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어빌리티(Ability)
글쓴이: 스컬48
작성일: 12-01-30 13:03 조회: 2,479 추천: 0 비추천: 0

어빌리티 온라인. 현재 한창 인기몰이 중인 가상현실게임이다.

높은 자유도와 동시에 자유의 역설을 보여주는 이 게임은 처음 출시될 당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 게임이 자유의 역설을 보여준다고 한 의미도 여기 있다.

그것은 바로 고유 어빌리티(OWN ABILITY) 시스템.

고유 어빌리티 시스템이란 말 그대로 능력. 각 계정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고유 능력이다. 캐릭터의 어빌리티는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정을 만든 사람이 회원가입 때 적은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회원가입 때 필수적으로 적는 것은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주소 정보 정도이지만 부수적으로 적어도 그만 안 적어도 그만인 것이 있다. 이 게임에서 어빌리티는 이 부수적인 정보에 적은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또한 캐릭터의 비주얼이나 캐릭터의 닉네임마저 이것에 따라 만들어져 있도록 프로그램 되어있었기에 당시 이 게임의 초기 자유도는 0라고 비판을 받았다. 그렇지만 회사 측에서는 이렇게 대응했다고 한다.

‘자유에는 그만한 구속이 있다. 이것은 자유를 역설한 게임이다.’

모든 플레이어의 정보는 다 다르다. 그렇기에 자신과 똑같은 어빌리티를 가진 아바타란 전 서버를 뒤져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 어빌리티가 자신의 캐릭터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또한 고유 어빌리티는 그것을 버리는 것도 또 다른 플레이어와 교환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그 때문일까 게임이 나온 뒤 시간이 지날수록 캐릭터가 고유 능력에 따라 승패가 갈리고 위, 아래가 나뉘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몇 몇 플레이어들은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모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고 플레이어들의 원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게임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 째 되는 해. 게임회사가 한 가지 공지를 띄웠다.

‘자신은 단 한명밖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추가 계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계정을 지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게임은 게임이자 현실입니다. 모두 자신의 능력을 받아드리고 인정하고 살아남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회사 측의 공표로 플레이어들은 두 패로 나뉘기 시작했다. 게임을 접고 다른 게임을 찾아보는 쪽과 능력을 만들어내려는 쪽이었다. 이 게임이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면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능력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 해나갔고 결국 게임 회사 측 공표가 있은 후 1년 뒤, 게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지 2년째가 되는 해. 후천적으로 어빌리티를 얻는 방법이 발견 되었다. 그 방법은 18세 성인 서버에서만 가능한 PK라는 하드코어한 플레이였다.

게임 회사에서 띄운 공지. 살아남으라는 말뜻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 후로 전체 이용가 서버에서도 PK는 불가능하지만 PvP로 이 현상을 일으켜보려고 하는 유저들이 나타났으며 몇몇의 성공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유 어빌리티가 제로가 된 캐릭터의 계정이 자동적으로 삭제가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버그도 무엇도 아니었다. 이것은 약육강식의 세계가 시작됐음을 의미했다.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니다. 철저하게 현실을 모티브로 한 리얼리티 온라인. 그것이 어빌리티 온라인의 실체였다.

이런 하드코어적인 면모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빌리티 온라인의 유저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기 위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게임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지 5년이 된 지금 게임을 즐기면서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자취를 감추며 사려져가고 있었다.


Main Quest-1 : PK길드와 소녀


01

“사인, 너 그 소문 들었어?”

마을 안 술집. 자신의 주량 이상을 마신 모양인지 얼굴에 불그스름한 홍조 이펙트를 띤 금발의 아바타가 10분 동안 술만 퍼마시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아실리 레베카(현실을 모티브로 해서 그런지 닉네임에도 성과 이름이 모두 다 존재한다). 온라인상에서이긴 하나 나의 절친한 친구이다.

“무슨 소문?”

“그게, 말이야. 딸꾹, 이, 근방에 말이지……. PK길드가 뜬 모양이야……. 그게 상당히 악질이라나 봐……딸꾹.”

평소에는 얌전하고 사근사근한 성격이나 알코올이 들어가면 금세 이렇게 단정치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그녀와 술을 마실 때마다 나는 평소의 모습과 이 모습 중 어느 쪽이 진짜일까 생각하게 된다. 참고로 다수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쪽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본론이 뭐야?”

좀 냉정해 보이는 말투일지는 모르나 술에 취한 그녀는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본론을 질질 끌면서 말하지 않을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에헤, 또 그런 냉정한 말투. 어, 그러니까……. 퇴치해줘! 에헤헤~…….”

게임 안에서 마시는 알코올로 이렇게 잘 취하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물론 이 게임은 다른 게임들과 다르게 술을 마시면 진짜 음주를 한 것처럼 뇌에 착각을 일으키도록 시스템이 되어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렇게까지 전자신호로 이렇게까지 잘 취하는 사람을 난 1년간의 플레이 동안 아실리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이것도 체질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막무가내로 퇴치해 달라니…….”

내 소극적인 대답에 아실리는 조금 기분 나쁘게 보일 정도로 히죽 웃으면서 말하였다.

“어라~? 사인, 네가 처음 이 18채널에 와서 나를 만나 가장 먼저 한 말이 뭔지 기억 안 나는 걸까나?”

“어이, 어이 그것만은 봐줘…….”

그러나 아실리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술집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치면서 일어서더니 1년 전의 내가 내뱉었던 부끄러운 대사를 큰 소리로 읊었다.

“‘게임인데 즐길 수 없다니 이상해! 게임은 즐기라고 있는 거라고!’였나?”

아실리가 소리친 순간 술집에 있는 사람 모두 놀라 우리 쪽으로 시선이 집중됐지만 금세 신경 쓰지 않기로 했는지 금세 자신들의 잡담으로 돌아갔다. 내 얼굴에 알코올 때문이 아니라 창피함 때문에 홍조 이펙트가 뜨는 것이 느껴졌다. 난 왜 이런 창피한 애랑 처음 친구를 맺은 걸까. 과거의 일을 후회해봤자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지만 가끔 아실리가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확 인연을 끊고 어딘가 잠적해 버릴까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그런 소리를 했던 네가 지금 그 ‘즐기면서 게임플레이 하는 것’을 방해하는 놈들이 나타났는데 가만히 있겠다는 거야? 엉?”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무리라고 했잖아!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방법으로 PK하는지 정보부터 구해야지! 막무가내로 쳐들어갔다간 개죽음 당할 뿐이라고!”

“치~ 재미없는 소리나 하고……. 예전에 사인은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악당이라면 마구잡이로 해치웠는데 말이야.”

아실리는 결국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아실리는 어떤지 몰라도 나한테는 민감한 이야기였기에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가 내 친구리스트에 있던 한 사람을 이 게임에서 영구퇴장 시켜버렸어.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

예전에 뭣도 모르고 내 고유 어빌리티만 믿고 설치던 시설, 난 내 동료들과 파티를 맺고 한 레드 길드를 처단하러 갔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내가 초기에 가지고 있던 고유 어빌리티만을 남겨 놓고 간신히 살아 돌아오게 되었고 같이 갔던 동료들 중 한 명은 가지고 있던 모든 어빌리티를 빼앗기고 이곳에서 영구추방 당했다. 그 이후로 그때 연락하고 지내던 친구들과는 연락을 끊고 활동하는 영토도 바꾸었다. 그러나 아실리만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너무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걔도 처음에만 우울하다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이 미친 게임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아? 이 게임에서 영구퇴장 당하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일어나고 있잖아? 그런 걸로 풀죽을 필요 없다니까!”

“하아, 또 그렇게 말하네. 아무리 그래도 난 신중하게 행동하겠어.”

왜냐면 다음에는 널 잃을 수도 있으니까 라는 말은 생각하는 것만으로 얼굴에 홍조 이펙트가 뜨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실리는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치~ 그렇다면 정보를 얻는 대로 처치해줄 거지?”

“그래, 정보가 모이면 말이야.”

“그럼 그렇게 알고 아실리는 이만 로그아웃 하겠습니다! 내일은 오프라인 쪽에서 중요한 일이 있거든 그럼 이만!”

아실리가 말을 마치자마자 아실리의 아바타에 백색 광원 이펙트가 몸을 감싸며 사라졌다. 아실리의 눈부신 퇴장이 끝난 것을 확인한 후 나는 곧바로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어이, 마스터. 그래서 어디까지 알고 있어? 소문의 PK길드 정보.”

나는 눈앞에서 컵을 닦으며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콧수염의 캐릭터한테 말을 걸었다. 이 술집의 주인은 NPC가 아닌 플레이어이다. 어빌리티 온라인은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꼭 사냥이 아니어도 이렇게 먹고 살 수 있으며 재미도 느낄 수 있다. 현실세계와 또 다른 현실과도 같은 삶. 이게 이 게임의 프랜차이즈였다.

“흠~ 아무리 VIP 고객인 사인이라도 이번 건은 정보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마스터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마스터가 정보료를 요구할 때의 사인인데 하던 일을 멈추고 컵이나 접시를 닦기 시작하면 5천 골드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면 10만 골드, 그리고 지금처럼 콧수염을 만지면 1만 골드이다.

“에엑? 나한테도 공짜로 못 넘겨주는 정보라니. 얼마나 강했던 거냐? 그 길드.”

중간 정도 가격이긴 하나 정보료를 받는다는 시점에서 정보를 얻기 상당히 힘들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그 PK길드가 강대하다는 것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1만 골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곧바로 라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 거 같지만 1만 골드면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현금 5000원 정도의 가치이며 초보자에게는 충분한 밑천이 될 수 있는 금액이다. 또 NPC가 파는 무기 한정이면 1만 골드의 가치를 넘기는 무기는 몇 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피 같은 돈 1만 골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꿀꺽하며 마스터는 귀까지 걸린 입을 열었다.

“아니, 개개인이 강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길드원 모두 레어 아이템이 기본 장비인데다 뉴비 플레이어 한 명을 상대하더라도 여러 명이서 파티를 이루어 PK하더군. 게다가 파티 내에는 꼭 고렙 플레이어를 한 명 이상 넣어두어서 역으로 당할 확률을 최소한으로 만들어. 이미 하는 짓을 보면 그들은 PK플레이어가 아니라 플레이어 사냥꾼이야.”

“그 정도나 하는 건가……. 집단PK길드라니, 참 성가신 조직이 생겨버렸어……. 보통 어빌리티를 나누는 건 때문에 집단PK같은 건 잘 안하는데 말이야.”

유저들이 PK를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개개인의 원한. 다른 하나는 PK중독자 마지막으로 어빌리티다. 이 게임에서 PK이유의 90%는 어빌리티 때문에 이루어진다. 1인 PK의 경우 자신이 쓰러뜨린 상대의 어빌리티를 자신이 가지면 그만이지만 집단으로 PK를 할 경우 누가 어빌리티를 갖느냐에 대해서 문제가 생긴다. 일단 기본적으로 마지막 일격을 가한 플레이어가 어빌리티를 강탈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누가 더 열심히 상대방의 HP를 깎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마지막 일격을 가할 것인가가 중요해 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많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누가 마지막 일격을 가할지 미리 정해놓았다 하더라도 이 게임에서 어빌리티는 캐릭터 능력의 전부라 봐야한다. 그렇기에 집단PK를 하던 무리들 중에서는 결국 어빌리티에 눈이 돌아가 같이 PK를 하던 동료를 PK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좋은 예로 과거에 존재하던 집단PK길드는 모두 어빌리티 분배 문제 때문에 와해되었다. 그러므로 집단PK길드를 운영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하는데…….

“그 길드는 어떻게 어빌리티 분배를 하는 거지?”

“5~10인 정도의 대규모 파티를 맺고 한 사람당 각각 하나씩.”

“뭐? 잠깐 그게 말이 돼?”

PK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어빌리티는 단 하나다. 어차피 PK로 인해 플레이어가 죽고 나면 PK불가능 지역인 마을로 이동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단PK를 하는데 한 사람당 1개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5~10인이 하나씩이라면 한 사람에의 최대 어빌리티 보유 개수가 5개이므로 다시 말해 한 번 걸리면 영구퇴장이라는 소리가 된다.

“말이 돼. 특수한 아이템을 사용하면 말이야.”

“튿수한 아이템?”

“그래, 아이템 중에서 굳이 분류를 하자면 소모성 부활 아이템이겠지. 그 아이템은 딱히 상대방에서 부활 요청을 하지 않아도 아이템을 쓰기만 하면 죽은 상대를 곧바로 그 자리에서 살려낼 수 있는 모양이야. 원래 용도는 파티원이 죽었을 때 부활 요청과 부활 아이템을 사용하겠냐는 선택창을 누르는 과정을 전부 캔슬해서 빠른 복귀를 하도록 하는 아이템이겠지만 그 녀석들은 PK용도로 사용하는 모양이야.”

“뭐? 그렇게 PK에 이용하기 쉬운 아이템이 존재 한단 말이야? 그런 아이템이 왜 아직까지 건의 사항에 올라오지 않은 거야?”

“그야, 그 아이템 무척이나 레어한 모양이고 게다가 그 녀석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던전의 함정 필드라던가 깊숙한 미궁필드에서만 PK를 하는 걸. 그러니까 목격자는 물론이고 피해자도 없으니 건의가 안 들어오는 수밖에, 글을 쓰려면 일단 계정이 있어야 하는데 영구 탈퇴 당하면 자동 삭제 당하잖아? 또 그 녀석들 자기 길드원 이외의 플레이어가 그 아이템을 손에 넣었을 경우 PK를 통해서 강탈해 가는 모양이더라고. 나도 정확한 정보를 위해 그 아이템을 한 번 얻어 보려고 하다가 영구퇴장 당할 뻔했다고.”

그리 말하니 정보료 1만 골드는 싼 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렇다고 더 낼 생각은 없지만.

“그거, 스릴 넘쳤겠군. 그나저나 누가 이 일에 대해서 의뢰라도 했어? 이미 정보가 모여 있다니 낮에 사냥 말고 정보원 활동을 한다고 해도 상당히 많은 정보를 입수 했는걸?”

“뭐, 모두 고객을 위해서 하는 거지. 정보원 활동이 하도 짭짤해야지 말이야.”

내 질문에는 맞지 않는 대답을 하였다. 모양을 보니 아무리 VIP인 나여도 고객 정보는 비밀인가 보다.

“흥, 고객 정보는 누출할 수 없다는 건가?”

“뭐, 그렇다는 거지. 자, 그럼 폐점시간이 됐으니 자네도 슬슬 로그아웃 하는 게 어때?”

마스터는 대화하면서 닦고 있던 마지막 글라스 잔을 선반 위에 올려놓으며 그렇게 말하였다.


02

로그아웃 직후 천천히 눈꺼풀을 열면서 검게 차단된 시야를 넓혀갔다. 약간의 멀미를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처음 가상현실에 엑세스한 후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토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 멀미감을 즐기게 되었다. 기분 좋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거실로 향했다. 현재 시각은 오후 11시. 평소 같으면 그냥 잠을 청했을 테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오랫동안 가상현실 세계에 머무르느라 약간의 탈수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수분보충을 위해서였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차갑게 식은 보리차를 컵에 따라 들이키며 오늘 마스터의 술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생각했다. 즐기라고 존재하는 게임인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심한 짓을 하는 걸까. 물론 즐기는 방식이야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게임 라이프를 방해하는 건 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일은 수업도 아르바이트도 없는 일요일이니 아침 일찍 접속해서 내 나름대로도 정보를 모아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막 로그아웃 했을 때만해도 천근만근 무겁던 눈꺼풀이 지금은 차가운 보리차 때문인지 그 PK길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잠이 확 달아나 버려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망했다. 아무래도 일찍 일어나기는 그른 모양이다.

결국 다음날 기상 시각은 오전 11시. 아침을 먹기도 점심을 먹기도 애매한 시간에 일어나 버렸다. 결국 어찌 할까 고민하다 아침은 거르기로 하고 1시쯤 점심식사를 위한 알람을 맞춰 놓은 뒤 어빌리티 온라인에 엑세스했다.

아바타를 감싸고 있던 광원 이펙트가 사라지자 나를 반기는 것은 티르 마을의 중앙 광장의 분수와 이미 중천에 떠있는 가상의 태양이었다. 가상이라고는 하나 현실의 태양과 똑같이 뜨겁고 붉게 타오르는 태양은 지금이 여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으아, 가상현실이라도 더운 건 똑같다니, 얼마나 현실 반영을 하고 싶은 거야 이 게임은. 나중에 스키 게임이라도 받아놔야겠어.”

혼잣말로 게임의 계절에 대해서 투덜거리면서 나는 마을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먼저 들릴 곳은 마을의 관청이었다. 모든 기본 정보가 모여 있는 곳이며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인 관청에서 PK길드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서였다.

관청에 도착한 후 나는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른 시간도 아니긴 했지만 엄청난 인파가 관청 앞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름이라 그런지 수많은 아바타들이 북적대는 관청 근처 에어리어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하였다. 아바타라고는 하나 시스템에 의해 체온과 숨결의 온도까지 전부 재현해 놓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인파를 헤집고 찾아간 곳은 환전상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참고로 여기서 노점을 차려놓은 환전상들도 NPC가 아닌 플레이어다. 이 게임은 6개의 대륙과 더불어 100개 정도의 커다란 국가가 존재하며 그 국가마다 화폐의 통화가 다르다. 이 게임에 환전상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여서인데 물론 환전이야 마을의 은행에서 해주지만 그것은 게임 시스템으로 조작된 환율이며 실질적으로 플레이어들이 사용해서 변동되는 환율을 잘 반영해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생긴 직업이 바로 환전상이다. 환전상은 자신이 속한 상업 길드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다른 국가의 재정 상태와 NPC가 파는 무기 가격의 변동, 몬스터 리젠 속도의 변동 그리고 플레이어들 사이에서의 시세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뒤 각 국가에 배치되어있는 환전상 플레이어들과 환율을 조정한다.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환전상 같은 상인 계열의 캐릭터들은 흔히 약탈이나 강도짓을 당하는데 그들이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그 시점에서 뉴비나 바보라는 것이 증명된다. 상인 계열의 캐릭터들의 대부분은 게임이 만들어진 직후부터 시작한 올드비들뿐이다. 과거에 한창 랭커반열에 올라 이름을 날리고 지금은 잊혀진 과거의 영웅들이 바로 이 상인 캐릭터들이다. 요즘은 제자를 두거나 해서 꼭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초보 상인 캐릭터도 약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상인이 되려면 먼저 꼭 거쳐야하는 것이 바로 상인 길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길드는 상업 조합이라 불리며 그들의 유대는 어떠한 길드보다도 높다. 일단 길드원의 문제는 곧 길드의 자금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상인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마을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를 돕고 지내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가끔 상인 길드에 들지 않은 상인, 즉 행상인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그만큼 또 강하다는 것이기에 섣불리 물건을 강탈하려고 했다간 자신의 어빌리티만 잃는 꼴이 되고 만다.

그나저나, 이 녀석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또 위치를 바꾸었나?

주위를 둘러보며 단골 환전상을 찾고 있자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가세요 예쁜 아가씨~. 다음엔 오프모임 콜?”

경박한 목소리하며 여성 플레이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헌팅을 하는 저 두꺼운 면상. 내가 찾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어이, 기르트. 또 온라인 헌팅 중이냐?”

“오우, 사인아니야? 나한테 무슨 볼일이냐? 환전? 정보? 그것도 아니면 나를 만나기 위해?! 이 녀석 언제 그런 취향에 눈을 뜬 거냐!”

텐션이 너무 높아 오히려 여자에게 인기가 없을 거 같은 이 녀석이 바로 단골 환전상인 기르트이다. 뭐, 온라인상에서는 오히려 이런 성격이 인기가 있긴 하다. 허나 현실에서도 이런 성격이라면 이 녀석은 흔히 ‘나대는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재미있는 녀석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 어쩌라는 거냐? 그나저나 헌팅을 하더라도 오프모임 이야기를 그렇게 간단히 꺼내지 말라고 전에도 충고하지 않았냐? 안 그래도 이 게임은 다른 게임보다 분위기가 뒤숭숭하니까 말이야. 플레이어정보 까발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물론 잘 알고 있지. 농담으로 하는 게 당연하잖아? 어차피 이런 헌팅에 넘어오는 여성플레이어도 없고 말이야……. 아, 우울해진다. 그나저나 오늘 온 용건을 아직 못 들었는데?”

“집단PK길드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으면 전부 말해주기를 바래. 정보료는 후하게 쳐주지.”

“흠, 너 그 정보 어디서 먼저 들었어?”

“아실리한테, 그 뒤 마스터한테서 자세한 정보를 1만 골드로 샀지.”

“그러면 더 이상 내가 할 이야기는 없겠는 걸? 유감스럽게도 내가 아는 정보도 마스터랑 별 차이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냐. 허탕 친 건가…….”

“그렇게 됐네. 정보를 더 얻을 거라면 차라리 던전 주변이나 어슬렁거리는 게 나을 거라고 봐. 너 정도 실력이면 파티하나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잖아? 싹 처리하고 한 놈을 잡아다 반죽음 상태로 만든 다음 심문을 하는 편이 빠를 거야. 그런데 나는 그 길드 부수러 가는 거 솔직히 말리고 싶다. 정보를 조합해 봤을 때 이번 건은 좀 위험해 보인다.”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기르트는 나에게 말했다. 상상 이상으로 그 길드는 강대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는 것은 그 만큼 그 PK길드는 유저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걸 생각하니 위험하던 어쩌건 간에 이번 건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 눈을 보니 포기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그나저나 너 다시 의뢰라도 받기 시작했냐? 평소에는 그저 그런 정보에만 손을 대더니 웬일로 이렇게 위험한 정보에 손을 대려고 하는 거야?”

“아실리가 시켜서 말이지. 그 길드를 퇴치하라고. 예전처럼 말이야.”

“예전이라……. 네가 막 18채널이 들어와서 영웅 대접을 받던 때를 말하는 거지? 그 여자 상당히 취했었나보네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낸 거 보면.”

난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기르트는 과거의 지인은 아니었으나 내 과거사를 알고 있는 녀석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과거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녀석의 단골이 되고 친구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 그럼 네 말대로 던전이나 돌아볼까? 사냥 안 한지도 오래됐고 던전 안이 훨씬 시원할 테니까.”

“그래, 몬스터들이랑 피서 잘 보내고 와라. 그리고 너, 접속 끊기고 3일간 재접속이 없으면 네 지인들 모아서 장례식 치를 거니까 꼬박꼬박 들어와라! 알겠냐!”

장례식이라니 게임을 못하게 되는 거뿐이지 현실 쪽의 나는 죽는 게 아닌데 너무 큰일을 버리려는 거 아니……아, 생각해보니 게임 페인인 내가, 게임을 못하게 된다면 금단현상으로 정말 죽을지도…….

거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기르트의 배웅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렇게 되면 장례식장은 마스터네 집으로 해라!”

뒤 돌은 상태로 손을 흔들며 나는 게이트 포인트로 걸어갔다.

게이트 포인트. 기본적으로는 한 번 가보았던 마을의 위치를 저장해 마을과 마을을 오고 갈 수 있는 텔레포터이나 여기에 던전이나 타워, 필드 곳곳에 숨겨져 있는 세이브 포인트를 저장하면 최전방 지역까지도 순식간에 이동이 가능해진다. 오랫동안 걸어 다닐 필요가 사라지기 때문에 사냥의 효율성이 좋아지는데다 여차하면 세이브 포인트까지 피난해서 마을로 대피할 수 있기 때문에 던전 등의 세이브 포인트 위치에 관한 정보는 비싼 값에 팔린다고 한다.

나는 혼자서 공략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내 버렸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때 한 가지 바보 같은 짓을 해버렸다. 혼자서 찾은 거 까지는 좋았으나 그 위치 정보를 무료 배포해서 한 번은 상업 조합과 크게 한바탕 싸운 일이 있었다. 지금은 그럭저럭 다시 관계 회복이 되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 친구리스트에 있던 상인계열의 플레이어들 중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게임 플레이어로써 뼈아픈 경험이다.

막상 게이트 앞으로 오니 파티 하나 상대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고 기르트가 말하긴 했어도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나도 내 실력을 상당히 믿는 편이지만 언제나 예상외의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힐러나 원거리 지원을 해주는 마법사나 궁수 플레이어를 헬퍼로 부르면 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접속한 지인은 없었다. 기다렸다가 가자니 생각해보면 그들이 요청을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도 확실하지 않는데다 무엇보다 지인들 대부분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녀석들뿐이었기에 결국 헬퍼를 부르는 것은 포기하고 혼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지는 티르 마을에서 한 마을을 더 거쳐서 가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중급에서 중상급 플레이어들이 이용하는 노이어 던전.

어빌리티 온라인은 특별히 마을이름과 던전이름에 뜻을 두지 않고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이어 던전은 명백히 그렇지 않았다. 이 던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는 언데드 계열인데 대게 한쪽 귀가 없거나 아예 귀여 소실된 종류만 등장한다. 제작진의 개그 센스와 네이밍 센스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알려주는 던전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던전의 구조는 다른 던전에 비해 미로 같다. 본격적인 미로인 미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조가 단순하지만 이 던전에 처음 입장한 사람은 기본 1시간은 해매고 나서야 비로소 보스룸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이 던전은 구멍 함정, 중독 함정, 퇴로 차단 함정, 몬스터 소환 함정, 화살 함정 등 유난히 함정 필드가 많이 존재 한다.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는 공격력은 쌔지만 무엇보다 기동력이 없기 때문에 거리만 잘 조절해서 싸운다면 쉽게 경험치를 벌 수 있다. 그래서 아마도 쉽게 경험치를 넘겨주고 싶지 않다는 마인드를 가진 악취미한 제작진이 함정 필드를 곳곳에다 배치해 놓았다는 소문이 있다.

노이어 던전의 함정 중에서도 가장 많으면서 가장 위험한 게 구멍 트랩인데 이 트랩은 STR이나 AGL, 즉, 근력이나 민첩성만 높으면 빠져나오기 쉽다. 반대로 말하자면 근력과 민첩성이 딸리는 마법사 계열의 플레이어는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마법사 계열의 캐릭터가 빠졌다고 해서 아예 못 빠져 나오는 것도 아니다. 대게 이런 던전을 돌때는 보조 아이템인 갈고리 밧줄을 산다. 이것을 깜빡하고 챙겨오지 못했더라고 구멍의 직경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골렘 등을 소환하여 탈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여건이 안 되는 마법사는 물기둥이나 불기둥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이용해 그 분사력으로 탈출한다. 그러나 이 방법의 경우 자신이 마법에 의한 데미지를 입기 때문에 스트랭스와 바이탈을 올려 두지 않은 체력이 낮은 마법사는 잘못하면 자멸할 수도 있다. 어찌 됐건 간에 말의 요점은 구멍 함정은 탈출의 어려움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함정이 위험한 것은 이곳에서 PK가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떨어지는 순간은 무방비 상태가 되기 쉽다 그래서 상대의 떨어지는 위치를 파악에 그곳에 서서 검이나 창 같은 것을 위로 향해 들고 있기만 해도 손쉽게 PK가 가능한 것이다. 설령 찔린 상대가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한 치명상을 입혔기 때문에 PK를 시도한 플레이어가 반대로 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꼭 그런 방법을 쓰지 않다고 일단 구멍으로 떨어진 플레이어는 낙하 데미지 때문에 한동안 경직 상태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까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구멍에 잠복해서 기다리고 있던 플레이어가 PK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가장 좋은 점은 사람들 눈에 잘 뜨지 않는 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도움을 줄 플레이어가 생길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점 때문에 그 PK길드도 함정 필드를 택한 것이니라.

적당한 구멍 함정을 찾아 이리 저리 던전을 어슬렁거리고 있자니 방금 막 누군가가 떨어졌는지 상당히 커다란 직경의 구멍이 눈앞에 나타났다.

“휴~ 이정도면 대규모의 파티가 잠복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는 걸? ……그런데 네들은 왜 밑에 있지 않고 위에 있냐?”

나는 구멍 앞에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말을 걸었다. 아니, 다른 플레이어의 시각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일지 몰라도 탐색 스킬을 마스터한 나에게는 은신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플레이어 세 명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은폐가 들켰다는 것을 알자. 하나 둘씩 은신 스킬을 풀기 시작했다.

“탐색 스킬 마스터 랭크라니, 상당히 고레벨인가 본데?”

“그래도 이걸 어쩌냐? 우리한테 걸려서 말이야.”

“맞아 우리 파티의 형님들은 초 고레벨이라고.”

후방의 세 명이 먼저 입을 열고 자신의 파티에 리더들을 비행기 태웠다.

“우하하하! 그 말이 맞다! 맞아!”

“아그들아 너무 그렇게 띄우지 마라. 하하! 뭐, 확실히 내가 쌜 테지만 말이야. 하하하!!!!!”

그러더니 정면의 둘이 호쾌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분위기를 보니 내 정면에서 좌우로 위치한 플레이어가 고레벨 유저이고 나머지 후방의 플레이어는 저레벨 플레이어인 듯했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쓰러뜨리면 그만인 것이다.

“어이, 너희 다섯 명. 그만 쪼개고 덤벼라.”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덤빌 거였다!!!”

내 도발에 5인방은 열이 뻗쳤는지 바로 공격해 왔다. 5명이서 전 방위에서 덮쳐오는 공격이었으나 못 막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단순해서 좋았다. 나는 곧바로 한 손에 들고 있던 한손검을 긴 카타나로 바꿔 장착한 후 기술을 발동 시켰다.

기술명은 「스핀 컷(Spin Cut)」 레이피어 등 찌르기 전용 검을 제외한 모든 검 계열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로 몸을 회전 시켜 전 방위 공격을 하는 스킬이다. 데미지도 높고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였을 때의 상황을 타파하기도 좋은 스킬이나 PvP용으로는 절대 쓰지 않는 스킬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스킬 시전 후 딜레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즉, 카운터 공격을 받기에 매우 좋기 때문에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한 것이 아니면 PvP도중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하하! 바보 같은 녀석! 이래서 PvP초보들이란! 스킬이 끝나면 바로 카운터를 먹여주마!”

그렇지만 유일하게 나는 PvP도중 이런 딜레이가 큰 스킬을 써도 상관없는 유저이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이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2개의 고유 어빌리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18채널의 영웅이라고 불리게 됐던 이유이기도 하였다.

“3, 2, 1……. 공격!”

스킬 시전이 끝나자마자 5인방은 바로 반격에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딜레이 없이 두 번째 스킬을 발동 시켰다. 또 다시 딜레이가 큰 전 방위 공격인 「펜타곤 블레이드(Pentagon Blade)」, 이 스킬은 고속 대쉬 스킬을 선행으로 배우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스킬로 별 모양으로 고속 대쉬를 하면서 상대방을 배는 스킬이다. 이 스킬은 당하는 플레이어 쪽도 적지 않게 경직이 생기지만 역시 시전한 후 딜레이가 너무 긴데다 5타를 전부 클린 히트 하지 않으면 후 딜레이를 커버할 만큼의 큰 데미지도 안 들어가기 때문에 웬만한 괴짜가 아니고서야 잘 사용하지 않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만큼은 문제가 되는 사항이 아니다.

두 번째 스킬 시전 후 5명 중 레벨이 낮아 보이던 3명은 결국 시체가 되어 마을로 전송되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PK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이름에 레드 마크가 떠 있는 범죄자 플레이어였기에 내 이름에 레드 마크가 뜨는 일은 없었다.

“네, 네놈! 대체 어떻게 그 딜레이가 큰 스킬들을 연속해서 쓸 수 있는 거냐? 버그 유저냐?”

오인방 중 가장 레벨이 높아 보이던 플레이어가 격분하며 소리쳤다. 아마 리더인 모양인데 고레벨 유저라고 해서 이정도의 플레이만 보여줘도 내 정체를 눈치 채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수많은 PK플레이로 인한 폭업 유저였던 모양인지 내 정체에 대해서 눈치 못 챈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버그 유저라니 너무 한걸? 과거 18채널의 스킬 페이커(Skill Faker)로써 굴욕이야.”

“스킬 페이커…….”

“설마, 이중스킬능력자인……!”

오인방의 고레벨 플레이어 둘은 거기까지만 말하였다. 정확히는 그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또 다시 딜레이 없이 발동된 세 번째 스킬, 도 계열 돌진 스킬인 「언리미티드 크리센트(Unlimited Crescent)」가 둘을 무자비하게 썰었기 때문이다.

“스태미나를 너무 심하게 낭비해버렸어…….

5인방을 별 어려움 없이 쓰러뜨린 뒤 구멍 안에 있는 파티도 쓰러뜨리기 위하여 구멍가까이 다가갔다.

“꿀꺽, 이건 대체…….”

나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찔함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생각보다 구멍의 깊이가 깊고 어두웠기 때문이다. 설마, 아니 확실할 것이다. 악취미한 제작진이 구멍의 깊이를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m로 설정한 것이 분명하였다.

“으으, 이걸 들어가야 돼 말아야 돼.”

범죄자 플레이어를 쓰러뜨리기 이전에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것이었다. 결국 철수하기 위해 뒤돌아섰을 때 구멍 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왜 누군가가 있는 건데! 내려가면 되잖아! 내려가면!”

내가 생각해도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리는 하는 건지 참 어이없는 발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당장 구멍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구멍 속으로 뛰어 들었다.

11m. 단 몇 초의 시간이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자유낙하를 마치고 몸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중력가속도와 발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느낌. 낙하 데미지였다. HP바가 5%정도 깎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큰 데미지는 아니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눈앞에 있는 것은 위쪽에서 본 5인방의 동료처럼 보이는 5명의 집단에 포위되어 린치를 당하고 있는 한 소녀였다. 내가 굳이 PK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이 순식간에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칼로 얕게 베거나 발로 툭툭 차는 등의 행위로 아주 조금씩 HP를 깎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5인방은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살려달라는 소녀의 흐느낌은 5명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때문에 묻히고 구멍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한 채 그거 밑바닥을 맴돌 뿐이었다. 그들은 아직 내가 구멍에 떨어진 것을 눈치 못 챘는지 아니면 소녀를 괴롭히는 게 너무 즐거워서 그만 나를 무시하는지 계속해서 여성 플레이어를 폭행하고 있었다.

참을 수 없다. 즐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임에 왜 저런 광경이 펼쳐져야 하는 것이냔 말이다. 저래서야 현실과 다름없지 않은가. 즐거워야할 게임이 사회의 악이 판치는 현실로 물들이지 말란 말이다!

“어이! 네놈들 뒈지고 싶지 않으면 당장 마을로 텔레포트 하는 게 좋을 거다.”

네 고함에 5명은 모두 뒤돌아보았다. 그 중 레벨이 조금 높아 보이는 한 명이 비아냥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라? 뭐야 저 녀석 살아있었네? 어지간히도 큰 소리가 나서 낙사한 줄 알았는데 말이야.”

“다시 한 번 말한다. 어빌리티를 잃고 싶지 않으면 귀환서를 써.”

“아앙? 뭐라는 거야 아까부터? 너야 말로 뒈…….”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투창 스킬 「페이탈 스피어」가 크리티컬 포인트인 머리에 명중하면서 HP바가 그 자리에서 소멸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한 번 더 경고를 줄 생각이었으나 저 녀석이 뒤돌아보며 말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소녀를 발로 걷어차고 있었기에 열이 뻗쳐서 그냥 공격해버렸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에 4명 모두 섣불리 반응을 하지 못하고 굳어있었다.

“자, 당장 텔레포트 해. 안 그러면 똑같은 꼴을 맛보게 해주지.”

오른손에 장비하고 있던 창은 아까 투창 스킬로 날아가 장비가 해제되었으므로 곧바로 나는 오른손에 롱 보우와 함께 허리춤에 활 통을 달았다.

“에, 에잇! 저런 거 다 허세야! 운 좋게 크리티컬 포인트에 명중된 거뿐이라고! 숫자는 우리가 유리하다!”

나는 곧바로 입을 나불거리는 녀석을 향하여 스킬을 사용했다.「스나이핑 에로우」시야 배율을 10배에서 최대 100배 가까이 늘려 급소 명중 확률을 높여줌과 동시에 명중 데미지와 크리티컬 데미지를 증가시켜주는 보조 스킬이다. 스킬의 보정을 받으며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다. 동시에 아바타가 폴리곤 파편이 되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당하자 결국 한 플레이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또, 또 야! 또 한방에 죽었다고! 나, 나는 도망갈 거야!”

패닉상태에 빠졌는지 비명을 지른 플레이어는 허둥대며 인벤토리 창을 열어 귀환서를 사용하였다. 동료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자 나머지 2명도 황급하게 귀환서를 사용하며 사라졌다.

탐색 스킬로 아직 남은 적이나 적이 깔아놓은 함정이 없다는 것을 전부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아까 내가 던져 땅에 꽂힌 창을 뽑아들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아직도 공포에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아바타였으나 나는 그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명백하게 나를 향한 공포였다. 나는 조금 침울해 하면서 소녀에게 말하였다.

“저, 저기. 전 당신을 해치러온 게 아닌데…….”

“흐, 흑, 흑…….”

“그러니까 이제 그만 무서워하셔도…….”

나는 안심시키기 위해 손에 들려있는 창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고 소녀를 향해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소녀 쪽에서 먼저 땅을 박차고 달려와 나에게 전력으로 몸통박치기를 하였다. 약간의 데미지를 입었다는 이펙트가 뜨면서 HP가 3포인트 정도 줄어들었다. 나는 깜짝 놀라 소녀를 때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곧바로 저지당했다.

“싫어, 싫어! 싫어! 또 쫒아올 거야! 싫어! 우아아앙!!! 도와주세요!!!”

그 뒤에 들린 소녀의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나의 행동을 멈추게 하였다. 소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엉망진창이었다. 이 정도면 현실세계 쪽에서도 상당히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나는 그 모습에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도와줄게 그러니까 지금은 마음껏 울어.”

결국 소녀가 진정할 때까지 그 상태로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03

“탈퇴 보복용 집단 린치라고…….”

“그, 그게 저, 저는 원래 집단PK길드 인툼 갓(Entomb God)의 멤버였어요…….”

에리스라고 닉네임을 댄 소녀는 아직도 벌벌 떨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가끔 내 눈치를 보기도 하고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며 어딘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저기, 에리스 딱히 네가 전 PK길드 멤버라고 해서 너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아니, 저, 그, 그게……. 그, 그나저나, 이 가계 괜찮네요. 아기자기한 게 단골로 삼고 싶은 수준이에요. 사인님은 남자면서 이런 취향의 가계도 알고 계시네요.”

“뭐, 그렇지…….”

나는 에리스로부터 눈을 돌리면서 대답하였다. 실은 이 가계는 내 취향이 아니라 기르트 녀석이 꼬신 여성 플레이어와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 쓰는 가계이다. 그렇다 지금 나는 아까 던전에서 구해줬을 때 처음 만난 플레이어와 오프모임을 갖는 중이었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플레이어 정보가 발각되면 가장 위험한 인물 1위인 내가, 이렇게 처음만나는 사람과 오프모임을 갖게 되다니……. 그래, 이건 모두 내가 무른 탓이다. 길드 정보를 얻기 위해 에리스에게 물어보았을 때의 일이다. 마을에 귀환 하자마자 나는 에리스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심산이었으나 에리스는‘여기서 말하는 건 위험하니까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이야기해요. 안 그러면 저 불안해서 죽을 거 같아요.’라고 울면서 이야기했고 나도 그 태도에 당황해 ‘그럼 어차피 나도 곧 점심 먹기 위해 접속 종료 할 거였는데 이 가계에서 만나는 게 어때?’라고 대답해버렸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 말을 철회하고 싶다. 어디서 누군가가 현피를 걸어올까 봐 불안해 죽겠다.

“사인님 왜 그러세요? 안색이 안 좋아요.”

에리스가 얼굴을 가까이 하며 물었다. 처음 통성명을 했을 때도 느낀 거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확신이 섰다. 현실세계의 에리스의 모습은 아바타 못지않게 귀여웠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기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며 답하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에리스 너는 왜 그런 길드에 들어간 거야?”

“처음에는 순전히 쉽게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서였어요. PK란 플레이는 비인도적인 특히 이 18채널에서는 더더욱 해서는 안 되는 플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따라가고 싶었어요. 이 게임 실은 제 친구들이랑 같이 시작한 것이었거든요.”

에리스의 눈에서 슬픔이 깃들었다. 그녀는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게임을 못해서 친구들의 레벨을 잘 쫒아가지 못해서 멀리서 친구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때 이 길드에 들어와서 레벨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PK라는 건 정말 경험치를 많이 주더라고요. 죄책감을 좀 느끼기는 했지만 친구들의 레벨을 금세 따라잡아 같이 사냥하며 놀 수 있었어요. 그렇게 계속 즐거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영구퇴장을 당했어요. 저희 길드원에게 당해서 말이죠. 그 아이가 리버스 스크롤이라는 아이템의 첫 희생자에요. 저는 마음 아파했어요. 그렇지만 길드를 탈퇴하면 집단 린치가 가해진다고 해서, 무서워서 그만둘 수 없었어요…….”

에리스는 점점 흐느끼면서 말했다. 이 이상 말하는 것은 그녀에게 괴로워 보였다. 나는 에리스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말하기 괴로우면 조금 이따가 말해도 돼.”

“고맙습니다. 괜찮아요, 이제. 길드를 무서워서 그만둘 수 없었다는 부분까지 이야기 했죠? 네, 그 이후로 친구를 영구퇴장으로 몰아넣은 길드를 그만두지 못해서 저는 친구들과 서먹해졌어요.”

결국 에리스는 참을 수 없었는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꼭 자신의 죄를 말함으로써 용서를 구하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죄를 토해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것을 덜어내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우울했어요. 친구를 한 순간에 잃어서……. 그렇지만 저를 지배하는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공포였어요. 길드에 대한 공포……. 정말 무서웠어요. 길드는 PK방식을 바꾸면서 길드원들의 분위기는 점점 더 흉포하고 악질적으로 변했어요. 저는 너무나 두려웠어요. 길드원들의 잔인함도 저에게 영구퇴장 당한 사람들의 원한도 친구들의 질타도요.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저도 언젠가 저렇게 퇴장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며칠을 두려움 속에서 지내다가 저는 결국 이기지 못하고 길드를 뛰쳐나왔어요.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그런데 금세 붙잡히고 구멍함정에 넣어져서 린치를 받기 시작하다가 그 이후부터는 사인님이 보신대로에요.”

각오는 하였으나 생각했던 거보다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라서 놀랍고 마음이 무거웠다. 에리스의 경우는 게임에서의 문제가 현실에까지 영향을 끼쳤기에 정말 가슴이 아팠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게 끝이에요. 저는 말단 길드원이라서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 죄송해요. 구해주시기까지 했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만 해서 죄송해요. 손수건 감사했어요. 빨아서 돌려드리고 싶지만 안 되겠죠?”

에리스는 나에게 손수건을 건넨 뒤 자리에 일어섰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인사한 뒤 에리스는 뒤돌아 가계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은 너무나 약해보이고 불안해보였다. 조금이라도 건들이면 쓰러질 듯이 위태위태해보였다.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잠깐만!”

갑자기 가계 안에서 발생된 큰 소리에 안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놀라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실은 나도 놀랐다. 내 입에서 갑자기 고함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에리스는 내 고함을 들었는지 아무 말 없이 뒤돌아보았다. 나는 이목이 쏠려 부끄럽긴 했지만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에리스, 너……웁!”

입을 틀어막은 것은 에리스였다. 에리스는 새빨개진 얼굴로 작게 말하였다.

“할 말이 있으면 가계 밖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와 에리스는 공원에 가기로 하였다.

“사인님은 부끄러움을 모르시네요. 그렇게 주목당한 상태에서 게임에서의 닉네임으로 저에게 말을 거시다니. 얼마나 창피했는지 아세요!”

아직도 얼굴에 붉은 기가 가시지 않은 채 에리스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확실히 반성한다.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저를 불러 세우셨죠?”

“아니, 그게 그 상태로 가면 또 다시 게임 속에서 그 녀석들에게 당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네, 뭐 십중팔구 아니 확실하게 그렇게 되겠죠…….”

또 다시 에리스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하였다. 뭔가, 뭔가 이 아이를 위해 도와줄 일이 없을까.

“저기, 내가 보디가드가 되는 건 어떨까? 게다가 네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던전 안에서 도와준다고 말하기도 했고.”

잠깐! 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 말은 얼떨결에 한 말이었잖아! 게다가 기억 못하고 있는 걸 뭣 하러 상기시키는 거냐!

“네? 그렇지만 그러면 너무 폐가 되고…….”

“아니, 걱정 마. 하나도 폐가 안 되니까. 실력이 의심되는 거라면 그것도 이래 보여도 예전에는 이런 저런 의뢰도 많이 받고 했던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나란 놈은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것보다 의뢰 받는 거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저기, 그럼 정말……. 정말 저를 지켜줄 거예요? 그 길드로부터? 정말이요?”

여기서 사양하면 전언 철회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에리스의 대답은 내 기대를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에리스는 정말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결국, 난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정말이야.”

내 대답에 에리스의 얼굴에서 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아까 보여주었던 슬픔의 눈물과는 다른 감동의 눈물이었다. 이거 정말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염치없지만 부탁드릴게요.”

“염치는 무슨. 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데 뭐.”

다시 또 우는 에리스에게 나는 젖은 손수건을 건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울고 울음을 그친 뒤 5분정도 지났을까 상당히 진정되어 보이는 에리스가 의문점이 있는지 나에게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기, 사인님, 사인님은 왜 처음 보는 저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거죠?”

“흑심?”

참고로 개그다. 진정도 되었고하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한 개그였다. 그러나 타이밍이 나빴던 모양인지 에리스의 표정이 확 굳었다.

“아니,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드리면 곤란하다고.”

물론 아예 흑심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했다. 실물을 보고 말았으니까 말이지. 그렇지만.

“내가 너를 도와주는 것은 단순히 내 철학 때문이야. 게임은 즐기라고 있는 거잖아? 그러기 위한 게임에서 누군가가 현실에서도 상처입고 괴로워하는 것을 나는 볼 수가 없어. 단순하게 나는 아직 어린애처럼 정의 편 놀이를 하고 있는 거처럼 보일지도 몰라. 자기만족밖에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지. 실제로 가끔 나도 그렇게 느끼기도 하지만 놀이를 하고 있는 거라도 상관없어. 내 행동으로 구제 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말이야.”

나는 있는 그대로 내 진짜 이유를 들려주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말하다니, 나도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결국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인님, 조금 멋지네요.”

“뭐라고 했어?”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제가 접속하는 시간하고 이런 저런 연락을 해야 하니까……. 저기, 저, 그러니까……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세요!”

“어, 어. 그래.”

우와, 위험하다. 방금 쑥스러워하는 에리스의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귀엽다고 생각해버렸다.

“그, 그럼 사인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응. 나야 말로 잘 부탁해.”

----------------------------------------------------------------

긴 글이라 첨부파일도 붙여놓았습니다. 게임을 소재로는 처음 써보는데 잘봐주셨으면 좋겠네요.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