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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공작
글쓴이: 다폰
작성일: 12-01-31 21:13 조회: 2,734 추천: 0 비추천: 0


이야기의 초장부터, 첫 페이지부터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저주에 걸린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고, 어이없기 그지없으며, 웃어넘기고 싶은 소리다. 하지만 불과 몇 초 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인해 이 거짓에 한없이 가까웠던 문장은 진실이 되었으며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였던 웃음은 미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쓴웃음으로 형태를 바꿔 도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요즘 시대에 저주라니, 상당히 시대착오적이고 번거롭기 짝이 없는 짓임이 틀림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재작년에 고등학교도 중퇴한 채 새해를 맞이한 내가 말하기도 뭣하지만 분명 저주니 짚단인형이니 하는 것들은 한참 전에 퇴…어쩌고였는지, 테트라 어쩌고였는지, 아니면 둘 다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그 비슷한 이름의 부정학자에 의해 철저하게 그 소모 에너지 대비 효능을 검증당해 현 부정학계에서는 거의 사장되어 버렸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런 계통의 오컬트, 즉 부정에게는 권위자에게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만큼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일이 없다고 한다. 부정학자도 아니고 관련 학문에 일말의 관심도 없는 내가 당당히 말하자니 좀 어색하지만.
오컬트(occult).
다른 말로는 초자연현상.
과학으로도, 역사학으로도, 혹은 다른 어떠한 학문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오로지 부정학으로 그 원리의 일부만이 풀이되는,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미지의 존재들.

무심코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버렸지만, 이쯤에서 잠깐 주제를 되돌리려 한다. 내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내용은 그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이든, 버린 것이든 간에, 지금 내가 바로 그런 저주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

전공자도 아니고, 하물며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리도 손쉽게 저주 작용 여부를 파악할 수 있었던 건 그 효과가 이상하리만치 명백했기 때문이다. 요즘 부정학으로도 이런 식으로 상상력을 기묘하게 뒤틀어놓은 결과물을 내놓는 게 가능하기나 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현재 시각은 밤 10시를 조금 넘었다. 오늘은 남은 일이 없으니까 이 상태로 다른 누군가, 특히 의뢰하러 온 고객과 만날 염려는 없겠지만 이대로는 내일의 작업에 안 좋은 방향으로 영향이 미칠 것 같았기에 핸드폰으로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해 보기로 했다. 저주를 해제하려면 일단 부정학자를 불러야지…부정학 내에서도 구시대의 저주나 인과관계에 얽힌 마이너스 영향을 제거하는 해주 전문이 따로 나뉘어져 있다고 알고 있다만 해주업자 중에서는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겠지.
이불 위에 드러누운 채 근처에 굴러다니고 있던 구형 핸드폰을 집어들어 배터리가 제대로 붙어있나 확인한 후, 간단히 조작해 주소목록을 들여다 보았다. 언제 등록됐는지도 기억 안 나는 잡다한 연락처들 사이에서 쓸만한 이름이 있나 수색해 보았지만 마땅히 도움이 될 만한 녀석이…

“있다!”

…발견했다. 공작이라는 의미를 모를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 언뜻 보기에는 밑도 끝도 없이 수상해 보이는 녀석이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고등학교 시절의 이 녀석은 상당한 능력자였다. 무뚝뚝하고 조용해서 친구는 거의 없었지만.

[지금 거신 번호는 부정되어 없는 번호가 되었습니…]

방금 기억났다. 정작 다급히 필요한 상황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는 게 녀석의 아이덴티티이자 캐치카피였다. 대뇌가 무의식적으로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특별히 기대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깜빡하면 핸드폰을 집어던질 뻔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사소한 일에 일일이 화를 내며 핸드폰이나 구겨진 소설책이나 느려터진 노트북 등 방 안의 사물을 집어던지는 속 좁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속으로 혀를 차는 건 좀 봐줬으면 한다. 그만큼 내가 처한 상황이 긴박하다는 얘기다.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다음 순간, 내 두 눈이 기적적으로 주소록의 문자나열 속에서 희망을 가져다 줄 인물의 이름을 포착해냈다. 이 사람이라면 번호가 바뀌었을 염려도 없고 이 시간대에 핸드폰을 꺼둘 이유도 없을 터다.

[어…여보세요? 울서대 통합 부정학과의 이윤배라고 합니다만. 지금 급한 일 중이라서 생판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을 여유가.]

“제 번호는 등록도 안 해 놨었습니까…”

[그 침울하기 짝이 없는데다 재작년에 고등학교도 중퇴했을 거 같은 목소리는 …B군 아냐? 오랜만이네? 명색이 네 보호잔데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 끊어도 되는 거냐?]

그러고보니 완전히 까먹고 있었어
저 쪽에서도 매월마다 있는 부정진료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몇 개 사먹을 수준의 최소한의 생활 지원 외에는 전혀 접촉해오지 않으니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고 할까… 작년부터 보호자를 자청하곤 있지만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이 없어서야.
덧붙여서 B군이라는 건 중학교 시절 이래 계속되온 내 별명이다. 이미 주변 인물들은 완벽히 나를 B군이라는 코드네임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명칭으로 인식하고 있고 나도 여기까지 온 이상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뼛속까지 깨닫고 있어서 그 신문에서나 나올법한 가명 그만 쓰라는 태클을 일체 걸지 않고 있으니 주변 인물들은 물론이고 간간히 만나는 그 주변 인물의 주변 인물들조차 나를 B군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명칭으로 인식하게 되는, 전형적인 악순환의 굴레를 유지하고 있다.
설명이 길긴 했지만 내가 핸드폰 너머의 보호자(자칭)에게 본론을 꺼내놓은 건 저쪽에서 대답해온 바로 직후였다. 부정학에 대한 학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더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저주를 분석할만한 능력은 없었기에 보고는 금방 끝났다.
내게 묶인 저주에 대한 얘기를 들은 자칭 보호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그러고 보니 비슷한 도시전설 같은게 돌고 있었던 거 같은데, 뭐더라…무슨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비밀조직인가의 무차별 저주 테러가 암중에 벌어지고 있다던가.]

“저 항상 인터넷 하고 있으니까 그런 부류의 소문에 대해서는 엄청 민감한데요. …대충 지어낸 얘기죠, 그 비밀조직 운운은?”

[……반 정도는. 놀랍도록 감이 좋아졌네. 칭찬해 주지.]

내 쪽은 상당히 진지한데 그런 미묘한 데서 칭찬받아도 조금도 기쁘지 않다.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꼭 여기서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는 의문이다. 저 자칭 보호자의 머릿속은 알 길이 없으니까


깡.


뭐라 한마디 해주려는 순간 갑자기 큰 소음이 귀에 들려왔다.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게 아니다. 이건 틀림없이 내 쪽에서, 누군가가 우리 집 문을 쇠막대긴지 뭔지로 두드리는 소리다.
적당한 주택지의 적당한 아파트의 적당한 원룸인, 적당함 3콤보인 우리 집에 누군가가 찾아오는 경우는 그리 적지 않지만, 이번 방문객은 좀 다르다는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평소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안면이 있는 녀석들로, 어떤 수단이든 온건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내 방에 들어오지 저렇게 크게 소리가 나도록 문을 두들겨대진 않는다.


깡. 깡.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다란 파이프 같은 물건으로 내리치는 듯한 쇳소리는 계속된다. 어떤 꼬마가 장난이랍시고 해대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열받는다. 덤으로 지금은 한밤중이다. 나 혼자 사는 주택도 아니고(물론 주택이라도 문을 두드려대면 안 되지만) 수십명이 생활하는 아파트에서, 저렇게 뻔뻔하게 쇳소리를 연타하다니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못 한다! 기본적으로 소음을 싫어하는 나에게 있어서 저런 소음 유발자는 전부 원수나 다름없다.

마음 깊숙히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자칭 보호자의 말을 이어서 듣기 위해 핸드폰에 귀를 기울이니 이미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이 사람들이…쌍으로 나를 물먹이기로 작정했나!
이번에야말로 참지 않고 핸드폰을 내던진 후 아까부터 문을 두들겨대는 원수놈의 얼굴이나 볼 생각으로 문 앞으로 달려갔다. 누군진 몰라도 잘못 걸렸다. 평소에 침착한 만큼 폭발하면 두배로 무서운 내 분노를 폭언으로 바꾸어 전신에 꽂아주고야 말겠다!
하면서 신발도 신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나가 문을 크게 열어제끼니,

아무도 없었다.

“……”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머리가 싸해지며 냉정함이 돌아왔다.
자, 상황을 한번 정리해 볼까. 이 아파트는 꽤나 오래된 건물이라 전체 5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층마다 총 네 개의 방이 있으며 방들이 있는 반대편으로 베란다를 연상시키는 긴 복도가 늘어서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3층의, 가장 구석에 있는 쪽의 원룸을 사용하고 있으며 나가는 방향은 오직 하나로 저 긴 복도를 지나는 수 밖에 없다.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는 방법은 일반적인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니 예외로 한다. 덧붙여서 저 기분 나쁜 문 두드리는 소리는 격분한 내가 문을 열러 뛰쳐나가기 직전까지 들렸었다.

후우, 하아.

침착,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자… 문 앞은 커녕 복도 위에도 그 누구도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즉시 나는 최대한 침착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도 그럴 게 보통 공포영화에서는 이 다음에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이 의아해하며 방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뒤로 돌아서는 순간…이라는 황금패턴이 존재하지 않는가?
언제까지나 이 어두컴컴한 복도에 덩그러니 홀로 나와있는 것도 으스스하니 결과적으로는 방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침착해라, 침착해라 하고 되뇌이며 어떻게 해서든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나는 슬슬 뒷걸음질쳐 문을 쿵 닫고 그제서야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엄청나게 경직되고 딱딱하게 굳은 동작으로.
그리고 내 바로 등 뒤에는 거의 밀착한 채 내 쪽을 직시하고 있는 누군가의 미소 띤 얼굴이 있…

“라는 식으로, 황금패턴대로 방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어느샌가 나는 이불 같은 것에 눕혀져 있는 듯 했다. 왠지 눈 앞도 눈 앞이지만 머릿속도 가물가물해서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으음.
역시나 전공은 아니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지만 심리학이였나 등지의 연구결과로, 극심한 트라우마나 충격, 순간적인 공포 등에 직면했을 때 뇌가 인격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기억의 일부를 삭제하는 그런 게 있었던 듯한데…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빠른 속도로 기억의 퍼즐이 자리를 찾아가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오늘의 아침은 평소와 다를바 없는 일들만 가득했었던 것 같다. 그럼 문제는 점심 이후인가…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내 몸의 이상을 깨달아…무언가 일련의 사태를 겪은 후에야 내가 정체불명의 저주에 걸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결을 위해서 핸드폰을 뒤지다가,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와 뒤로 돌아본 순간 누군가가 있었는데…그게 지금 내 머리맡에서 멀뚱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얼굴과 똑같이 생겼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또 나왔다!”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려고 애썼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조금 더 힘을 줬더니 부욱 하며 뜯겨져 나오는 그것은 아무리 봐도 청테이프였다. 대체 어느 틈에? 게다가 하필이면 테이프라니, 이건 이것대로 또 굉장히 시대착오적인…까지 생각이 미치니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다시 조금이나마 맑아져 온다. 굳이 테이프 같은 비 오컬트적인 도구를 사용했다는 건 일단 상대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아닌가?
자세히 살펴보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상대는 여자, 정확히는 여자아이였다. 검은 머리카락과 그에 색상을 맞춘 듯한 새까만 두건 달린 외투가 인상적인.

“의외로 빨리 깨어났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성대하게 리액션을 취했었으니까 오늘 안으로는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첫 질문 치고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지, 남의 집 앞에서 민폐스럽게 소음을 유발하던 게 너냐?”

“당연하죠. 하지만 민폐라니,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요?”


버릇없는 데다가 당돌하기까지 한 녀석이군. 남의 집 문을 타악기 삼아 두드리던 주제에 고요함을 사랑하는 내게 자격을 묻다니! 하지만 나는 금새 기억해냈다. 고작 쇳소리 정도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비명을 내가 질렀다는 사실을.
실책이다…침묵과 고요를 누구보다 아낀다고 자부하는 내가 그런 실수를…응?
막상 자책하려다 보니 이건 딱히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따지고 보면…

“따지고 보면 네 등장방식이 이상했기 때문이잖아? 내게 볼 일이 있었으면 훨씬 평범하고 온화한 방법인 초인종을 누르던가 문에 노크를 한다는 것도 있었을 텐데!”

소녀는 두건 속에서 쯧쯧 하고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젓더니,

“조용해서 재미 없잖아요, 그런 건.”

“…”

악질이다. 이 여자는 보기보다 훨씬 악질이 틀림없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소리라면 외부로는 전혀 새어나가지 않았으니까.”

“응?”

그러고 보면 내가 천장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음에도 여전히 이 일대는 한밤중다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무슨 살인 사건이라도 일어났는지 궁금해서라도 한 두명은 찾아오는게 정상일텐데. 잠을 설친 것에 대한 울분을 담은 욕지거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무서운 고요함이다.
마치 밤의 어둠이 소리마저 집어삼킨 듯한.

“그나저나 듣던 대로 비정상적으로 유령이니 귀신이니를 무서워하네요. 요즘 시대에 이 정도로 중증 환자가 있었을 줄이야.”

“미안하게 됐구만. 예전부터 소음과 귀신은 내가 제일 꺼리는 양대 산맥이라서.”

태연하게 내 옆에 앉아서 말을 꺼낸다. 꿈틀거림으로 테이프 끊기를 포기하고 일단 대답해주기로 했다. 이미 귀신이니 영체니 하는 것들이 부정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되고 정립되어 있는 게 요즘 세상이지만 나는 어렸을 적부터 귀신을 두려워했다. 무언가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다고 할까. 내가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아파트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갔다간 언제 어디서 그런 오컬트와, 그런 기괴한 사건과 맞닥뜨릴지 모르니까.
그나저나 이 녀석, 분명 '듣던 대로' 같은 말을 했었지. 어느정도는 짐작했었지만 역시나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소개받아 일 관련해서 찾아온 게 틀림없다. 나도 고등학교 중퇴하고 놀기만 했던 것은 아니기에 나름대로 이쪽 세계에선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거다.
하지만 지금 내게 의뢰해도 곤란하다. 나 역시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껴안고 있으니까. 그래, 저주 말이다.

“의뢰 때문에 왔겠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지금 사람 찾기든 소개든 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니까. 실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면…”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네요. 반드시 바깥에 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나가기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할 생각을 하다니. 듣던 것보다 더하네요…”


대체 누구한테 들었길래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득한 거야? 덤으로 내 의사는 전혀 존중해줄 생각이 없는지 금방이라도 강제로 목덜미를 부여잡아 끌고 나갈 듯한 분위기에 황급히 변명해보기로 했다.

“아니아니. 결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라…저주 때문이야, 저주. 어째선진 모르겠지만 바로 몇 시간 전에 이런 곤란한 저주가 걸려버려서…”

“저주요… 어쩐지 친숙한 냄새가 나더라니.”

친숙한?
그러고보니 그녀가 입고 있는 판타지 소설에서 나올 법한 로브에 가까운 망토, 두건 달린 검은 외투는 분명 뉴스나 교과서 등에서 가끔씩 나오던 전통적인 부정학자들의 복장이다. 자칫 실수했다간 뭐가 들러붙을 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부정학의 세계에선 유령, 귀신 등을 자극하지 않는 검정 일색의 외투를 전신에 두르는 게 혹시 모를 위기상황을 예방하는 데엔 필수에 가깝다던가 뭐라던가. 부정학자들 사이에서도 전공과 학파가 확실히 갈라져 있고 구별하기 쉽게 특정 문장이나 복식의 미세한 차이, 망토의 끄트머리 장식 등의 차이를 둔다고도 들었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그런 차이를 잡아내는 건 무리다.
그녀는 저주에 대해 관심이 생겼는지 내 쪽으로 한 발짝 접근해 와서는 여전히 두건을 뒤집어쓴 채 나를 뚫어지게 관찰하듯 훑어봤다. 거참, 그렇게 열정적으로 바라보면 쑥스럽다니까. 두건 그림자에 가려 잘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두 눈이 무서울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는게 느껴진다. 얼마나 저주 좋아하는 거야…

“꽤나 보기 힘든 저주네요. 아무래도 대외부의 공작계 듀크스트로피 학파식으로 맺어진 저주 같지만요. 매듭방식도 확실하고. 다만 역시 이질적인 표식이…”

“…”

범접할 수 없는 전문가의 오러가 흘러넘친다. 어쩌면 저주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될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희망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저주만 어떻게 되면 상시 돈이 필요한 나로서는 어떤 의뢰라도 대환영이다!

“……해서 워낙 복잡한 놈이라 해주는 무리겠네요. 그건 제 분야가 아니라서.”

“설명만 신나서 잔뜩 늘어놓더니 결국 그거냐…”

“하지만 말이죠.”

내 불평불만이 가득 담긴 중얼거림을 자르며 그녀가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찾는 사람요. 아마도 그 저주와도 관계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뭐?”

나 자신도 어째서 내 몸에 나타난 건지 모르는 저주가 오늘 처음 보는 여자가 수색의뢰하는 사람과 관련이 있다고?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다. 하지만 부정학에 조예가 있는 건 저 쪽이지 내가 아니다. 최소한 나보다는 그녀 쪽이 이 저주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보는게 옳겠지. 전문가니까.
그녀는 외투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쪼가리를 꺼내 놓았다. 예상대로 종이에는 찾아주길 원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놀랍게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였다.

“최근 이 도시에서, 아니 사람 사는 도시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원인 불명의 괴기현상과 저주발현, 온갖 비실재 생명과 악령과 이매망량을 끌어들여 도시의 치안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은 원흉으로 여겨지는 사람이에요.”

그림의 형상이 나타내고 있는 남자는 내 과거의,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였던 녀석이었다. 무슨 수법을 썼는지 놀랍도록 내 기억 속의 그의 이목구비와 세세하고 완벽하게 재현해낸 그 그림은 단순히 종이와 물감의 결합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 특유의 불길한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것만으로도 체온이 몇 도는 내려가는 것 같은 그 불길함을.

“그 현상에서 비롯된 이름은 통칭 부정의 공작. 이 남자를 찾아 줬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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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다보니 점점 패망의 소용돌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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