해서 진화했다고 보긴 어렵다. 애당초 진화론의 선구자인 다윈 씨의 말을 따르면 진화는 생물이 자발적으로 육체를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잖아. 주위 환경에 보다 적합한 신체능력을 가진, 생존 확률이 높은 종이 그렇지 않은 종보다 더 많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래에는 그 종의 수가 많아진다는 거지. 유치원생이나 생각할 법한 진화의 잘못된 정의는 육체변이와 가깝다.

그러니 내가 진화했다는 이론은 탈락. 하지만 정작 중요한 내 목은?

빛에 의존해 목을 보았다. 목의 정중앙에서 뭐가 빛나고 있다. 뭐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자 그 끝에 걸린 건……목걸이. 은은한 달빛처럼 내 상반신을 비추고 있다. 뭐야, 목이 이상해진 게 아니었잖아? 목걸이가…… 목걸이?

잠깐, 내 목걸이가 왜 빛나고 있는 거야.

항상 걸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는데. 그 목걸이가 이 온통 어둠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홀로 빛을 발하고 있다. 야광도 아니고, 어떻게 빛나는 거지?

나도 모르게 달과 같은 색의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이런 기능이 있었다니......?!

내 손이 빛의 중심 부분에 닿자, 놀랍게도 조금씩 내 숨을 죄어오던 고통이 자취를 감추었다. 스위치라도 눌러 끈 것처럼 일순간이었다. 이 목걸이는 나에게 막심한 고통을 주는 장치라도 되는 거냐. 목에 걸으면 장난 아니게 아프다가 만지기만 하면 없어진다는 시스템인가 보다. 쓸모없군, 이런 아이템을 애타게 원할 부류의 사람들이 떠오르지만 난 그런 것에 발을 들일 만큼 어리석지 않다.

아픔이 사라지고 맑은 정신이 돌아왔다. 휴, 이제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 지 못하겠다.

주변뿐만이 아니다, 내 몸도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아. 내가 서있는지 누워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

이게 나쁜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곳에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 거야.

그 와중에도 어둠은 멈추지 않고 나를 자신과 같은 색으로, 검게 물들여 갔다. 하지만 목걸이가 걸린 근처만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지, 그 주위는 오래 쓰던 지우개의 구매 당시 붙어있던 스티커를 떼면 나오는 뽀얀 부분처럼 깨끗하게 유지 되었다. 내 몸이 선과 악으로 갈린 기분이다.

이대로 기다리면 조그마한 천사와 악마가 하나씩 나와서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나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을까? 나를 설득할게 뭐가 있다고.

실없는 생각을 하며 빈 공간에 몸을 맡겼다. 편안하고, 멍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이거야말로 빈사 상태다. 혹시 나는 말도 안 되는 사건에 말려든 걸지도 몰라.

기숙사 건물이 무너진 불의의 사고로 그만 깔려 죽고 만 학생 하나, 그게 바로 나일 수도 있다. 운도 지지리 없는 인간이니 말이지. 이 기숙사가 지어진 지도 100년이 넘는다고 하니 폭삭 가라앉아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거다. 그러면 난 지붕부터 깔렸다는 건가. 만일 정말로 그랬으면 생존 확률은 0퍼센트에 한없이 가깝다.

혹 살았다고 한들, 의식은 있지만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면 압사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나를 간호해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있다고 해도 보살펴주는 사람에게 폐만 끼치는 그런 골칫덩이로 변질 되는 건 정중히 사양하겠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라는 말도 있지. 그 명론을 본받아서 이때까지 내 일은 혼자서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참이다. 상대가 누구건 간에, 신세를 질 생각은 없다.

“이곳에서 해방되고 싶나?”어둠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에 어둠이 진동했다. 3류 공포영화도 아니고, 연출 한번 촌스럽네. 내 무의식의 상상력을 탓하자.

“다른 건 필요 없고 빨리 날 여기서 나가게 해줘.” 갑갑하단 말이다.

“깨달아라, 진실을.” 뭐?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도 모를 이상한 대사를 끝으로 목소리는 없어졌다. 어둠도 진동을 멈추었고, 모든 게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온 것 같다. 날보고 뭐랬지? 진실? 것보다, 내가 여기서 나갈 방법은 없는 거야?

그것도 잠시, 칠흑 같은 공간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찌직“

어둠에 금이 갔다. 종이 한 장을 겨우 통과시킬 정도로 틈은 얇았다.

"찌지지직"

한번 생긴 틈은 계속해서 여러 개로 갈라지며 큰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 사이로 대량의 빛이 들어왔다. 밝은 빛이 나를 비추자 내 몸의 어둠이 빛을 피하려고 하는 듯 전부 사라진다.

이건 너무 밝잖아. 그럴 리도 없지만 설마 대형 전구라도 들이대고 있는 건가.

빛이 나오는 곳을 보려고 했지만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은 갑작스러운 강한 빛에 비명을 질렀다. 우선 눈을 감고 밝은 빛에 눈이 적응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가만히 있자니 더 이상 눈이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살짝 눈을 떠보자,

방이 보였다.

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백색과 검정의 격자무니가 천장,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