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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힐러를 만났다.
글쓴이: 로타트
작성일: 11-09-12 20:08 조회: 2,234 추천: 0 비추천: 0

나는 힐러를 만났다.

프롤로그

어떤 상황이 발생한다. 사람은 가장 처음 눈으로 그 현상을 받아들이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각은 생각에 머물러 끝난다. 다소 위험성이 있더라도 그것이 단지 가능성에 머물고 있을 뿐이라면 그다지 행동으로 옮길 필요성을 느끼진 않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인도에서부터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갈 때는 저러다 도로로 가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리진 않았다. 설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아이는 횡단보도로 걸어갔고 뒤에서 아이 엄마인 듯한 사람이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다시 생각이 들었다. 저러다 자동차라도 오면 위험할 텐데. 아이 간수 좀 잘하지. 위험의 가능성이라고만 생각했으므로 그냥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빠앙!

"!!"

경적소리에 가슴이 얼었다. 커다란 트럭 한 대가 아이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위험이라고. 그리고 움직였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리가 손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도로로 뛰어들었다. 몸을 날려서 아이를 안고 뒤돌아섰다. 좋은 타이밍이다. 그대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끼이이익!

하지만 착각인 모양이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세상이 뒹굴었다. 바로 치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아프지는 않아서 바로 일어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

고개를 들려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흐릿해지고 숨쉬기가 거북해졌다.

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시야를 빙 둘러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이거 완전 드라마에서 사고 당해 죽는 사람의 시야랑 똑같지 않은가. 정말 허망하게 끝나는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었는데......

제 1 장. 힐러

"응?"

이영현은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오른팔을 들어서 쥐었다가 폈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오므려졌다가 편지는 손가락. 이상무. 정상적인 손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손의 주인인 이영현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뭐야? 왜......"

"좀 어떠세요?"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물었다. 바보같이 멍한 얼굴로 자신의 손등을 보고 있다가 이영현은 고개를 돌렸다.

"괜찮으세요?"

윤기 흐르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옆에 꿇어앉아서 묻고 있었다.

"......"

소녀를 보는 순간 이영현은 잠시 할 말도,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었다. 미소 짓는 얼굴이 천사처럼 너무 아름다웠다. 외모가 예쁘기도 했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 미소가 정말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성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어라? 실패했을 리가 없는데?"

소녀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영현은 정신이 들었다.

"아뇨, 몸은 괜찮은 것 같은데......"

일어서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면 트럭에 치여서 뻗었을 터다.

'있잖아, 트럭.'

게다가 위치는 여전히 횡단보도 위다. 주변으로는 거리를 약간 두고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이쯤이면 확실하다. 혹시나 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트럭에 치인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다시 손을 움직여 보았다. 문제없음. 설마 다리가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서 일어서 보았다. 문제없음. 머리, 어깨, 무릎, 발바닥까지 모두 정상이다.

하지만 트럭에 치이고도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무사한 것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던 것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제가 치료했어요."

목소리에 영현은 고개를 돌렸다. 미소가 아름다운 그 소녀가 미소 짓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제가 당신을 치료했어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는데 다행히 마침 제가 근처로 지나가고 있어서요."

"......"

영현은 다시 한 번 소녀를 훑어보았다. 무릎까지 오는 연한 갈색 스커트에 하얀색 스웨터의 그 간단한 차림새는 절대 간호사라고는 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근처에 멈추어 서있는 차중에 구급차도 없었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영현이 쳐다보자 소녀는 한층 더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 힐러거든요."

힐러?

그러니까 RPG 게임에 직업 분류 군 중에 꼭 하나씩 끼어있는, 파티원의 생명력을 회복시켜주고 육체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버프를 걸어주며, 유저 수가 적기 때문에 귀족으로 대접받는 그 힐러?

"저기요. 그러니까 그 쪽이......"

"아, 구급차 오네요. 그럼 전 가볼게요."

"아니, 잠깐만요."

소녀를 부르며 따라갔지만 영현은 소녀를 놓치고 말았다. 동영상을 찍어대는 인파 속으로 뛰어들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대체......'

영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납득할 수 없는 일뿐이었다. 트럭에 치었던 자신이 되살아난 것이며, 뜬금없이 옆을 지키고 있던 소녀. 게다가 자기가 힐러라니.

'그게 말이 되냐고.'

말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다 죽어가던 자신이 살아난 걸 보면 분명히 뭔가 있긴 할 터인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영현이었다.

& & &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검진 받은 결과는 충격이었다.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건강해서 이상하다 생각될 정도였다.

'덕분에 별 문제 없이 퇴원하긴 했지만......'

문제없이 퇴원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대체 무엇이 자신을 치료했는가? 자칭 힐러라는 그 소녀는 대체 뭐였는가?

'설마 그 애가 진짜로 힐러인건......'

자신이 한 생각이었지만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하하하. 그렇진 않겠지. 그래, 아니겠지."

영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월세로 살고 있는 자취방의 문을 열었다. 늘 그렇듯이 영현은 간이침대로 가서 드러누워 천장을 쳐다봤다. 초침 움직이는 소리만 나고 조용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사고가 나서 도로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지금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침대에 누워있다. 뭔가 기분이 뒤숭숭해서 이상했다.

'텔레비전이라도 볼까.'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텔레비전이 켜졌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는데도 여전히 안테나를 고치지 않은 듯 나오는 채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제대로 나오는 거라고 해봐야 제일 재미없는 뉴스 채널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뉴스가 재미없다고 그냥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다. 뉴스 방송에 나오는 화면이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다.

'내가 치였던 데잖아!'

장소만 일치할 뿐인 것이 아니라 뉴스의 주제 역시 그 사고였다. 앞부분이 일그러진 트럭이 멈춰 있고 그 앞에 자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근처의 CCTV에서 찍힌 것이라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차에 치인 직후의 자신이 크게 다쳤다는 것 정돈 알 수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정말로 나 크게 다쳤었잖아. 그런데......'

그때였다. 화면에서 널브러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파를 헤치고 누군가 나섰다. 미소가 아름답던, 자칭 힐러라던 그 소녀였다. 사람들에게 뭐라고 소리치며 물러서게 만든 소녀는 영현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양손으로 영현이 다친 부위에 가져다댔다.

"뭐야, 정말 힐러라도......"

소녀의 손에서 타원형으로 하얀 빛이 터졌다. 약간 거리를 둔 채로 소녀가 상처를 어루만지듯이 쓰다듬자 하얀 빛이 일렁거리며 상처를 덮어갔다. 땅바닥에 철철 넘치며 흐르던 핏물이 줄어들었다.

"뭐야, 저거 진짜......"

말이 나오지 않는 영현이었다. 저건 정말로 힐러였다. 다른 말로는 설명이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저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띠리리릭.

당황해서 중얼거리고 있는데 상황 파악 하지 못하고 핸드폰이 울어댔다. 그 사고의 와중에도 흠집 하나 안 나고 무사했던 목숨 질긴 핸드폰이었다.

오는 전화를 안 받을 순 없었다. 발신인이 어머니란 걸 확인하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너 괜찮니?

"네?"

아마 부모님도 텔레비전에서 사고를 본 거겠지. 하지만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영현은 짐짓 모른 체 하며 애매하게 되물었다.

-네 동생이 너 사고 당했다고 하던데. 인터넷으로 너 동영상 올라왔다며 보여주던데. 너 괜찮은 거니? 지금 어디니? 어디 병원이야?

놀란 심정이 그대로 보이는 어투였다.

'인터넷에까지 깔린 건가.'

하기야 거기 있던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그렇게 찍어댔는데 인터넷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터였다.

-영현아, 영현아? 너 지금......

"저 괜찮아요, 엄마. 치이긴 했는데......"

-치였다고. 얼마나 어떻게 다친 거야? 영현이, 너......

& & &

"하아."

영현은 한숨을 쉬며 통화를 마쳤다. 어머니에 이어 여동생에 기타 등등 친구들까지 안심시키기 위해 계속 말을 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오늘밤에 자신이 쓰러진 건 결코 사고의 후유증 때문이 아니었다. 불나게 터지는 전화에 매크로 답변을 하다 지쳐서다.

"아무튼 이제 좀 잘 수 있겠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수면을 위한 영현의 간절한 소망은 무참히 깨졌다.

톡, 톡.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흔들렸다. 불을 끄고 누우려던 영현은 문을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젠 전화가 아니라 직접 찾아오는 거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걱정해주는 그 마음에 너무 황송해서 그냥 무시하고 자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톡, 톡, 톡.

하지만 몇 초를 못 기다리고 두들긴다.

"아, 예, 갑니다. 오늘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천신만고 끝에 무사한 이영현이 문 열러 갑니다. 그러니까 문 그만 두드리고 기다리......"

귀찮아하는 티를 역력히 내며 문을 열다가 이영현은 갑자기 굳어버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라고 하기엔 딜레이가 좀 짧은 것 같네요."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이 전혀 뜻밖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소가 아름다운 소녀, 자칭 힐러라던 그 소녀가 두 손을 다소곳이 앞에 모으고 있었다.

"아, 네에......"

소녀가 인사하자 영현은 어정쩡하게 마주 인사를 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하하, 어서 오세요. 라고 하기엔 왠지 어색한 느낌이 있고 그렇다고 무슨 일로 오셨어요? 라고 하기에도 뭔가 좀 이상하다.

"저도 반갑습니다."

결국 무난하게 선택한 영현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게 실은요."

소녀가 가슴 앞으로 길게 늘어뜨려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낮에 일하고 관련된 건데 조금 잘못된 게 있는 것 같아서요."

"낮의 일이라면 그 사고 말인가요?"

"네에."

순간 흠칫하는 느낌이 든 영현이었다. 혹시 자신의 몸과 관련해서 잘못된 것이라도 있단 말인가? 하지만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했었는데.

"아뇨,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쪽의 몸은 제대로 잘 치료됐었거든요. 다만 제가 하나 실수를 해서요. 잠깐, 아주 잠깐이면 돼요.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 & &

"휴우, 정말 감사드려요. 전 그쪽이 같이 가기 곤란하다고 말하면 어쩌나 정말 걱정했었거든요. 그렇다고 그냥 가면 그 사람이 화 낼 테니까 난감하고요. 아무튼 같이 가주셔서 감사드려요."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소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매번 저 미소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영현은 참 아름다운 미소라고 생각했다.

'저 미소 때문에 결국 따라가기로 한 거지만.'

저런 미소를 짓는 사람이 사실은 다단계였다거나 인신매매범의 미끼였다거나 하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소녀의 미소는 경계심이나 의심을 가지기엔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저 이름도 안 가르쳐 드렸네요. 전 이가연이라고 해요. 말씀드렸듯이 직업은 11월 용병단의 힐러에요."

두어 걸음 앞서 걸어가던 힐러 소녀, 가연이 뒤로 돌아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미소에 비해 하는 말의 내용은 너무나 안드로메다였다. 그냥 힐러라고 한 것도 모자라서 11월 용병단이라니.

'뭐 이런 부분은 그냥 무시하는 게 낫겠지.'

어색하게 웃어넘기는 영현이었다.

"전 영현이라고 해요. 이영현. 대학교 다니는데 지금은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처지고요. 뭐 오늘은 여러 가지 일 있어서 밤일은 못 하고 미적거리고 있었지만."

"아아, 대학생이셨구나. 게다가 아르바이트라니. 대단해요. 정말 멋져요."

"......"

대학생에 아르바이트 조합보다는 그쪽의 용병단에 힐러 조합이 훨씬 판타스틱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이라고 말하고 싶은 영현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말을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빠아앙!

커다랗고 공격적인 경적소리가 울렸다. 영현과 가연은 동시에 경적소리가 난 곳을 쳐다봤다.

'라, 람보르기니?'

천장이 없는 노란색 람보르기니가 거기에 있었다. 영현과 가연이 서있는 곳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도로가에 주차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놀란 건 그것이 아니었다. 비싼 자동차이긴 하지만 한국도 그리 못 사는 나라는 아니니 충분히 볼 수도 있으니까.

영현이 놀란 건 람보르기니의 운전석에 앉아있는 짧은 보브컷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여성이 이쪽을 보고 있었단 것이었다.

영현은 잠시 람보르기니 여자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가연을 쳐다봤다.

"아는 사람이세요?"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엔 람보르기니를 몰 만한 사람이 없으니.

"네. 저희 언니에요."

설마 했는데 가연이 고개를 끄덕했다.

"!!"

그와 동시에 영현의 머릿속이 뭔가가 우르르 쏟아졌다. 이 사람의 언니라는 사람이 람보르기니를 몰고 있다고? 람보르기니? 사실 알고 봤더니 재벌 회장님의 딸이었습니다. 이런 건가.

"우리 친하게 지내요, 가연 씨."

영현이 환하게 웃으며 가연에게 악수라도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아무려면 람보르기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모는 사람의 동생이라면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이 없다. 아니, 그럴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한다면 그건 바보천치다.

"네, 친하게 지내요."

가연이 웃으며 영현의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가연의 하얗고 긴 손가락의 끝이 영현의 손에 닿으려는 순간,

피잉!

"우왓!"

아귀에서 화끈함을 느끼며 영현은 재빨리 손바닥을 아래, 위로 휘저었다. 화끈함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 보니 아귀가 아주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이 벌어져 있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피보다 영현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내 동생한테 수작부리면 주욱는다잉."

람보르기니 여자가 손에서 은빛구슬 몇 개를 던졌다가 잡았다 하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코끝으로 살짝 내려간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버드나무 이파리처럼 날카로웠다.

"언니, 또!"

영현이 뭐라 하기도 전에 가연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소리쳤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돌려 영현을 볼 때는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 언니가 조금 히스테리가 있거든요. 일단 상처부터 치료를."

"아뇨, 이 정도는 괜찮은데......"

"안 돼요. 치료해야 해요."

가연은 한 손으로 영현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을 상차 부위 위에 살짝 가져다댔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힐'을 할 때와 같은 동작이었다.

'진짜 되는 건가?'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내심으론 정말 그 힐이란 게 진짜인지 궁금한 영현이었다. 물론 자신이 그 힐 덕분에 살아났으니 믿어야 하겠지만 직접 보지 못한 이상 믿기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독, 재생."

가연이 눈을 감고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하얗고 가는 손가락 사이로 희미하게 하얀 빛이 새어나왔다. 강렬한 빛은 아니었지만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정말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손바닥에 발광체를 들고서 하는 사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상처 부위에서 느껴지는 따끔함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 결과를 보고서는 더욱 그랬다.

"나았네?"

손아귀가 벌어져 있던 상처에는 핏자국이 남아있을 뿐 완전히 나아있었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처가 1cm는 벌어져서 피부 안쪽의 붉은 살이 다 보일 정도였는데 그게 몇 초 만에 나은 것이다.

영현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아귀의 다 낳은 상처와 가연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반면 정작 치료를 한 당사자인 가연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요, 시간 더 끌었다간 언니의 히스테리가 더 심해져서 구슬을 더 엄한데 던질 거예요."

가연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람보르기니 여자가 살벌한 눈빛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은구슬을 쏘아낼 기세로 말이다.

물론 저 구슬에 맞아도 가연이 치료해주기는 하겠지만 맞고 치료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안 아픈 게 훨씬 나은 법이다.

게다가 차에 타지 않더라도 저 구슬을 자신에게 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뭐,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RPG 게임에서나 가능할 법한 힐을 하는 소녀에다 람보르기니를 몰면서 구슬을 총알처럼 쏘아대는 탄지신공 여자라니. 이상해도 뭔가 한참이나 이상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은근히 호기심도 들었다. 이건 자신이 알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그녀들은 살고 있다. 그 세계가 궁금했다. 판타지나 무협 소설에나 나올법한 그 세계가 말이다.

'남자라면 질러야지.'

영현은 결심을 했다.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그녀들과 함께 가보기로.

& & &

영현은 굉장히 무안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당연한 거였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람보르기니에는 뒷좌석이 없다는 것을. 다시 말해 가연과 영현 중 람보르기니에 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는 말이었다.

"제가 택시를 잡든지 해서 알아서 갈게요. 영현 씨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까."

영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가연은 근처에 있는 택시를 잡아타고는 가버렸다.

"......"

남겨진 람보르기니 여자와 영현. 선택지는 이미 하나뿐이었다. 영현은 람보르기니의 조수석에 탔다. 초특급으로 뻘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리라 예상은 할 수 있었고 예상대로 람보르기니가 출발한지 20여분 째 뻘쭘한 분위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하지만 영현은 이 침묵을 깨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래도 남자인 자신이 먼저 말을 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영현이라고 해요. 이영......"

"운전할 때 말시키지 마."

"......"

하지만 돌아오는 건 옆으로 지나가는 바람만큼이나 차가웠다. 운전 중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는 모습에서 그런 차가운 이미지가 더 짙게 느껴졌다.

'자매라더니 왜 이렇게 다른 거지.'

성격도 외모도 완전 딴판이었다. 가연은 천사 같은 외모에 실제로 성격도 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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