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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세기
글쓴이: rhsml
작성일: 12-02-03 02:05 조회: 2,689 추천: 0 비추천: 0




제목: 23세기와 도시


동양의 세상에서 이런 걸 하면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집안은 예언가 집안이다. 나는 예언가, 퇴마사, 엑소시스트 그따위 허영

믿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집안은 예언가 집안이다.

나는 최면과 귀신 요괴 따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

뭘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의 집안은 ‘예언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난 예언을 할 수 있다. 학교 거리를 거닐면서 저 사람의 10년 내의 일을 알 수

있다.



“허억! 허억! 허억!”


넓은 침대 시트에서 검정 머리 소년이 눈을 떴다. 아무 특징도 없고 칙칙한 흙발에

너무 어두워서 마치 하나의 혼돈을 연상시키는 눈, 하지만 그래봐야 전형적인 동양인.

방만 본다면 우리 집은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아니 분명 내 방만 본다면

우리 집은 어느 회사의 사장 쯤 되는 사람이 가장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곳이었다.

40평가량의 넓은 방에 쳐진 널따란 커튼과 레이스가 달린 넓은 침대, 인형으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공간. 3개나 되는 문. 하지만 그 문은 각각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화장실, 부엌, 마지막으로 출구’


그렇다. 내가 사는 곳은 단칸방인 것이다. 부엌과 화장실만이 달린 40평짜리 집이다.

이런 집이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이런 어이없는

집이 말이다. 이불을 뒤집고 일어나서 눈가를 훔쳐본다. 촉촉한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하고 따스한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한다. 벌써 6년 동안, 아니 엄마를 할머니가 죽였다고

통보받을 때부터 꾼 꿈이지만 일어나 보면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있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충혈 된 눈을 소매로 비비고 나니 엉망이 된 머리카락이 들어났다.

잠시 소매를 지켜보고 있었을 뿐인데 머리가 아파오며 눈앞에 이상한 영상이 들어난다.

갈가리 찢어져 나가는 소매와 쓰레기 더미에 처박혀 있는 내복, 그 앞에 나타난

쓰레기차와 곧 나타나는 소각장의 모습.


“으아아아아아! 그만!”


생물만의 미래를 본다면 이렇게 넓은 집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런 집을

주문제작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물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래가 읽혀 나가기 때문이다. 그저 미래를 본다면 그리 괴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볼 때마다 느껴지는 이 엄청난 고통과 피로감이 나를 자극했으며 사물의 감각마저

그러니까 만약 이 셔츠에게 생명이 있다면 소각장에서의 기분까지도 내게 전해져 온다.

그 짧은 시간동안 난 쓰레기가 되어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만! 그만! 그만! 그만! 그만해!!!”


곧 눈앞에 보이던 이 옷의 인생이 끝났다. 그만 했으면 하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한

인간이 쓰레기로서의 삶을 단 10초 만에 느꼈다. 너무 고통스럽고 미칠 것 같지만,

아니 솔직히 미쳤으면 좋겠지만 미치지 않았다. 미치지 못한다. 쓰레기가 되어도

칼에 찔려 죽어도 총에 맞아 죽어도 무시를 당해도 사업이 망해도 말이다.


아침 햇살의 빛은 보통 매우 밝다. 하지만 오늘따라 어둡고 침침하다. 먹구름이 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릴 것이다. 내일의 날씨는 예상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마음대로 알 수 있으면서 간단한 내일의 날씨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을 봐야 내일의 날씨를 알지, 무엇을 봐야 미래를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때 등 뒤에서 자명종을 맞춰놓은 시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넓은 40평짜리

단칸방에서 떠드는 존재는 유일하다. 바로 내 뒤에서 10분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이 자명종이 유일하다. 아니, 이 자명종들이 유일하다.


[오전 11시 50분입니다.]


[오전 11시 50분이지롱]


[오전 11시 50분...]


끝없이 울리는 자명종소리. 나는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관계도

같지 않는다.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악연이든 필연이든 사랑이든 뭐든 간에

근 5년 안에 죽는다. 정확한 날자는 알 수 없다. 23세기가 21세기의 모습으로 바뀌자

내가 얻게 된 이 이상한 예지능력은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든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든 나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의 향후 죽음을 보여준다. 늙은이 젊은이 가리지

않고 말이다.


“11시 50분?”


어제 9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오전 11시 50분에 일어났다면 난 14시간 50분을

잔 샘이다. 밖에 나가기를 두려워해서 집에서 잠을 자고 컴퓨터로 먹을거리를 시키고

요리를 하고 먹는 것 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17살로 이제 고교생이 되었고

학교에 가야 하지만, 가지 않는다. 그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해온 일이다.


“아침밥”


이미 아침을 훌쩍 넘기고 점심을 바라보고 있지만. 내가 찾는 것은 아침밥이다.

하루 세끼를 다 먹어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가벼운 음식으로 아침을 정하는

것도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나는 끼니의 시작을 저녁에 먹는다고 해도 아침밥으로

시작한다.

냉장고의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밀려 나왔다. 빨지 않아서 눅눅해진 옷이지만

검은색이라 색의 변질은 없다. 다만, 반팔과 반바지를 근래에 갈아입은 적이 전혀

없는 나는, 차가운 냉장고 공기에 몸을 떨며 냉장고 안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어?”


한번에 많은 양을 사서 끼니를 해치우는 나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냉장고가 텅

빌 날도 있기 마련이다. 얼른 컴퓨터에 다가가고 싶지만 컴퓨터를 뚫어져라 응시한다면

또 어떤 체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검정 반바지의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눈에

장착하자 가뜩에도 어두운 방 안이 완전히 어둠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40평짜리

방에서 인생의 거의 전부를 보낸 나는 금방 컴퓨터를 찾아내어 버튼을 눌렀다. 환힌

빛과 함께 컴퓨터가 켜졌고 선글라스 안의 나의 눈에도 검푸른 빛이 비추어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눈앞에 선글라스 같은 물건을 장착하면 사물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런 물건을 오래 낄 정도로 참을성이 있는 인간이 아닌 게 문제지


“콰과광!”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밖에 환한 불빛과 함께 번개가 내려쳤다. 유령을 믿지

않고 괴물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큰 소리가 나면 무섭다. 동작이 멈추었고 몸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느새 눈가에는 꿈에서 깼을 때처럼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고

몸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다. 아까의 번개가 빛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리가 났으니 가까이에 떨어진 모양이다. 그것도 전봇대에

말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음에도 아니, 알지도 못할 사람이 분명함에도 속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꺼져버린 컴퓨터를

응시한다. 시키자마자 바로 배달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도 한 끼 밖에 먹지 못한

무척 배고픈 상태라면 불안해 진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연발해댔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역시......


“역시, 나갈 수밖에 없겠지?”


[오후 12시 0분입니다]


[오후 12시 0분이지롱]

......


장마철이지만 여름은 여름일 것이다. 검정 옷을 벗어 던지고 초록색 반팔 티와 반바지를

차려입은 후 머리를 빗었다. 빗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도 들었지만 무시해 버렸다.

어느새 어깨까지 자라서 단발머리로 변해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년 들어서 처음 나가는 외출이다. 이미 여름이 중순에 접어들고 6월의 발가락을

건들 시간이 되었지만, 나가본 적은 없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가면 누군가가 죽을 것 같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누군가와

안면을 틀지 않으면 그 사람의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이곳에 처음 와서 방황할 때

만난 몇몇 사람들이 머리가 아픔과 동시에 보았던 죽음과 똑같은 시나리오로 죽은 후부터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이 일을 빌미로 밖으로 나가려는 거겠지, 나를 속이려고’


침묵의 시간은 지났다. 깨끗하게 차려입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어께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한 갈래로 땋은 후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오후 12시 10분입니다.]


[오후 12시 10분이지롱]


어쩌면 내가 이렇게 많은 자명종을 사고 10분 간격으로 말하게 한 이유는 외로워서 일

것이다. 그만큼 누군가와의 대화를 원하고 슬픔을 토해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잠시 멈칫 했던 나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


“다녀올게”


라고 말이다. 23세기 5월 21일의 오후, 난 특별한 인연을 만나기 위해 마트로 향한다.

짧은 머리카락을 땋았더니 뒤에서 누군가가 머리를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을 열자마자 밖의 풍경이 나타났다. 한산한 거리와 높은 빌딩들, 많은 사람들.

그리고 이런 거리에 공터만한 크기를 잡아먹고 있는 40평짜리 1층집.

조화롭지 못하며 모순적이지만 더없이 신비스럽고 재미있어 보인다.


“밖에서의 모습...... 오랜만이네.”


신비스러운 집에서 나온 이상한 꼬마, 그 누가 보아도 색다른 매력이 느껴질 것이다.

미래에서 내려온 내가 돈도 없고 경험도 없으면서 아직까지 살 수 있는 것은 23세기지만

바뀌지 않은 지배층의 부유 때문이었다. 한 가문의 아들이며 예언가 가문의 아들인 나는

나와 접촉한 사람이 대부분 죽는다는 걸 알았을 때 집을 나왔다. 그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고 말이다. 컴퓨터로 인출하는 돈과 식료품, 즉 의식주를 모두 가문에서 해결 받고 있다.

예언가로서의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 이상한 곳에서 말이다.

주위에서 나를 보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낡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그 뒤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머리카락은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선글라스를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왜소한 채구 역시 여성스러운 분위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마트로 가는 길은, 여기서 오른쪽?”


오랜만에 나온 거리이기에 나도 모르게 들떴다. 시간은 23세기이지만 장소는

21세기인 지금의 세계, 이렇게 바뀌면서 생긴 예지 능력을 저주하기도 했지만

지금 이 시간만큼은 즐길 대로 즐기는 거다. 이건 6달 만에 찾아온 기회니까

말이다.


“그래, 6달 만에 찾아온 잠시간에 행복.”


잘 생각나지 않지만, 과거에 나는 꽤 활발했던 것 같다. 매일 밖을 쏘다니며

안 다치는 곳이 없었고 친구도 많은 그런 활기찬 아이였다. 그리고 죽음을 보기

이전의 나 역시 활기찼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눈물이 나온다. 모든 것을 앗아간 예지력과 엄마를 앗아간 할머니. 뭘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가문.


‘기운 차리자.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게 아니야.’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문득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당시 가문에서

유일하게 예지능력을 가졌던 사람. 아마 나와 가장 비슷했을 사람. 그러면서도 자애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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